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밈(meme)의 전성시대다. ‘사딸라’, ‘1일 1깡’, ‘아무노래 챌린지’ 등 유튜브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만들어진 밈들이 단순한 즐길거리를 넘어 오프라인의 비즈니스 트렌드를 좌우하고 있다. 과거 온라인 게시판에서 친목 활동을 즐기는 소수의 네티즌이 향유하는 비주류 문화에 속했던 밈은 이제 SNS라는 대중적 매개체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즐기고 따라 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됐다. 특히 재미와 공감을 추구하는 MZ세대(Millenial세대와 Z세대를 합친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라인의 밈 트렌드를 아는 것이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진화생물학 용어 ‘밈(meme)’, 온라인 세대의 새로운 소통 방식을 일컫는 단어로 재탄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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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meme)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가 1976년 출간한 저서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처음 사용된 학술 용어로,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메시스(mimesis)와 유전자(gene)의 합성어다. 이 책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밈을 ‘인간의 유전자처럼 자기복제적 특징을 지니며 번식해 대를 이어서 전해져 오는 사상이나 종교, 이념 같은 정신적 사유’로 정의했다. 즉, 밈은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口傳)을 통해 재생산되는 모든 문화적 현상을 총칭한다. 

이처럼 고전 사회학 용어로 쓰였던 밈은 2010년대에 이르러 온라인상의 새로운 소통 방식을 설명하는 용어로 부활했다. 요즘 사용되는 밈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정의하자면 ‘재미와 보람을 중요하게 여기고, 느슨한 연대를 즐기는 세대와 기술의 발달이 만나 형성된 일종의 놀이문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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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밈을 단순히 웃기는 영상이나 유행어로 생각하기 쉬운데, 특정 사진이나 영상보다는 누군가의 열정과 에너지를 다해 만들어진 특정 결과물을 모두 함께 향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재미에 가깝다. SNS에서 동일한 소재로 다양한 콘텐츠들을 만들어 아는 사람만 즐기는 메인스트림을 형성하고 거기에 일조했다는 희열을 즐기는 것, 그 자체가 밈이다.

밈이 형성되는 일정한 규칙은 없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패러디 콘텐츠와 짤방 중 어떤 것이 인기를 얻어 강력한 밈이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밈은 짧은 시간 동안 광범위하고 빠르게 퍼져 유행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처럼 네티즌의 자발적 공유와 확산 행위를 통해 생겨나고 소멸하기를 반복하던 밈이 이제 하나의 놀이문화를 넘어 현실세계의 비즈니스 트렌드를 좌우하는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짝 소년단’에서 ‘사딸라’까지...디지털 놀이 문화 밈이 현실의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방식

웃픈 아이러니는 인기 밈의 필수조건! 아찔한 사건·사고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관짝 소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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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유저가 패러디한 관짝 소년단 짤방. 관짝 소년단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형태로 패러디되며 화제를 모았다. (출처: 에펨코리아 건강갤러리)

올해 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특이한 장례 의식을 소개하는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관련된 짧은 영상이 숏 폼(short form) 동영상 전문 소셜 미디어인 틱톡에서 일종의 밈이 된 것이 시작이었다. 망자를 기리기 위해 보통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영상에서는 무거운 관을 어깨에 올린 남성들이 밝고 쾌활한 분위기로 춤을 춰 화제가 된 것.

‘Coffin Dance’라고 불리는 이 의식은 서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장례 풍습으로, 참석자들은 천수를 다 누리고 편안하게 세상을 뜬 고인에 한해, 고인이 가는 길을 좋은 기분으로 가라는 의미를 담아 음악을 틀고 관을 어깨에 짊어진 상태에서 춤을 춘다.

죽음이라는 엄숙하고 심각한 상황에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는 아이러니는 곧바로 국내외 수많은 커뮤니티 유저들에 의해 다양한 맥락으로 패러디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사건·사고 장면이나, 야심차게 출시했지만 망해버린 제품 사진에 이 영상의 캡처를 합성하는 방식으로 조롱하는 밈을 만들어냈다. 국내에서는 영상 속에서 관을 들고 춤을 추는 7명의 청년에게 ‘관짝 소년단’이라는 애칭까지 붙여주었다. 틱톡에서 시작된 관짝 소년단 밈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수 비의 흑역사에서 시작된 ‘1일 1깡’, 음원차트 싹쓸이한 혼성 그룹 ‘싹쓰리’를 탄생시키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밈이 새로운 방송 콘텐츠의 탄생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1일 1깡’이 그 대표적 사례. 2017년에 발표된 곡 ‘깡’은 가수 비에게 있어 일종의 흑역사와 같은 존재였다. 한껏 과장된 몸짓으로 표현한 안무와 대담한 가사는 대중의 눈에 멋있기보다 오글거림에 가까웠기 때문.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우연히 발굴된(?) 비의 깡 뮤직비디오는 짓궂은 네티즌들에 의해 각종 패러디 영상이 쏟아지며 온라인의 핫한 놀림거리가 됐다.

하지만 비가 MBC의 TV 예능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자신을 걱정하는 댓글을 하나하나 읽고 이에 대해 유쾌하게 피드백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웃음거리가 될 수 있었던 논란을 돌파해 안티 팬마저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 허세 가득한 비호감 스타였던 비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대인배의 마인드를 가진 호감 연예인으로 바뀌었고, 음악 활동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깡을 따라 하는 것이 이제 조롱이 아니라 비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는 하나의 유행(밈)으로 자리 잡은 것.

각종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간 ‘깡 따라 하기’ 밈은 비가 <놀면 뭐하니?> 고정 출연을 통해 이효리, 유재석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SSAK3)’를 결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비에 대한 호감 요소와 함께 카고 바지, 크롭 티셔츠, 배꼽티 등 MZ세대 사이에 유행하는 레트로 스타일 코디를 적극 활용한 싹쓰리는 데뷔와 함께 각종 음원 차트를 석권했다. 데뷔 타이틀곡 <다시 여기 바닷가>의 뮤직비디오는 공개 이틀 만에 무려 356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인기 짤방 속 주인공이 TV 광고에 나타났다?! 밈의 유머 코드를 CF로 재현한 버거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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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짜>의 곽철용을 연기한 배우 김응수를 캐스팅해 화제가 된 버거킹의 TV CF 캡처 화면. (출처: ‘버거킹’ 유튜브 캡처)

이제 밈의 유행은 단순히 온라인에만 머물지 않고 영 타깃을 공략하는 기업들의 브랜드 마케팅 전략으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그 대표 주자인 버거킹은 인터넷에서 유행한 ‘짤방’을 TV CF의 콘셉트로 차용한 ‘밈 시리즈’를 통해 주 고객층인 MZ세대의 큰 호응을 받았다.

2018년 하반기에는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드라마 <야인시대>(2000)의 한 장면을 편집한 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극 중 김두한 역할을 맡은 김영철 배우가 미군과의 협상 장면에서 막무가내로 “사딸라!(4 dollars)”를 외치는 장면이 네티즌 사이에 하나의 유머 코드처럼 쓰이면서 밈으로 자리 잡은 것. 당시 온종일 4,900원에 세트 메뉴를 즐길 수 있는 햄버거 제품 ‘올데이킹(All DAY KING)’을 출시 예정이었던 버거킹은 이러한 ‘사딸라’ 밈 열풍에 주목, 김두한 역을 연기한 배우 김영철을 CF에 섭외함으로써 큰 인기를 끌었다. ‘사딸라(4,900원) 세트’로 마케팅을 펼친 올데이킹은 TV 광고의 인기에 힘입어 론칭 13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1,500만 개의 기록을 세웠다.

버거킹의 이러한 밈 마케팅 전략은 2019년 하반기 영화 <타짜3> 개봉과 함께 재조명된 <타짜1>의 곽철용 짤방을 활용하면서 또 한 번 열풍을 일으켰다. 극 중 곽철용 역을 맡은 김응수 배우가 과감한 베팅을 하며 던지는 대사인 “묻고 더블로 가!”를 버거킹의 신메뉴인 더블 패티 올데이킹 제품의 카피로 사용하면서 네티즌의 호응을 받은 것. 영화 속 곽철용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김응수 배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버거킹 매장 점원과 가격을 흥정하는 내용의 해당 광고는 특유의 B급 감성으로 높은 매출은 물론 수많은 패러디 콘텐츠를 양산했다.

이처럼 인터넷 유행 코드 밈(meme)은 더 이상 소수의 커뮤니티 유저들만이 향유하는 비주류 문화로 치부할 수 없다. 뉴트로 마케팅 등 메가 트렌드를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천군만마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 네티즌들이 밈을 통해 최신 제품이나 서비스를 무조건 추종하기보다 특색 있는 콘텐츠나 다시 보고 싶은 과거의 연예인을 소환하고 재조명한다는 점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의 잠재 고객인 소비자는 이제 만들어진 트렌드를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즐기고 싶은 콘텐츠를 상품으로 만드는 트렌드 세터로 탈바꿈하고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고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고자 하는 기업들이 밈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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