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역사를 부탁해

“SK하이닉스의 기념비적인 제품을 조명합니다.”
세계 무대를 수놓은 ‘최초 · 최고의 반도체’와 그 시절의 IT 트렌드를 모두 담았습니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SK하이닉스 반도체 대서사시를 3부에 걸쳐 소개합니다.

“창사 이래 최대 매출, 최대 성과를 이뤘다.”

희망찬 CEO 메시지와 함께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의 2007년이 포문을 열었다. 지난 2006년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하고, 연간 매출 2조 원 클럽에 이름을 올리는 등 어느 때보다 값진 한 해를 보냈던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였다. 새해를 맞으며 구성원들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고, 가슴 속엔 자긍심이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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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이 헤쳐 나가야 할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만발(發) D램 치킨게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숱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는 1Gb GDDR5 D램, 1Gb LPDDR2 등 세계 최초 · 최고 제품을 개발하고, 급변하는 IT 시장에 대응하며 내실을 다져나갔다.

태동하는 모바일 시대, 그리고 M10의 기적

“Today, Apple is going to reinvent the phone(오늘, 애플은 휴대전화를 재발명할 것이다).”

2007년 1월 9일, 故 스티브 잡스의 목소리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 울려 퍼졌다.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고 확신에 차 있었다. 모바일 시대가 태동한다는 확신이었다. 같은 해 여름, 애플은 아이폰(iPhone)을 미국 시장에 처음 판매했고, 사람들은 마침내 ‘스마트폰’이라는 신문물을 접하기 시작했다.

아이폰이 시장을 급격히 바꾸진 않았지만, 모바일 시장이 재편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특히 모토로라는 2007년 13.9%의 점유율 급락을 보이며, 피처폰이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을 암시했다. 반면 카메라 모듈 시장은 지속 성장했다. 2007년 이후 휴대전화의 카메라 모듈 탑재율은 95%*에 육박했다.

‘폰카’가 대중화하자 UCC*도 급부상했다. 대한민국에서 <원더걸스 - 텔미> 열풍이 분 것도 이즈음이다. 2007년 겨울, 복고풍 안무를 따라 추는 ‘텔미 UCC 영상’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 카메라모듈 센서/부품 수요산업과 지능형 반도체산업 최신 동향분석, R&D정보센터, 지식산업정보원, 2019.06.18
* UCC : User Created Contents.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저작물로 인터넷,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며 유행처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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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는 성큼 다가온 모바일 시대에 발맞춰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2007년 9월에는 ‘세계 최초 24단 적층형 낸드플래시(NAND Flash) 멀티칩패키지(MCP)*’를 개발했다. 10원짜리 동전 두께로 반도체 칩 24개를 쌓은 제품이었다. 부피가 작은 이 제품은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어 휴대용 전자기기에 적합했다.

* MCP : Multi-chip Package. 메모리 칩 여러 개를 쌓아 하나의 패키지로 만든 반도체.

고성능 컴퓨팅 및 그래픽 구현을 위한 D램 개발도 계속됐다.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는 11월 ‘세계 최초 그래픽용 60나노급 1Gb GDDR5 D램’을 내놨다. 초당 20GB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세계 최고속 D램이었다. 이 제품은 핀당 5Gbps 최대 동작속도를 구현하는 등 고해상 그래픽에 최적화됐다는 평을 받았다.

세계 기록이 이어지는 가운데, 뜻하지 않은 위기도 맞닥뜨렸다. 대만발(發) D램 치킨게임*이었다.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는 M11(낸드플래시용 300㎜ Fab)을 착공하고, CIS* 사업에 재진출하며 위기에 맞섰다. CIS 재진출은 카메라 모듈 급성장에 대응하는 전략이었다.

* 치킨게임 : 어느 한쪽이 이길 때까지 피해를 무릅쓰며 경쟁하는 게임. 2007년 D램 치킨게임으로 전 세계 D램 가격이 폭락했다.
* CIS : CMOS Image Sensor. CMOS 구조를 가진 저소비 전력형 촬상 소자. 휴대전화 카메라, 스마트TV, 의학용 소형 촬영 장비 등 디지털 기기에 탑재된다.

DRAM, NAND, 반도체역사, 반도체역사를부탁해, D램역사, 낸드역사▲ 웨이퍼 월 10만 장 생산 기념 축하 행사에 참여 중인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 구성원들.

위기를 극복하는 동안 의미 있는 성과도 거뒀다. 2007년 4월 M10 Fab에서는 ‘웨이퍼 월 10만 장 생산’이라는 기록이 나왔고, 5월에는 ‘완제품 1억 개 생산’을 돌파했다.

“8㎏ 웨이퍼 박스를 사원들이 번쩍 들어 올려 옮기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자동화 장비의 인터벌 타임 1초도 참지 못한 직원들이 직접 옮기고 나선 것이다. 누구의 지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 대한 회상이다. 구성원 스스로 의지에서 탄생한 생산량 신기록. 훗날 사람들은 이를 두고 ‘M10의 기적’이라 불렀다.

넷북 잡고, 모바일 준비하고… 위기 속 준비한 미래 먹거리

한 해의 시작은 늘 설레고 기대되기 마련이지만, 2008년은 사뭇 달랐다. 미국발(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 시장이 불안정해졌고,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진 탓이었다. 이에 따라 세계 도처에선 가성비 바람이 불었다.

주목할 사건은 인텔 아톰 프로세서(Intel® Atom™ Processor)의 탄생이었다. 아톰은 저사양, 저전력, 저가 CPU였다. 주로 20~30만 원대 넷북(Netbook)*에 탑재되며, 이 시장이 급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넷북 : 성능보다 휴대성을 극대화한 초미니 PC로 랩톱보다 얇고 가볍고 작게 만든 제품. 인터넷 검색 및 문서 작업에 최적화.

가성비가 부상하는 와중에 아이러니한 현상도 발생했다. KOTRA 설문 결과 주요 10개국 히트상품 1순위가 아이폰*이었다. 아이폰은 경쟁사 대비 20~30% 비싼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는 불황 속에서도 전 세계가 모바일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 Journal of Korean Electronics, 한국전자산업진흥회, 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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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도 모바일향 제품으로 대응했다. 2008년 4월에는 ‘세계 최고속 1Gb LPDDR2*’를 공개했다. 66나노 초미세 공정, 1.2V 저전압에서 800Mbps 데이터 전송 속도를 자랑하는 제품으로, 모바일에 최적화된 반도체였다. 12월에는 ‘세계 최초 2Gb 고용량 모바일 D램’도 선보였다. 54나노 초미세 공정이 적용된 제품으로, 최대 400Mbps 데이터 전송 속도를 냈다. 초당 데이터 처리량은 1.6GB였다.

* LPDDR : Low Power DDR. D램 중에서도 크기가 작고 전력 소모가 적어 모바일에 주로 쓰이는 반도체.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는 2008년 11월 ‘세계 최고속 그래픽용 54나노 1Gb GDDR5 D램’을 내놓으며, 고사양 그래픽용 D램 선두 자리도 지켰다. 이 제품은 기존 대비 40% 향상된 7Gbps 속도를 보여줬다. 낸드 영역에서는 2008년 6월 ‘세계 최초 3중셀(X3) 기술 기반 32Gb 낸드’를 개발하는 성과를 냈다. 여기에는 하나의 셀 안에 세 개의 정보를 담는 기술(TLC)*이 적용됐다. 덕분에 MLC 대비 칩 면적을 30% 줄여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다.

* 한 개 셀(Cell)에 몇 개의 정보(비트 단위)를 저장하느냐에 따라 SLC(Single Level Cell, 1개)-MLC(Multi Level Cell, 2개)-TLC(Triple Level Cell, 3개)-QLC(Quadruple Level Cell, 4개)-PLC(Penta Level Cell, 5개)로 나뉨. 저장량이 늘면 같은 면적에 더 많은 데이터 저장.

반도체역사_2편_9▲ 세계 최초 양면 기판 기술을 적용한 모습.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는 ‘세계 최초 양면 기판(Double Substrate) 기술’ 개발로 비용 절감을 추진하며, 지속되는 불황에 맞서기도 했다. 한 번의 공정에 두 개의 기판을 위 · 아래로 붙여 생산하는 기술을 통해 생산설비 추가 없이 생산성을 2배 높일 수 있었다.

살아남는 자가 강자… 불황 속 쏟아진 혁신

불황의 그림자는 2009년에도 깊게 드리웠다. 그럼에도 변화는 계속됐고, 혁신은 끊임없었다. 사회 분위기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아이폰3GS 국내 상륙 소식이었다. 이는 국내 스마트폰 시장 경쟁을 본격화한 신호탄이 됐다. 같은 해 대학가에선 넷북 열풍이 불었다. 직장인은 세컨드 PC로, 학생들은 학습용 PC로 넷북을 구매했다. 2007년 급성장한 넷북은 어느새 PC 시장의 20%를 차지할 만큼* 성장해 있었다.

* Quarterly Notebook PC Shipment and Forecast Report, DisplaySearc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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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는 모바일과 PC 두 분야에서 승기를 잡고자 고군분투했다. 모바일 D램에서는 2009년 4월 ‘세계 최고 성능 1Gb LPDDR2’ 개발 기록이 나왔다. 54나노 초미세 공정이 적용된 이 제품은 1.2V(최대 1.14V) 저전압에서 1,066Mbps 속도를 자랑했다. 소비전력은 기존 모바일 D램의 50%였다.

컴퓨팅 D램에서는 2009년 2월 ‘세계 최초 44나노 DDR3 D램’ 개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54나노 제품과 비교해 생산성이 50% 향상된 제품이었다. 최대 속도는 2,133Mbps를 지원했다. 12월에는 ‘세계 최초 그래픽용 40나노급 2Gb GDDR5 D램’을 공개했다. 7Gbps 속도, 초당 28GB 데이터를 처리하면서 1.35V 저전력으로 동작하는 제품이었다. 그러면서 50나노급 1Gb 제품보다 용량이 두 배 증가했다.

DRAM, NAND, 반도체역사, 반도체역사를부탁해, D램역사, 낸드역사▲ 구성원들이 ‘다물 프로젝트’를 공유하며 위기 극복 의지를 다지고 있다. 다물에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가 세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사이 업계에선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D램 치킨게임을 견디지 못한 기업이 휘청이기 시작했다. 반면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는 독자생존을 이뤄내며, 치킨게임 승자로 거론되고 있었다. 2009년 3분기, 회사는 8분기 만에 다시 흑자전환에 성공하게 된다.

변동성 큰 시장에서 휘청… SK 손잡은 하이닉스반도체

2010년 무렵에는 흥미로운 논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애플과 삼성전자 팬들의 스마트폰 우위 논쟁이 서막을 연 것.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명확했다. 모바일 선택지가 다양해졌다는 이야기다. 2010년을 기점으로 스마트폰 열풍의 결은 달라졌다. 국내 제품이 부상했는데, 특히 갤럭시 시리즈의 선전이 돋보였다. 그 결과, 2009년 70만 대였던 국내 스마트폰 판매 대수는 2010년 700만대로 폭발했다.

2011년 8월에는 PC 기반 SNS ‘싸이월드’가 모바일 기반 SNS ‘페이스북’에 왕좌를 내어준 사건*도 발생했다. 치열한 경쟁 끝에 방문자 수를 앞지른 것이다. 모바일 SNS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했다.*

* ‘페북 대 구글’ SNS 불꽃경쟁, 소비자는 즐겁다, 정유경 기자, 한겨레, 201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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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도 모바일 전략에 속도를 냈다. 2010년 1월에는 ‘세계 최초 40나노급 2Gb 모바일 D램’을 발표했다. 성능은 1Gb LPDDR2 제품과 동일하지만, 용량은 두 배 늘었다. 12월에는 ‘세계 최초 30나노급 4Gb DDR3 D램’을 공개하며 프리미엄 D램 시장도 선도했다. 서버에 특화된 이 제품은 40나노급 DDR3 D램 대비 생산성이 70% 높았다. 최대 2,133Mbps 데이터 전송 속도를 보이며, 1.25V 저전압 구동도 가능했다.

2011년 3월에는 ‘TSV 기술을 활용한 세계 최대 용량 D램’도 개발했다. TSV(관통 전극)* 기술로 40나노급 2Gb DDR3 D램을 8단으로 적층했는데, 이로써 단일 패키지에서 16Gb를 구현할 수 있었다. TSV는 기존 와이어본딩* 대비 2배 이상 적층하고, 동작 속도는 50% 향상하며, 소비 전력은 40% 감소하는 효과를 냈다.

* TSV : Through Silicon Via. 2개 이상의 칩을 수직 관통하는 전극을 형성해 칩 간의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패키지 방식으로 성능은 높이면서 크기를 줄일 수 있어 차세대 패키지로 주목받음.
* 와이어본딩 : 반도체 전극부와 리드 프레임 사이를 가느다란 금이나 알루미늄 선으로 접속해 외부 회로와 연결하는 것.

이 같은 기술 혁신은 크고 작은 부침 끝에 탄생한 것이기에 더욱 의미 있었다.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는 변동성이 큰 환경에서도 연구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는데, 이는 곧 기술 혁신의 원천이었다.

DRAM, NAND, 반도체역사, 반도체역사를부탁해, D램역사, 낸드역사▲ 임직원들이 모여 SK하이닉스 공식 출범을 알렸다.

한편, 흑자와 적자전환을 오가는 불투명한 미래는 회사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지난 2009년 주주단은 회사 매각을 본격화했는데 2차례나 불발된 바 있다. 사업 변동성과 대규모 투자금이 원인이었다. 그러던 2011년 7월, SK그룹이 인수 의사를 밝혔다. D램 불황, 주춤한 실적 등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SK의 인수의지는 확고했다.

DRAM, NAND, 반도체역사, 반도체역사를부탁해, D램역사, 낸드역사▲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SK하이닉스 출범식에 참석해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도체 사업은 한다.”

최태원 회장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2012년 3월 26일, 하이닉스반도체가 ‘SK하이닉스’란 이름으로 출범했다.

시가총액 13조에서 95.3조 기업으로 거듭난 고속 성장의 역사, 최고속 모바일 D램부터 세계 최고층 낸드, 지능형 메모리 개발까지 이어지는 ‘차세대 반도체 역사’가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