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업과 시스템 전체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뉴스룸은 지난 20년간 반도체 소자를 연구하고 있는 인하대학교 신소재공학과 최리노 교수를 통해 반도체 시스템과 소자의 관계 및 발전사를 소개한다. 총 7편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반도체의 개념과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반도체는 부품이다. 부품은 그 자체로 쓰이지 못하고 어떤 제품(시스템 혹은 세트) 내에서 사용된다. 시스템이 추구하는 바가 그 부품인 반도체의 탄생과 발전을 가져왔고, 앞으로 나올 새로운 시스템은 반도체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본 연재에서는 반도체를 시스템과 연결해 설명하며 과거와 미래,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관해 7편에 걸쳐 이야기하고자 한다. (필자 주)

지난 글에서 메모리의 역사, 반도체 메모리의 탄생과 발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는 메모리의 계층 구조와 새로운 메모리 소자의 탄생 조건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최상의 컴퓨팅 성능을 위한 ‘메모리 계층 구조’의 탄생

폰노이만 구조의 컴퓨팅 시스템에서 쓰이는 메모리는 기술 발전에 따라 주메모리와 보조저장장치로 분화되었다. ‘반도체 램(Random Access Memory, RAM)’이 나오기 전까지는 ‘자기 코어 메모리’가 초기 형태의 램, 즉 주메모리였다고 전편에서 이야기했다. 임의 접근(Random Access)을 통해 데이터에 접근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메모리 속도는 점차 향상됐는데, 이후 반도체 집적 공정을 이용한 메모리(S램, D램 등)가 나오면서 메모리 접근 시간이 획기적으로 빨라졌다.

이를 통해 CPU에서 직접 데이터를 불러 쓰고 속도가 빠른 ‘주메모리’와 장기 데이터 저장을 위해 속도는 느리지만, 저렴하고 저장 용량이 큰 ‘보조저장장치’로 구분되었다. 이전에 나왔던 메모리 장치, 예컨대 자기테이프, 자기 드라이브(하드 디스크 드라이브 또는 플로피 디스크) 등은 각 특성에 맞는 보조저장장치로 역할을 한정하며 발전했다. 그중 주 저장매체였던 하드디스크(HDD)와 이동식 저장매체였던 플로피 디스크는 낸드플래시(NAND flash)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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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노이만 구조에서 ‘산술과 제어를 담당하는 CPU’와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저장하는 메모리’는 독립적으로 되어 있다. CPU가 구동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메모리로부터 가져와야 한다. 그 정보들은 CPU와 메모리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인 버스(BUS)를 통해 순차적으로 전달된다.

많은 정보가 CPU로부터 요청되면 CPU와 메모리 사이의 통로는 필연적으로 붐비게 된다. CPU의 처리 속도가 빠르다면 다음에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메모리에서 도달하지 못해 CPU가 대기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것을 ‘폰노이만 병목 현상(Bottle Neck)’이라고 한다.

이 병목 현상은 CPU 처리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다. CPU 속도는 소자 미세화를 통해 매우 빠르게 향상됐다. 하지만 컴퓨팅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CPU 속도만 높여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맞게 메모리의 접근 속도와 ‘폰노이만 병목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도 필요해졌다.

바로 데이터 사용 빈도와 접근 시간에 따라 메모리를 세분화해 관리하는 것이다. 메모리를 다층으로 구성한 후 자주 쓰는 데이터를 미리 가져와 가까이 두고 쓰는 방법이다. 현재 컴퓨터에서 사용되고 있는 메모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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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메모리 계층 구조(Memory Hierarchy)라고 부른다. 컴퓨터 시스템에서 데이터와 명령어를 저장하고 접근하는 데 사용되는 여러 종류의 메모리를 일정한 계층 구조로 조직화하여 데이터 처리 속도와 용량, 비용 등을 최적화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적당한 비용으로 전체 시스템의 성능을 최고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컴퓨터 시스템 메모리 계층 구조의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 레지스터(Register): CPU가 처리해야 할 데이터를 저장하는 곳은 아니고, CPU에서 필요한 명령어 실행 및 연산 관련 데이터를 저장하는 곳이다. CPU 내부에 위치하며, 로직 공정으로 CPU와 함께 만들어진다. 매우 작은 용량으로 데이터를 빠르게 읽고 쓸 수 있는 메모리이며, 주로 S램을 사용한다.

- 캐시 메모리(Cache Memory): 자주 액세스하는 데이터와 명령어를 저장해 전체 속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주메모리 램과 CPU의 속도 차이를 줄이는 메모리다. 레지스터와 마찬가지로 S램으로 만들어지며 CPU와 함께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접근 빈도와 용량에 따라 L1, L2, L3 캐시로 분화되어 만들어진다.

- 주메모리(Main Memory): 주기억장치로, 일반적으로 램(RAM)을 의미하며, 대부분 D램을 사용한다. 캐시보다는 느리지만, 더 큰 용량을 가지고 있다. 단독으로 만들어져 판매되며 프로그램과 데이터가 실행될 때, CPU가 직접 접근해 읽고 쓸 수 있다.

- 보조저장장치(Secondary Storage): 하드 디스크(Hard Disk Drive,HDD), SSD(Solid State Drive) 등이 포함된다. 주기억장치보다 더 느리지만 더 큰 용량을 가진다. 영구적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보존된다.

데이터를 책으로 비유하자면 하드디스크와 같은 보조저장장치는 지역의 도서관, 주메모리는 내 방의 책장, 캐시는 내 책상 위 정도로 말할 수 있다. 내 방 안에 도서관을 지으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다. 또 필요한 책을 찾기 위해 매번 도서관을 다녀올 수는 없다. 적당하게 분배하여 최적의 비용으로 빠르게 작동하도록 구현 방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메모리 계층 구조의 위로 갈수록 용량은 작지만, 속도는 더 빨라진다. CPU에 더 자주 쓰이는 데이터를 상부의 빠른 메모리에 끌어올려 놓아서 접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각각에 맞는 메모리 소자를 조합하기 위해선 우리가 현재 생산하고 있는 소자들의 특성을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반도체 집적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메모리는 크게 네 가지다. S램, D램, 낸드 그리고 매우 작은 양이지만, 상변화 물질(Phase Change Material)을 이용한 PCM이다. PCM은 뒤에 다루기로 하고 다른 세 메모리의 특성을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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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와 내구성이 좋은 S램으로 모든 메모리를 구성하면 시스템 성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S램의 가격은 매우 비싸기에 효용성은 떨어진다. 그러므로 각각의 특성을 고려하여 S램, D램, 낸드를 CPU 내장 캐시 메모리, 주메모리, 대용량 보조저장장치(USB, SSD)로 쓰는 것이 비용과 성능을 최적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새로운 메모리 소자의 가능성을 논의하려면, 메모리 계층 구조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접근 시간, 집적도, 가격(면적, 제조단가) 등을 고려해 어떤 계층 구조에서 사용되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해야 한다. 가격이 저렴하고, 집적도도 높고, 접근 시간도 빠른 소자가 나온다면 전체를 하나로 통합한 범용 메모리(Universal Memory*)처럼 새로운 메모리 계층 구조도 가능할 것이다.

* Universal Memory: D램 · 낸드플래시 등 여러 종류의 메모리 기능을 모두 할 수 있는 통합형 메모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각 메모리의 장점인 속도, 경제성, 휘발성, 비휘발성 등을 고려해 하나의 칩으로 구성

새로운 메모리 소자의 가능성

최근까지 연구 중인 메모리 소자 후보군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기존 D램, 낸드 소자는 전하 캐리어*를 담아 전압이나 채널의 전도도에 변화를 주는 정전용량(Capacitance)을 이용하는 형태다. 반면 현재 연구되는 새 메모리 소자는 물질의 저항(Resistance) 변화로 정보를 저장하는 형태다.

* 전하 캐리어: 전하를 이동시키는 입자

가장 최근 제품화된 PCM(Phase Change Memory, 상변화 메모리)은 결정상과 비정질상*의 저항이 달라지는 칼코제나이드(Chalcogenide)* 물질의 특성을 이용해 만든 메모리다. 이 메모리의 개발과 현재 상황을 본다면 새로운 메모리 소자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좋은 시금석이 될 것이다.

* 결정상과 비정질상: 원자가 일정한 규칙을 갖고 나열된 것을 결정이라고 하며, 규칙적인 배열 상태에 따라 결정상(규칙)과 비정질(비규칙)로 나뉜다.
* 칼코제나이드(Chalcogenide): 최소한 하나의 16족(칼코젠) 원소와 하나 이상의 양전성 원소로 구성된 화합물[관련기사]

PCM을 이루는 소재는 전류가 흘러서 발생하는 발열과 냉각에 따라 결정상 · 비정질상으로 바뀐다. 상이 바뀌면 물질의 저항도 바뀐다. PCM은 이 차이를 이용해 0과 1의 이진 정보를 저장하며, 고저항 상태와 저저항 상태로 변화시킬 수 있는 물질을 가로 배선과 세로 배선 사이의 접점에 넣어 집적한 형태로 제작된다.

PCM의 일종인 인텔 옵테인 메모리(Optane Memory)는 기존 낸드와 비교하면 속도가 1,000배 더 빠르고, 내구성이 1,000배 더 뛰어나다고 한다. 또한, D램보다 10배 높은 집적도를 가졌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D램 대비 용량을 크게 높이고, 같은 비휘발성인 낸드보다 빠른 것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옵테인 메모리는 SSD와 함께 쓰이며, D램과 대비되는 비휘발성 특성을 이용해 사용자가 파일을 더 빠르게 검색하거나 소프트웨어를 빠르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한다. 또, SSD 앞에 배치되어 데이터 구조를 최적화하여 저장해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강점에도 불구하고 인텔은 지난 2022년 옵테인 메모리 사업을 중단했고, PCM의 시장 진입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메모리를 현재의 시스템에 넣어 활용하려면 현재의 D램과 같이 쓸 수 있도록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부가적인 일과 비용 상승을 감내할 만한 시스템 성능의 향상이 있어야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에 비해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사업 중단의 이유다.

PCM 이외에도 저항의 차이를 이용하는 메모리 소자, Re램(Resistive Memory)이 많이 연구되고 있다. Re램은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그중 절연막 내부에 전기가 통하는 길을, 전기장을 활용해 만들었다 없애는 방법으로 메모리 소자를 제작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전기가 통하는 길은 강한 전기장에 의해 옥사이드(Oxide, 주로 HfO2 계열 산화막)의 본딩(Bonding)이 손상되며 생길 수도 있고 또는 실제 금속 이온(Ag, Ni, Cu 등)이 움직여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특성의 Re램은 3D 적층에 유리하여 낸드 분야에서 특히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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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강자성(Ferromagnetic) 막을 이용해 자화되는 스핀(Spin)의 정렬 방향에 따라 저항이 달라지는 현상을 이용하여 메모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메모리를 STT-M램(Spin-Transfer Torque Magnetic Random Access Memory)이라고 부른다. STT-M램은 위에 소개한 Re램에 비해 속도가 빨라서 D램을 대체하는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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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많이 연구되는 메모리 소자는 하프늄옥사이드(HfO2)에서 발견된 강유전체(Ferroelectric)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HfO2는 이미 MOSFET의 게이트 절연막에 고유전율 산화막으로 사용하고 있어 매우 친숙한 물질이다. 그런데 우연히 이 물질이 특정 조건의 열처리를 통해 강유전막이 되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를 활용해 강유전 쌍극자(Dipole)*의 방향을 바꿔 저항을 다르게 하는 강유전체 터널 접합 소자(Ferroelectric Tunneling Junction, FTJ)를 만들어서 저항 변화 메모리로 사용하거나 MOSFET의 게이트(Gate) 산화막 대신에 넣어 플로팅 게이트 메모리(Floating Gate Memory)와 같이 소자의 문턱전압(Vt)*을 바꾸는 형태로 메모리 소자(Ferroelectric Field-Effect Transistor, FeFET)를 만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 쌍극자(Dipole): 전하량이 같은 양전하 · 음전하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근거리에 존재하는 것
* 문턱접압(Threshold Voltage, Vt): 전류가 흐르게 되어 스위치가 켜지는 시점의 게이트 전압. 전류가 흐르기 전에는 입/출력단 저항이 동등하게 높지만, 전류가 흐르면 출력단 저항이 급격히 낮아져 전류가 더욱 쉽게 흐른다.

새로운 메모리 소자가 대중화되기 위한 조건

이외에도 다양한 새로운 메모리 소자가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새 소자가 기존 소자를 대체하기 위해선 많은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현재의 반도체 집적 공정을 통해 공정이 가능해야 하며, 사용하는 물질도 적합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복잡한 공정 과정 때문에 새로운 물질을 도입하는 것에 보수적이다. 만들어지는 소자에 문제가 발생하면 입는 피해가 수백억이 쉽게 넘어가는 현실에서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기에 새로운 메모리 소자는 지금 사용 중인 소자를 넘어 성능 향상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을 증명해야 한다. 성능뿐 아니라 집적도, 전력, 비용 등 많은 부분이 현재 소자를 월등히 능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메모리 소자의 균일성(Uniformity)과 신뢰성(Reliability)이다. 많은 새로운 메모리 후보가 이 장벽을 넘지 못해 실제 양산에 쓰이지 못하고 있다. 각각의 메모리 셀이 아무리 우수한 성능을 보여도 300㎜ 웨이퍼 전체에서 성능 차이가 크면 메모리 소자로 쓰기 어렵다. 또 메모리는 특성상 쓰고 지우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거나(Endurance) 오랜 시간 정보를 저장하고 있을 때(Retention) 특성이 열화되면 제품에 쓸 수가 없다.

현재까지 제안된 많은 후보군 중 이 장벽을 넘어서 가능성을 보이는 메모리 소자는 많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메모리 소자의 기술이 너무 빨리 발전하여 장벽을 더욱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메모리 기술이 기존 메모리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서는 더 많은 연구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혁신적인 형태와 물질, 그리고 새로운 메모리 소자 구조에 대한 제안과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 본 칼럼은 반도체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인하대학교 신소재공학과

최리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