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봉한 <어벤져스: 인피니티워>(이하 인피니티워)는 충격적인 엔딩과 함께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놓았습니다.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았던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저 최강빌런 타노스(조쉬 브롤린) 앞에 사뭇 진지해진 모습이었죠. 그만큼 내용은 무거워졌고 심오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1년이 흘러 모두가 고대하던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이 뜨거운 관심 속에 베일을 벗었습니다. 첫날에만 134만873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달성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전 편과 함께 쌍천만의 기록을 무난히 세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타노스와 펼쳐지는 두 번째 대결, 과연 승산은 있는 걸까요?
마블 유니버스를 완성하는 테크놀로지
▲ 영화 <아이언맨: 엔드게임> 스틸컷 (출처: NAVER 영화)
이번 작품에서는 앤트맨, 호크 아이 그리고 캡틴마블 등 인피니티워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추가로 등장합니다. 영화 <캡틴마블>의 경우 올해 첫 스타트를 끊은 마블의 작품이었죠. 엔드게임에서 어벤져스에 합류한 캡틴마블의 활약상이 기대되는데요. 이와 함께 타노스라는 강적 앞에서 더욱 끈끈히 뭉친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등 어벤져스 원년멤버들이 어떻게 타노스를 물리치고 각자의 결론에 도달할지도 무척 궁금합니다.
영화 내용도 기대되지만, 매번 마블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등장하는 최첨단 과학기술들은 미래 우리의 모습을 엿보는 것 같아 언제나 반갑고 또 새롭습니다. 마블의 상상력, 그리고 정교한 CG와 만나 구현된 첨단 테크놀로지들은 늘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줬죠.
물론 SF 영화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먼 미래에서도 이룩할 수 없는 ‘오버-테크놀로지(Over-Technology)’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아이언맨>의 아크 원자로나 <앤트맨>에 볼 수 있는 인간의 퀀텀렐름(양자역학, Quantum Realm) 진입 또는 신체 확대 기술, 가상으로 만들어진 <블랙펜서>의 세계 ‘와칸다’ 자체는 말 그대로 상상력에서 기인하는 ‘픽션’이죠.
▲ 영화 <아이언맨: 엔드게임> 스틸컷 (출처: NAVER 영화)
하지만 실현 가능한 테크놀로지도 무궁무진한 편입니다. 나노테크놀로지의 기술이나 양자역학 그 자체, 가상현실이나 홀로그램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에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거나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니까요. 그중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포함해 마블 시리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기술 중 하나입니다.
이쯤 되면 나도 아이언맨? 일상이 된 사물인터넷(IoT)
어벤져스 영웅들이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는 곳에는 항상 허공에 구현된 홀로그램 창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토니 스타크 곁에는 늘 자비스나 프라이데이 같은 인공지능 비서들이 함께하죠. 손짓 하나로 우주선을 움직이거나 음성 명령만으로 레이저빔을 발포하는 것 모두 사물인터넷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물인터넷이란 인터넷망 또는 네트워크가 연결된 특정할 수 없는 ‘사물(Things)’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까지 가능한 지능형 기술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인공지능(AI) 스피커가 있죠.
사물인터넷은 본래 무선인식 기술인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와 같이 어떤 사물에 센서를 부착하여 실시간 데이터 송수신을 위해 인터넷망을 활용하게 되면서 출발한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MIT 공대의 케빈 애쉬튼(Kevin Ashton) 교수는 글로벌 소비재 기업인 P&G 근무 당시 RFID 기술이 꽤 편리한 데이터를 수집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산업 분야의 표준 시스템으로 이어졌고,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RFID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고속도로의 하이패스(Hi-Pass)나 양주병에 부착된 식별코드 등을 꼽을 수 있죠. 사물인터넷이라는 키워드는 케빈 애쉬튼 교수에 의해 처음 언급되었고, 이후 RFID에 이어 다양한 제품군들이 인터넷 네트워크와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모바일 시대에 이르면서 우리는 통신망 없이 생활하는 게 어려울 정도가 되었죠.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이 중요한 작전에 나설 때면 늘 귀에 꽂고 있는 통신기를 기억하시나요? 적들과 격렬한 전투를 펼칠 때, 또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서로의 위치를 공유하고 각자가 처한 상황을 알리는 데 늘 활용되고 있는데요. 사실 영화 속에서는 특별한 연출이 아닌 이상 아주 어렵지 않게 통신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퓨리 국장이 캡틴 마블을 불러낸 것처럼 지구에서 우주 먼 곳까지도 통신이 가능하죠. 어벤져스 히어로들이 언제 어디서나 끊김 없이 소통하는 것 그리고 어디에서나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물인터넷 아니 만물인터넷이 구현한 또 하나의 히어로 파워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광역 통신이 차근차근 실현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추운 겨울 회식이 끝난 후 집에 가기 위해 누군가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뻗습니다. 택시는 모두 사람을 태운 채 매정하게 지나가버립니다. 반대로 한가한 거리를 돌며 손님을 찾으려 하는 택시들은 하루에도 수십 킬로미터를 운전하며 영업에 나섭니다.
소비자(사용자)와 택시를 이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걸까요? 카카오택시나 타다 등의 운송 서비스는 모바일과 인터넷, 단말기 등을 모두 하나로 잇는 연결고리와 같습니다. 전화로 콜택시를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어진 대신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바로 집 앞에서 택시를 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단편적인 모습일 수 있지만 이처럼 사물인터넷은 굉장히 많은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물론 가정에서 쓰이는 인공지능 스피커 역시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IoT 플랫폼입니다. 인공지능 스피커의 경우는 스마트홈을 구축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알람을 울려대며 아침의 정적을 깨우고 오늘 날씨를 알려줍니다. 보일러 온도를 제어하고 회사에 가기 위한 최적화된 교통수단이나 도로 사정을 알려주는 시스템은 우리가 꿈꾸는 사물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홈의 기술력입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는 만물인터넷(IoE) 세상, 머지않았다
싱가포르 DBS은행(The Development Bank of Singapore Ltd.)에서는 2030년 스마트홈의 기술력이 더욱 발전해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을 크게 바꿔놓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2025년이 되면 전 세계 750억 개에 달하는 디바이스들이 개인은 물론 가정, 회사 등에 설치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050년 전 세계 인구가 100억 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디바이스의 개수는 더욱 많은 편인데 결국엔 1인이 소유하게 되는 IoT 기기가 최소 2개 이상은 된다는 의미입니다. 기본적으로 모바일, PC는 물론이고 자동차, 인공지능 스피커, 웨어러블 기기 등 디바이스 종류도 다양해질 테니 과언은 아닌 듯합니다.
사물인터넷의 안정적인 서비스가 구현되려면 5G 이상의 통신 속도가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데이터를 한쪽 방향으로 송신하는 것이 아니라 수신까지 이뤄지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야 하므로 5G의 대표적인 특징인 초고속, 초저지연성, 초연결성이 사물인터넷을 이루는 주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사물인터넷이 등장하게 된 이후 각 디바이스에 탑재된 칩들도 5G와 더불어 각광을 받는 편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면서 인류는 반도체와 컴퓨터, 인터넷 등 집약된 기술을 여러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의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를 전 세계 다양한 산업 분야에 공급하면서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최근에는 사물인터넷 분야가 각광을 받으면서 ‘비메모리 반도체(non-memory semiconductor)’도 함께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는 정보를 저장하는 용도의 ‘메모리 반도체’와 상대되는 개념이며 정보 처리를 목적으로 합니다. 디지털 데이터를 연산, 처리, 제어, 변환 등을 수행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물인터넷에서 쓰이는 TV나 냉장고와 같은 가전, 인공지능 스피커, 자율주행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원격으로 작동하는 케이스라면 빠르게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가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인텔(Intel)이나 퀄컴(Qualcomm) 등이 이 분야에서 손꼽히고 있는 기업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이 분야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반드시 육성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사물인터넷은 우리 사회에 계속해서 스며들고 있습니다. 특정하지 않은 어떤 ‘하나’의 물건이 아니라 이제는 수많은 기기가 인터넷과 연결되어 데이터를 주고받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표현되었던 일부 시퀀스들이 현실화 되려면 아직 수많은 인프라가 조성되고 지금의 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켜야 하겠지만 사물인터넷만큼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가장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인류는 사물인터넷을 뛰어넘어 어벤져스의 그들처럼 모든 것이 이어지는 세상 즉 만물인터넷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