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가 되면 뭐가 좋으냐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대개 어떤 류의 답을 듣고 싶은지 짐작이 가서, “USB 메모리 부자가 된다”는 농담을 던지곤 합니다. 신제품 출시 행사 등에서 관례적으로 보도자료와 이미지를 담은 USB 메모리를 건넵니다. 2000년대 이후 모든 분야의 전면적인 디지털화의 결과, 종이 잡지의 업무에도 저장/전달 매체의 혁신이 이뤄진 것입니다. 최소 1GB부터 최대 16GB까지 그 용량도, 카드, 스틱, 열쇠 등 그 형태도 제각각입니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개 TLC 방식의 플래시 메모리를 준다는 점입니다. 저렴한 대신 최대 1,000회의 쓰기 횟수 제한과 비교적 느린 읽기/ 쓰기 속도가 특징이죠.
플래시 메모리의 분류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컴퓨터 껐다 켜보라’는 건데요. 혹시나 무책임한 조치라고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근거가 있습니다. RAM은 휘발성 메모리로 전원 공급이 끊기면 데이터가 사라집니다. 컴퓨터 재시작으로 부적절하게 실행된 프로그램을 완전히 중단시킬 수 있죠. 한편 플래시 메모리처럼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남는 저장 장치는 비휘발성 메모리라고 부릅니다. (정확한 용어로 분류하면 RAM은 주 기억 장치, 플래시 메모리는 보조 기억 장치입니다.) 공히 메모리 반도체는 크게 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고, 비휘발성 메모리 안에서 SSD, CF, SD, eMMC, UFS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비휘발성 메모리 모두가 플래시 메모리 기반이다보니 그 단어가 대명사격으로 떠오른 것이죠.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플래시 메모리에 가까운 것은 NAND 타입입니다. 실행 코드가 저장된 NOR 타입과 구분되는 것으로 플래시 메모리 기반의 저장 매체가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말하자면 에디터는 ‘비휘발성 메모리, 그중에서도 TLC 방식의 NAND Flash 메모리 부자’ 인데요. 말만 어렵지 대체로 여러분이 쓰는 플래시 메모리가 여기에 속할 테니 당황하실 것 없습니다. 여러분뿐 만이 아닙니다. 전문가 또한 작고 가벼우면서도, 직사광선, 고온, 습기, 외부 충격에 강한 플래시 메모리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디지털화 이전의 저장 매체, 이를테면 하드디스크를 쓰다가 처음으로 SSD를 썼을 때의 충격을 떠올려보시죠. 플래시 메모리가 얼마나 급격한 기울기의 발전을 이룩해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디제이, 사진가, 영상 감독의 플래시 메모리를 알게 된다면 그 방증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 디제이의 경우
▲ (우) 샌디스크 익스트림 Z80 출처: 유투브
‘Phantom of Riddim' 'Registered Trade Mark' 등의 파티를 주도하고, 케잌숍, 피스틸, 헨즈 등의 서울 유명 클럽에서 디제이로 활동 중인 깐돌은 샌디스크 익스트림 Z80 64GB 두 대를 쓰고 있었습니다. (혹시 있을지 모를 고장에 대비해 똑같은 데이터로 두 대를 들고 다녔습니다.) 이 모델은 ‘익스트림’이라는 모델명에서 드러나듯이 빠른 전송 속도가 특징입니다. USB 3.0 지원으로, 같은 버전의 포트에 연결 시 USB 2.0에 비해 최대 45배 빠르다고 얘기합니다. 최근의 TLC 방식 플래시 메모리의 성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델입니다.
익스트림 Z80은 읽기속도 245MB/s, 쓰기 속도 50~190MB/s로 SLC 방식 USB 메모리의 속도를 넘어섭니다. 일반적으로 속도와 내구성, 안정성 면에서는 SLC> MLC> TLC, 가격 면에서는 TLC> MLC> SLC 순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를 배반하는 것이죠. 플래시 메모리의 발전으로 각각의 절대적인 읽기/쓰기 속도 차이가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예컨대 SSD나 블랙박스의 저장장치처럼 안정성과 내구성이 극히 중요한 경우라면 몰라도, 어느 정도 가격대성능비를 감안한다면 이제 TLC 방식의 USB 메모리도 문제없겠습니다.
둘. 사진가의 경우
고도 스튜디오의 사진가 정우영은 , 등의 잡지와 광고를 통해 다수의 제품 중심 화보를 선보여 왔습니다. 중급기 이상의 DSLR 카메라는 CF카드와 SD카드를 모두 지원합니다만, 스튜디오 촬영에서는 주로 CF 카드를 사용합니다. ‘컴팩트 플래시’라는 1994년 샌디스크가 개발한 규격인데요. 여타 메모리 카드와 달리 카드 내부에 콘트롤러를 포함해 고용량, 고성능의 제품을 생산하기 용이하고 호환성 문제도 적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품 생산 단가가 높고 제품 크기가 다소 크다는 단점을 감수할 수 있어서 아무래도 전문 사진가들에게 적합하죠. 그의 말에 따르면, 딱히 브랜드를 가리지도 않을뿐더러, 16GB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용량 또한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쓰기 속도였습니다. 디지털 백이 부착된 중형카메라에서 고해상도 ‘RAW' 포맷으로 사진을 찍다보면 연사할 때 랙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것이죠.
한편 SD 카드는 주로 야외촬영 시 보조 저장 매체로서 챙긴다고 했습니다. 샌디스크, 파나소닉, 도시바 등이 공동 개발하고 1999년 처음 발표된 SD 카드는 크기도 작고 전송 속도도 빨라 소형기기에 적합했습니다. 덕분에 스마트폰과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에 활용되면서 가장 대중적인 플래시 메모리로 자리 잡았죠. 다만 한 가지 한계가 대용량화였는데, 지난 2009년 이론상 최대 용량 2TB, 최대 속도 300MB/s의 SDXC 규격 발표와 함께 그마저도 사라졌습니다. 사진가 정우영이 최근 구입한 플래시 메모리 역시 트랜센드의 SDXC CLASS10 UHS-U3 256GB였습니다. 야외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4K 촬영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마찬가지로 고해상 고용량 이미지의 쓰기 속도를 감안한 선택입니다.
셋. 영상 감독의 경우
▲ (우) 소니 XQD 메모리 카드
에프엑스, 레드벨벳 등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잘 알려진 신희원은 촬영 장비에 따라 다른 메모리 카드를 썼습니다. 큰 규모의 촬영에서는 알렉사 미니를 주로 사용하고 이 경우 렉사의 프로페셔널 3400X CFAST 2.0 64GB를 썼습니다. 안 그래도 전문가에게 애용되는 CF인데, CFAST는 그보다도 발전된 규격입니다. 이 제품만 해도 최대 읽기속도가 510MB/s니까요. 알렉사 미니에 걸맞은 괴물 같은 성능이랄까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촬영에서는 흔히 ‘다큐멘터리 카메라’라고 일컬어지는 소니 PXW-FS7에 소니 XQD 메모리 카드를 끼운다고 했습니다.
XQD는 니콘, 렉사, 소니가 공동 개발한 차세대 플래시 메모리입니다. 가장 최근 발표된 G 시리즈의 경우 최대 읽기속도 440MB/s로 역시나 만만치 않은 성능을 보여주며 CFAST에 비해 가격도 반 이상 저렴합니다. 하지만 전용 리더기가 반드시 필요한데요. 이것이 니콘과 소니의 일부 기기에만 갖춰진 터라 아직은 갈 길이 먼 규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에디터는 “USB 메모리 부자”라는 농담이 얼마나 유효할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종이잡지의 디지털화도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는 이상, 홍보하는 쪽에서도 4K 영상이나 360 사진을 제공하는 등의 변화가 뒤따를 수 있을 테니까요. 비단 에디터뿐일까요?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직군의 숫자만큼 플래시 메모리의 종류가 다양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