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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메모리 컴퓨팅(In Memory Computing)’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현대사회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컴퓨터는 초기의 기계적인 부품에서 벗어나 트랜지스터 개발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았죠. 인메모리 컴퓨팅은 비메모리에서 메모리로의 트렌드 전환을 의미합니다. 데이터를 담아두는 그릇이 상상 이상으로 커지고 속도가 빨라지면 세상은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변화가 예상되는데요. 오늘은 ‘속도의 혁신’이라 불리는 인메모리 컴퓨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 메모리 용량

현대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컴퓨터는 대부분 ‘존 폰노이만(John von Neumann)’이 제시한 ‘폰노이만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른바 ‘프로그램 내장 방식’의 데이터 처리 구조는 ‘입력→처리→출력’이라는 흐름을 따름과 동시에 어딘가에 저장할 곳(메모리)을 필요로 합니다.

아톰(Atom)으로 구성된 아날로그 세상과 달리 디지털은 비트(Bit)를 최소단위로 사용하며,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혁명을 가능케 합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미디어랩스 소장을 역임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저서인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에서 ‘전 세계의 디지털화’를 예상한 바 있죠. 그리고 이런 데이터는 돌고 돌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며 21세기 유전이라 불리기까지 합니다.

조금 어려운 개념일 수 있지만, 결국 이런 데이터가 원활하게 흐르기 위해서는 클라우드뿐 아니라 엣지(Edge) 디바이스의 메모리 성능도 한층 강화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기기가 연결되어 있는 ‘커넥티드’ 세상에서 여전히 전통적인 ‘컴퓨팅’ 기능이 외면 받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현대인의 필수품이라 불리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년 새로운 모델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여전히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속도를 높이고 메모리 용량을 늘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죠. 예컨대 애플 아이폰만 하더라도 2007년에 나온 1세대 모델에서는 128MB D램과 4~16GB 낸드플래시를 탑재했습니다. 최근 나온 아이폰 텐(X)은 어떨까요? 3GB D램, 64~256GB 낸드플래시를 사용합니다. D램은 20배 이상, 낸드플래시의 경우 16배 이상 용량이 커졌습니다.

과거와 비교해 컴퓨팅에 필요한 메모리 용량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가속도가 붙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모양새죠. 여기에는 AP와 같은 중앙처리장치(CPU)의 눈부신 발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조금 돌아왔지만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이겁니다. 폰노이만 구조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컴퓨터에서 처리 속도가 빨라질수록 메모리의 중요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복잡해진 SoC, 더 커진 메모리에서 답을 찾다

1_3 (10).png▲ 퀄컴이 공개한 최신 AP 스냅드래곤 845는 캐시메모리 용량을 크게 늘렸다.

따라서 메모리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려면 시스템온칩(SoC) 결정판, 스마트폰 두뇌인 AP가 어떻게 바뀔지 살펴봐야 합니다. 현재 이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것은 퀄컴의 ‘스냅드래곤’입니다. 통신 기능을 담당하는 모뎀칩, 그리고 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SoC의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요소가 골고루 균형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특히 한 발 빠른 모뎀칩 대응은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CPU, GPU 성능이 최고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것 하나 모난 곳이 없는 다재다능한 AP라고 볼 수 있죠.

특히 내년 전 세계 주요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탑재될 ‘스냅드래곤 845’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메모리입니다. 전작인 ‘스냅드래곤 835’보다 성능이 더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칩 사이즈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버퍼 역할을 하는 캐시메모리(S램) 용량을 크게 늘렸기 때문입니다. CPU, AP에 달라붙는 캐시메모리는 코어(Core)에 근접한 순서에 따라 레벨1(L1), 레벨2(L2), 레벨3(L3) 등으로 구별하고 용량은 ‘L3>L2>L1’ 순으로 많습니다. 스냅드래곤 845의 경우 코어마다 L2 캐시메모리가 제공되며 2MB 용량의 L3 캐시메모리가 새롭게 추가됐습니다. 여기에 더해 3MB 시스템 캐시메모리를 얹었습니다. L3와 시스템 캐시메모리를 더하면 5MB 용량을 제공하죠. 인텔 코어 i3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AP의 성능이 높아졌으니 메모리도 보조를 맞춰야 합니다. 올해부터 나온 AP는 ‘LPDDR4X’를 지원합니다. LPDDR4X는 ‘LPDDR4’보다 전력소비량은 적으면서도 속도를 더 빠르게 설계한 모바일에 최적화된 D램입니다. 코어 전원 전압(VDD2)과 출력 전압(VDDQ)을 분리시키고, VDD2와 VDDQ가 1.1볼트(V)이었던 LPDDR4와 달리, VDD2는 동일하지만 VDDQ를 0.6V로 낮춘 것이 특징이죠. 캐시메모리가 늘어나면 D램은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속도보다는 용량을 더 키울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인메모리 컴퓨팅, 빅데이터 시대의 필수조건

1_4 (9).png▲ 미세공정 한계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내부의 캐시메모리는 계속해서 확장되어 왔다. (출처: 인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메모리 요구사항은 ‘대역폭’, ‘용량’, ‘지속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D램과 같이 주메모리로 쓰이는 반도체는 CPU와 비교했을 때 여전히 속도가 느립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시대에 더 빠르고 전력소비량이 낮은 메모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기술전환이 필요하지만 비트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라 어떻게든 혁신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인메모리 컴퓨팅(In Memory Computing)’입니다.

인메모리 컴퓨팅이란 디스크(보조저장장치)가 아닌 메모리상에 데이터를 저장해 두고 처리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컴퓨팅 속도저하의 근본원인인 입출력(I/O)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죠. 인메모리 컴퓨팅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의 혁신’입니다. 단순히 과거에 했던 업무의 처리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PC 성능이 2배 좋아졌다고 해서 내가 처리하는 업무 능률이 같은 수치로 올라가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빨라진 속도를 통해 과거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전혀 새로운 차원의 비즈니스 혁신이 가능해지는 셈입니다.

낸드플래시가 대중화되면서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대신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널리 쓰이고 있죠. 구형 PC라도 HDD에서 SSD로 바꾸면 운영체제(OS) 부팅 속도는 물론, 전반적인 시스템 쾌적성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됩니다. 그런데 이런 SSD도 D램 속도에 비하면 한참 느립니다. 만약, D램에 OS나 프로그램을 설치해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HDD→SSD와는 또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라 확신합니다.

물론 D램은 휘발성 메모리라 전원이 꺼지면 저장된 데이터가 사라져버립니다. 하지만 SSD와의 적절한 협력, 3D 크로스포인트와 같은 차세대 메모리의 등장, 그리고 한층 빨라지는 CPU‧AP와 맞물려 사용한다면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습니다. 메모리 중심의 컴퓨팅을 표방하는 ‘Gen(젠)―Z 컨소시엄’의 목적도 크게 다르지 않죠. 처리장치에서 저장장치로의 주도권 전환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는 빅데이터의 집합체인 데이터베이스(DB)의 구조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죠. 데이터 트랜잭션 처리와 분석을 하나의 DB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까지는 트랜잭션 시스템과 분석 시스템을 별도로 운영해왔는데, 트랜잭션 시스템에서 분석을 할 경우 속도가 무척 느렸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주기로 데이터를 분석 DB로 옮길 필요가 없이 인메모리 컴퓨팅을 사용하면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데이터를 분석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만들어내는 데이터?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방점

1_5 (8).png▲ 인메모리 컴퓨팅은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주도권 전환과 맞물릴 가능성이 높다. (출처: IBM)

다시 돌아와서, 처리장치와 저장장치는 서로 보조를 맞추며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최근에는 반도체 미세공정의 한계로 인해 용량이나 대역폭을 늘리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CPU‧AP와 같은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캐시메모리 용량 확대는 아키텍처 변화보다 미세공정 개선으로 얻는 이득이 더 많을 때 쓰이는 방법입니다. 인텔이나 AMD, IBM 등이 모두 이런 방식을 택했죠. 바꿔 말하면 퀄컴의 AP 아키텍처는 올해 극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으며, 스냅드래곤 845에서 늘어난 캐시메모리는 한꺼번에 밀려드는 데이터를 처리하는데 있어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20세기의 석유가 그랬듯, 데이터는 21세기에 무한한 가치창출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말처럼 빅데이터도 잘 써먹어야 그만한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메모리 컴퓨팅은 목적 달성을 위한 도화지로 이제 첫 발걸음을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 중심에 SK하이닉스와 같은 우리 기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제껏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디지털데일리

이수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