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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세기 동안 반도체 기반의 전자소자는 급속한 기술 진보를 이뤘습니다. D램으로 대표되는 메모리 소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전자소자가 초소형화되었고, 덕분에 작은 크기에 많은 정보를 담고 처리할 수 있는 전자기기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이는 곧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이어져 매일 매일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생성되고 있죠.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양의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를 받쳐줄 고집적화 기술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10나노(nm) 미만에 다다르면서 감당하기 힘든 발열이 나타나는 등 심각한 문제점들이 나타난 것이죠.

반도체 업계의 최대 미션, 발열을 잡아라!

반도체 업계를 지배해온 미세화(Scaling)는 점점 느려지고 있습니다. 미세화의 한계를 극복할 스태킹(Stacking)은 상당한 추가 비용이 필요합니다. 수율이 많이 손실될 수 있고, 아키텍처의 한계도 만만치 않죠. 고객사의 요구대로 대역폭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특히 10나노급 이하의 극미세 공정에서는 트랜지스터의 크기를 미세화하더라도 소자 간 간격이 좁아지면서 메탈의 저항(RC delay)이 커지며 발열 문제도 발생합니다.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해 반도체 미세화를 더 진행한다고 해도 혁신적 기능 향상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죠.

2.jpeg▲ 데이터센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의 기술을 초월하는 고집적 고효율 메모리 소자 기술에 대한 요구도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서버D램에서는 ‘발열’이 메인 이슈로 거론될 만큼 골치입니다. 서버D램의 고객사들이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도 발열을 잡는 기술이죠. 업체들이 Capacitor와 bandwidth 기술 혁신에 집중하는 가운데, ‘발열 통제’ 기술이 향후 업계의 경쟁력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전망입니다. 발열과 전력소모를 줄이는 기술 혁신, 그리고 그에 들어가는 비용이 데이터센터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업계가 기존 소자의 구도와 소재 등을 달리해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에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특히 구조를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기술 전환은 ‘발열’에 대한 고민을 더욱 깊게 합니다.

3.jpeg▲ 4차원 반도체 소자 구조 GAA

현재 로직(Logic)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 중인 4차원 GAA(Gate-all-around)도 마찬가지입니다. 로직 분야에서 먼저 적용되는 GAA는 핀펫(FinFET)에 이어 차세대로 꼽히는 가장 핫한 기술입니다. 기존 3차원 핀펫 공정은 핀(Fin) 모양의 3D 구조를 적용, 채널의 3면을 게이트가 감싸면서 반도체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누설전류를 줄였습니다. 여기에서 한 차원 진화한 GAA 구조는 채널의 아랫면까지 모두 감싸 4면에서 게이트가 채널을 컨트롤합니다. 차세대 기술로 업계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지만, GAA 역시 발열 문제를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업계에선 GAA의 성공이 발열 컨트롤에 달려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죠. 아직까지는 업계에서 발열을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미래 기술 ‘스커미온’에서 희망을 보다

이에 반도체 업계는 스핀 기반 차세대 메모리 소자나 실리콘을 대체하는 3-5족 화합물반도체 등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향후 생체이식 컴퓨팅이 가능하고 전력소모를 줄이는 단백질 플래시메모리 등 신소재에 대한 연구도 활발합니다.

이 가운데 반도체 업계와 학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미래기술은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라는 전자과학분야에서 유명한 ‘스커미온(Skyrmion)’이라는 독특한 자성 구조입니다. 스커미온은 특정한 자성체 배열에서만 나타나는 전기 소용돌이 형태의 구조체입니다. 자성현상이지만 입자 형태를 갖고 있어서 이동이 가능합니다. 온도, 자기장, 전기장 등 외부변화에서도 그 형태나 정보를 잃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메모리 단위로 주목받아왔습니다.

스커미온은 그 상태가 발현될 때 크기가 작게는 원자 하나 정도의 크기인 1나노에 불과합니다. 현재 기술로 접근 불가능한 초고집적 메모리를 가능하게 하죠. 또 외부 전류에 의해 생성 및 움직일 때 최소의 전력으로 높은 효율의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스커미온 구조가 소자 레벨로 만들어지게 되면 소위 초저전력이라고 불리는 펨토줄(fJ) 영역에서의 구동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모든 것들을 종합해볼 때, 스커미온은 차세대 초고집적-초고효율-초저전력 메모리 소자로서 큰 장점이 있습니다.

스커미온의 이러한 성질을 알면서도 과학자들이 반도체로 응용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저온에서만 관찰되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저온 조건에서만 나타나는 것을 상온의 일상생활로 옮겨오기란 쉽지 않았죠.

4.jpeg▲ 외부 전류 자극에 의해 시간에 따라 변하는 스커미온 호흡운동 모식도. 스커미온 호흡운동이란 외부의 신호에 반응해 스커미온의 크기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하며 새로운 고주파 신호를 발생시키는 독특한 자성 움직임을 의미한다. (출처: KIST)

국내에서는 한국과학기술원(KIST) 스핀융합연구단의 우성훈 박사가 세계 최초로 특정한 조건에서는 상온에서도 스커미온이 발현될 수 있음을 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 박사는 상온에서 스커미온을 안정적으로 발생·이동시킬 수 있는 실제 메모리 소자 물질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 박사는 “스커미온 기반의 고집적-고효율 메모리 소자가 구현되면 ‘무어의 법칙’의 한계로 정체된 전자소자 분야의 신기원이 열리고 새로운 메모리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세화의 한계에 부딪힌 반도체 업계가 '발열 컨트롤'이라는 또 하나의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미래 서버D램 시장의 우위는 발열 문제를 얼마나 잘 제어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늘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며 한계를 넘어온 반도체 업계가 과연 이번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뉴스1

장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