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이용한 LED가 모든 색(full color)을 표시하고 백색광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빛의 3원색인 적색, 녹색, 청색 LED가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1950~1960년대 개발된 적색, 녹색 LED와 달리 청색 LED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졌음에도 1990년대까지 개발에 난항을 겪었다. 청색 LED를 구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질화갈륨(GaN)의 품질이 낮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
그럼에도 학계와 업계가 청색 LED 개발에 매달린 이유는 적색, 녹색, 청색 LED로 만든 백색 LED가 기존 전등보다 4~10배 밝아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고 최대 사용기간 역시 10만 시간으로 기존 전등보다 10~100배 길기 때문이다.
청색 LED와 관련된 오랜 연구에 마침표를 찍은 건 메이조대학교 아카사키 이사무 종신교수 등 3명의 일본 과학자이다. 이들은 1992년 질화갈륨 박막을 고품질로 만드는 기법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P형 도핑 기술을 개발해 처음으로 청색 LED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들은 이 연구 성과로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일본은 청색 LED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유지해왔다.
그러던 중 최근 국내 KIST(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한국과학연구원) 연구진이 청색 LED 반도체에 사용했던 질화갈륨을 대체하는 새로운 소자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구리(Cu)와 요오드(I) 등으로 이뤄진 요오드화 구리(CuI) 반도체를 주 소재로 구리할로겐 화합물 반도체 기술 개발에 성공해, 고효율로 청색광을 발광할 수 있는 소자 기술을 확보한 것. 국내 학계와 업계에선 이 기술을 통해 대한민국이 청색 LED 시장을 주도하는 밝은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실리콘 대신 질화갈륨을 기반으로 전자소자를 만들면 전력소비를 크게 줄일 수 있어, 초저전력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주목받아 왔다. 또한, 질화갈륨은 청색 영역뿐만 아니라 이보다 파장이 더 짧은 자외선 영역도 발광이 가능하다.
현재 질화갈륨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전자제품 및 고주파장치에 핵심소재로 우리 실생활에 널리 쓰이고 있다. 또한, 신호 변환(switching) 속도가 빠르고 이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율도 적어, 고주파용 고출력 통신 시스템, 자동차용 전력 시스템, 극한환경용 반도체로 그 활용 범위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질화갈륨 웨이퍼 가격이 떨어지고 실리콘 기판 위에도 질화갈륨 박막을 성형해 성장하는 기술들이 개발됨에 따라 관련 시장 규모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에는 실리콘과 질화갈륨의 원자간 거리가 멀어 사파이어 기판 위에 질화갈륨 박막을 성장시켜야 했지만, 최근 실리콘과 질화갈륨의 원자간 거리를 좁혀 실리콘 위에도 깨지지 않게 질화갈륨 박막을 성장하는 기술이 개발된 것. 이를 통해 기판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질화갈륨의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0년 이후 2025년까지 향후 5년간 연평균 20%의 성장률을 보이며 현재보다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1) 미국 Semiconductor today는 2023년까지 글로벌 시장이 55%의 가파른 연평균 성장률(CAGR)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질화갈륨도 단점이 있다. 질화갈륨은 가격이 비싸고 집적도가 높은 IC회로(Integrated Circuit, 하나 이상의 트랜지스터와 다른 전자 요소를 포함하는 반도체 회로)를 만드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질화갈륨을 구성하는 갈륨(Ga)과 질소(N) 원자간 내부 전기장(electrostatic field)이 높고 전자(electron)와 정공(hole, 반도체 내 전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의 결합 에너지(exciton-binding energy)가 낮아, 양자효율(전기를 빛으로 변환할 때의 효율)도 떨어진다. 또한, 사파이어(Al₂O₃)나 탄화규소(SiC) 기판과 원자간 거리 차이가 커 박막 제조 시 결함이 많이 발생하고, 이것이 소자의 수명과 특성을 저해한다.
이에 더해 질화갈륨은 청색 LED에 필요한 p형 반도체로의 도핑(doping)도 어렵다. 반도체 결정에 불순물을 첨가해 저항을 감소시키는 것을 도핑이라고 하는데, 이때 결합에 기여하고 남은 정공 수가 많은 것이 p형 반도체, 전자 수가 많은 것이 n형 반도체다. 질화갈륨은 과잉 전자가 많은 n형 반도체 특성을 보이며, 이런 이유로 p형 반도체로 도핑하는 과정이 까다롭다.
1) ‘GaN semiconductor devices market size, share & trends analysis reports’ by Grand view research(2018)
KIST연구진은 질화갈륨의 이 같은 단점을 극복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반도체 개발을 위해 요오드화 구리에 주목했다. 그동안 요오드를 비롯한 원소주기율표 1-7족 물질들은 강한 전기적 상호작용으로 인해 원자간 결합 강도가 높아, 반도체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원자간 결합 강도가 낮아야 전자가 이동하며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이번 기술 개발로 반도체 소재 기술 연구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요오드화 구리는 질화갈륨과는 달리 내부전기장이 작고 결합에너지가 높아 광전변환(명암이나 채도 등의 정보를 전기적 신호로 바꾸는 것) 효율이 높다.
▲ 실리콘 기판 위에 성장한 요오드화 구리 박막 단면을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사진. 결함밀도가 적고, 단결정 실리콘과 단결정 요오드화 구리의 결정대칭성이 뚜렷하다.
또한, 요오드화 구리의 결정구조는 실리콘과 동일하고 원자간 거리도 유사해 저렴한 실리콘 기판에 적은 결함으로 박막 성장이 가능하다. 요오드화 구리 박막 성장 온도도 실리콘 소자 공정에 사용되는 온도(300도 이하)와 유사해 열화 없이 실리콘 반도체 공정에 적용이 가능하다.
특히 요오드화 구리 박막은 특이하게도 p형 반도체 특성을 갖고 있다. 질화갈륨이 n형 반도체로, p형 도핑이 어려운 점과 비교하면 매우 큰 장점이다. 연구진은 여기에 착안해 n형 알루미늄질화갈륨(AlGaN)과 p형 요오드화 구리를 접합한 하이브리드 LED를 제작, 청색을 발광시키는 데 성공했다.
▲ 알루미늄질화갈륨(AlGaN)을 n형 반도체로, 요오드화 구리(CuI)를 p형 반도체로 사용한 ‘p-CuI/n-AlGaN 하이브리드 LED 소자’의 구조(왼쪽)와 이 소자에서 방출된 청색광 발광 사진(오른쪽). 발광된 청색광의 파장은 437nm로, 요오드화구리 반도체가 질화갈륨 기반 소자에 비해 10배 이상 강한 청색광 밝기를 보일 뿐만 아니라 향상된 광전효율 특성과 장기적 소자 안정성을 가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요오드화 구리는 높은 양자효율을 가져 신뢰성 높은 고성능 청색 발광 소자를 제작할 수 있으므로 향후 질화물 반도체를 대체해 고효율 광소자 개발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대면적 실리콘(Si) 기판에 직접 성장 가능하고 고온의 박막성장공정 및 장치가 필요 없어, 질화갈륨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응용분야에도 사용될 수 있다.
연구진은 현재 발광 파장 확대 등 효율 증대를 위해 요오드화 구리와 염화구리로 이뤄진 LED 개발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데, 상용화를 위해서는 요오드화 구리 박막의 고품질화, 대량생산을 위한 공정 최적화, 관련 장비 개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아직 남아 있다.
이 기술은 무엇보다 순수 국내연구진이 구리할로겐계 반도체의 우수성에 대한 이론적 예측을 최초로 보고하고 실증함으로써 원천기술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술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새로운 청색 및 자외선 광원으로 수년 내 상업적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질화갈륨을 대체하는 새로운 발광반도체용 소재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