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싸움인 미래 기술 연구, 상상력이 중요한 만큼 자유로운 연구 문화는 필수죠.
혁신은 혼자서 이뤄내는 것이 아니기에 협력하는 문화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2021년 신설된 SK하이닉스 미래 기술 연구 조직 RTC(Revolutionary Technology Center)는 ‘ORP(Open Research Platform)*’를 기반으로 활발한 연구 협력과 학술 활동을 펼치며, 2년 만에 주목받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RTC의 빠른 성장은 특유의 조직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구성원들은 입을 모은다. 수평적 문화, 유기적 연구 협력,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애자일(Agile)’한 조직 운영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룸은 이우철, 박재혁, 우정욱 TL을 만나 RTC만의 자유로운 연구 · 조직 문화를 들여다봤다.
* ORP(Open Research Platform): 기술 혁신 파트너십 강화를 통해 선제적 연구 · 개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플랫폼
“디지털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기업들을 떠올려 보세요. 급변하는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떤 기업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반도체 분야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무어의 법칙, 폰 노이만(Von Neumann) 구조가 지배하던 반도체 산업은 이제 옛말. 소자 미세화의 한계로 기존 공정만으론 메모리 속도 향상과 용량 증가가 어려워졌다. 시스템 · 메모리로 나뉜 폰 노이만 구조만으로 대규모 데이터 연산에 대응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반도체 전 영역에서 혁신이 중요해졌는데, 그중 미래 기술 연구는 급변하는 시장 속 ‘생존 전략’으로 떠올랐다.
생존이라는 막중한 사명감 속에 탄생한 조직, RTC의 임무는 ▲D램(DRAM)/낸드(NAND Flash) 혁신을 통한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 ▲뉴 타입(New-type) 메모리 연구 ▲특화된 고성능 컴퓨팅 등 차세대 컴퓨팅에 대응하는 반도체 기술 확보다.
우정욱 TL에 따르면 RTC는 회사가 나아갈 길을 탐색하는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RTC는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사가 전진할 수 있게 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즉, 미래 기술과 시장을 탐색하고 가능성이 보이는 기술을 선행적으로 연구해 미래 먹거리로 삼을 수 있도록 길을 다지는 겁니다.”
이우철 TL이 속한 미래메모리연구팀은 30년 후의 먼 미래까지 내다본다. 이 팀은 10년에서 30년까지의 미래를 로드맵으로 작성하고, 관련된 모든 기술을 살핀다. 마치 원석을 찾아 세공해 보석으로 만드는 과정과 같다는 게 이 TL의 설명이다.
“동화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마법의 콩처럼 씨앗을 심는다고 보면 됩니다. 쉽게 말해 RTC의 임무는 원석을 가공해 보석처럼 꽃피울 ‘미래 기술의 씨앗’을 심는 것이죠.”
▲ 이우철 TL이 RTC만의 자유로운 소통 문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보다 미래를 중심으로 선행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RTC에선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아이디어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 전사적으로 자유로운 조직 문화가 형성된 가운데서도 RTC의 수평적 문화가 돋보이는 이유다. 이우철 TL은 이러한 문턱 없는 소통에서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샘솟는다고 말한다.
“RTC에서는 메신저로 간편하게 소통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격식에 맞춰 메일을 작성하는 등 때때로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찾아볼 수 없죠. 소통의 문턱이 낮다 보니 임원과 대화하기도 어렵지 않은데요. 개인적으로는 제 질문에 리더인 나명희 담당님이 1:1 프레젠테이션까지 해주며 답해준 게 기억에 남습니다.”
또 하나, RTC 조직 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면 창의적 연구 프로그램이다. RTC는 ‘특허 데이’, ‘이노베이션 박스 페스티벌(Innovation Box Festival)’ 등을 통해, 자유롭게 연구하고 소통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
특허 데이는 미래 기술 대응 및 특허 선점 목적의 프로그램이다. 각 팀은 여러 특허를 조사하고, 새 특허를 고안한 뒤 머리를 맞대고 발전시킨다. 어느 정도 발전된 안이 모이면 RTC 차원에서 특허 데이가 열린다.
이노베이션 박스 페스티벌은 미래 기술 발굴 프로그램이다. 구성원들은 업무 시간 일부를 할애해 상상 속 기술을 아이디어로 발전시킨다. 이 프로그램은 연간 2회 열리는데, 여기서 채택된 안은 선행 연구로 이어진다. 연구 결과는 특허 제출 또는 학술 활동에 활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박재혁 TL은 “엉뚱한 상상을 종종 하는데, RTC에선 정식 프로그램을 통해 상상하는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겨볼 수 있어 좋다”고 평한다. 또, 구성원들은 다양한 사람과 프로젝트 팀을 구성해 협업하는 문화도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물론 RTC의 조직 문화를 이 두 가지로 대표할 순 없다. 여기 또 다른 핵심이 있으니, ‘애자일(Agile)’이다. 자유로운 소통과 더불어 RTC를 연구 잘하는 조직으로 성장시킨 일등 공신이다.
RTC가 말하는 애자일은 이슈에 따라 기민하게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뜻한다. 우정욱 TL이 속한 팀 역시 기술 변화에 대응하고자 애자일하게 조직됐다. 이처럼 RTC는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다양한 기술의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애자일한 연구 · 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수시로 연구 방향성을 검토하는 중이다. 이로써 시의성이 중요한 선행 연구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선행 연구의 경우 프로젝트 성패가 조기에 결정되기에 기존 업무 처리 방식으로 진행했을 때 적절한 연구 시기를 놓칠 수 있는데요. 이에 RTC는 이슈에 대한 즉각적인 리뷰를 통해 빠른 결정을 내리고, 프로젝트 방향을 결정하는 등 매우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과정이 좋으니, 성과는 따라온다. 이렇게 자리 잡은 특유의 조직 문화는 구성원 개인 · 조직 차원의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우철 TL은 팀원들과 함께 논의하는 특허 데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2021년 입사 후 많은 특허에 도전했고 그중 몇 건이 출원되었습니다. 특허 쓰는 것을 장려하고 의견을 교류하며,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도록 북돋워 주는 분위기 덕분에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 박재혁 TL이 이노베이션 박스 페스티벌 참여 소감과 성과를 전하고 있다.
박재혁 TL은 최근 이노베이션 박스 페스티벌에서 채택된 아이디어로 선행 연구를 마치는 성과를 거뒀다.
“상상만 해왔던 아이디어를 정리하여 공유했는데요. 이노베이션 박스 페스티벌에 선정되어서 선행 연구까지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 (왼쪽부터) 이우철, 박재혁, 우정욱 TL이 다양한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감을 전하고 있다.
이들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RTC 내에서 연구 성과 공유는 활발한 편이다. 개방형 연구를 지향하는 RTC 구성원들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소통도 활발하다[관련기사]. 이우철 TL은 업무 전반에 걸쳐 해외 연구 기관과 협업하는 중이다.
“RTC는 SRC(Semiconductor Research Corporation), IMEC(Interuniversity Microelectronics Centre), 스탠퍼드 시스템X 얼라이언스(Stanford SystemX Alliance) 등 저명한 해외 연구 기관과 함께 미래 기술을 탐색하고 있죠.”
구성원들의 활발한 연구 · 공유 활동 덕분에 조직 차원의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IEDM(IEEE International Electron Devices Meeting), VLSI(Very Large Scale Integration) 등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회에 제출하는 논문 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중이다. 물론 이 같은 성과는 빙산의 일각이며,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이우철 TL은 말한다.
“그동안 내부적으로만 했던 연구도 개방형으로 협업해 진행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성과가 쏟아질 예정이죠. RTC는 대기만성형 조직인데요. 양질의 협업 · 공유 성과가 차곡차곡 쌓인다면 미래에는 모두가 함께 연구하는 플랫폼(Open Research Platform, ORP)으로 성장할 거라고 봅니다.”
RTC는 간담회, 비전 공유회 등 여러 소통 프로그램을 열고 있는데, 많은 구성원이 특히 비전 공유회를 RTC의 강점으로 꼽는다. 우정욱 TL을 비롯해 이들 역시 같은 생각이다.
“RTC는 정기적으로 비전 공유회를 열고 조직의 현주소, 연구 집단 동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더욱 발전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죠. 구성원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 (왼쪽부터) 박재혁, 이우철, 우정욱 TL이 미래 반도체 연구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찰병이 되어 선행 연구를 수행하고, 본대가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하겠습니다.” (우정욱 TL)
“반도체의 기초인 소자를 다루는 만큼 모든 혁신이 저로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연구하겠습니다.” (박재혁 TL)
“판을 뒤집는 기술로 회사를 넘어 인류에 기여하는 기술을 만들겠습니다.” (이우철 TL)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이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RTC를 만들기 위해 세 사람 모두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