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을 대신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사물을 인지하거나 행동을 결정하는 초저전력 AI 전용 반도체의 필요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현재의 컴퓨팅 방식은 한정된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처리하는 데에는 적합하지만, 막대한 데이터를 스스로 처리하고 알아서 판단하는 AI에 적용하기에는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폰-노이만(Von-Neumann) 컴퓨팅은 정보를 처리하는 프로세서와 처리된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가 분리된 구조로, 프로세서와 메모리 간 데이터 전송 과정에서 생기는 지연 시간과 높은 에너지 소모로 인해 AI에 적용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컴퓨팅 방식이 인간 두뇌의 신경망을 모사한 뉴로모픽(Neuromorphic) 컴퓨팅이다. 이 방식은 프로세서 역할을 하는 뉴런(Neuron)을 모방한 소자와 메모리 역할을 하는 시냅스(Synapse)를 모방한 소자가 병렬 구조로 형성돼 있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지연 시간 없이 매우 낮은 전력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에 AI 기술 개발을 위해 뉴로모픽 구조를 구현한 하드웨어 시스템의 개발이 매우 절실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인공지능기술의 발전으로 뉴로모픽 시스템 개발 박차
뉴로모픽 소자(Neuromorphic Chip)를 구현하기 위해 기존 트랜지스터를 이용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됐지만, 뇌에서 일어나는 신호전달 과정을 기존의 반도체 소자로 구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 뚜렷한 발전이 없었다.
인간의 뇌 신경계에서는 자극이 뉴런1)의 수상돌기에 전달되면 뉴런은 이를 전기 신호로 변환하고, 축색돌기 말단에서 자극의 크기(신호의 세기)에 비례해 신경전달물질2)을 분비한다. 이 신경전달물질은 시냅스3)를 거쳐 다른 뉴런의 수상돌기에 존재하는 수용기(Receptor, 인체가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기관과 세포의 총칭)에서 받아들여지고, 이때 전기 신호는 화학적 신호로 바뀌어 신경전달물질에 저장됐다가 수용기에서 다시 전기 신호로 변환된다.
1) 뉴런 : 전기를 발생시켜 다른 세포에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계의 단위. 핵이 있는 신경세포체, 다른 뉴런으로부터 신호를 받는 수상돌기, 다른 뉴런에 신호를 주는 축색돌기로 구성돼 있다.
2) 신경전달물질 : 뉴런에서 다른 뉴런으로 화학적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 분비되는 물질이다.
3) 시냅스 : 한 뉴런의 축색돌기 말단과 다음 뉴런의 수상돌기가 만나는 부분으로, 뉴런과 뉴런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신경전달물질을 보관하고 있다가 자극이 전달되면 세포막과 융합해 시냅스 공간으로 신경전달물질을 내보내는 ‘시냅스 소포(소낭)’, 축색돌기와 수상돌기 사이의 공간을 의미하는 ‘시냅스 공간’, 각 돌기의 말단을 의미하는 ‘시냅스 전/후 막’이 시냅스로 구분된다.
뉴로모픽 소자를 구성하는 요소 중 시냅스를 모방한 소자는 정보가 소멸하지 않는 비휘발성 특성을 가지면서 여러 단계의 시냅스 신호 강도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시냅스가 실제 수행하는 학습방식을 쉽게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소자에 요구되는 특성은 두 가지로, 인가되는 전압에 따라 저항값이 변화하는 트랜지스터의 특성과 동시에 일정 시간 이를 저장하는 메모리 특성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이런 특성을 갖는 소자를 메모리(Memory)와 트랜지스터(Transistor)의 합성어인 ‘멤리스터(Memristor)’라고 부른다.
전자의 회전(Spin)을 이용한 자기 메모리(Magnetic Memory) 소자는 뇌의 핵심 구성요소인 시냅스와 뉴런의 기능을 소자 레벨에서 구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멤리스터 소자로 평가받고 있다. 자기 메모리 소자는 비휘발성이고 초고속으로 정보를 입출력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높은 집적도를 가지고 있고, 뉴로모픽 소자에 요구되는 신호의 가소성(고체가 외부에서 탄성 한계 이상의 힘을 받아 형태가 바뀐 뒤 그 힘이 없어져도 본래의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 선형성(어떤 양의 변화가 다른 양의 변화에 비례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성질), 대칭성(각 신호가 대칭을 이루는 성질)등을 용이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최근 이러한 자기 메모리 소자가 가지는 장점을 바탕으로 뉴로모픽 연구가 시작됐다. 그 핵심이 바로 스커미온(Skyrmion, 소용돌이 모양으로 스핀들이 배열되어 형성되는 스핀 구조체)을 이용한 시냅스 소자다.
스커미온 기반 자기 메모리 소자, 핵심은 ‘자유로운 스커미온 생성과 이동’
▲스커미온을 정보 저장 단위로 사용하는 스커미온 기반 자기 메모리 소자(아래)와 소용돌이 모양으로 회전하는 스커미온(위)의 모식도
스커미온은 축(Spindle)이 소용돌이 모양의 나선형으로 배열된 입자 형태의 독특한 스핀 구조체다. 스커미온은 외부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형태나 구조를 유지해 구조적 안정성이 뛰어나고, 나노미터 수준의 작은 크기와 전기적으로 생성한 스커미온의 개수 조절 및 소멸이 용이한 특성을 가진다.
이러한 특성은 메모리, 논리 소자(계산기의 중앙처리 장치 속에 펄스 전압의 높은 레벨을 1, 낮은 레벨을 0로 설정한 디지털 부호에 대응시켜 논리 연산을 하는 기능을 갖춘 반도체 소자), 통신 소자 등 차세대 전자 소자에 적용하기에 매우 유용하다. 특히 스커미온은 펨토줄(fJ)4)수준의 낮은 전력으로 스커미온 생성 개수 조절이 가능해, 초저전력 뉴로모픽 소자로서 주목받고 있다.
4) 펨토줄(fJ): 펨토(femto)는 10-15을 나타내는 접두어 이며, 줄(Joule)은 1J은 물체에 1N의 힘을 가해 물체가 힘의 방향으로 1m 이동했을 때 힘이 물체에 해준 일(work)의 양으로 J로 표기한다.
스커미온을 메모리 소자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보 저장의 기본단위(bit)인 각각의 스커미온을 원하는 위치에 생성하고 소멸시킬 수 있어야 하며, 생성된 스커미온을 매우 높은 효율로 이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스커미온 자기 메모리 소자는 자성체(FM, Ferromagnetic Material)와 중금속(HM, Heavy Metal)의 다층박막으로 이루어진 채널 양쪽에 금(Au) 전극이 연결된 형태를 갖고 있다. 이 소자는 자성체에 인접한 도체 속 전자의 공전 궤도가 자성체의 회전 방향을 바꾸는 현상을 이용해 중금속에 전류를 인가함으로써, 인접한 자성체에 스커미온을 원하는 만큼 생성하고(Writing) 이동시키고(Jmoving) 지우면서(Erasing) 스커미온의 전기적 정보를 읽을(Reading) 수 있다.
위 그림은 전류 펄스(Pules,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큰 진폭을 내는 전압이나 전류 또는 파동)를 인가해 스커미온을 생성하고, 왼쪽으로 전류 펄스를 가할 때 스커미온이 왼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방사광가속기의 주사X-선 현미경5)을 이용해 연속적으로 관찰한 것이다.
5) 방사광가속기의 주사X-선 현미경: 가속기에서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태양 빛 밝기의 100억 배에 달하는 밝은 방사광을 만들어내는 장비인 방사광가속기에서 방사되는 빛은 적외선에서 X-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그중 X선을 주사해 물질의 표면 정보를 관찰하는 측정장비이다.
(a)에서는 전류펄스를 인가하자 파란 원과 노란 원으로 표시한 스커미온이 생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b)에서는 펄스를 가해 두 스커미온이 왼쪽으로 이동하자 (a)에서 볼 수 없었던 빨간 원으로 표시한 스커미온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c)와 (d)에서는 3개의 스커미온이 계속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스커미온의 이동속도는 인가한 전류 펄스 크기에 따라 달라지나 대략 50m/sec로 측정됐다.
KIST, 새로운 인간의 신경계 모사 방식 ‘스커미온 기반 인공 시냅스 소자’ 개발 성공
한국과학기술원(KIST, 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과 IBM 공동연구팀은 스커미온의 개수에 따라 시냅스 가중치를 조절할 수 있는 ‘스커미온 기반 인공 시냅스 소자(이하 스커미온 시냅스 소자)’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시냅스 가중치란 전기적인 신호를 인접한 뉴런으로 전달하는 신호 전달 능력을 의미한다. 각 스커미온은 고유한 전기 저항을 가져, 스커미온 개수에 따른 저항 변화를 아날로그적으로 조절하고 측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존 뉴로모픽 반도체와 완전 다른 작동 구조를 갖는 시냅스 소자를 구현할 수 있다.
▲뇌 신경계의 신호 전달 물질 분비에 따른 시냅스 강도의 변화를 스커미온의 생성 개수로 모방을 한 스커미온 시냅스 소자 모식도
인간의 신경계에서는 감각신경 등을 통해 입력된 신호가 누적돼 막전위(Membrane potential, 세포막 안쪽과 바깥쪽의 전위차)가 일정 임계값 이상이 되면 뉴런에서 수십 mV(전력 단위. 1,000분의 1V)의 전기신호가 스파이크 형태로 발생한다. 이 신호의 크기에 따라 시냅스 내 신경전달물질인 나트륨(Na+), 칼슘(Ca+) 등의 이온이 다음 뉴런으로 이동하며 전기신호를 전송한다.
이때, 다음 뉴런에서 신경전달물질을 받는 수용기의 농도가 변화하면서 시냅스 가중치도 변화한다. 중요한 정보일 경우 신경전달물질이 많이 분비되고, 이는 시냅스 가중치를 증가시켜 전기신호의 크기를 증가시킨다. 덜 중요한 정보를 전달할 때는 신경전달물질이 적게 분비되고 시냅스 가중치도 적어, 기억이 오래가지 못한다. 연구진은 인간 두뇌의 신경전달 물질과 동일한 원리로 스커미온의 수를 조절함으로써 시냅스 가중치를 변화시킬 수 있음에 착안했다.
▲ 스커미온 생성 개수 조절을 통한 인공 시냅스 소자의 가중치 변화 모습(왼쪽)과 인공 시냅스 소자의 전체 시냅스 가중치 특성을 나타내는 결과(오른쪽)
실제로 연구진은 스커미온 시냅스 소자에서 시냅스 가중치가 증가해 전달된 신호가 장시간 유지되는 신호 특성(Potentiation)과 시냅스 가중치가 감소해 신호전달 능력이 감소하는 신호 특성(Depression)을 각각 측정한 결과, 생성되는 스커미온의 숫자에 따라 전기 저항이 연속적으로 변화함을 확인했다.
이 소자는 시냅스 소자의 AI 인식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손글씨 숫자 패턴(MNIST, Modified 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 손으로 쓴 숫자들로 이루어진 대형 데이터베이스로 다양한 화상 처리 시스템과 기계 학습 분야의 트레이닝 및 테스트에 사용) 인식 학습을 진행했을 때도 90%의 높은 인식률이 측정됐다. MNIST 인식 학습이란 각각 28×28 픽셀 크기를 갖는 0~9 사이의 숫자 이미지 데이터 베이스를 이용하는 시각 정보 인식 학습이다. 기존 인공 시냅스 소자는 이와 유사한 수준의 인식률을 얻기 위해 수십만 번의 반복 학습이 필요했지만, 이번에 개발한 스커미온 기반 인공 시냅스 소자는 1만 5,000회의 학습만으로 숫자 인식이 가능했다. 인식에 필요한 소자의 전력 소모가 기존 시냅스 소자 대비 10배 이상 감소한 것.
스커미온 시냅스 소자의 등장, 초저전력 뉴로모픽 소자 개발 앞당길 듯
이번 연구 결과는 이 소자가 전기적으로 제어되는 스커미온의 개수에 따라 시냅스 가중치를 제어함으로써 신경전달물질의 양으로 시냅스 가중치를 조절하는 인간의 뇌를 가장 밀접하게 모방했음을 의미한다. 기존 저항메모리(RRAM)6)나 상변화메모리(PRAM)7) 기반 시냅스 소자와 비교했을 때, 낮은 동작 전압, 높은 인식 정확도 등 우수한 특성들을 확인했다.
6) RRAM(Resistive RAM): 차세대 비휘발성 메모리의 한 종류. 부도체 물질에 충분히 높은 전압을 가하면 전류가 흐르는 통로가 생성되어 저항이 낮아지는 현상을 이용해 1과 0을 인식시키는 방식으로 동작하는 메모리 반도체이다.
7) PRAM(Phase-change RAM): 상 연화 물질이 결정질 상태로 변화될 때 그 전기적 특성의 차이를 활용해 1과 0을 인식시키는 방식으로 동작하는 메모리 반도체. 빠른 동작 특성과 비휘발성 등 장점을 두루 갖춰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로 주목받고 있다.
인간 뇌 신호전달 과정을 그대로 모사한 유일한 스커미온 시냅스 소자는 기존 소자들과는 다른 작동원리로 인하여 매우 낮은 전압으로도 작동하며 높은 신뢰성과 내구성을 가진다. 이러한 연구성과는 뉴로모픽 소자 개발 연구 분야를 선도함과 동시에, 초저전력 뉴로모픽 소자 개발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는 실험실 수준에서 스커미온의 작동과 시냅스 소자로 사용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향후 상용화를 위해서는 △전류의 높은 On/Off 비율(1,000% 이상) △100나노미터 이하의 작은 비트 셀(bit cell, 하나의 단일 비트가 기록되는 자기 테이프의 길이, 디스크의 면적 또는 직접 회로의 일부) 면적 구현 △대량 생산을 위한 자성박막(Magnetic thin-film, 강자성체를 진공 증착이나 전기도금에 의해 형성한 얇은 막) 및 소자 공정 최적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하지만 스커미온 생성과 이동 등 제어가 용이한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고 자기 터널 접합(Magnetic Tunnel Junction, 2개의 자성체 판이 부도체 판으로 분리돼 샌드위치 구조를 가지는 접합 방식) 소자와의 접목을 통해 전류의 On/Off 비율 개선과 공정 최적화에 집중한다면, 5년 안에 스커미온 기반 시냅스 소자를 상용화 단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