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반도체 산업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담대한 도전정신으로 사업을 시작한 1983년부터, 세계 최초와 최고의 기록을 써 내려가며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끌고 있는 2023년까지… SK하이닉스가 끊임없이 도전하며 혁신을 만들어 온 시간 속, 가장 빛났던 ‘별의 순간*’은 언제일까?
* 별의 순간: 독일어 ‘Sternstunde(슈테른슈툰데)’에서 비롯된 단어로,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숙명적인 결정이나 행위, 사건을 뜻하는 은유
뉴스룸은 SK하이닉스 40년 역사에서 오늘날의 기적적인 성장을 이루어내는 단초가 된 결정적인 순간 다섯 가지를 짚어 봤다.
#1.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1등 기술력의 시작, 국내 최초 16K S램 시험생산 성공
1983년 SK하이닉스(당시 현대전자산업)가 반도체 산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대한민국에 반도체 산업이 태동하던 무렵이었다. 당시 ‘반도체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제패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고, 글로벌 유수 기업들은 ‘산업의 쌀’인 반도체 비즈니스에 뛰어들며 세계 경제, 기술 발전의 ‘판’을 흔들려 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굴지의 전자업계 기업들과 달리, 현대전자산업은 전자산업 진출 자체가 처음이었다. 모든 것이 도전과 모험의 연속이었다. 생산공장 건설부터 난항이었다. 용지 매입 및 허가 등 문제로 처음 계획했던 면적의 70%에 불과한 25만 3,000평의 땅에 공장 부지가 조성되었고, 착공은 6개월이나 지연되었다. 여러 난관을 뚫고 경기도 이천 제1공장을 완공한 것은 1984년 10월이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제품 개발과 생산의 부진이었다. 특히, ‘오롯이 우리 힘으로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기조를 가져가다 보니 시행착오는 필연적이었다. 그러던 1984년 12월, 사내방송을 타고 상기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국내 최초 16K S램 시험생산 성공 소식이었다. 회사가 생산한 반도체 굿다이(Good Die, 제대로 작동하는 칩) 1호가 탄생한 것이다. 첫 결실을 맺은 기쁨과 이제부터 진짜 ‘생산’에 돌입한다는 기대감에 당시 이천 읍내는 축제 분위기였다.
첫 승전고를 울렸던 별의 순간은 빛났지만, 기쁨은 그리 길지 않았다. 시제품 생산에만 성공했을 뿐, 양산체제 구축은 부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딛고 어려움을 넘어서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회사는 적극적인 인력 유치와 외부기술 도입, 그리고 파운드리 생산 등을 통해 자체 개발력과 공정 기술력을 크게 강화하며 경쟁력을 서서히 높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현재,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기술력이 구현된 DDR5, HBM3, 321단 4D 낸드플래시 등 첨단 메모리 반도체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회사로 SK하이닉스는 도약했다. 이어, HBM3를 기반으로 회사는 글로벌 1등 AI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40년 전 숱한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탄탄히 다친 기초 체력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1983년 ‘자체 개발한 제품으로 가능성을 증명하겠다’는 회사의 오랜 꿈은 결국 현실화됐다.
#2. 어려움 앞에 더 강해지는 집념의 DNA, 블루칩 프로젝트 가동
2000년 밀레니엄이 바뀌었다. 하지만 회사는 새천년에 대한 기대에 들뜰 겨를이 없었다. IMF 외환위기로 발행했던 회사채들의 만기가 줄줄이 돌아오는 시점이었다. 이미 LG반도체와의 합병으로 부채가 급증한 상황. 설상가상으로 닷컴 버블 붕괴로 PC 판매가 급감했고, D램 가격도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었다. 극심한 자금난에 모두가 ‘해외 매각 외에는 살 길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2001년 대대적인 구조조정 단행과 함께 사명을 ‘하이닉스반도체’로 변경했다. 그리고 회사의 명운을 건, 일명 ‘블루칩(Blue Chip)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설비투자 비용을 극도로 줄일 수밖에 없는 어려웠던 당시, ‘블루칩 프로젝트’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정혁신 프로젝트였다. 회사는 이천과 청주, 미국 유진(Eugene) 캠퍼스*의 장점만 모아 공정을 단순화했다. 각 공정에 0.16미크론* 회로선폭 기술을 통합·적용했으며, 설계 및 제품 통일안도 정착해 효율을 높였다. 또, 0.18미크론 회로선폭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는 노광 장비로 0.15미크론급 제품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새 장비를 도입하지 않고 기존 장비를 개선해, 기존 대비 1/3의 투자만으로 원가경쟁력을 갖춘 초미세 회로선폭 공정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모두가 기적이라 불렀고, 지금껏 누구도 성공한 적 없는, 업계 최초의 혁신 사례였다. 이렇게 모두가 실패를 예상했던 ‘블루칩 프로젝트’는 결국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 미국 유진(Eugene) 캠퍼스: 미국 오레건주 유진(Eugene)시에 위치했던 미국생산법인
* 미크론(㎛): 100만분의 1m. 수치가 낮을수록 미세화 정도가 높아짐
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회사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기술력이 강화되면서 회사의 경쟁력이 높아졌고, 구성원들의 단합까지 뒤따랐다. 모든 구성원들이 회사 살리기에 필사적이었고, 이천 연구소에는 불이 꺼질 줄 몰랐다. 어려움 앞에서 더욱 강해지는 ‘집념의 DNA’가 강하게 발현되며 구성원들을 하나로 만든 것이다. 이처럼 위기 상황에서도 기술이라는 본원적 경쟁력에 집중해 끝끝내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내는 집념의 DNA는 반복되는 반도체 업황 사이클에서 늘 강한 무기가 되고 있다.
#3. SK 행복날개 달고 더 높이, 더 멀리. SK하이닉스 공식 출범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하고 반도체 산업 진출을 모색했다가 석유파동으로 꿈을 접었던 SK가 30여 년이 지난 오늘 메모리반도체 세계 2위 하이닉스를 새 가족으로 맞았습니다. ... 세계 일류 반도체 기업으로 거듭나서 국가경제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행복을 나누는 SK하이닉스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 SK하이닉스 출범식에서 SK 최태원 회장 격려사 중
2012년은 회사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SK라는 큰 날개를 달고 지금의 SK하이닉스로 거듭난 해이기 때문이다. 2011년 SK는 에너지/화학과 이동통신에 이은 ‘제3의 성장축(軸)’을 마련하기 위해 하이닉스 반도체 인수전에 참여했다. 당시 반도체 시장은 침체기에 빠져 D램 가격이 연일 최저가를 경신하고 있었고, 회사 실적 또한 부진했다. 하지만 SK는 하이닉스의 잠재력을 믿고 미래에 투자했다. SK 최태원 회장은 입찰 전 실무진에게 “하이닉스 인수 이후 3~4년간의 연구개발ㆍ시설 투자 등 중장기 경영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SK를 만난 하이닉스는 종합반도체회사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특히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는 IT 산업의 변화에 발맞춰, 모바일 솔루션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상하고, 미래를 선도할 확실한 밑그림을 완성했다. 뿐만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과 차세대 메모리 공동개발 및 기술 라이선스 계약 체결, 미국 컨트롤러 업체 LAMD 인수, 낸드플래시 생산 기지인 청주 제3공장 M12 라인 준공에 이어 이천 M14, 청주 M15 준공 등 적극적인 투자로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기반을 탄탄히 다졌다. 이는 SK그룹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과감한 행보였다.
2012년 3분기 회사는 흑자 전환으로 비상(飛上)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이듬해인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게 된다.
#4. 새롭게 쓴 대한민국 반도체 신화, 사상 최대 영업이익(20.8조 원) 달성
2018년은 SK하이닉스에 또,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 기록할 만한 해다. 회사는 2018년 매출액 40조 4,451억 원, 영업이익 20조 8,438억 원(영업이익률 52%), 순이익 15조 5,400억 원(순이익률 38%)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K-반도체는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하며,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위상을 드높였다. 2018년 6,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한국 수출액 중 반도체 수출액은 1,267억 1,000만 달러였다. 이는 전체 수출액의 21%에 달하는 수치이며, 연간 최대 수출 및 단일 품목 사상 세계 최초로 1,000억 달러를 돌파한 대기록이었다. (출처: 2018년 수출입 동향, 산업통상자원부)
사상 유례없던 ‘슈퍼 호황기’의 시작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모바일 기기를 중심으로 메모리 수요가 급증했지만, 미세공정 전환의 어려움과 공급 업체들의 투자 부담으로 공급은 제한적이었다. 2012년 SK 편입 이후,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편 및 확대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왔던 SK하이닉스는 기술력과 양산 역량 측면에서 경쟁력이 충분했다. 덕분에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서도 적시 적기에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를 적극적으로 맞추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회사는 서버용 SSD 제품을 중심으로 신규 공정을 확대·적용해 급증하는 시장 수요에 대응했다. 또, 고용량·고사양의 고부가가치 제품을 지속해서 개발하며 기술력을 증명했다. 세계 최고 적층 72단 3D 낸드플래시 및 세계 최고 속도 그래픽 D램 GDDR6(Graphics DDR6) 개발(2017년 4월), 세계 최초로 JEDEC(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 규격을 적용한 DDR5 D램 개발 및 CTF 기반 96단 4D 낸드플래시 개발(2018년 11월) 등 연일 세계 최초이자 최고 스펙의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현재의 호황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 성장을 위한 시설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총 20조 원이 순차투자되는 낸드플래시 생산기지 M15가 청주 캠퍼스에 준공되었고(2018년 10월), 이천 캠퍼스에서는 차세대 노광장비인 극자외선(EUV) 라인을 별도로 조성한 D램 생산기지인 M16이 착공에 들어갔다(2018년 11월).
하지만 2018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메모리 수요가 둔화되고 공급 부족이 해소되며, 반도체 시장은 또 다른 변화의 국면을 맞게 됐다. 그러나 단기간의 호황이 아닌, 더 먼 미래를 보고 달려온 SK하이닉스에게 ‘최고의 순간’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5. 이·청·용 새로운 미래를 위한 도약,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시작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소식이 전해진 2019년 초, K-반도체는 의심할 여지 없이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하는 주역이 되어 있었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반도체 산업이 경기 사이클에 관계 없이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한 환경 조성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SK하이닉스는 첨단 반도체 팹 4개를 배치하고 협력업체 50여 개사가 동반 입주하는 ‘용인 클러스터’라는 총 120조 원이 투자되는 상생형 모델을 구상했다.
사업을 본격화하기에 앞서 공장 부지 조성을 위해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하고, 2019년 2월 용인시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하며 클러스터 조성 사업이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SK하이닉스는 4년여에 걸쳐 토지 매입 및 인허가 등 행정 절차를 마친 후 지난 6월부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 약 415만㎡ 부지에 용인 클러스터 조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현재 진행 중인 기초 공사가 마무리되면, 회사는 2025년 3월 첫 번째 팹을 착공하고 2027년 5월 준공할 계획이다.
앞으로 SK하이닉스는 이천과 청주, 용인 세 거점을 기반으로 한, 일명 ‘이·청·용’ 시대의 개막을 기대하고 있다. ▲이천은 본사 기능과 R&D/마더 팹(Mother FAB) 및 D램 생산기지로 ▲청주는 낸드플래시 중심 생산기지로 ▲용인은 D램/차세대 메모리 생산기지 및 반도체 상생 생태계 거점으로 삼각축을 이뤄 글로벌 최고 수준의 반도체 메카로의 도약을 도모하는 것이다.
특히, 용인 클러스터에는 SK하이닉스 외에도 여러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기업이 함께 입주하는 만큼, 반도체 생태계의 선순환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회사는 클러스터 내에 300mm 웨이퍼 기반 연구·테스트 팹인 ‘미니팹’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미니팹은 협력사들이 개발한 기술과 제품이 반도체 양산에 빠르게 적용될 수 있도록 모든 실증 작업을 지원하고, 기업들의 성장까지 돕는 ‘상생 인프라’가 될 예정이다.
지난달 최태원 SK 회장은 용인 클러스터 공사 현장을 방문해 공사 현황을 점검하고 구성원들을 격려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용인 클러스터는 SK하이닉스 역사상 가장 계획적이고 전략적으로 추진되는 프로젝트”라며 도전과 혁신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 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