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에는 과거 명작을 다시 선보이는 방법으로 ‘리마스터’와 ‘리메이크’가 있습니다. ‘리마스터’는 내용은 그대로지만, 해상도를 최신 기기에 맞게 업스케일하는 방법이고 ‘리메이크’는 기존의 내용을 토대로 다시 새롭게 만드는 것을 뜻하죠. 당연히 새롭게 만드는 리메이크 쪽이 제작 시간도 더 길고 기존 팬들에게도 새롭게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큽니다. 특히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이번에 다룰 주제는 과감히 리메이크에 도전에 성공을 거둔 게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2019년 1월, 21년 만에 리메이크된 ‘바이오하자드 RE: 2’(외수명: 레지던트 이블 2)입니다.
바이오하자드란?
▲ 21년의 세월은 게임 그래픽은 물론, 플레이 스타일까지 변신시켰습니다. (출처: 캡콤)
게이머들에게는 일본명인 ‘바이오하자드’가 익숙할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게임을 소재로 만든 영화 제목인 ‘레지던트 이블’이 익숙할 겁니다. 국내에서도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죠.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로 유명한 캡콤에서 새롭게 선보인 IP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B급 게임으로 시작했지만, 독특한 게임 방식과 설정으로 크게 히트해 캡콤의 간판 게임이 되기도 했죠. 좀비 게임의 대명사로도 불립니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대표작은 ‘바이오하자드 2’입니다. ‘바이오하자드 2’는 2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같은 공간에서 돌아다니더라도 각각 다른 내용과 조력자로 서로 다닐 수 있는 장소가 다릅니다. 또, 클리어 이후 연결되는 두 번째를 통해 다른 시각에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등 독특한 요소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성공작이자 시리즈 대표작을 리메이크하는 건 또 다른 모험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21년 만에 리메이크된 ‘바이오하자드 RE2’는 기존 팬들은 물론, 기존작을 해보지 않았던 게이머까지 ‘바이오하자드’의 세계에 매료되기에 충분합니다.
21년 후, 성능은 얼마나 발전했을까?
21년의 세월은 공포감을 보다 리얼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캡콤은 ‘바이오하자드 7’에서도 사용한 자사의 게임 엔진인 ‘RE’를 개량해 ‘바이오하자드 RE: 2’의 공포감을 더 극대화했습니다.
또한, 이 게임을 구동하는 데 필요한 PC 성능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바이오하자드’는 기본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콘솔 게임기를 기반으로 제작된 게임이지만, 보다 쉬운 비교를 위해 PC판의 스펙을 기준으로 비교해보겠습니다.
CPU(중앙 처리 장치)는 인텔과 AMD, GPU(그래픽 처리 장치)는 엔비디아와 AMD가 있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인텔 CPU와 엔비디아 GPU로만 비교합니다.
초미세화 공정으로 더 빠르게! CPU
▲ PC의 기본이 되는 CPU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습니다.
‘펜티엄’은 인텔에서 과거 8086에서 시작된 80286, 80386, 80486 이후 사용된 새로운 브랜드입니다. 과거 80386이나 80486은 흔히 386 컴퓨터, 486 컴퓨터로 불리곤 했습니다.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라면 기억하실 테죠.
‘펜티엄’이라는 브랜드는 아직도 인텔에서 사용 중입니다. 다만, 과거에는 ‘펜티엄=고성능 컴퓨터’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주력 브랜드인 ‘코어’에 자리를 내어 준 뒤 보급형 CPU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바이오하자드 2’를 제대로 구동하기 위해서는 펜티엄 III가 필요했습니다. 펜티엄 III는 1999년에 처음 출시된 CPU로, 1세대인 ‘카트마이’는 250nm(나노미터) 공정, 2세대인 ‘코퍼마인’은 180nm 공정, 3세대인 ‘투알라틴’은 130nm 공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1세대인 ‘카트마이’는 펜티엄 II와 같은 250nm 공정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성능 업그레이드는 2세대인 ‘코퍼마인’부터였죠. 제조 공정이 미세화된 만큼 CPU의 속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클럭도 ‘카트마이’에서는 500~600MHz 남짓이었지만 ‘코퍼마인’에서는 1GHz를 넘게 됩니다.
▲ PC의 기본이 되는 CPU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습니다.
‘바이오하자드 RE: 2’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인텔 코어 i7-3770 이상 성능의 CPU가 필요합니다. 인텔의 ‘코어’는 2008년 11월에 처음 선보인 브랜드로, 현재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고 어느덧 9세대 모델까지 출시됐습니다.
2019년 2월 기준으로, 인텔의 소비자용 CPU 중 가장 높은 성능을 자랑하는 제품은 코어 i9-9900K입니다. 제조 공정은 14nm++로, 20년 전 펜티엄 III의 180nm 공정과 비교하면 약 12.86배나 세밀해졌죠. 그런데도 최대 속도는 5GHz까지 빨라졌고 장착된 코어 수는 8개, 동시에 동작할 수 있는 스레드는 16개에 달합니다. 스레드가 많을수록 더 많은 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닙니다.
보다 실감 나는 모습을! GPU
지금이야 PC에 3D 그래픽카드를 장착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3D 그래픽을 사용하는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필수가 아니었습니다. 별도로 모니터에 출력하기 위한 2D 그래픽카드면 충분했죠.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들어 3D 그래픽을 사용하는 게임이 급속도로 많아지면서 게이머들 사이에서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필수품이 됐습니다.
▲ ‘레이 트레이싱’이라는 신기술을 탑재한 지포스 RTX 20 시리즈의 경우, 사실과 같은 그래픽을 제공합니다. (출처: 엔비디아 공식 홈페이지)
그래픽카드의 핵심 부품은 바로 GPU입니다. CPU도 그래픽 연산이 가능하지만, 그래픽 연산에 특화된 GPU의 성능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죠. 그만큼 GPU는 현세대 컴퓨터 부품 중 가장 복잡한 반도체입니다. 게다가 뛰어난 연산 능력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자율주행차나 딥마인드 같은 AI(인공지능) 관련 분야에서도 활약 중입니다.
흔히 말하는 FHD(1920x1080) 해상도의 장면을 60프레임으로 구현하려면 약 200만 장의 점으로 구성된 화면을 0.016초 안에 표현해야 합니다. 더구나 이보다 더 높은 해상도인 4K UHD(3840x2160)의 해상도의 장면을 60프레임으로 구현하려면 약 830만 장의 점으로 구성된 화면을 0.016초 안에 표현해야 하죠. 그만큼 GPU의 연산 처리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바이오하자드 2’ 당시 GPU는 엔비디아 지포스 2 MX 100/200이면 충분했죠. 지포스 2 MX 100/200은 지포스 2의 보급형 모델로, 픽셀 파이프라인은 4개, 클럭은 175MHz로 지포스 2 모델(200~250MHz)보다 낮았지만, 가성비가 뛰어나 당시 큰 인기를 얻으며 그래픽카드 시장을 평정했습니다. 제조 공정은 180nm이며, 그래픽 메모리는 32MB였죠. ‘바이오하자드 RE: 2’는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60을 필요로 합니다. 지포스 GTX 1060은 16nm 제조 공정으로 만들어지며, CUDA 코어는 1,280개, 최대 클럭은 1708MHz에 달합니다. 그래픽 메모리는 GDDR5 3GB 모델과 GDDR5 6GB 모델로 나뉘는데요.
현재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소비자용 그래픽카드는 엔비디아의 지포스 RTX 2080 Ti입니다. 더욱 세밀해진 12nm 제조 공정에 CUDA 코어는 4,352개, 최대 클럭은 1635MHz, 그래픽 메모리는 GDDR6 11GB에 달합니다. 지포스 2 MX와 비교하면 까마득히 높은 성능이죠.
로딩 속도를 눈 깜짝할 새에! RAM
▲ RAM은 육안으로도 반도체가 잘 보이는 형태입니다. (출처: SK하이닉스)
흔히 반도체하면 메모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메모리가 반도체로 만들어지는 것은 일반인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PC 부품 중에서도 반도체의 모습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메모리(RAM)이기도 하죠.
RAM은 보조 기억 장치로, 전원을 차단하면 기억된 내용이 모두 삭제됩니다. 기껏 RAM에 내용을 저장했는데 전원을 끔으로써 안의 내용이 사라진다면 RAM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요?
RAM은 CPU&GPU와 저장 장치의 중계인 역할을 합니다. CPU와 GPU는 아주 빠른 속도를 자랑하지만, 저장 장치에 저장된 데이터를 직접 불러와 연산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장 장치의 속도는 상당히 느리기 때문에 저장 장치의 데이터를 더 빠른 속도의 RAM으로 복사한 뒤 RAM에 저장된 데이터를 CPU와 GPU가 연산하는 것이죠.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딩 중’이라는 문구는 저장 장치에서 RAM으로 데이터를 복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RAM의 용량이 크면 클수록 보다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어 로딩하는 간격이 줄어들고, RAM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보다 로딩 속도가 줄어드는 셈이죠.
RAM의 용량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바이오하자드 2’ 때만 하더라도 32MB 정도만 필요했지만, ‘바이오하자드 RE: 2’에 와서는 8GB를 필요할 정도가 됐죠. RAM의 종류에는 크게 SRAM과 DRAM이 있는데 현재 주로 사용되고 있는 DRAM입니다.
SDRAM이나 RDRAM이나 DDR SDRAM 등은 모두 DRAM의 일종으로, PC 조립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흔히 ‘DDR 램’이라고 부르는 제품이 바로 이 DDR SDRAM입니다.
특히 국내 기업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전 세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점유하고 있는 반도체 시장도 바로 이 DRAM이죠. 지난 2018년 3분기 기준 전 세계 DRAM 시장 1위는 삼성전자(43.4%), 2위는 SK하이닉스(29.1%)로, 두 업체의 점유율을 합치면 70%를 넘습니다.
더 넓고 빠르게! 저장 장치
▲ HDD는 물리적인 자기 디스크를 모터로 돌려 데이터를 저장하거나 읽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모터를 돌릴 때 소음도 나고 발열도 심합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대표적인 저장 장치는 HDD(하드 디스크 드라이브)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쯤에서야 HDD 용량이 1GB를 넘어섰고 당시 저장 매체인 CD도 용량이 600MB 정도일 뿐이었죠. 이후 용량이 빠르게 늘어났고 현재에 와서는 14TB 용량의 HDD도 출시됐습니다.
HDD는 가격 대비 많은 용량을 자랑하는 저장 장치이지만, 속도가 상당히 느린 것이 단점입니다. 단순하게 데이터를 저장하는 목적이라면 HDD도 상관없지만, 프로그램이나 게임 구동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로딩 시간이 상당히 길죠.
이러한 로딩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준 저장 장치가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입니다. 자기 디스크로 만들어진 HDD와 달리 플래시 메모리로 만들어진 SSD는 전력 소모나 발열이 적고 자기 디스크를 돌리기 위한 모터도 없어 소음도 없습니다. 속도도 최대 200MB/s에 불과한 HDD와 달리 SSD는 인터페이스에 따라 3000MB/s를 넘는 제품도 있습니다. 다만,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는 것이 큰 단점이죠.
▲ SK하이닉스는 세계 최초로 96단 4D 낸드 플래시 개발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출처: SK하이닉스)
하지만 2016년을 기점으로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대부분 PC는 물론, 노트북의 저장 장치가 빠르게 SSD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2019년에 와서는 점유율이 50%를 넘어섰죠. 그러나 가격 대비 용량은 아직 HDD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주요 프로그램 구동 용도로는 SSD, 데이터 저장 용도로는 HDD로 나눠 사용하고 있습니다.
SSD에 쓰이는 플래시 메모리는 보통 낸드플래시 플래시 메모리입니다. 여러 개의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병렬로 연결하고 동시에 읽고 쓰는 방식인데, 더 많은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연결할수록 속도가 빨라집니다. 용량도 가격이 문제긴 하지만 HDD의 용량을 넘어선 16TB 제품까지 있습니다.
SSD에 들어가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도 국내 기업이 강세죠. 지난 2018년 3분기 기준, 삼성전자가 40.8%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고 SK하이닉스가 11.3%로 4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기존 4위였던 마이크론을 제치고 3위인 웨스턴디지털의 뒤를 바짝 쫓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분야를 본격적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하고 지난 2018년 11월에는 세계 최초로 96단을 쌓을 수 있는 4D 낸드플래시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에서 끼칠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20년 사이 발전된 PC 부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CPU와 GPU, RAM, 저장 장치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품이 빠른 속도와 많은 용량으로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이와 함께 더욱 더 실감 나는 고화질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죠. 과거에는 ‘이보다 더 뛰어난 그래픽이 등장할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기술의 발전에는 한계가 없다고 생각되네요. 앞으로도 PC 부품이 계속 발전해 더욱 더 실감 나고 뛰어난 체감 방식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날이 계속될 거라 믿습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