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Digital Transformation(디지털 전환, 이하 DT)’의 주목적은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애자일(Agile, 불확실한 비즈니스 상황 변화에 대응하며 빠르게 성과를 도출하는 업무 수행 방식)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DT의 핵심은 속도다. 하지만 기업의 체질 개선은 볼트와 너트를 갈아 끼우듯 기술과 프로그램만 새것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별 시스템이 하나의 유기체로 맞물려 작동하려면 구성원 공통의 규범과 언어 체계를 정립해, 기업이 일하는 속도를 올리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는 이번 직무소개의 주인공 Enterprise UX/UI(User Experience/User Interface) 팀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클라우드 같은 첨단 기술이 DT의 도구라면, 이들은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이라는 방법론을 활용해 실제 사용자와 첨단 기술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진정한 의미의 DT를 실현하고자 한다. 뉴스룸은 Enterprise UX/UI 팀 구성원들을 만나 SK하이닉스가 그려가고 있는 DT의 혁신에 대해 들어봤다.
SK하이닉스, 복잡하게 꼬여 있는 업무 시스템 혁신 위해 ‘도화(圖畵) 전문가’를 투입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6년 DT 조직을 출범시켜 전사 차원의 시스템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사람의 손이 했던 일은 머신러닝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로봇이 대신하고, 사람은 시스템의 관리자로서 한층 고차원의 노동을 하는 것. ‘시일사학(시스템이 일하고 사람은 학습한다)’은 단순한 제조 기업을 넘어 고객에게 먼저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지능형 기업(Intelligent Enterprise)’으로 거듭나려는 DT 조직의 비전이다.
올해 초 김한나 PL을 리더로 9명의 UX/UI 디자이너들이 모여 결성된 Enterprise UX/UI 팀은 이러한 비전으로 향하는 길을 만드는 일을 한다.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를 넘나들며 B2C부터 B2B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실무 경험을 보유한 김한나 PL을 비롯해 모든 팀원이 IT 분야에서 서비스 기획, 디자인 경력만 최소 3년 이상 쌓은 실력자들.
이 팀이 생기기 전, SK하이닉스는 DT를 진행하는 데 있어 크게 두 가지 장벽에 부딪혔다. 첫 번째는 오랜 시간 축적된 난개발로 인한 비효율적인 업무 환경. 일관된 기준 없이 현업의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마구잡이로 업무 프로그램이 개발되다 보니, 기능이 중첩되거나 부서마다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해 협업의 효율성이 현저히 낮았다.
두 번째는 오래전 개발된 프로그램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불편한 사용성이었다. 너무 복잡한 인터페이스(Interface)와 부가 기능 때문에 꼭 필요한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하나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여러 시스템을 동시에 띄워놓고 일해야 하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이는 새로 입사한 밀레니얼 세대 구성원들이 업무를 익히는 데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시스템 구축 초기에는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시스템에 사람을 맞춰야 했다면, DT는 사람에 시스템을 맞추는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nterprise UX/UI 팀은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사내의 수많은 시스템을 통합·개편하고, 개별 서비스의 복잡한 기능성(Functionality)과 사용성(Usability)을 사용자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을 한다. 때로는 과감히 불필요한 시스템을 정리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하기도 한다.
Enterprise UX/UI 팀을 이끄는 김한나 PL은 팀의 역할을 ‘지도 그리는 일(圖畫)’에 비유했다. 복잡하고 오래돼 잦은 체증(Traffic Jam)을 일으키는 일의 통로들을 다시 연결하거나 정비하고, 때론 과감히 통로를 없애거나 필요에 따라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통로를 추가하면서 업무 흐름이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는 업무의 길(Road Map)을 만들고 있다고.
“SK하이닉스에서는 3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수백 개가 넘는 시스템을 통해 반도체 제품을 만들어요. 그런데 그동안 이 수많은 프로그램이 전체적으로 어떤 체계 안에서 움직이는지는 아무도 몰랐던 거에요. 업무 툴(Tool)이 양적으로는 많지만,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급격한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죠. 저희는 이렇게 파편화되어 있는 시스템을 실제 사용하는 구성원의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재정비하고, 어느 조직 어떤 부서이건 균일한 접근성을 지니는 업무 환경을 구축하고 있어요. 여기저기 끊어져 있어 정확한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웠던 내부 시스템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 통해 그려가는 큰 그림… 업무방식의 길을 만드는 것
Enterprise UX/UI는 말 그대로 기업용 서비스 내에서 사용자의 접점(User Interface)이 되는 모든 요소를 개선(Re-design)함으로써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즉 구성원의 업무 활동을 합리적으로 바꾸는 모든 작업을 총칭한다. 그 결과물이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요소로 구현되기에 공식적으로는 ‘디자이너’라는 명칭으로 불리지만, 사실 UX/UI 디자인의 개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각화(Visualization)보다는 설계(Construction)의 의미에 가깝다. 바깥에서 보기에 이들의 업무는 그저 웹 페이지의 버튼 하나를 바꾸는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는 전체 시스템의 변화를 아우르기 때문. 기획자(Planner)와 디자이너(Designer)의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융합형’ 직무인 셈이다.
이들의 업무 프로세스는 크게 문제 수집 > 문제 정의 > 솔루션 도출 > 현장 적용(테스트)의 네 단계로 요약된다.
UR/UT 파트는 프로젝트의 처음과 끝을 책임지는 ‘골키퍼’ 역할을 한다. 현업에서 특정 업무 시스템과 관련해 불편사항이 접수되면 사용자 행동 패턴 분석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정의한다. 이를 UR(User Research, 사용자 조사)이라고 한다. 이렇게 프로젝트 미션이 정해지면 다시 사용자 관점에서 이를 꼼꼼히 분석해 디자인 원칙에 따라 개선 방향(UX concept)을 정한다. 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UX 기획 파트다.
규격이 정해지면 UI(User Interface) 파트에서 구체적으로 사용자에게 보이는 화면을 어떻게 새로 구성할 것인지 설계한다. GUI(Graphical User Interface) 파트에서 이 설계도면 위에 서비스의 특성에 따라 색깔, 아이콘 등으로 살을 입혀 솔루션을 완성하면, UR/UT 파트가 이를 현업으로 다시 가져가 클라이언트(구성원)의 불편함이 해소되었는지 확인(User Test, 사용자 테스트)한다. 만약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이 발견되면 다시 첫 단계로 돌아가 보완책을 찾는다.
이처럼 문제 정의 단계에서 해결까지 철저히 사용자 관점에서 접근하는 문제 해결 방식을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이라고 한다. UR에서 UT로, 그리고 다시 새로운 UR로 이어지는 프로세스의 반복을 통해 마치 그물을 짜듯 서비스와 사용자 간의 거리를 좁혀가는 것. 이렇게 개선되는 서비스가 늘어날수록 기업의 전체 업무 흐름이 원활해지고 구성원의 업무 만족도도 올라간다. 궁극적으로는 업무의 속도와 효율을 높이는 게 이들의 핵심 과업.
상기 과정을 Design Project Process라고 하며, 서비스 간 일관성 있는 사용자 경험을 구현하기 위해 공통된 원칙(Design Principle)을 준수해야 한다. 공통의 비전을 제시하고 사용자 경험을 상향 평준화하기 위해 하이지니어의 업무 환경에 최적화된 UX/UI standard를 정의하고 있으며, 이를 “서비스 목적에 부합하도록, 시각언어를 통해 의미를 전달한다”는 구축 취지에 맞추어 ‘Signal Design System’이라고 명명했다.
없던 길을 뚫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숙명… ‘일의 지도’ 그리는 디자이너가 사는 세상
구체적 물성을 갖는 제품 디자인과 달리, UX/UI는 손에 잡히지 않는 서비스를 디자인한다는 점에서 아직 대중적인 이해도가 낮은 분야다. 그래서 이 팀이 하는 일의 중요성도 실제만큼 부각되지 않는 편. 이야기를 듣다 보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바깥에서 누구보다 분주하게 타인을 위한 일을 하는 이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더욱 궁금해졌다.
Enterprise UX/UI 팀원들은 클라이언트, 즉 기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던 구성원에게 서비스 개선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것을 가장 어려운 일로 꼽았다. 특히 기존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던 당시부터 현업에 있었던 구성원들의 경우 개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불편하거나 복잡한 인터페이스도 이미 패턴으로 암기해 사용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이를 바꿔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또한, 개발된 지 오래된 프로그램이 많아 전체 개발과정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개발 당시 현업에 있었던 엔지니어들이 이미 퇴사한 경우가 많고, 아직 현장에 남아있는 엔지니어도 파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Enterprise UX/UI 팀은 별도의 협업 프로세스를 준비 중이다. 김한나 PL은 “최근 서비스 품질 향상 및 비용 효율화 측면에서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완성된 최종 결과물까지 주요 유관 부서가 리뷰할 수 있는 협업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왜 개선해야 하는지, 또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정확히 무엇인지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소통 채널을 구축하는 것이 주요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과제가 많지만, Enterprise UX/UI 팀원들은 이 직무만이 줄 수 있는 경험과 매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먼저 일을 하면서 뿌듯한 순간에 대해, Design Principle/Process 파트를 맡고 있는 조지희 TL은 “개발자가 혼자 해소하기 어려운 문제들의 해결책을 디자인 싱킹 과정을 통해 도출해내고, 현업에서 이러한 새로운 접근방식에서 나온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솔루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UI 파트를 맡고 있는 이지연 TL은 “제조업 분야의 특성상 복잡하고 어려운 전문지식(Domain Knowledge)이 많아 난감할 때가 있다”면서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할 때 느끼는 성취감이 UX/UI 직무만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SK Hynix에서 UX/UI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에 대한 장점으로는 팀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일관된 일의 방향성’을 꼽았다.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디자이너가 중재하며 일해야 하는 고충이 있는 B2C 기업과 달리, SK 하이닉스는 클라이언트와 서비스의 최종 소비자가 하이지니어(구성원)로 일치하기 때문. 온전히 사용자 경험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한나 PL은 “이런 장점은, 모든 시간과 역량을 사용자에게 집중할 수 있어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기획 및 디자인함으로써, 디자이너 개인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융합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UX/UI 업무의 특성상 평소 디자인 툴을 다루는 역량 외 다양한 자기계발을 통해 전반적인 업무 역량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사용자 행동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 인지심리학, 인간 공학, 행동 경제학 등 다양한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이기 때문.
이와 관련해 GUI 파트를 맡고 있는 이령화 TL은 “UX/UI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며 “공식적으로는 ‘디자이너’라는 명칭이 붙지만, 사실 실제 업무는 컨설턴트와 유사한 점이 더 많다. 꼭 디자인 전공이 아니라도, UX/UI는 타인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는 매력적인 직무”라고 강조했다.
UR/UT 파트를 담당하는 강남규 TL은 “필요하다고 해서 모든 기능을 다 넣는 것이 좋은 개발 마인드가 아닌 것처럼 훌륭한 UX/UI 디자인을 위해서는 디자인 공학적 사고나 디자이너 개인의 취향으로 문제에 접근하기보다 사용자 관점에서 필요한지 아닌지를 구분할 줄 아는 서비스 가치 기반 분석 역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러 난관들을 함께 헤쳐가며, SK하이닉스 DT 혁신을 위한 대장정의 첫 삽을 뜬 Enterprise UX/UI 팀. 이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한나 PL은 “스스로 만족할 만큼 편리한 서비스를 만들어 SK하이닉스의 구성원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
개선된 시스템이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고, 이것이 더 많은 구성원의 성과와 보람, 새로운 가치 창출로 연결되는 선순환의 생태계. SK하이닉스의 DT가 지향하는 ‘지능형 기업’이란, 바로 ‘구성원이 행복한 기업’의 다른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