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 이른바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두입니다. 비록 역사는 길지 않지만, 워라밸은 직장을 선택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삶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아직 정착 단계인 만큼 워라밸을 실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는데요. 다채로운 문화 강좌를 열어 직원들의 워라밸을 지원하는 기업과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직원의 만남도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SK하이닉스의 요리 강좌 현장에서 만난 두 남자처럼 말이죠.
요리하는 남자들
“안녕하세요. 같은 팀에서 근무하는 김홍득 선임입니다. 저희는 DRAM에 들어가는 Analog 회로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앙증맞은 앞치마를 두른 두 남자, 이들은 낮에 회로설계전문가로 일하는 SK하이닉스 직원입니다. 회로를 설계할 땐 꼼꼼하고 날카롭지만,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영락 없는 초보 요리사로 변신합니다. 아직은 서툰 칼 솜씨임에도, 두 사람은 일주일에 두 번 찾아오는 이 시간이 일주일을 풍족하게 만들어 준다며 함박웃음 짓습니다.
사실 회사 업무를 마치고 나면 마냥 쉬고 싶을 터. 하지만 두 남자는 소중한 휴식 시간을 쪼개 이렇게 요리 삼매경입니다. 언젠가 있을 한식 조리사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마다 요리를 배우는데요.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지만 요리 배우는 재미에 두 사람은 완전히 매료됐습니다.
요리 강좌에 먼저 관심을 두었던 이는 후배 김홍득 선임. 김경태 책임과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같은 방에서 지내는 룸메이트입니다. 꽤 죽이 잘 맞는 사이인지라, 김홍득 선임의 권유로 함께하게 되었다는 김경태 책임. 그 역시 금세 요리의 매력을 알게 됐습니다.
오늘 배울 요리는 계란찜과 생선전. 계란 노른자와 흰자를 곱게 풀고, 다시마를 우려 다시물을 준비하고, 밀가루 밑간을 하고 곱게 고명을 썹니다. 간단한 요리일지라도 초보자에겐 결코 쉬울 리 없기에, 두 남자의 손길은 마치 잔칫상을 준비하는 듯 부산스러운데요. 이래 봬도 김홍득 선임은 얼마 전 어머니 생신 때 요리를 만들어드렸을 만큼 꽤 그럴 듯한 실력을 갖추어가고 있습니다.
설계하는 꼼꼼한 남자들
요리 시간엔 다소 어설픈 칼질을 선보였더라도, 어엿한 5년 차, 8년 차 회로설계 전문가인 두 사람. 회로설계라 하면 고도의 세밀함과 집중력을 요하는 직업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업무다 보니, 책상 앞에선 빈틈 없는 모습만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설계 업무가 매력적인 이유는 상상한대로 설계가 이루어져 완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때문입니다. 컴퓨터, 노트북, 핸드폰 등에도 일반 소비자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설계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일상에 맛이 생기다
요리를 시작한 후 두 사람은 생각과 경험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세상 모든 기계에 던졌던 이 질문을 이제 접시 속 작은 요리에도 던져봅니다. 찌개 한 그릇을 두고도 들어간 재료의 맛을 느끼려 노력하고 이를 자신의 요리에 응용해보기도 합니다. 가끔이지만 가족에게도 한 그릇씩 대접하며 ‘요리할 줄 아는 남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적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유연한 근무형태 덕분입니다. 주당 40시간 근무제, 초과 근무를 해도 52시간 근무가 의무화되면서 자유로운 시간이 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제공하는 문화 강좌에 관심을 두는 동료들도 많아졌습니다. 필라테스, 방송 댄스, 제과제빵 등 수준 높은 사내 강좌를 저렴하게 수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업무에선 하루 만에 결과물이 완성되진 않습니다. 이에 반해 요리는 하루에 두 접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노력이 빠르게 결과물로 탄생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두 사람. 이렇게 저녁 시간을 활용하며 워라밸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중입니다. 특히 수업 후 만든 요리를 갖고 기숙사로 돌아가 맥주 한 잔과 함께 즐기는 시간은 요즘처럼 더운 열대야도 잊게 할 만큼 큰 즐거움입니다.
김경태 책임, 김홍득 선임은 스스로의 워라밸 점수를 90점, 100점으로 후하게 매겼는데요. 다른 누군가의 기준이 아닌 스스로 정한 기준에 맞춰 삶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 이것이 바로 일과 생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노하우였습니다.
계란찜, 생선전, 김치찌개…. 어쩌면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간단한 요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일상이 활기를 입고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간단한 요리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작은 것에서 찾는 행복이야말로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워라밸 아닐까요? 이것이 아직 서툰 이 두 남자의 맛있는 이중 생활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