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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반도체 시장이 호황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CPU나 AP, MPU 등 다양한 반도체들이 상승세에 있지만, 전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에 반도체 시장의 호황을 이끌고 있는 주역은 메모리반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최근 데이터 저장량이 늘어남에 따라 낸드플래시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점점 진화하고 있는 낸드플래시의 발전 가능성을 알아보겠습니다.

슈퍼사이클의 주역 중 하나, 낸드플래시

최근 반도체 슈퍼사이클 호황을 살펴보면 D램, 낸드플래시의 성장세가 단연 돋보입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D램은 올해 642억달러(약 72조1900억원)로 2위인 마이크로프로세서유닛(MPU, 171억달러)의 3배 이상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낸드플래시는 워낙 시장 수요가 강합니다. 과거 50% 이상을 기록했던 비트그로스(Bit Growth, 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 증가율)가 20%대로 하락해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할 수 있을 전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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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바꿔서 생각해보면 낸드플래시의 용도가 D램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 제품은 모두 메모리반도체이지만 쓰임새가 다릅니다. 데이터를 담아두는 역할은 같으나 D램은 주메모리, 낸드플래시는 보조저장장치로 사용되죠. 어떤 차이냐고요? 한 마디로 PC나 스마트폰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저장하는 용도로 낸드플래시가 더 많이 사용된다는 뜻입니다.

데이터 폭증, 낸드플래시로 다 저장

각종 기기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이른바 ‘커넥티드’ 세상으로 접어들면서 이들이 뿜어내는 데이터의 양이 커졌습니다. ‘데이터 폭증’이라 부르는 현상인데요. 데이터는 일단 만들어지면 어딘가에 저장해야 합니다. 그것이 클라우드이든 USB 메모리이든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사라지죠. 그런데 주메모리로 쓰이는 D램은 낸드플래시와 달리 용량을 무조건 늘린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닙니다.

둘 다 운영체제(OS)나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만 일반적으로 주메모리는 보조저장장치보다 용량이 작습니다. 현재 주력으로 판매되는 PC의 D램 용량이 8GB 이상으로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6GB를 장착해도 전체 성능에 끼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죠. 물론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사용자 환경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서버와 같은 엔터프라이즈는 상황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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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데이터를 저장해야 하는 이상 낸드플래시는 지금보다 더 많이 사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흔히 보조저장장치하면 CD나 DVD와 같은 광디스크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전에는 훨씬 더 다양한 보조저장장치가 쓰였습니다. MD나 PD와 같은 광자기디스크, 테이프 드라이브, 그리고 플로피디스크나 집드라이브의 기초가 되는 자기필름판 등이 있었습니다. 현재 테이프 드라이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명맥이 끊긴 상태죠. HDD가 그만큼 저렴해서인데, 낸드플래시가 대중화되면 자연스럽게 바통 터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대중화되고 HDD는 백업용으로 쓰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따라서 낸드플래시는 지금보다 더 저렴하면서도 용량을 크게 높아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껏 등장한 보조저장장치의 목적이 이겁니다. 처음에는 수 메가바이트(MB)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기가바이트(GB), 일부 제품은 테라바이트(TB)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매우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나 앞으로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트 늘어날수록 용량↑ 성능↓

낸드플래시는 어떻게 데이터를 저장할까요? 기본적으로 데이터를 저장하는 최소 단위인 셀(Cell)을 몇 비트(Bit) 저장하느냐에 따라 싱글레벨셀(SLC·1비트), 멀티레벨셀(MLC·2비트), 트리플레벨셀(TLC·3비트)로 구분합니다. 셀은 전류가 흐르는 비트라인(BL)과 데이터를 읽고 쓰는 워드라인(WL)의 각 교차점(크로스포인트)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셀 내부에는 플로팅게이트(FG)에 전자를 채우고 비우는 방식으로 ‘0’과 ‘1’을 인식합니다. 그래야 디지털 방식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겠죠.

이수환 3.jpg▲ 비트 수가 늘어날수록 복잡성도 커지지만 같은 공정에서 용량이 늘어나는 장점도 있다

FG는 절연체인 산화막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이 상태로 컨트롤게이트(CG)에서 높은 ‘+’ 전압을 걸어주면 ‘-’ 전자가 산화막을 통과해 FG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데이터가 자연스럽게 기록되고, 기록된 데이터를 지우려면(산화막에 갇혀 있는 전자를 빼내려면) 반대로 기판에서 높은 ‘+’ 전압을 보내면 됩니다. 그러면 FG는 텅 비워지겠죠. SLC부터 TLC까지 모두 FG에 전자를 저장하는 원리는 같습니다. 다만 전자를 어떻게 구별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가령 2비트 MLC라면 ‘전자가 없다(00)’, ‘조금 있다(01)’, ‘중간쯤 있다(10)’, ‘많이 있다(11)’의 4단계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TLC는 8단계가 필요합니다.

수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산화막은 기본적으로 닫혀 있지만 CG에서 전압이 계속해서 들어오면 전자가 들락날락하면서 손상이 생깁니다. 같은 용량의 데이터를 1년 동안 썼을 때 전자가 상대적으로 덜 오고 가는 SLC는 오랫동안 셀을 유지할 수 있으나 MLC나 TLC는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아집니다. 결국 FG에 전자를 담아둘 때 어떤 상태인지 구분하는 경우의 수가 많고 전압의 세기를 촘촘하게 조절해야 하는 등 복잡성이 늘어나는 방식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TLC부터 오류 확인&수정(Error Check&Correct, ECC) 코드가 들어가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용량은 비트 수가 늘어날수록 증가하니 같은 공정이라면 성능은 ‘SLC>MLC>TLC’, 용량은 ‘TLC>MLC>SLC’라고 보면 됩니다. 비트 수가 늘어날수록 같은 공정에서 더 많은 용량을 집적할 수 있지만 읽고 쓰기와 같은 성능은 물론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대중화에 접어든 TLC, 원동력은 컨트롤러

용량을 늘리기 위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업체는 컨트롤러와 펌웨어와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합니다. SSD에서 컨트롤러가 중요한 이유죠. 같은 업체의 낸드플래시를 사용하더라도 어떤 컨트롤러냐에 따라 성능에 큰 차이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치 자동차 엔진처럼 말입니다.

이 분야에서도 엔진컨트롤유닛(ECU)에 담겨 있는 소프트웨어 따라 엔진의 성능이 달라집니다. 이를 거꾸로 이용해 맵핑이라는 작업을 하면 엔진의 숨겨진 능력을 100%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두뇌가 중요하다는 뜻이죠. 그래서인지 SSD 컨트롤러는 전·후방 업체를 가리지 않고 원천기술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SK하이닉스도 LAMD, 아이디어플래시, 이노스터 컨트롤러 사업부, 소프텍 등을 인수합병(M&A)한 바 있습니다.

2 (26).png▲ SK하이닉스는 자체 컨트롤러 기술을 갖추고 있다

낸드플래시는 이제 TLC를 넘어 쿼드레벨셀(QLC·4비트)까지 진화한 상태입니다. 몇몇 업체가 이미 QLC 도입을 발표했으며 관련 제품을 공개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연히 단위면적당 용량을 늘리기 위해서입니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선제투자 성격으로 같은 데이터센터에서 서버의 수 보다는 서버 1대에 탑재되는 메모리반도체 용량을 높이려는 추세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고 봐야 합니다. 당초 업계에서는 TLC가 2014년 대규모로 도입됐을 때 안정성에 의구심을 가졌으나 올플래시 스토리지 등 기업용 시장에서 성과가 나타나면서 MLC를 밀어낸 상태입니다. QLC도 초기에는 소비자용 제품인 클라이언트 SSD에 도입되고 이후에 엔터프라이즈 SSD로 전파될 것으로 보입니다.

가격 대비 용량, HDD 대체하는 SSD

QLC로의 진입은 3D와 같은 적층과 함께 맞물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단 72단 이하에서 일부 저가형 모델에서 QLC를 적용한 이후 100단 이하에서 본격적인 대중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경쟁사보다 한시라도 빨리 유리한 가격 대비 용량을 구축해야 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만 하더라도 72단 3D 낸드는 TLC가 우선적으로 개발됐을 정도죠. 그러니 이후에는 TLC가 기본이고 QLC를 옵션으로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26).png▲ HDD→SSD 시대로의 진입은 기정사실이지만 가격 대비 용량의 벽을 크게 넘어서야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SLC=고급형’, ‘MLC=중급형’, ‘TLC=보급형’이라는 인식이 있었죠. 하다못해 같은 스마트폰에서 MLC, TLC에 따라 성능차이가 난다면서 불만을 터뜨리는 소비자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이론적으로 MLC가 TLC보다 성능과 안정성에 더 좋을 수 있지만 지금은 큰 의미가 없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용량에 있어서 MLC는 TLC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이런 불만을 잠재운 것은 결국 3D와 컨트롤러 기술 덕분이고요. 앞으로 QLC 시대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SK하이닉스는 72단 3D 낸드의 발 빠른 연구개발(R&D)과 자체 컨트롤러 기술 역량을 확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업체입니다. 이제는 질뿐만 아니라 양을 적극적으로 뿜어낼 시기로 진입하고 있어서 QLC를 통해 보조저장장치의 낸드플래시화가 한층 더 활발하게 일어나는 시기를 대비해야 합니다. 과연 어떤 기술을 무기로 우리에게 깜짝 놀랄만한 제품을 선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디지털데일리

이수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