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입니다. 뾰족한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반드시 뚫고 비어져 나오기 마련이죠. 중국 반도체 산업의 낭중지추를 꼽는다면 어떤 회사일까요? 관련 동향을 접한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떠올릴 이름이 하나 있을 겁니다. 바로 칭화유니, 중국어로는 쯔광(紫光·자주색빛) 그룹입니다. 오늘은 독보적인 자금력과 기술력을 과시하며 2015년 이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새로운 별로 떠오른 칭화유니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적극적인 M&A로 끌어올린 기술력
2013년 전만 해도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칭화유니는 중국 안팎의 반도체 업체 인수에 나서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중국 양대 모바일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인 스펙트럼커뮤니케이션과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흡수해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사로 부상했습니다. 2015년 7월에는 미국 최대 반도체업체인 마이크론을 230억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또한 대만 반도체 패키지업체 파워텍 지분 25%를 인수하여 최대 주주가 되었습니다
이 같은 적극적인 M&A는 자체 기술력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칭화유니는 내년까지 5세대(5G) 통신용 반도체를 상용화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미 인텔과 해당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하는 등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韓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도전장
한국 반도체 업계가 칭화유니를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업체 중에 가장 먼저 본격적인 메모리 반도체 양산이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2016년 칭화유니가 자회사로 설립한 창장메모리는 내년부터 32단 3차원(3D) 낸드플래시를 양산할 예정입니다. 올 연말로 예상됐던 양산 시점이 다소 연기됐지만,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도전한 중국 업체들 중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D램 양산에 도전한 허페이창신과 푸젠진화 등이 시제품 생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대비됩니다. 이처럼 D램 양산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중국 정부는 칭화유니에 D램 양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실현된다면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한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도전할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됩니다.
평범한 기업에서 반도체 굴기의 중심으로
칭화유니는 중국 최고 이공계 명문인 칭화대가 자체 개발한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 1988년 설립한 일종의 학내 벤처로 출발했습니다. 원래 이름은 치오하대과학기술개발총공사였지만 1993년 칭화유니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지금도 칭화대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칭화홀딩스가 회사 지분 51%를 갖고 있습니다.
원래 약제와 음료를 생산하던 평범한 국영기업이었던 칭화유니는 2009년 민간 자본을 유치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대학기술과 민간기술, 국영 자본과 민간 자본의 성공적인 결합이라는 점에서 초기 중국 정부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죠. 후진타오 전 주석과 시진핑 주석 등 고위급의 방문이 잇달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굴기’ 정책으로 지원되는 자금의 수혜가 가장 큰 기업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칭화유니의 발전 과정에는 최근까지 칭화유니 회장을 맡았던 자오웨이궈의 역할이 컸습니다. 칭화유니 지분 49%를 자오 전 회장의 개인 기업인 젠쿤그룹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영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서부 끝 신장위구르에서 태어나 1985년 칭화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하며 칭화대 및 반도체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전자공학 관련 석사학위를 받고 칭화유니에 입사했던 자오 전 회장은 의료관련 인터넷 사이트와 부동산 투자 등으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칭화유니 지분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자금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칭화유니의 급성장, 그 이면을 바라보는 시선
자오웨이거를 주축으로 한 칭화유니의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중국 내에서도 논란이 많습니다. 중국 안팎의 기업들을 사들이기는 했지만 내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수한 기업의 기술을 칭화유니가 얼마나 흡수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있습니다.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 때와 마찬가지로 기업을 일단 인수하는 것에만 골몰하고 있다”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실제로 칭화유니가 거느리고 있는 기업은 중국 증시 상장사만 26개에 이릅니다. 이 중에는 농업 관련 업체 등 반도체 기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기업들도 상당수입니다. 지난 4월 자오웨이궈가 칭화유니 산하 2개 주요 자회사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것도 칭화유니 성장 과정의 여러 문제가 부각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재미있는 점은 자오웨이궈와 칭화유니 경영진들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 경로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경쟁자들의 투자여력이 줄어드는 불황기에 오히려 투자를 확대해 호경기에 격차를 확대하는 전략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써온 전략을 중국 업체들이 사용해 역전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칭화유니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중국 반도체 업계의 낭중지추, 칭화유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살펴본 바와 같이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이들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