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발전이 문학(文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SF 소설 속에만 존재했던 AI가 현실이 되고 있는 요즘, AI는 문학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을까? 뉴스룸은 공학박사 출신의 SF 소설가인 전윤호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공학 박사 출신 SF 소설가 ‘전윤호 작가’가 말하는 ‘AI와 문학’_2024_01_인물

전문가가 본 소설 창작 도구로서 AI의 현 수준

전윤호 작가는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 박사 출신으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AI와 로봇공학을 연구했다. SK플래닛 CTO SK텔레콤 플랫폼 연구원장을 역임하며 관련 분야에서 30년 이상 경력을 쌓았다.

이후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2020SF 장편모두 고양이를 봤다로 등단한 전 작가는 2023년 여러 소설가가 AI를 활용해 소설을 집필하는 매니페스토 프로젝트에 참여해 단편오로라를 내놨다. 오로라는 인간보다 뛰어난 AI가 에너지 고갈, 난치병, 환경 파괴 등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미래를 그린 내용이다. 그는 공학자이자 소설가로서 AI로 소설을 쓴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학 박사 출신 SF 소설가 ‘전윤호 작가’가 말하는 ‘AI와 문학’_2024_05_2_기타▲ 전윤호 작가가 SF 단편 소설 ‘오로라’를 집필하기 위해 생성형 AI를 활용한 모습 예시

이미 시와 같은 짧은 문학 장르에서는 작가들이 AI로 생성된 결과를 수정해 작품화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보완해야 할 점은 있지만, 직접 써보니 AI가 소설 창작에 미치는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었고, 앞으로 문학 발전에 AI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전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 초기 아이디어를 내는 건 여전히 작가의 몫이지만, 이를 구체화하고 검토하는 과정에서는 AI가 상당히 유용하다“AI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고, 특정 상황에서 어떤 사건이나 장면이 적절한지 영감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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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윤호 작가는 실제로 소설 창작 중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구글의 딥마인드가 2022년 선보인 드라마트론(Dramatron)’ 같은 생성형 AI는 연극이나 TV, 영화 등 대중 문화 업계의 전문가들로부터 유용성을 인정받았다.

전 작가는 “AI가 아직은 전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문장을 뽑아내는 수준이지만, 반복적인 명령을 통해 검토, 수정, 재조합 등을 시도하다 보면 꽤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AI를 통해 브레인스토밍은 물론, 이야기의 주제를 선정하고 특정 분야에 대해 학습하거나, 표현 안에서 더 적합한 단어와 문장을 찾아내는 등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AI가 소설 창작의 주체로서 더 완벽해지려면?

전 작가는 AI를 글쓰기의 조력자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소설이나 시나리오 같은 장편을 온전히 맡기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AI가 독립적인 작가로서 능력을 갖추려면 소프트웨어와 함께 반도체 등의 하드웨어가 더 발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많은 전문가는 AI가 한 번에 볼 수 있는 글의 범위, 즉 ‘컨텍스트 윈도우(Context Window, 문맥 창)’를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더 넓은 범위의 문맥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야기를 생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이와 더불어, 저는 AI가 자체적으로 결과물을 평가하고 개선할 수 있는에이전트 기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개발되고 있는 AI에 이러한 기능이 포함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AI가 더 높은 수준의 소설을 쓸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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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작가는 반도체와 같은 하드웨어의 발전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에이전트가 포함된 AI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반도체의 성능 향상이 필수입니다. 데이터를 학습하고, 학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과를 생성하는 현재의 AI 구조에 생성된 결과물에 대한 검토 및 조합을 반복하는 과정이 추가되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추론 성능을 향상시키려면 더 빠르게 연산할 수 있는 반도체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최근 GPU(Graphic Processing Unit)를 광케이블에 직접 연결하는 등 패키징 영역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고, 메인 메모리를 호스트(CPU, GPU )와 따로 두지 않고 그 안에 탑재해 처리 속도를 높인 인메모리 컴퓨팅(In-Memory Computing) 기술과 함께 사람의 뇌를 모방한 형태인 뉴로모픽(Neuromorphic) 반도체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AI, 문학의 역사를 바꿀 핵심 기술될 것

전 작가는 “AI가 혼자 힘으로 소설을 쓰게 되면 소설가들이 사라지게 될 거라는 우려도 있지만 그것은 기우”라고 말하며 “AI의 발전은 문학계에서 실보다 득이 더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술 발전이 사람을 대체하는 일은 인류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기술이 있음에도 여전히 사람의 노력과 창의성이 중요한 영역이 훨씬 많아요. 포토샵이 등장했음에도 회화는 여전히 가치 있고, 알파고의 등장 이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바둑을 둡니다. AI의 발전은 소설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품질을 더욱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보다 뛰어난 조력자를 얻게 된 우리 작가들이 더 훌륭한 작품을 창작해 내고, 이는 결국 문학계 전반에 긍정적인 시너지로 작용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외에도 전 작가는 AI번역 능력이 문학계에 긍정적인 효과를 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AI가 번역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직역이 아닌 작품 속에 녹아있는 각 나라의 문화를 고려해 번역해 주는 경우가 많아졌죠. 이를 통해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기대해 볼 수도 있고, 우리말로 쉽게 번역하지 못했던 해외 작품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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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작가는 끝으로 AI 기술과 문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AI는 문학의 역사를 바꿔 놓았던 인쇄술, 타자기, 컴퓨터 등과 같은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문학계에서도 이러한 기술 발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저는 공학자이자 SF 소설가로서 AI가 바꿀 미래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AI로 인해 달라질 우리의 삶이 궁금하기도 하고요. 저는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바꿀 AI의 발전, 그리고 SF 소설에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