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제곱 밀리미터에 10억 개의 시냅스를 가진 뇌는 뉴욕 맨해튼보다 훨씬 더 붐빈다고 합니다. 이토록 복잡한 인간의 뇌가 내리는 ‘직관’적인 연산과 판단은 똑똑한 인공지능도 따라잡기 힘든 부분이죠. 최근 이러한 뇌에서 반도체의 미래를 찾는 연구가 화두입니다. 뇌신경구조를 모방해 하드웨어 크기와 전력 소모를 대폭 줄일 수 뉴로모픽(Neuromorphic)입니다.
저전력으로 고도의 연산을 수행하는 '뇌'
인간의 뇌는 1000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뉴런, neuron)가 시냅스(synapse)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 다른 뉴런과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순식간에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합니다. 약 1000억 개의 뉴런은 100조 개 이상의 시냅스가 병렬적으로 연결돼 약 20W 수준의 저전력으로도 기억 연산 추론 학습 등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죠. '알파고'가 어마어마한 전력을 잡아먹는데 반해 인간의 뇌는 밥 한 그릇 수준인 20W면 복잡한 계산을 수행합니다. 이것이 바로 반도체업계와 공학계가 '뇌' 연구에 역량을 투입하는 이유입니다.
스파게티 가닥처럼 무질서하게 엉켜있는 뇌의 신경돌기는 하나의 뉴런이 여러 뉴런과 접촉하는 구조를 보입니다. 두 개의 뉴런이 접촉하는 지점에 시냅스가 있습니다. 이 시냅스가 뉴런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연결지점입니다. 결국 뇌 신경계도 마치 전선처럼 가느다란 가지들로 뉴런들을 배선한 ‘뉴런들의 조립품’이라는 것이 학계의 설명입니다. 시냅스를 통해 한 뉴런이 다른 뉴런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다면 두 번째 뉴런도 세 번째 뉴런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고 이 과정은 계속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시냅스로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은 뉴런들도 서로 통신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신호를 전송하는 뉴런에서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이라는 분자가 분비되면 수신을 하는 뉴런에서 이를 감지해 화학적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예를 들어 뉴런A가 자극을 받으면 스파이크 형태의 신호가 시냅스를 통해 뉴런B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스파이크가 일어나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면 시냅스가 활성화되고, 시냅스의 반대편에서 수용체는 신경전달물질을 감지하고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연결되어 신호가 전달됩니다. 시냅스가 화학신호를 전기신호로 변환하고 그것을 다시 화학신호로 변환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시냅스를 강화하면 다른 시냅스는 약해지는데, 이는 마치 서로 제한적인 자원을 위해 경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반복 학습한 내용은 기억이 오래 지속되고, 단기간에 학습한 내용은 금방 잊어버리는 현상과도 같은 이러한 시냅스 가소성(synaptic plasticity) 등 뇌의 고유한 특성들을 기술에 반영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처럼 뇌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이러한 화학적 시냅스 정보 전달체계는 적은 에너지로도 고도의 병렬 연산을 처리할 수 있어 AI(인공지능)의 key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를 모방하다, 뉴로모픽
기존 폰노이만 방식 컴퓨터는 데이터가 입력되면 이를 순차적으로 처리합니다. 폰노이만 방식은 전력소모 한계를 비롯해 패턴 인식, 실시간 인식, 판단 등에서 많은 문제를 노출했습니다. 수치 계산이나 정밀하게 작성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 탁월하지만, 이미지나 소리를 처리하고 이해하는 데는 효율성이 낮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2012년 구글이 공개한 고양이 얼굴 자동인식 소프트웨어를 작동시키는 데는 1만 6000개의 프로세서가 필요할 정도였죠.
돌파구는 인간의 '뇌'에 있었습니다. 순차 처리 방식의 컴퓨터가 병렬로 동작하는 인간의 뇌를 모방해 기억과 연산을 대량으로 같이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뉴로모픽 기술의 핵심인데요.
학자들은 인간의 뇌를 빼닮은 새로운 AI에 눈을 돌렸습니다. 인간의 뇌신경구조를 현재의 반도체 소자 집적회로 기술 기반 하드웨어로 모방하는 것을 뉴로모픽이라고 합니다. 공학자들은 뇌의 신경세포가 스파이크 형태의 신호를 주고받고 시냅스 연결 강도를 조절해 정보를 처리하는 구조가 반도체와 비슷하다는 데 착안했습니다.
기존 컴퓨터가 직관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비정형적인 문자·이미지·음성·영상 등을 뉴로모픽칩은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기업 등 글로벌 IT업계가 뉴로모픽칩 개발에 뛰어든 것도 뇌 신경망 모방이 궁극의 칩을 만드는 열쇠라고 판단해서입니다. 인공신경망 반도체 소자를 개발하고 이를 뉴로모픽칩까지 발전시킬 경우, 궁극적으로 메모리반도체의 기능과 함께 시스템반도체의 연산 능력까지 갖춘 신개념의 컴퓨팅 시스템을 창출하게 됩니다. 외부에서 명령을 받아들였을 때 사람의 뇌와 같이 동시다발적인 연산과 정보처리가 컴퓨터 칩으로도 가능해지는 것이죠.
뉴로모픽칩이 완성되면 미래 AI는 밥 한 그릇 정도의 적은 에너지원으로도 사람의 뇌처럼 기억과 연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초저전력 고성능을 구현합니다. 이 같은 하드웨어 기반 미래형 AI를 소프트웨어 기반의 복잡한 DNN과 구분해 SNN(Spiking Neural Network)이라고 부릅니다.
뉴로모픽, 매력적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컴퓨터공학자들은 뉴로모픽 소자 개발을 위해 기존 메모리 소자인 S램, R램, PC램 등을 뜯어보고 있습니다. 메모리(memory)와 저항(resistor)의 합성어인 ‘멤리스터’(Memristor)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뇌에 있는 신경세포와 시냅스처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차세대 메모리 소자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전 세계 저명한 학자들이 인간 뇌의 능력을 모방하는 컴퓨터 시스템 개발에 매진해왔지만,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인간 두뇌의 5% 정도만 모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설계 방식으로는 필요한 트랜지스터의 수가 늘어나 반도체 칩의 크기와 전력소모도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한계도 상당합니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수 십 개의 트랜지스터가 필요한 일을 단 한 개의 소자로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뉴로모픽 칩의 갈 길은 아직 멀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우선 고집적 반도체 칩을 실현해야 합니다. 현재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집적회로(IC)의 총면적은 줄이고 메모리 셀의 개수는 늘리는 고집적 신경망 모방회로 및 하드웨어 구조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 Intel이 지난 2017년 선보인 테스트용 뉴모로픽칩 Loihi (출처: Intel)
인텔은 지난해 '로이히(Loihi)'라는 이름의 테스트용 뉴로모픽칩을 공개했습니다. 아직 실험단계이지만, 뇌 신경망을 모방한 것이죠. 128개의 컴퓨팅 코어로 구성돼 있으며, 각 코어에는 1024개의 인공 뉴런이 있어 13만 개 이상의 뉴런과 1억 3000만 개의 시냅스 연결을 제공합니다. 이는 바닷가재의 뇌보다 조금 더 복잡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 IBM이 지난 2014년 개발한 뉴로모픽칩 Truenorth (출처: IBM)
앞서 IBM은 2014년 S램 기술을 활용해 인간의 뇌를 모방한 트루노스(Truenorth)칩을 개발했습니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시냅스(SyNAPSE)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죠. 하지만 이 칩을 활용할 수 있는 학습 등 응용기술이 없고 확장성에 한계가 있어 현재는 이 연구가 중단됐습니다. 전력 소모도 매우 커서 스마트 기기에 탑재해 사용하기는 불가능했습니다.
AI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 인간을 완벽히 따라잡은 단계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뉴로모픽은 인간과 AI의 간극을 바짝 좁혀 더욱 정교해진 IT 기술을 경험해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읽는 AI스피커, 의사 수준으로 진단을 내리는 AI, 사람의 개입이 완전히 필요 없는 자율주행차처럼 말이죠.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