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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캐릭터의 초능력이 현실로? 반도체가 실현하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Written by 자그니 칼럼니스트 | 2022. 2. 23 오후 11:55:00

 

※ 스포일러 있습니다.

지난 12월 개봉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 번째 스파이더맨 영화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아이언맨이 사라진 세상을 살아가는 주인공 피터 파커(톰 홀랜드 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번 작에서는 정체가 탄로 난 피터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멀티버스(Multiverse, 멀티(Multi)와 우주(Universe)의 합성어로, 다중우주를 의미)가 열리게 되고, 이를 통해 역대 빌런들이 한자리에 소환되며 위기를 맞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역대 스파이더맨 그리고 그들이 맞서 싸워 온 각기 다른 초능력을 지닌 빌런들의 매력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과학기술도 발전해온 만큼, 궁금증이 든다. ‘이들의 초능력을 현실에서도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해답을 ‘반도체’를 통해 찾아봤다.

아이언맨의 유산을 잃어버린 스파이더맨, 역대 최악의 빌런들을 만나다

▲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컷(출처: 소니픽쳐스 코리아)

홀로그램과 드론을 이용해 세상을 속인 가짜 히어로, 미스테리오를 사람들은 진짜 영웅으로 믿고 있었다. 이 때문에 피터는 처음부터 곤경에 처한다. 그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미스테리오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쓴 것.

미스테리오의 팬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정부기관의 수사 과정에서 그의 뒤를 받쳐주던 스타크 인더스트리까지 조사를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언 스파이더 슈트에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연결해 사용하던 일부 기능을 잃고, 토니 스타크에게 물려받은 최첨단 증강현실(AR) 안경인 이디스(EDITH)마저 압수당한다.

▲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컷(출처: 소니픽쳐스 코리아)

이로 인해 두 가지 일이 벌어졌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나는 빌런과 싸울 때, AI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 대신 목에 스마트폰을 걸고 영상통화로 시야를 공유하며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데, 그리 큰 도움을 받지는 못한다. 다른 하나는 빌런을 찾을 때 안면인식 기술을 갖춘 AI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컷(출처: 소니픽쳐스 코리아)

뭐, 여기까진 괜찮다. 타노스가 사라진 이후, 나름 평화로운 시대가 찾아왔으니까. 진짜 문제는 이런 소동으로 인해 대학에서 피터와 친한 친구들의 입학을 거부한 것. 시끄러운 문제를 일으킬 것 같으니 받아주지 않은 것이다.

이에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분)를 찾아가 마법으로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시전 도중 이런저런 조건을 너무 많이 달아버린 탓에 마법은 실패하고, 역효과로 멀티버스에서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아는 존재들이 이 세계에 찾아오게 된다.

문제는 넘어온 대부분이 그들이 있던 세계에서 큰 문제를 일으킨 빌런들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린 고블린(윌리엄 데포 분), 닥터 옥토퍼스(알프레드 몰리나 분), 샌드맨(토머스 헤이든 처치 분), 리저드(리스 이판 분), 일렉트로(제이미 폭스 분) 등 한 명만 등장해도 큰 문제가 될 최악의 빌런들이 한꺼번에 넘어왔다.

화가 난 닥터 스트레인지의 명령으로 피터는 이 세계에 찾아온 빌런들을 다 잡아 오지만, 돌려보내려고 하니 모두 돌아가면 곧 죽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불쌍해진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치료한 다음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기로 마음먹는다. 계획은 근사했지만, 악당을 우습게 봤다. 닥터 옥토퍼스를 뺀 다른 이들은 치료를 거부하고 도망간다.

아이언맨의 유산을 잃은 스파이더맨에게 역대 최악의 빌런들을 상대해야 하는 위기가 찾아왔다. 피터가 친구들, 뜻밖의 조력자들과 함께 이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메인 스토리다.

히어로와 같은 위험 감지 능력으로 우리를 지켜주다... 현실에 구현된 ‘스파이더 센스’

스토리의 재미도 뛰어나지만, 역대 최악의 빌런들이 집결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히어로와 빌런들이 보유한 초능력들이다. 먼저 히어로의 능력부터 살펴보자.

악당들이 탈출하기 전, 피터는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직감한다.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이 바로 ‘스파이더 센스(Spider Sense, 어떤 종류의 위험이든 사전에 알려주는 스파이더맨의 초인적인 육감)’다. 피터는 이 스파이더 센스로, 본래의 선한 인격자(노스 오브먼으로 불린다)로 있던 그린 고블린이 다시 자신의 악한 인격을 되찾은 걸 바로 알아챘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초능력 같지만, 이와 비슷한 힘을 가져보겠다고 시도한 사람이 있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전자 시각화 연구소 연구팀이다. 지난 2013년 제4회 증강인간국제회의에서 발표한 ‘스파이더 센스’가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이다. 시각이나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제품을 고민하다 팔, 다리, 가슴, 이마 같은 신체 부위에 13개의 센서 모듈을 달았다. 각 모듈에는 최대 5m 정도 거리에서 물체를 감지하는 초음파 센서와, 센서에서 파악한 내용을 몸에 전달하는 장치가 달려있다. 물체에 가까이 다가가면 압력이 커지고, 멀어지면 압력이 약해지는 식으로, 근처에 무언가 있다는 사실을 착용한 사람에게 알려준다.

이렇듯 현실에서 스파이더 센스가 필요한 건 히어로가 아닌, 장애가 있는 사람이다. 센서 반도체가 활약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 아이디어는 최근 CES2022에서 발표된, 스위스의 한 스타트업이 만든 바이패드(Biped) 같은 제품으로 이어졌다. 바이패드는 어깨에 걸 수 있는 3D 카메라이자 AI 도우미로, 자율주행을 위해 연구되던 기술을 시각장애인을 위해 응용했다. 카메라로 주변 상황을 확인한 다음, 골전도 이어폰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들려준다. 아직 시제품 제작 단계지만, 제작사는 앞으로 바이패드가 시각장애인의 지팡이나 안내견을 대신할 수 있는 기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스파이더 센스 같은 위험 감지 기술이 가장 적극적으로 쓰이는 분야는 단연 차량에 장착되는 보행자/차량 감지 기술이다. 자동 긴급 제동 시스템(AEB)라고도 한다. 카메라와 레이다 센서를 활용해 운전 중 장애물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운전자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대신 브레이크를 밟아준다. 이미 많은 차량에 기본 사양으로 탑재돼 있다. 사람을 보호하고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 쓰이니, 이러한 기술을 구현하는 반도체가 현실의 슈퍼히어로인 셈이다.

그린 고블린의 ‘호버보드’, 닥터 옥토퍼스의 ‘로봇 팔’도 이미 구현 중

스파이더 센스는 강력하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빌런들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피터를 돌봐주던 숙모 메이 파커가 그린 고블린에게 살해당하고 만 것. 철없던 소원에서 시작한 여러 사건으로 인해, 피터는 큰 대가를 치렀다. 대신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두 명의 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 분, 앤드류 가필드 분)을 만난다. 그리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다.

▲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컷(출처: 소니픽쳐스 코리아)

스파이더맨의 숙적 그린 고블린은 영화에 등장할 때마다 스파이더맨에게 가장 큰 시련을 선물한다. 현실에서도 그와 같은 빌런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예전이라면 ‘그럴 수 없다’고 단언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 그린 고블린처럼 호버보드(Hoverboard, 전동 바퀴가 달린 보드)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남자가 등장했다. 호버보드 전문 유튜버 헌터 코왈드(Hunter Kowald)였다. ▶ 관련 영상 ‘Real Green Goblin’ Flew His Hovercraft Through Times Square’ 바로 가기

프랑스 스타트업 자파타(Zapata)에서 만든 ‘플라이 보드 에어(Fly board Air)’라는 제품도 그린 고블린의 호버보드와 유사하다. 이 제품은 제트엔진을 이용해 하늘을 날 수 있는 보드로, 비행시간은 10분 정도로 짧지만 최고 속도 150km, 최대 고도 3,000m의 성능을 자랑한다. 돈이 많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면 보드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컷(출처: 소니픽쳐스 코리아)

닥터 옥토퍼스는 어떨까? 촉수 형태의 로봇 팔은 너무 흉측해 만들어지지 않겠지만, 인간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 웨어러블(Wearable) 형태로 세 번째 로봇 팔을 다는 연구는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실제 사례로는 캐나다 쉐브룩 대학에서 개발 중인 웨어러블 로봇 팔이 있다. 과일 따기나 페인트칠 같은 일을 더 편하게 할 수 있게 돕는 로봇이다. 미국 카네기 멜런대학에서는 배낭처럼 짊어질 수 있는 로봇팔을 개발했다. 이 팔을 이용하면 천장에 어떤 장치를 부착하는 일과 같이 혼자 하기 조금 어려운 일을 쉽게 할 수 있다. ▶ 관련 영상 ‘Supernumerary 3DOF Robotic Arm’ 바로 가기

영화 속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하는 열쇠는 ‘반도체 기술’

영화에서 진짜 놀라운 순간은 피터가 토니 스타크가 만든 패브리케이터 장비를 사용해 닥터 옥토퍼스의 타버린 AI 반도체 칩을 복구하는 장면이다. 닥터 옥토퍼스가 자기 몸에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 Machine Interface, 이하 BMI) 칩을 장착해 촉수 로봇을 제어하는 것도 신기하지만(조지아-켄트-연세대 공동 연구팀은 뇌파를 이용해 휠체어나 로봇팔을 무선 제어하는 웨어러블 BMI 시스템을 개발한 적이 있다), 피터는 반도체 칩을 몇 시간 안에 스스로 다시 만들어냈다.

이를 가능케 한 기술은 아마도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 이미 설계된 하드웨어를 반도체로 생산하기 직전 최종적으로 하드웨어의 동작 및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제작하는 중간 개발물 형태의 집적 회로)일 가능성이 크다. 칩 설계를 바꿀 수 있는 반도체를 이용해 짧은 시간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짜 넣어 완성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다. 이를 정말 피터 홀로 해냈다면, 노먼 오스본이 피터를 “우리 세계로 스카우트하고 싶다”고 칭찬한 것이 결코 빈말은 아니다.

물론 개인이 반도체 칩을 제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 사는 22살 청년 샘 제로프(Sam Zeloof)는 취미로 고등학교 때부터 차고에서 반도체 칩을 만들어 유명해졌다. 제작 기술은 1960~70년대 특허와 교과서에서 얻었고,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70~80년대 구형 칩 제조 장비를 사서 부품으로 이용했다. 이런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실제로 성공했다. 현재 1,200개의 트랜지스터가 탑재된 칩을 제작하는 단계까지 이르렀고, 곧 2,200개의 트랜지스터가 탑재된 칩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가족도, 친구도, AI 기술도 모두 잃어버린 스파이더맨, 이제 어찌 살아갈까?

▲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스틸컷(출처: 소니픽쳐스 코리아)

피터는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다른 스파이더맨들의 도움을 받아 이 세계로 넘어온 모든 빌런을 치료하고, 원래 있던 세계로 돌려보내는 데 성공한다. 대가는 작지 않았다. 처음엔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이라는 기억을 지우길 원했다면, 이젠 ‘피터 파커’란 존재를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야 했다.

다행히 사건은 해결됐고 스파이더맨은 계속 스파이더맨으로 남았지만, 피터에겐 돌아갈 집이 사라졌다. 아무도 자기를 모르는 세계. 가족은 없고, 친한 친구조차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계. 그곳에서 피터는 이방인으로 사는 삶을 시작한다. 이제껏 사용했던 모든 기술도 사라지고, 남은 건 수제 스파이더맨 복장과 친구가 선물로 준 레고뿐이다. 하지만 이제 안다. 슈트가 없어도 자신은 스파이더맨이고,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런 결심을 하고 손에 든 스마트폰에는 경찰 무선을 스캔해서 들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 보인다. 실제로 존재하는 앱이다. 미국에선 경찰이나 소방 무전이 일차적으로 공개 주파수로 전송되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은 장비만 있으면 들을 수 있다. 이를 취미 삼아 전문적으로 듣는 사람도 많아서, 이렇게 얻은 정보를 정리해 제공하는 ‘시티즌(Citizen)’이란 앱도 있다.

스파이더맨은 이제 평범한 시민과 다를 바 없는 위치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래도 최소한 스마트폰을 통해 어디서 어떤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가족도, 친구도, 첨단 AI 기술도 모두 잃어버렸지만, 히어로로서의 삶은 남아있다. 그리고 여전히 인류가 이룩한 기술은 그의 곁에서 그에게 빌런과 다시 싸울 힘을 보태주고 있다. 그를 걱정하면서도 여전히 그의 활약을 기대하는 팬들이 있는 한, 그는 또 다른 영화로 우리 곁에 찾아올 것이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