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png

주사위를 굴려 1이 나올 확률은 1/6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당신의 존재는 주사위를 굴렸을 때 나오는 1과 같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다시 말해 나의 존재가 무작위로 굴려진 주사위의 확률에 따라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 이런 터무니없는 질문을 세상에 던진 학문이 있었으니, 이름만 들어도 어려울 것 같은 ‘양자역학’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양자역학이 어떻게 태어났고, 성장했는지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영하이라이터가 들려드리겠습니다.

과학계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문제아, 양자역학의 등장

2.png

▲ 막스 플랑크 (출처: WIKIMEDIA COMMONS)

19세기 물리학계는 세상 만물의 이치를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넘쳐 있었습니다. 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지도교수를 찾아간 막스 플랑크는 “물리학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발견되어 이제 남은 것은 몇 개의 사소한 구멍들을 메우는 일뿐이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당시 물리학은 완성에 가까운 수준까지 도달해 있었습니다. 즉, 현재 상태와 가해주는 물리량만 알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두 예측하는 것이 가능한,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고 있었죠. 하지만 ‘몇 개의 사소한 구멍을 메우는 일’에서 기존의 자신감 넘쳤던 고전물리학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바로 ‘흑체복사의 에너지 스펙트럼’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었는데요. 이 흑체복사 에너지를 설명하기 위해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에너지는 양자화되어 있다”는 이론을 꺼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물리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게 됩니다.

3.png
▲ 막스 플랑크의 연구소가 있었던 뮌헨대학 (출처: WIKIMEDIA COMMONS)

흑체복사 연구는 온도와 파장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이전부터 진행됐던 연구입니다. 흑체(Black Body)가 내는 복사(Radiation)를 설명하기 위한 실험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흑체가 어떤 온도에서 어떤 빛을 내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흑체를 직접 가열하는 실험을 하고 그 측정값을 그래프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실험을 통해서 만든 그래프는 기존의 물리학의 어떠한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자연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물리학계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고전물리학에서 에너지는 연속적인 값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하지만 연속적인 에너지값이라는 고정 원리와 반대되는 실험결과를 얻게 된 것이죠. 플랑크 역시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문득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고의 틀을 깨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4.png
▲플랑크가 도입한 E=nhv 개념 그래프

그리고 고전물리학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버릴 E = nhv 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여기서 E는 에너지를 나타내고, n은 정수(1,2,3.4 ….)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hv를 하나의 덩어리로 생각하면, 에너지는 1hv, 2hv, 3hv, 4hv 등 덩어리로 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기존의 연속적인 에너지량이라면, 1hv와 2hv 사이에 1.000001hv가 있을 것이고, 또 그 사이엔 무수히 작은 연속적인 값들이 존재하겠지만, 플랑크는 “NO! 1hv 와 2hv 사이에는 어떠한 에너지값도 존재할 수 없어!”라고 말합니다. 이 이론으로 플랑크는 흑체복사 실험에서 측정된 그래프를 물리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하게 됩니다. 이후 “에너지는 양자화 되어있다”는 이론은 당시 풀지 못한 여러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플랑크가 이 이론을 발표한 1900년 12월 14일은 양자역학이 태어난 날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태풍의 눈이 된 양자역학, 그 운명은?

5.png
▲ 닐스 보어 (출처: WIKI백과)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출처: pixabay)

양자역학은 기존의 사고방식에 익숙한 과학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에너지는 연속적이라고 가정하며 풀었던 물리학적 이론이 전부 잘못된 게 되어 버리는 것이니까요. 심지어 양자역학을 발견한 플랑크 역시 자신의 이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죠.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알려진 아인슈타인 역시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고전물리학을 완성한 동시에 고전물리학의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양자역학을 한 단계 발전시킨 역설적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이 완성한 고전물리학이 양자역학에 의해 흔들리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양자역학의 오점을 찾기 위해 양자역학을 연구하게 되죠. 아이러니하게도 고전물리학의 적과 같았던 양자역학 연구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빠져들게 됩니다. 한번은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을 인정하고 연구를 진행하던 과학자 집단이 설전을 벌인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1927년 브뤼셀에서 열린 제 5차 솔베이 회의에서 입니다.

6.jpg
▲ 제 5차 솔베이 회의 (출처: WIKIMEDIA COMMONS)

솔베이 회의는 아인슈타인, 마리퀴리, 막스 플랑크, 닐스 보어 등 우리가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매우 저명한 과학자들이 참여해 물리학에 대해 논하는 자리입니다. 5차 솔베이 회의 주제는 전자와 광자로, 고전 물리학으로 해석이 안 되던 전자와 광자의 이상한 현상을 토의하는 장이었습니다. 회의는 자연스럽게 양자역학으로 이것을 해석하는 부류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부류로 나뉘게 되었고, 아인슈타인은 반대 입장의 우두머리였습니다. 당시 일반 상대성이론으로 아인슈타인의 영향력은 최고였습니다. 이런 아인슈타인에 맞선 젊은 과학자가 보어입니다. 보어는 양자역학을 받아들이고 연구했던 부류의 대표였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폈습니다. 5일간 펼쳐진 회의에서 가장 화두가 되었던 것이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양자역학의 중요개념이었는데요. 오전에 아인슈타인이 이 불확정성 원리의 오점을 지적하는 사고 실험을 보어에게 던져주며, 양자역학은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보어는 오후 회의에서 보기 좋게 아인슈타인의 사고 실험을 양자역학으로 증명하게 됩니다. 회의에 참석한 에렌페스트는 “이 회의의 진정한 승자는 보어이다. 그의 말은 카리스마가 있었고, 모두를 수긍하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7.png
▲ 보어와 거만한 태도의 아인슈타인 (출처: WIKIMEDIA COMMONS)

회의 내용을 보면, 양자역학에서는 입자의 상태를 확률로 해석합니다. 즉, 그 입자가 그곳에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를 존재할 확률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기에 전자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양자역학에서는 틀린 말인 것이죠. 저기에 전자가 있을 확률이 몇 퍼센트인지 말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즉, 그곳에 전자가 진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고 단지 있을 가능성을 퍼센트로만 나타내는 것뿐이죠.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고전물리학은 현재의 상태와 가해지는 물리량만 알고 있다면 미래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현재의 상태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저 확률일 뿐이죠. 주사위를 무작위로 던졌을 때 1~6이 골고루 나오는 것처럼 전자도 어딘가 골고루 나타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 따위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합니다. 이에 보어 역시 지지 않고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든 말든 당신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당시 최고 권위자였던 아인슈타인은 보어가 시답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회의가 계속될수록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오점을 발견하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계속해서 양자역학의 오점을 찾기 위해 연구를 거듭합니다. 그런 그의 연구들이 지금의 양자역학을 발전시킨 중요한 연구 중 하나가 되었답니다. 이런 아인슈타인에게 지원군이 있었습니다. 바로 슈뢰딩거라는 과학자인데요. 그 역시 아인슈타인과 함께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양자역학, 물리학계의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가 되기까지

8.png
▲ 슈뢰딩거 (출처: WIKIMEDIA COMMONS)

슈뢰딩거는 이전부터 입자 운동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입자들이 파동과 비슷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방정식을 새우게 됩니다. 이것이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방정식이 실제 입자의 움직임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양자역학 물리학자들은 슈뢰딩거 방정식을 입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존재할 확률을 나타내는 식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자신의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방정식이 쓰이는 것에 슈뢰딩거는 마땅치 않게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보어에게 “만약에 당신이 이 저주스러운 양자이론을 고집한다면 나는 절대로 원자이론을 연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그리곤 굉장히 유명한 사고 실험 하나를 제안합니다. 그는 존재 자체가 확률이라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고양이를 독약이 든 상자에 넣는 사고 실험을 합니다.

양자역학은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은 다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출발합니다. 우리 인간도 무수히 많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죠. 양자역학에서는 원자의 존재를 확률로 나타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원자들이 여러 개 모여서 이루어진 고양이(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고양이라고 한 것뿐이지, 그 어떤 것도 가능합니다.) 역시 존재가 확률로 나타나지 않겠냐고 반대로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곤 자신의 사고 실험을 들려줍니다. 상자 안에는 독약이 있고, 독약 위엔 50% 확률로 독약병을 깰 수 있는 망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넣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이 고양이는 50% 확률로 죽거나 50% 확률로 살아있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고양이는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둘 중 하나로 정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입장에서는 상자의 문을 열어 관측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죽어있는 상태와 살아있는 상태가 반반으로 중첩된 상태라고 해석하게 됩니다. 반은 죽어있고, 반은 살아있는 상태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슈뢰딩거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죠. 슈뢰딩거의 이런 논리는 그간 확률로 결과를 도출했던 물리학자들에게 ‘세상 모든 이치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라는 기본적인 이치를 설명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9.png
▲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 모식도 (출처: WIKIPEDIA)

양자역학을 반박하려고 꺼낸 실험이었지만, 반대로 양자역학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훌륭한 실험이 된 것이죠. 그리고 이 이야기의 결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슈뢰딩거 방정식이 양자역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방정식으로 쓰이고 있다는 내용으로 끝나게 됩니다.

현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누가 내 앞에서 슈뢰딩거 고양이 이야기를 하면 난 총을 꺼낼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간단한 실험 하나가 아직까지도 완벽하게 해석되지 않는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실 슈뢰딩거가 바라본 세상도 결국 양자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양자역학, 끝이 아닌 이야기

이후 양자역학은 자신을 향했던 비판과 공격을 모두 방어하면서 점점 확고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운동법칙을 완성한 뉴턴의 운동법칙,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입증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과 같이 “누구누구의 양자역학”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양자역학은 어느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완성된 학문이 아닌, 시대와 역사가 만든 학문이기 때문이죠. 현재까지도 양자역학에 대한 연구는 계속해서 진행중이며, 적용범위를 넓히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양자역학이 적용되는 세계는 무척 작은 입자의 세계이기 때문에 거대한 세계 즉, 우주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이론으로는 아직 불완전합니다. 거시 세계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이 완벽히 들어맞게 됩니다. 세상 만물의 이치를 완벽히 설명하려는 물리학자들에게 하나의 세상에 두개의 법칙은 존재할 수가 없답니다.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아주 아주 작은 세계의 원리인 양자역학과 거대한 세계의 원리인 상대성이론을 하나의 이론으로 합하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학문이 하나의 학문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앞서 19세기 과학자들이 목전에 두었던, 세상의 모든 이치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시대가 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양자역학으로 우주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는 그날까지, 양자역학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양자역학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양자역학은 영웅 탄생 비화처럼 온갖 고난과 역경을 뚫고 현대과학의 양대산맥으로 자리잡게 되었답니다. 양자역학을 알고 모르고는 세상을 사는데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이론이 정립되기까지 사람들이 했던 무수한 고민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조금 더 재밌게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앞으로 양자역학이 바꿔갈 세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