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는 수많은 반도체 관련 뉴스를 접하고 있다. 반도체 관련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반도체가 단순한 수출 역군을 넘어서 국가 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제품이 됐다는 점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반도체의 중요도가 높아짐에 따라 정부를 비롯해 여러 기업들은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첫 발걸음은 당연히 반도체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에 본인 역시 반도체 산업에 몸담았던 일원으로서 반도체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취업준비생들을 위한 지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인터넷이나 교재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술에 치중된 지식이 아니라 각 기술이 가지는 연관성을 통한 관계의 중심으로 반도체를 설명하고자 한다. ‘컴퓨터와 트랜지스터’의 주제를 시작으로 공정과 산화, 포토, 식각, 증착, 금속배선 등 총 6편의 시리즈로 반도체 기술에 대한 설명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를 읽는 독자 여러분은 개별 용어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관계’에 주목하길 바란다. 글을 읽다 보면 갑작스럽게 전문 용어들이 등장할 수 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냥 넘어가도 좋다. (필자 주)
쌓아 올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도체 전공정 3편에서 과자 틀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봤다. 이제부터는 노광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틀을 이용해 우리가 원하는 모양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 이 작업 중 한 가지는 필요치 않은 부분을 제거하는 공정, 즉 식각 공정이다.
▲ 그림 1 : 과자 가운데를 파내고 초코시럽을 넣는 방법
과자 만드는 문제를 다시 떠올려 보자. 만약 행복날개 과자 중간층에 초코시럽을 넣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과자 가운데에 초코시럽이 들어갈 부분을 파낸 뒤, 그 안에다가 초코시럽을 넣는 것이다. 여기서 초코시럽이 들어갈 곳을 파내는 과정이 ‘식각’에 해당한다. 과자 위에 구멍이 난 노란색 틀(포토마스크)을 얹은 뒤, 과자에만 반응하는 물질을 뿌려서 과자를 파내는 것이다. 그 뒤에 과자 틀을 없애고 초코시럽을 붓는다. 이후 잔여 초코시럽을 제거하고 다시 그 위에 쿠키 층을 만들면, 쿠키 사이에 초코시럽을 넣을 수 있게 된다.
참고로 반도체 제조 공정에는 다양한 종류의 물질 제거 공정이 있다. 세척, 식각 등 이름이 매우 다양하다. 원치 않는 불순물을 웨이퍼 전체적으로 씻어 없애는 것이 세척이라면, 식각은 포토마스크를 동원해 내가 원하는 미세 패턴을 파내는 것에 집중하는 작업이라는 차이가 있다. 실제로 식각에 사용되는 기체나 장비들은 유사한 공정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식각에서 요구되는 특성들
식각에는 중요한 특성이 많다. 들어가기에 앞서 그림을 보며 단어를 한번 정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그림 2 : 등방성 식각과 비등방성 식각의 특징
첫 번째 단어는 선택비이다. 선택비는 해당 공정에서 제거하고 싶은 물질만을 얼마나 잘 제거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이다. 식각 공정을 통해 100% 내가 원하는 물질만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응이 진행됨에 따라 씌워 놓은 포토레지스트 등도 느리지만 서서히 깎여 나가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선택비가 높다는 것은 식각 과정에서 제거해서는 안 될 물질은 덜 제거되고, 제거해야 하는 성분만이 잘 제거된다는 의미이다.
방향성은 식각이 진행되는 방향을 의미한다. 크게 등방성(Isotropic) 식각과 비등방성(Anisotropic) 식각으로 나뉜다. 등방성은 포토레지스트의 열린 부분을 기준으로 모든 방향으로 식각이 발생한다는 의미이고, 비등방성은 특정 방향으로만 반응이 잘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장이 찢어져 살짝 벌어진 포장지 속에 사탕이 있다고 하자. 이 사탕을 물속에 넣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탕이 녹아서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포장이 찢어진 틈에 고출력 레이저를 발사하면, 사탕 전체가 타버리지 않고 사탕에 구멍이 날 것이다. 전자가 등방성 식각이고, 후자가 비등방성 식각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속도는 단어 그대로 식각 반응이 얼마나 빠른지 나타내는 수치이다. 모든 수치가 동일하다면 당연히 속도가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빠르고 정확한 선택지는 없으며, 공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정확도 등의 수치와 속도 사이에서 타협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식각의 비등방성을 높이기 위해선 식각 기체의 압력을 낮춰야 하는데, 압력이 낮아진다는 것은 반응 기체의 양을 줄인다는 의미이므로 식각 속도도 느려진다.
균일도는 식각이 전체 웨이퍼 영역에서 얼마나 불균일하게 일어나는지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식각 공정은 노광과는 달리 웨이퍼 한 장을 통째로 기체에 노출시켜 처리한다. 식각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반응 기체를 투입하고 부산물을 제거하는 등 물질을 순환시켜야 하는데, 이를 웨이퍼 전체에 완벽히 똑같이 적용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로 인해 웨이퍼 위치 별로 식각 속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참고로 균일도라는 단어가 문맥에 따라서는 불균일도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으니, 관련 자료 등을 살펴볼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식각의 종류 : 건식과 습식
산화와 마찬가지로 식각 역시 습식과 건식으로 나뉜다. 산화 공정에서의 ‘습식’은 사용되는 기체가 수증기라는 의미였다면, 식각에서의 습식은 웨이퍼를 액체에 ‘담갔다 건지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방식은 식각 속도가 매우 빠르며, 담그는 방식의 특성상 화학적 식각밖에 쓸 수 없으므로 선택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방식의 특성상 식각이 등방성(Isotropic)이 강할 수밖에 없다. 웨이퍼를 액체에 담그면, 액체는 자유롭게 움직이며 물질들과 반응한다. 이로 인해 포토레지스트 뒷면의 원치 않는 부분까지 빠른 속도로 깎아버리기 때문에 정밀도가 매우 떨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액체의 특성상 틈이 너무 작으면 표면 장력으로 인해 식각액 자체가 포토레지스트 틈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노광기로 미세한 패턴을 그려도 그린 대로 회로를 만들 수 없으면 소용이 없다. 따라서 현대 반도체 핵심 층 제조에는 습식 식각을 사용할 수 없다.
▲ 그림 3 : 틈새 안에서 자유로이 움직이는 액체
건식 식각은 기체를 이용하는 식각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포토마스크가 도포된 웨이퍼를 기체에 노출시키는 식각 방식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플라즈마 식각, 스퍼터링, 반응성 이온 식각(RIE, Reactive Ion Etching) 등을 포괄하는 명칭에 가깝다. 이들은 습식 식각과는 달리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물질을 제거하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비등방성, 등방성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화학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건식 식각이라면 등방성을 가질 것이고, 물리적 방법을 사용한다면 비등방성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건식 식각 중 비등방성이 높고 처리 속도까지 느리지 않은 RIE가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건식 식각은 비등방성을 가진다고 설명하게 됐다. 정확한 RIE의 물질 제거 메커니즘은 아래 문단을 참조하길 바란다.
식각의 종류 : 물질 제거 방식에 따라
웨이퍼 위의 물질을 없애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화학적 방법으로 없애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화학적 방법은 특정 물질과 잘 반응하는 물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포토레지스트 아랫면에는 제거해야 하는 물질들이 있다. 산화 공정에서 생성된 산화막, 이후에 보게 될 증착 공정에서 도포해 둔 물질일 수도 있다. 제거하고자 하는 물질들과 잘 반응하고, 포토레지스트와는 반응하지 않는 물질을 웨이퍼에 뿌려주면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원하는 물질들이 제거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식각 액체나 기체의 종류는 제거해야 할 물질에 따라 다르며, 주로 불소나 염소 기반의 화합물들이 화학적 식각에 사용된다. 화학반응이 주된 메커니즘이므로, 원하는 물질만을 제거하는 능력인 선택비가 높다.
다른 한 방법은 물리적 방법이다.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를 웨이퍼 표면에 충돌시키면 물질 표면이 떨어져 나가게 되는데, 이를 스퍼터링(Sputtering)이라 부른다. 기체(주로 불활성 기체)의 기압을 낮춘 뒤 높은 에너지를 가해주게 되면 기체가 원자(+)와 전자(-)로 분리된다. 이때 전기장을 웨이퍼 방향으로 가해주게 되면, 원자가 전기장으로 인해 가속돼 웨이퍼와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굉장히 간단한 원리지만 현실적으로 이 원리만을 사용하기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기압이 낮다는 것은 기체의 양이 적단 의미이므로, 식각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물리적 방법의 특성상 제거해서는 안 되는 물질도 확률적으로 제거된다. 힘으로 떼어버리는 것이니 물질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스퍼터링은 증착 공정에서 증착할 물질 기체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는 기법이니 기억해 두면 좋다.
실제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방법은 위 두 가지 방법을 합친 반응성 이온 식각(RIE, Reactive Ion Etching)이다. RIE는 건식 식각의 일종으로, 식각 기체를 플라즈마로 바꿔 식각하는 방식을 말한다. 혼합 기체(반응 기체와 불활성 기체 등)를 기기에 투입한 뒤 강력한 에너지를 가해주면 식각 기체가 전자(Electron), 양이온(Positive Ion), 라디칼(Radical)*로 분리된다. 여기서 무게가 가벼운 전자는 큰 역할을 못하지만, 양이온의 경우 전기장으로 웨이퍼 표면 방향으로 가속해 줄 경우 물리적 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양이온은 전하를 띄고 있기 때문에, 전기장 내에서 가속되면 방향성이 매우 강하다. 여기까지는 물리적 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라디칼 : 기체가 홀전자를 가지게 되는 등 높은 반응성을 가지게 된 상태
▲ 그림 4 : RIE 공정의 개요
하지만 양이온은 한 가지 효과를 더 만들어낸다. 충돌한 물질들의 결합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양이온들은 전기장으로 인해 직진성이 강했기 때문에, 위 그림의 빨간 부분에 주로 충돌하게 된다. 이로 인해 측면부는 결합이 강한 상태로 유지되는 반면, 전면부는 결합이 약해지게 된다. 이후 반응성 높은 라디칼이 접촉하게 되면 전면부가 더욱 빠르게 식각된다. 결국, 식각의 비등방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플라즈마 식각 기술은 플라즈마를 이용해 3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이다. 양이온을 생성해 물리적 식각을 시행할 뿐만 아니라, 식각 대상 물질을 약하게 만들고, 식각에 사용되는 기체의 반응성까지 높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화학적 식각의 장점인 선택비와 물리적 식각의 장점인 비등방성을 동시에 취한다.
물론 RIE를 사용하더라도 식각만으로는 100% 원하는 패턴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기타 조절되지 않는 문제들은 기체의 조합을 바꾸거나, 하드 마스크*를 사용하는 다른 공정 단계와 신물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드 마스크 : 패턴 미세화로 인해 기존 포토마스크 패턴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추가된 하부 포토마스크
식각 기체와 첨가 기체들
식각에 사용되는 기체들 역시 매우 중요하다. 앞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식각의 핵심은 화학반응이다. 따라서 우리가 제거하고 싶어 하는 물질에 맞춰 식각 물질(Etchant)을 선택해야 한다. 가스 선택의 핵심은 생겨난 부산물이 제거하기 용이한가, 선택비와 반응 속도가 얼마나 뛰어난가 등이다. 반응성이 좋기로 알려진 할로겐 계열(F:불소, Cl:염소, Br:브롬 등)의 화합물이 주로 사용된다.
▲ 그림 5 : 플라즈마 식각 가스 종류(출처 : ㈜도서출판한올출판사 [반도체 제조기술의 이해 443p])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의 물질을 웨이퍼 위에 바를 수 있기 때문에 이론상 식각해야 할 물질의 수는 무한하므로, 중요한 물질 몇 가지만 예시로 알아보도록 하자. 일반적으로 규소(Si) 계열의 물질은 불소 계열의 가스로 잘 제거된다. 규소는 불소와 만나면 불화규소를 형성하는 성질이 있는데, 불화규소는 기화가 잘 되기 때문에 빠르게 제거가 된다. 예를 들면, 불화규소의 일종인 SiF4의 경우, 기화점이 표준 기압에서 영하 90.3도이므로 반응과 동시에 바로 기화될 것임을 알 수 있다. 표면에서 식각이 일어나고 나면 바로 기체가 돼버리는 것이다.
절연막이나 보호용으로 흔히 사용되는 이산화규소(SiO2) 역시 불소를 가진 기체로 쉽게 제거된다. 하지만 순수 규소와는 달리 이산화규소는 이미 산소와 결합해 안정적인 상태이기 때문에(규소가 불에 탄 재라고 생각해도 좋다) 열을 발생시키는 기체를 사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불소에 탄소(C) 원자가 결합된 기체들을 식각용 기체로 주로 사용하게 된다. 기체의 발열 작용을 통해 산소로부터 규소 원자를 빼앗는 것이다.
HKMG*, BEOL* 공정에서는 금속성 물질을 식각해야 한다. 금속은 일반적으로 할로겐 계열(염소, 불소 등)과 반응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부산물의 기화점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들을 제거하는 것은 더 어렵다. 구리의 경우는 가스와의 반응 부산물의 기화점이 1,000℃가 넘는다. 구리가 식각 가스와 반응하면 겉에 녹이 슬듯 달라붙는단 의미이다. 하지만 이를 제거하기 위해 웨이퍼 온도를 1,000℃로 높여주게 되면 중요 소자가 손상된다. 이로 인해 구리는 압도적으로 전기적 특성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알루미늄의 전기적 특성이 한계에 다다르고 나서야 다마신(Damascene)*이라는 새로운 공법과 함께 도입될 수 있었다. 새로운 물질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양산에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공정이 도입되고 기존 공정들과 조화가 맞춰져야 가치가 있는 것임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참고로 위와 같은 반응은 완벽히 물질 종류에 맞춰 완벽하게 제어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규소를 잘 제거하는 기체는 이산화규소도 제거하는 경향이 있다(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규소와 이산화규소가 함께 노출돼 있는데, 특정 물질만 더 많이 제거해야 할 경우에는 기체의 조합을 잘 만들어야 한다. 불소 기체에 탄소 비율이 높아질수록 발열반응이 강해지므로, SiO2의 선택비가 오르게 된다.
첨가 기체 역시 매우 중요하다. 식각 기체에 산소(O2), 질소(N2), 수소(H2) 등 다양한 가스를 추가해 원하는 특성을 얻을 수 있다. 수소의 경우 규소 제거 과정에서 첨가하게 되면 비등방성을 높여주는 내벽을 생성한다.
여기에 일부 불활성 기체를 첨가하기도 한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문제가 됐던 네온(Ne) 가스가 대표적인 예로, 식각 기체의 농도를 조절하거나, 물리적 식각 효과를 제공한다.
*HKMG(High-K Metal Gate) : 누설전류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도록 개발된 새로운 모스펫 게이트. 기존에 다결정 실리콘(Polysilicon)이던 게이트는 금속으로 대체하고, 산화규소였던 절연막은 고유전체(High-K)로 대체한 트랜지스터
*BEOL(Back End Of the Line) : 매우 미세한 배선을 만들어 수십억 개의 단위 소자들을 서로 연결하는 공정
*다마신(Damascene) : 구리 배선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공정. 먼저 금속 자리를 식각한 뒤, 금속을 증착하고 물리적으로 여분을 갈아내는 방식
결론 : 밀도 상승의 또 다른 플레이어
식각은 물리적 방식과 화학적 방식을 결합해 원하는 미세 패턴을 만들어 내는 반도체 제조의 핵심 공정이다. 노광기와 같이 정밀 패턴을 직접 그리지는 않지만 기체의 비율, 온도, 전기장의 세기, 기압 등 다양한 요소를 조절함으로써 웨이퍼 전체의 수천억 개 트랜지스터가 거의 비슷한 모양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주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그리고 식각의 중요성은 최근 노광기 발전을 통한 밀도 상승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CPU와 AP 같은 제품에서 나오는 FinFET*이 그러한 예 중 하나다.
특히 SK하이닉스와 같은 메모리 회사의 경우, 주력 제품인 D램과 낸드(NAND) 모두 식각에 매우 크게 의존한다. D램의 경우 데이터를 담는 방인 캐패시터(Capacitor)를 점점 더 높게 만들어야 하는 문제가 있으며, NAND의 경우 가장 먼저 3차원화가 진행돼 식각 한 번에 100개가 넘는 층을 뚫어야 한다. 이런 제품들은 필연적으로 매우 높은 종횡비(Aspect Ratio)*를 가져야만 하며, 높은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식각 시작 부분과 바닥 부분의 지름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아야 하는 등 식각이 해결해야 할 일 역시 무궁무진하다.
*FinFET : 3차원 MOSFET의 일종으로, 전류의 통로가 물고기 지느러미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다.
*종횡비 : 식각 깊이를 식각 밑변으로 나눈 값. 종횡비가 클수록 깊게 판 것으로 생각하면 좋다.
▲ 그림 6 : D램의 내부 구조. 셀 영역에 수많은 가늘고 깊은 구조들이 캐패시터다.
그리고 우리는 식각의 원리를 보면서, 반도체 공정들이 얼마나 깊은 관계를 가지고 발전해 나가는지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위에서 알 수 있듯 규소와 이산화규소는 불소와 만나면 바로 기화돼 사라지기 때문에 제거가 매우 쉽다. 이를 조금 응용해 보면, 누군가 실리콘 웨이퍼를 게르마늄 등 다른 물질로 바꾸자고 했을 때 일어날 일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게르마늄 자체의 특성이 아무리 좋더라도, 게르마늄을 식각, 증착 등으로 가공할 수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제조 기술의 발전이 점점 어려워지는 지금, 필자는 반도체의 직간접적 종사자들과 미래의 후배들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 닥쳐올 새로운 장벽들을 넘기 위해서 인접한 공정들을 더욱 잘 이해하고 유관 조직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