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는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로,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접해 디지털 환경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1)이기도 하다.
이들은 소비 주체로서 현재의 시장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창출 가능한 소비 가치가 큰 잠재적인 우량 고객이다. 이에 많은 기업들이 최근 MZ세대를 겨냥한 다양한 뉴미디어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는데, 그 중 최근 주목받고 있는 분야가 MZ세대의 새로운 놀이터로 부상한 ‘메타버스(Metaverse, 3차원 가상세계)’다.
메타버스에는 언뜻 봐서는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미묘한 존재도 살고 있다. 바로 사이버 세상에서 인간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3차원 가상인간(Virtual Human), ‘버추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2)다.
1)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를 뜻하는 말.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를 원어민(Native speaker)처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세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
2) 버추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 소셜 네트워크(SNS)에서 마치 실제 사람처럼 일상을 전하고 다른 유저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가상의 존재.
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메타버스’, 그곳에서 활약하는 ‘가상인간’
▲ 소설 ‘스노크래시’(이미지 제공: 문학세계사)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 가리킨다.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 1992년에 출간한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낮에 피자배달부로 일하지만, 밤에는 고글을 쓰고 메타버스라는 온라인 세계에 접속해 그곳에서 슈퍼히어로로 산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온라인에 구축돼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현실의 인간과 메타버스를 잇는 매개체가 바로 ‘가상인간’이다. 가상인간은 게임 속 캐릭터나 가상현실의 아바타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라는 느낌 대신, 언젠가 주변에서 한 번쯤 본 것 같은 실제 사람과 매우 흡사한 외형을 갖고 있다. 이 같은 ‘현실성(Reality)’이 기존 아바타와 가상인간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이들이 ‘현실성’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실제 촬영한 이미지에 가상의 얼굴을 합성하는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3) 모델링(Modeling)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를 활용하면 피부의 솜털까지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외형 디자인이 가능하다. 가상인간을 만들기 위해 적용된 하이퍼리얼리즘 모델링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딥페이크(Deepfake)4)와는 다른 개념이다. 딥페이크는 악의적인 의도를 갖고 실존하는 연예인, 인플루언서의 얼굴을 다른 사람의 몸에 합성하는 기술이지만, 기업이 만든 가상인간인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기업이 주체가 돼 자체적으로 개발한 가상 모델이다.
3)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실사와 애니메이션 합성을 구분할 수 없는 고난도 특수효과를 만들어내는 컴퓨터그래픽 기술.
4) 딥페이크(Deepfake):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특정 영상에 합성한 편집물. 유해 영상에 유명인이나 일반인의 얼굴을 합성해 디지털 성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 논란의 여지가 있음.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등장 배경은?
기업 입장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하면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가상 세계에서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사업의 범위도 훨씬 더 넓힐 수 있다. 이처럼 현실과 가상세계의 상호 연동이 가능한 메타버스의 특징을 활용해 소비자들의 실제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서비스를 정착할 경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한 마케팅 O2O(Online to Offline)5)를 뛰어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 미래의 소비 트렌드를 주도할 수 있다.
5) O2O(Online to Offline): 온라인(online)과 오프라인(offline)이 결합하는 현상. 최근에는 전자상거래나 마케팅 분야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결되는 현상을 말하는 데 주로 사용됨.
또한 기업 홍보에도 도움이 된다. 뉴미디어 마케팅을 시도하는 모습 자체로 트렌드를 주도한다는 이미지를 남길 수 있고, MZ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만큼 기업의 이미지를 젊게 바꿀 수 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열정적인 기업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쉽다.
메타버스 시장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글로벌 빅 테크(Big Tech)6)들은 메타버스 시장 진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페이스북(Facebook)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CEO는 미국 IT 전문매체 더 버지(THE VERGE)와의 인터뷰에서 “5년 안에 페이스북을 SNS 기업에서 메타버스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비전을 밝혔다.7) 페이스북은 2014년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기기 업체인 오큘러스(Oculus)를 인수하며 VR HMD(Head Mount Display)8) 오큘러스 시리즈를 출시하는 등 메타버스와 관련된 기술에 집중투자 하고 있다. 2019년에는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를 만들어 이용자들끼리 어울리고 채팅하는 VR앱인 ‘페이스북 호라이즌(Facebook horizon)’을 선보였고, VR기술을 활용해 메타버스 공간에서 업무를 보는 가상 사무실인 ‘인피니트 오피스(Infinite Office)’를 개발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Corporation)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2015년부터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기반 EGD(Eye Glassed-type Display)9) 홀로렌즈(HoloLens) 시리즈를 선보여왔고, 최근에는 VR/AR 플랫폼 ‘MS메시(Mesh)’를 공개했다.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애저(Azure)를 기반으로 구축된 MS메시는 VR과 AR을 적절히 융합해, 홀로렌즈를 착용한 이용자는 다른 이용자와 같은 장소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이를 통해 보다 폭넓은 조직 내 협업 시나리오 구현이 가능하다.
구글(Google) 역시 2014년 AR EGD ‘구글 글래스(Google Glasses)’를 개발했고, 2016년부터는 VR HMD 기업 HTC와의 협업을 통해 구글 어스(Google Earth) VR 버전도 서비스하고 있다. 앞으로 메타버스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는 상태다.
6) 빅 테크(Big Tech):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Amazon), 애플(Apple) 같은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을 총칭하는 말.
7) 출처: Facebook’s CEO on why the social network is becoming ‘a metaverse company’ (https://www.theverge.com/22588022/mark-zuckerberg-facebook-ceo-metaverse-interview)
8) HMD(Head Mount Display): 머리에 착용하는 고글 형태의 디스플레이 장치.
9) EGD(Eye Glassed-type Display): 안경 형태로 귀에 걸어 착용하는 디스플레이 장치.
기업 SNS 모델부터 가상 아이돌까지…‘버추얼 인플루언서’ 활용에 적극적인 기업들
기업이 가상인간을 활용하면 자체 지적재산권(IP, Intellectual Property)을 활용해 충성도 높은 팬덤(Fandom)을 확보할 수 있고, 기존 셀러브리티(Celebrity)나 인플루언서(Influencer)에 비해 모델 비용도 덜 든다. 무엇보다 가상인간은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불미스러운 사생활 스캔들로 마케팅이 중단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코로나19 시대에 지켜야 할 방역 지침에서도 자유롭다.
▲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 인스타그램(이미지 제공: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
기업은 이런 가상인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가상인간을 가장 잘 활용한 사례가 바로 ‘버추얼 인플루언서’다.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는 인스타그램에서 일반인처럼 활동하다가 지난해 12월 자신이 가상인간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후 로지가 출연한 2건의 신한라이프 광고 영상은 폭발적인 관심 속에 1,0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로지가 창출한 광고 효과는 10억 원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홈쇼핑 업계에서는 가상 스튜디오에서 상품을 선보이며, 가상 모델과 가상 쇼호스트가 고객과 소통하며 상품을 판매하는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올해 2월부터 SNS에서 가상 모델로 활동 중인 ‘루시’의 움직임과 음성 표현을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고도화해 홈쇼핑 쇼호스트로 선보일 예정이다.
▲ SM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에스파’와 가상 세계의 멤버 ‘ae에스파’(이미지 제공: SM엔터테인먼트)
대중음악계도 예외는 아니다. 블랙핑크는 네이버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Zepeto)에서 아바타 형태로 팬사인회를 열었다. 비슷한 시기 방탄소년단도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신곡 다이너마이트의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더 나아가 가상 아이돌로 돌파구를 찾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SM 컬쳐 유니버스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걸그룹 ‘에스파’를 현실 세계의 멤버와 가상 세계의 멤버 ‘ae에스파’로 구성해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에스파를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에서 “미래 세상은 셀러브리티와 AI(인공지능)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앞으로도 현실 세계와 가상 현실을 오가는 새로운 개념의 스토리텔링을 선보일 계획이며, 이는 메타버스를 염두에 둔 전략으로 분석된다.
무궁무진한 가능성 보여준 메타버스,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선 정교한 접근법 필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는 현실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MZ세대의 수요가 높다는 점에서 그 잠재력도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메타버스 플랫폼의 확산을 위해서는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연결해 주는 VR, AR 기기의 대중화가 이뤄져야 한다. 아직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대중들에게 낯선 기술이라는 한계도 있고, 딥페이크로 인해 형성된 합성 기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넘어야 할 산이다.
매력적인 가상인간을 만들면 무조건 호감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에 그쳐서 안된다. 스토리와 재미가 따라오지 못한다면 가상인간은 진부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만 소비되지 않고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 속으로 녹아들어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져야만, 가짜가 아닌 ‘새로운 세계’가 창세될 것이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