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있습니다.

Dune Poster
▲영화 <듄(Dune)> 스틸컷(사진 제공: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듄(Dune)은 1965년 출간 이후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SF소설 듄(Dune)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먼 미래, 초능력을 갖고 태어난 주인공이 가문을 몰락하게 만든 적대 가문과 황제의 괴롭힘에 맞서 도망치고, 싸우고, 새로운 황제가 되는 이야기의 반쪽을 담았다(후편은 2023년 개봉 예정). 배경은 10901년의 우주로, 스파이스 멜란지라는 값비싼 광물을 우주에서 유일하게 채취할 수 있는 행성 아라키스가 주 무대다.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샬라메 분)가 속한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황제의 명을 받아 갑자기 아라키스를 통치하러 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듄, 인공지능과의 전쟁 끝에 컴퓨터가 사라진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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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듄(Dune)> 스틸컷(사진 제공: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를 보다 보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된다. 분명 행성 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시대인데, 오히려 후퇴한 듯 보인다. 최첨단 기술을 받아들인 중세시대, 혹은 깨끗하게 멸망하고 일부 기술만 살아남은 지구와 같다고 해야 할까. 먼저 디스플레이 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영상을 보여주며 교육하는 기기는 있지만, 화면이 아닌 홀로그램을 이용한다. 비행기를 조종할 때도 구식 비행기처럼 아날로그 표시 장치에 의존한다. 개인 통신기는 목 뒤에 붙어 있고, 적의 침략도 눈으로 확인한다. 로봇 같은 기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세계는 컴퓨터가 없는 세계다.

듄 시리즈 팬들이 만든 듄 위키는 이 세계가 이렇게 된 이유를 ‘버틀레리안 지하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인류 문명은 끝없이 번창했다. 빛보다 빠르게 여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우주로 진출했으며, 여러 행성에 나눠 살게 된다. 대가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당시 인류를 통제했던 구 제국은 행성 관리를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맡겼다. 인공지능(AI)은 스스로 의지를 갖고 성장해, 결국 생각하는 기계와 기계에 결합한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다른 인간은 기계의 노예가 됐다. 다행히 다른 행성에 진출해 노예가 되지 않은 인간들이 연합해 기계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 길었던 전쟁을 버틀레리안 지하드라고 부른다.

전쟁은 인간의 승리로 끝났지만,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깊은 혐오를 남겼다. 아예 종교 계명으로 “너희는 인간 마음과 비슷한 기계를 만들지 말라(Thou shalt not make a machine in the likeness of a human mind)”고 남겨 놓을 정도다. 그래서 이 세계에는 로봇이 없고, AI도 없으며, 디지털 정보를 현실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디스플레이 장치가 다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계산기도 없다. 고도의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자동으로 움직이는 일은 끔찍하게 증오하는 사회다. 이것이 듄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다. 우리는 듄을 통해 인류가 기술을 다르게 썼을 때, 어떤 형태로 문명이 발전하게 될지 살짝 맛볼 수 있다.

멘타트가 컴퓨터를 대신하는 세계에도 ‘반도체’의 역할은 있다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든다. 컴퓨터가 없는 듄의 세계에 반도체도 없을까?

버틀레리안 지하드는 봉건 사회와 비슷해진 듄의 미래 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설정이다. 그렇긴 하지만 모든 반도체가 사라졌다고 믿기는 어렵다. 우리는 기계나 도구를 인간 능력의 확장이라는 면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듄 세계의 인간은 버틀레리안 지하드를 거치면서 지능의 확장에 해당하는 기계의 사용을 멈췄을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행성을 항해하는 우주 비행선도, 순식간에 몸을 보호하는 보호막도, 아니 그 전에 주인공을 해치려고 숨어들어온 기계 모기나 목에 삽입한 통신기도 설명할 수 없다. 모두 멸망한 것이 아니라면, 기술은 쉽게 후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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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듄(Dune)> 스틸컷(사진 제공: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다만 생각하는 능력은 정말로 증오하니 컴퓨터를 다시 살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생각은 사람이 하면 된다. 듄의 세계에서는 정말로 컴퓨터처럼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 따로 육성한다. 그들을 ‘멘타트’라고 부른다. 아랫입술에 검은색 한 줄 문신이 있거나 생각할 때 흰자위만 보이는 사람이 바로 이들이다. 컴퓨터(Computer)가 원래 ‘기계’가 아니라 계산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걸 생각하면, 뭔가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인간이 단순 연산 능력에서 컴퓨터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하지만 생각하는 알고리즘을 바꿀 수 있다면, 또한 뭔가 경이롭게 뛰어난 것이 새로 제시된다면, (다른 의미로) 여러 영역에서 컴퓨터만큼 빠른 결론을 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가정’이다. 0과 1로 구성되는 디지털 세계를 뒷받침하는 존재이기에 잊기 쉽지만, 결국 반도체도 물리 법칙을 따른다. 전자가 흐르냐 마느냐에 따라 0과 1이 바뀌고, 그게 얼마나 빨리 흐를지는 반도체를 어떻게 만들고 회로를 어떻게 파는지에 달려있다. 우리 뇌에 담긴 1,000억 개 뉴런과 100조 개 시냅스를 쓴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어떤 생명체도 그걸 마음대로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듄에 등장하는 베네 게세리트 같은 단체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집단이다. 뇌 활동을 포함해 신체의 모든 부위를 자기 의지로 조정할 수 있다고 설정돼 있다. 이런 설정을 가진 세계라면, 컴퓨터만큼 빠르게 생각하는 인간을 육성해도 아주 이상하지는 않다.

보호막, 듄의 세계에서 총보다 칼이 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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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듄(Dune)> 예고편 영상 캡처(자료 출처: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술은 반도체도 아니고 멘타트도 아닌 ‘보호막’이다. 초반 주인공이 군사 책임자인 거니 할렉(조시 브롤린 분)과 대련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보호막을 켠다. 그 보호막은 보이지 않게 사람 전신을 감싸고 있어 특정 속도보다 빠르게 물체가 다가오면 막거나 튕겨낸다. 무협지에서 말하는 ‘기’나 판타지 소설에서 말하는 ‘오러’를 몸에 뒤집어쓰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듄만의 독특한 액션 장면이 만들어졌다. 빠르고 경쾌하게 상대방을 제압한 다음, 느리고 천천히 무기를 찔러 넣는다. 총보다 칼이 주로 쓰이는 이유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영화 설정에서는 ‘홀쯔만 효과’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효과는 아니고, 영화에 등장하는 초과학 기술을 설명하기 위한 만능 핑계에 가깝다. 이 홀쯔만 효과와 아라키스 행성에 존재하는 스파이시 멜린지가 없다면 영화 속 기술 대부분은 없던 게 된다.

홀쯔만 효과가 작동하는 원리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접을 수 있게 해준다거나, 중력을 무시한다거나,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는 모두 막아버린다거나, 공중 부유하는 램프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고만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진 기술력으론 꿈도 꿀 수 없다.

사람이 아니라면 어떨까? 미국 보잉사에서 특허 출원한 ‘전자기 아크를 통한 충격파 감쇠(Shockwave attenuation via electromagnetic arc)’ 기술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차량에 포탄 등이 폭발해 충격파를 만드는 순간, 그걸 감지해 공기를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어 충격을 완화하는 기술이다. 보잉이 처음 시작한 기술은 아니고, 플라스마 윈도우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부터 연구를 하고 있었다. 자기장을 이용해 특정 공간을 플라스마로 채우는 기술로 어느 정도 점성을 띈 플라스마가 만들어지면 물질이 통과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정말 실현 가능한 기술일까 싶긴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지구 위 1만 1,600km 상공에 있으면서 지구 외곽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전자를 막아내는 플라스마권(plasmasphere)이 그런 존재다. 헬리오포즈(heliopause)라고 불리는 태양계를 지키는 거대 플라스마 장벽도 있다. 홀쯔만 효과는 가상의 물리 법칙이고 개인의 보호막은 영화 속 설정이지만, 우린 이미 오래전부터 플라스마가 지켜주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미국 매체 기즈모도(Gizmodo)에서 이런 형태의 에너지 방어막, 포스 실드가 정말 가능하냐고 과학자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전자기장을 응용하면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정도로, “특정 에너지를 사용한 보호막보다는 그냥 그래핀(Graphene)으로 만든 옷을 입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답변도 있었다.

스틸슈트를 입고 오니솝터를 타는 세계, 실현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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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듄(Dune)> 예고편 영상 캡처(사진 제공: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듄에 등장한 다른 기술은 무엇이 있을까? 보호막만큼이나 인상적인 기술로는 ‘오니솝터(Ornithopter)’를 들 수 있다. 새처럼 날개를 펄럭이며 움직이는 비행기를 뜻하는 일반 용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구상한 비행기를 비롯해 초기 비행기의 디자인은 대부분 이렇게 새 움직임을 본뜬 오니솝터였다. 듄 세계관에선 이 오니솝터가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아니, 사실 주력 교통수단에 가깝다. 영화에선 마치 잠자리처럼 날개를 파르르 떨며 나는 걸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오니솝터는 오니솝터다.

영화 속 화려한 모습과는 다르게, 우리 시대 오니솝터는 주로 취미 활동이나 장난감으로 쓰인다. 현대 항공 산업에서 사용되지는 않지만, 최근에는 드론 비행에 도움 되지 않을까 싶어 다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Dune-11▲영화 <듄(Dune)> 스틸컷(사진 제공: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스틸슈트(Stillsuit)의 아름다움에 반한 사람도 있을 듯하다. 아라키스 행성 사막에서 사는 프레멘 족이 입는 검은 옷이다. 호흡으로 작동되는 펌프 등으로 몸에서 나오는 모든 물을 여과해 식수를 만든다. 호흡부터 대소변을 가리지 않고, 신체 바깥으로 배출되는 모든 수분을 다시 회수한다. 사막에서 쓰는 만큼 체온 조절 기능도 달려있다. 물이 피와 같은 가치를 가지는 프레멘 족에게, 스틸슈트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언젠가 이런 슈트를 정말 만들 수 있을까? 그럴 필요가 없기를 바라지만, 만들지 못할 것도 없다. 용도가 다르긴 하지만, 우리는 이미 우주복을 만들어 입고 있다. 아라키스보다 더 극한 상황인 우주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옷이다. 소변 등을 수거할 수 있는 장치도 달려있다. 다만 이 옷의 무게는 100kg가량 된다. 중력이 작용하는 대기권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은 아니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 이라 불리는 기술도 필수로 탑재됐을 것이다. 이는 태양 에너지나 사람이 움직일 때 생기는 에너지 등을 모으는 장치로, 스틸슈트 안의 물순환 장치를 가동할 때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앞서 얘기했지만, 영화 듄이 가진 가장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기술이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을 때 어떻게 될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컴퓨터가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기술을 이용할까?’ 하고 상상했던 것에 대해, 듄은 매우 그럴듯한 그림을 보여준다. 그 세계는 결코 상상에만 기댄 세상은 아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비슷한 기술을 적용한 물건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반도체는 그 세계에서도 매우 발전된 형태로 지금처럼 핵심 기술을 구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을 것이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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