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지스터의 발명에서 AI 시대를 이끌 HBM* 개발까지, 반도체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혁신적인 반도체 기술은 인류의 역사를 바꿨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를 바꿀 반도체 기술은 무엇일까? 이번 콘텐츠에서는 미래를 혁신할 반도체 기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HBM(High Bandwidth Memory):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부가가치, 고성능 제품. HBM은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4세대(HBM3)-5세대(HBM3E) 순으로 개발됨. HBM3E는 HBM3의 확장(Extended) 버전
뉴스룸은 최신 반도체 트렌드를 살펴보기 위해 향후 주목할 반도체 기술로 ‘실리콘 포토닉스’, ‘극저온 식각’, ‘유리 기판’을 선정하고 각 기술의 전문가들에게 해당 기술에 대한 개념과 효용 가치, 활용 방안에 관해 물었다.
빛의 속도로 작동하는 반도체, ‘실리콘 포토닉스’
실리콘 포토닉스의 기본 개념과 효용 가치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한상윤 로봇및기계전자공학과 교수를 만났다. 한 교수는 “AI 가속기, 뉴로모픽 컴퓨팅, 양자 컴퓨팅 등 차세대 컴퓨팅의 패러다임을 이끌어갈 핵심 기술”이라 강조했다.
Q. 실리콘 포토닉스란 무엇인가요?
A. 실리콘 포토닉스는 ‘웨이퍼 위의 실리콘 박막을 정밀하게 가공해 빛이 흐르는 도파로*를 만들고 전자가 아닌 빛을 이용해 보다 빠르게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입니다.
* 도파로(Waveguide): 빛이나 전자기파를 특정 경로로 유도하여 전파하는 구조. 광섬유가 대표적인 예
도파로에 전압이나 전류를 가하면 굴절률이 변화하면서 빛의 진행 속도가 달라지는데요. 이러한 효과를 기반으로 복잡한 회로를 구성하면 빛을 매개로 하는 고속의 정보처리(연산, 통신 등)가 가능해집니다. 기존 반도체에서 사용하는 전자회로의 경우, 실리콘 채널을 통해 전자를 흐르게 하고, 전압이나 전류의 변화를 통해 전자의 흐름을 제어하는 형태로 정보처리를 진행하는데요. 이와 대응하는 개념인 것이죠.
실리콘 포토닉스의 최대 장점은 고속 정보처리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뛰어난 에너지 효율성과 낮은 발열입니다. 전자가 고속으로 이동해 도체 내 원자나 이온의 충돌이 발생하는 전자회로의 경우, 정보처리 속도가 높아질수록, 에너지 소비와 발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요. 실리콘 포토닉스는 빛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온과 전자의 물리적인 충돌로 인한 에너지 과소비 현상과 발열 등이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Q. 실리콘 포토닉스가 상용화된 미래의 모습이 기대되는데요. 실리콘 포토닉스가 상용화된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A. 이미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는 상용화 단계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몇몇 파운드리 기업에서는 수년 전부터 실리콘 포토닉스의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연구 개발 수준을 넘어 실제 제품 개발 단계로 전환된 상황입니다.
또한, 여러 기업에서 AI 가속기를 비롯해, 양자 컴퓨팅 시스템, 데이터 센터 등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영역에 실리콘 포토닉스를 도입하고 있는데요. 기존 전자회로 기반의 컴퓨팅 시스템의 물리적 한계로 지적되고 있는 메모리-프로세서 간의 데이터 병목 현상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독보적인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데이터 인터커넥트 분야인데요. 데이터센터의 서버 랙 간의 연결이나 보드와 보드, 심지어 반도체 칩과 칩 사이의 연결 과정에 실리콘 포토닉스를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에너지 효율은 극대화하면서 정보 전송량을 대폭 늘릴 수 있습니다. 현재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 중 상당 부분이 데이터 전송과 발열을 잡는 냉각 등에 사용되는 상황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혁신이 될 것입니다.
최근 D램이나 낸드플래시(NAND flash, 이하 낸드) 등 반도체 제품의 트렌드를 살펴보면, 얼마나 높이 적층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이슈인데요. 이러한 적층 구조는 층수가 높아질수록 더욱 확장된 대역폭을 요구하게 되는데, 기존의 전자회로로는 이에 충족할 수 있는 대역폭을 제공할 수 없다는 물리적인 한계가 존재합니다. 실리콘 포토닉스는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는 데 최적의 솔루션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구의 열까지 식혀줄 ‘극저온 식각’
극저온 식각은 반도체 공정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구 온난화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한양대학교 정진욱 전기공학과 교수는 극저온 식각에 대해 “반도체의 품질 향상과 더불어 생산성까지 향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Q. 극저온 식각이란 무엇인가요?
A. 기존에 사용하던 식각에 관해 간단히 설명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웨이퍼를 액체에 담갔다가 건지는 형태의 습식 식각은 식각 속도는 빠르지만 자유롭게 움직이는 액체 때문에 정밀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플라즈마를 활용한 건식 식각입니다. 하지만 건식 식각의 경우, 고온의 플라즈마를 이용하는 과정 등이 매우 복잡하고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최근, 고도화되는 반도체 공정에 의해 고종횡비* 패턴을 식각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플라즈마 식각은 고종횡비 패턴 시각을 위해 매우 복잡한 화학반응을 일으켜야 합니다. 측면 식각을 막기 위한 차단막(Passivation Layer)도 필수적이죠. 차단막을 도포하면서 식각을 진행해야 하니, 식각의 속도가 느려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극저온 식각입니다.
* 고종횡비(High Aspect Ratio): 가로(폭) 대비 세로(높이) 비율이 매우 큰 구조의 의미로 식각 공정에서 고종횡비를 구현하기 위해선 더욱 좁고 깊게 식각을 진행해야 한다.
극저온 식각은 극저온 환경에서 대부분 물질의 성질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기술입니다. 먼저, 영하 80℃ 이하의 극저온 환경을 조성하면, 웨이퍼의 성질에도 변화가 발생합니다. 물이 영하에서 얼어붙어, 표면이 단단해지듯 웨이퍼 표면에도 비휘발성 보호층이 형성되는 것이죠.
이러한 보호층은 별도의 공정을 통한 차단막 형성 없이도 측면 식각을 막아주기 때문에 더욱 뚜렷한 수직 식각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차단막 도포를 위한 화학 가스를 사용하지 않으니, 식각 공정에 사용되는 가스가 단순해지고, 덕분에 식각 속도 상승과 수직 모양의 정밀한 식각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Q. 극저온 식각이 반도체 공정에 적용될 경우, 어떠한 장점들이 있을까요?
A. 우선, 기존 식각 기술 대비 약 3배 정도 더 빠른 식각 속도(Etch Time) 덕분에 생산성이 혁신적으로 개선된다는 점입니다.
현재는 고종횡비 식각이 많이 필요한 낸드 공정에서 일부 적용되고 있는데요. 실제 최근 발표된 한 기업의 연구 논문에 따르면, 400단의 낸드 메모리를 식각하는 데 30여 분가량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90여 분 이상 소요되는 기존 식각과 비교하면 혁신적인 속도라고 할 수 있죠. 이처럼 압도적인 성능을 보이는 만큼 추후엔 D램 공정에서도 활용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제품의 품질과 생산성 향상뿐 아니라 환경 측면으로도 큰 장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극저온 식각을 사용할 경우, 기존에 복잡한 화학반응을 위해 사용하던 화학 가스의 사용을 90% 이상 줄일 수 있습니다. 해당 가스들은 온실효과를 유발하는데요. 이러한 가스의 사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니 온실효과 저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죠.
물론, 극저온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장비 등 설비 확충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과 극저온 식각에서 사용되는 별도의 가스를 공급하는 기업이 현재로썬 많지 않다는 점 등 작은 문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극저온 식각은 비약적으로 빨라진 식각 속도로 인한 전력 소비 저감 효과를 비롯해 반도체 품질 개선과 생산성 향상, 온실효과 저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만큼, 많은 기업이 관심을 가지고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I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패러다임, ‘유리 기판’
반도체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패키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기판 소재에도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크게 주목받는 유리 기판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 연세대학교 김현재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를 만나봤다. 김 교수는 “AI 시대를 위한 AI 반도체에는 유리 기판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Q. 유리 기판이란 무엇인가요?
A. 반도체 유리 기판이란, 기존에 사용하던 유기 기판과 실리콘 기판을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패키징 기술입니다. 반도체 소자와 회로를 물리적으로 지지하는 기판은 단순히 지지체의 역할뿐 아니라 열을 효과적으로 분산 관리해야 하고, 효율적인 전기 절연과 신호 전달의 매개체 역할까지 담당하는데요.
유리 기판은 높은 전기 절연성과 열 안정성 그리고 우수한 평탄도 등을 자랑하며, 미래 반도체의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유리 기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리기 위해선 기존에 사용하던 기판에 대해 간단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유기 기판은 에폭시를 도포한 코어에 미세회로를 집적하는 방식으로, 표면이 다소 거칠기 때문에 미세패턴을 새기기에 불리했습니다. 하지만 유리 기판의 경우, 표면의 거칠기(평탄도)가 10nm(나노미터)로 유기 기판(400~600nm) 대비 40~60배가량 평탄합니다. 실제로 특정 기업에서는 유기 기판 대비 유리 기판을 사용할 경우, 10배 이상의 미세한 회로 밀도를 구현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죠.
실리콘 기판의 경우, 높은 수준의 평탄도와 열 안정성을 갖춰 고성능 반도체 제조에 유기 기판 대신 채용됐지만, 가격이 비싸고 열전도율이 높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리 기판은 실리콘 기판 수준의 평탄도와 상당한 수준의 열 안정성을 보이면서도 열전도율은 실리콘 기판 대비 150배 정도로 낮은 수준인데요. 덕분에 유리 기판을 사용하면 반도체 칩 전반에 열이 퍼지지 않게 관리하기에도 훨씬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유리 기판을 사용할 경우, MLCC* 칩 등을 기판 안으로 내장할 수 있어, 반도체 칩을 더욱 얇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실리콘 기판 대비 획기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고성능 반도체 제조를 위한 비용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 MLCC(Multilayer Ceramic Capacitor, 다층 세라믹 캐패시터): 여러 개의 세라믹 절연층과 전극층을 적층해 만든 캐패시터. 전자 기기에서 전압 조절, 전원 안정화, 신호 필터링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핵심 소자
Q. 그렇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유리 기판이 널리 사용될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A. 네. 이미 유리 기판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기업에서 개발과 생산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관련기사]에서도 SKC가 공개한 유리 기판이 큰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국내외 여러 기업이 유리 기판 개발과 생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유리 기판이 상용화된다면, 반도체 산업에서도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열전도율이 낮다는 특징 덕분에 지금까지 발열이 문제가 됐던 여러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 개선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메모리 업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HBM의 경우, 고대역폭의 데이터 전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제어하는 데 있어서 유리 기판이 하나의 유의미한 솔루션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개개인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노트북 등의 발열 문제 해결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며, 데이터센터의 발열 관리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아직 해결할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유리라는 소재 특성상 구멍을 뚫는 과정에서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는 등 난제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난제가 해결된다면 AI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것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실리콘 포토닉스, 극저온 식각, 유리 기판에 관한 이야기를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인류가 써내려 온 반도체 기술 한계 돌파의 역사에는 항상 이러한 혁신적인 기술들이 존재했다. 이 기술들이 반도체와 우리의 삶에 어떤 혁신을 가져올지 함께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