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이 영상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2022년 등장한 생성형 AI는 글자와 이미지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광고 시장부터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영화 시장까지 흘러 산업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예전부터 영화 제작에 AI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오고 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서 80세의 해리슨 포드는 35세로 완벽하게 회춘했다. 올해 11월 개봉 예정인 <히어>에서 67세의 톰 행크스는 무려 19세로 돌아간다. 과거에 다른 배역을 쓰거나 분장으로 해결했던 장면들이 AI를 활용한 디에이징(De-aging)* 기술로 구현되고 있다.

* 디에이징(De-aging):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딥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과거의 사람이나 물건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데 사용

AI 활용은 광고계에서도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기존 타겟팅, 개인화, 최적화, 효과 측정 분야에서부터 최근 창작 분야로까지 쓰임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KB라이프생명’은 국내 광고에서 최초로 딥러닝과 디에이징 기술을 도입해 배우 윤여정의 20대 모습을 구현했다. 마찬가지로 ‘서울우유’ 광고 속 배우 박은빈을 쏙 빼닮은 아역 모델 3명도 AI가 학습해 만들어낸 딥페이크의 결과물이다.

시장조사 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전 세계 미디어∙엔터테인먼트의 생성형 AI 시장 규모가 2023년 197억 5,000만 달러에서 2030년 994억 8,000만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평균 26% 이상의 성장률이다. 이에 국내외 영상 산업 전문가들은 AI가 향후 업계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 ‘AI 영화’

스튜디오 프리윌루전에서 AI로 생성한 컨셉아트 및 디자인 이미지▲ 스튜디오 프리윌루전에서 AI로 생성한 컨셉아트 및 디자인 이미지

영화계에서도 ‘AI 영화’ 장르가 화두다.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AI 영화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AI 기술을 활용해 만든 영화 <아그로 드리프트(AGGRO DR1FT)>를 초청해 이슈의 중심이 됐다. 올해 5월 진행된 칸 국제영화제의 필름마켓 전반을 이끈 주제 역시 AI였다. 이외에도 LA, 뉴욕, 두바이, 암스테르담 등에서 AI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같은 영화계의 새로운 흐름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지난 7월에 개최한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는 한국 영화제 가운데 최초로 ‘AI 영화 경쟁 부문’을 도입했다. 오는 12월에는 국내 첫 AI 영화제인 ‘부산국제인공지능영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생성형 AI를 잠재적 위협으로 받아들였던 문화예술계가 이를 창작 도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 영화’는 생성형 비디오 AI 기술 발달과 함께 급속도로 주목 받았다. 특히, 오픈AI의 ‘소라(Sora)’는 TTV(Text to Video) 모델의 게임 체인저로 등장했다. 이전 모델들이 3~4초 길이의 저화질 클립을 생성했다면, 소라는 1분 길이의 실사와 같은 고화질 비디오를 제작할 수 있다. 복잡한 장면, 다수의 캐릭터, 동적인 카메라 앵글, 사실적인 얼굴 감정 및 움직임 등의 연출도 가능하다.

TTV 업계의 선두 업체인 런웨이는 기존 ‘젠(Gen)-2’보다 성능이 향상된 ‘젠(Gen)-3’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 다른 업체인 루마(Luma) 또한 ‘드림 머신(Dream Machine)’이라는 새로운 비디오 생성 AI 서비스를 선보이며 TTV 시장의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스토리와 메시지 갖춘 세계 최초의 AI 영화 <원 모어 펌킨> 제작 이야기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영화 ‘원 모어 펌킨’의 스틸컷▲ 생성형 AI로 만든 영화 <원 모어 펌킨>의 스틸컷

스튜디오 프리윌루전은 지난 2월 아랍에미리트에서 개최된 ‘제1회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AIFF)’에서 영화 <원 모어 펌킨>으로 대상과 관객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올랐다. <원 모어 펌킨>은 200살이 넘도록 호박 농사를 하는 한국 노부부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공포 영화다.

3분짜리 이 단편영화는 작년 9월, 순수 생성형 AI로만 제작됐다. 제작에 들어간 비용은 전기요금을 제외하고는 ‘0원’. 오직 AI 프로그램 툴을 사용해 3~4명이 붙어 5일 만에 완성했다. 당시 무료 오픈 소스였던 TTI(Text to Image) 모델인 ‘스테이블 디퓨전 XL(Stable Diffusion XL)’을 활용해 초기 이미지를 생성한 뒤, ITV(Image to Video) 모델인 ‘피카(Pika)’의 베타버전으로 영상을 제작했다.

<원 모어 펌킨>에는 ‘탐욕은 또 다른 탐욕을 부르고, 결국 파멸을 부른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AIFF에 출품된 약 500편의 AI 영화 다수가 기술적 측면에만 매몰됐던 것에 반해, <원 모어 펌킨>은 영화 예술의 중요한 요소인 주제 의식을 놓치지 않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로테스크한 공포 장르를 선택한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어딘가 불쾌하고 기괴하게 표현됐던 AI의 기술적 한계를 연출로 승화해 독특한 예술적 장점으로 풀어냈다.

AI 영화, 어떻게 만들어질까?

AI 영화는 생성형 AI 프롬프트에 감독의 생각을 입력하면 AI가 무한으로 시안을 제시한다. 감독은 그것들을 선별 및 취합해 편집 과정을 거쳐 최종 결과물을 산출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AI 플랫폼인 코파일럿(Copilot)에 간단한 줄거리를 담은 PDF 파일을 업로드하면 시놉시스, 시나리오 구조 분석은 물론 촬영 장소와 배우 캐스팅까지 추천해준다. 작가, 카메라 감독, 로케이션 디렉터, 캐스팅 디렉터의 역할을 대체한다. 간단한 줄거리까지 AI에게 맡길 수 있다.

감독이 머릿속 장면을 카메라에 완벽히 담을 때까지 반복 촬영하는 전통적인 영화 제작 방식과는 완벽히 대조된다. 이제 촬영 감독은 카메라 대신 생성형 AI로 연출을 위한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CG 작업자는 기존 CG 툴 대신 AI 툴을 활용한다. 바쁜 일정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출연을 할 수 없는 배우는 라이선스 된 자신의 AI 초상권을 제작사에 제공해 공백을 메울 수 있다.

AI 영화는 실사 영화와 경쟁하지 않는다. 하나의 새로운 예술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 AI의 빠른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향후 1~2년 안에는 60분이 넘는 장편 영화 제작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실사 영화보다 퀄리티는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AI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창적인 비주얼로 대중에게 신선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AI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을 시장 ‘광고’

지금 당장 AI 영화가 대중적인 콘텐츠가 되기에는 시기상조다. 일관성 유지의 어려움, 길이 제한, 세밀한 조작 불가 등 상업적인 영역에서 활용하기엔 분명 한계가 있다. 대신, 빠른 결과물의 생성, 다양한 시안 제작, 저렴한 제작비와 같은 장점도 있다.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영역이 바로 ‘AI 광고’ 시장이다.

광고 업계에서는 기획력과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하다. AI의 빠른 속도와 다양한 결과물들은 선택의 폭과 구현의 가능성을 넓힌다. 광고주와 광고에 대한 기획 및 소통을 하는 PPM(Pre Production Meeting)에서 AI를 활용한다면 기획안과 콘티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결과물 자체를 보여줄 수 있다. 실사 촬영과 비교해 비용은 크게 아끼고, AI로 제작한 광고라는 마케팅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스튜디오 프리윌루전과 이노션이 제작한 현대자동차 AI숏필름 광고 스틸컷▲ 스튜디오 프리윌루전과 이노션이 제작한 현대자동차 AI 숏 필름 광고 스틸컷

최근 스튜디오 프리윌루전과 이노션은 ‘현대자동차’ 광고를 숏 필름 형식으로 제작했다. 기존 방식으로는 1편 정도 만들 수 있는 비용으로 3편의 에피소드가 탄생했다. 영상 속 캐릭터부터 배경 음악 작사∙작곡까지 100% 생성형 AI로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AI 특유의 그림체에 유머러스한 스토리가 더해져 B급 감성의 광고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결국, 생성형 AI의 도입은 광고 업계에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저렴한 제작비와 빠른 결과물은 미래의 광고 시장을 더욱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들 전망이다.

AI가 바꾸는 영상 콘텐츠 트렌드, 매스(Mass)에서 니치(Niche)로

생성형 AI 활용은 아직 도입 단계다. 주로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ChatGPT’나 ‘클로드(Claude)’와 같은 대화형 AI는 기획 및 아이디어 발굴 분야에서, ‘미드저니(Midjourney)’나 ‘달리(DELL-E)’와 같은 생성형 이미지 AI는 컨셉아트나 디자인 등 시각화 작업에 사용된다. 

생성형 AI가 적극적으로 도입되어 제작 효율성이 향상되면 콘텐츠 생산량은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상업 콘텐츠와 더불어, 실험적이고 개성 강한 소재의 다양한 서브컬처 콘텐츠가 늘어날 전망이다. 개별 취향에 최적화된 니치(Niche) 콘텐츠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각자 취향에 맞는 맞춤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되고, 영상 엔터테인먼트 업계 역시 소비자 선호도에 따라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발전하게 된다.

AI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중요한 것은 콘텐츠 본질 잃지 않는 것

물론 생성형 AI의 발전에 대한 사회적인 우려도 존재한다. 많은 사람이 AI가 인간을 대체하고 일자리를 없앨 거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AI는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성형 AI는 도구일 뿐, 창작의 주체가 되고 콘텐츠 생산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AI 기술이 전 영역으로 확대되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글로벌 HR서비스 기업 딜(Deel)이 공개한 고용동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전 세계 AI 관련 일자리는 60% 증가했고, AI 덕에 구직자들의 활동 범위 역시 넓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은 AI라는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콘텐츠의 본질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데 있다. 처음 CG 기술이 영화계에 등장했을 때,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장면이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냐는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3시간 가까이 되는 상영 시간 동안 영화 ‘아바타’의 경이로운 CG를 보며 감명받은 바 있다. 결국 기술과 본질, 둘 다 챙기는 자가 AI 시대에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K-POP, <오징어게임> 등으로 K-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잠재력과 경쟁력은 이미 검증됐다. 이제 우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고민은 시간만 늦춘다. 빠르게 받아들일 준비만 필요할 뿐이다.

스튜디오 프리윌루전 권한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