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술이 우리 생활 곳곳에 접목되면서 보다 편리한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의 건강과 직결된 의료 분야에서의 활약이 돋보입니다.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기술, ‘전자 눈’이 개발되면서 실명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인데요. 전자눈을 이식받아 앞을 보게 되었다는 소식도 속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바이오 분야에서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인공망막 기술, 함께 살펴보도록 할까요?
전자눈, 실명 환자 없는 세상을 열다
지난해 국내 실명 환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인공망막 이식 수술이 성공한 것인데요. 유전성 망막질환으로 완전히 시력을 상실한 50대 여성 환자는 수술을 통해 시력판의 가장 큰 글씨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을 회복했습니다. 1년이 지난 현재는 수십 회에 걸친 재활 훈련 끝에 다음 크기 글자까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흑백 저화질 CCTV 수준의 시력이지만, 도로 위를 달리는 차나 눈앞의 사람 등을 인식할 수 있게 되어 타인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은 망막색소변성 환자들에게 큰 희망이었죠.
▲ 아르구스2의 구성 (출처: Second Sight)|
환자의 눈에 이식된 인공망막은 미국 세컨드 사이트(Second Sight)에서 개발한 ‘아르구스2(Argus II)’로, 일종의 전자 칩입니다. 선글라스에 달린 소형 카메라가 영상을 촬영하면 이 영상이 망막에 이식된 칩에 전달되고, 다시 시신경을 거쳐 뇌로 직접 영상 정보를 보내 영상을 인식하게 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기기는 아닙니다. 망막신경세포가 살아있는 환자에게만 이식할 수 있어 국내 망막색소변성 환자 1만여 명 중 500여 명만 대상자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4000명 당 1명꼴로 발생하는 망막색소변성은 태어날 때는 정상 시력이지만, 이후 망막시세포의 기능에 점진적으로 장애가 발생하며 실명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기 때문에 환자들의 심리적 고통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죠.
명확한 치료방법이 없어 미국, 유럽 등 각국에서 인공망막 연구가 꾸준히 진행돼 온 가운데, 아르구스2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과 유럽 CE마크를 동시에 획득한 가장 대표적인 인공망막 기기이죠.
아르구스2를 개발한 세컨드 사이트에서는 망막색소변성증 환자뿐만 아니라 사고나 질병을 눈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실명 환자도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오리온’을 개발, 임상실험을 계획 중입니다. 아르구스2와 달리 망막이 아닌 뇌로 직접 영상을 보내기 때문에 전체 시각장애인에게 사용 가능합니다. 시판될 경우 기존 전자눈보다 약 15배 정도 많은 환자들이 시력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전자눈 아르구스2에 숨겨진 IT기술
전세계 실명 환자들에게 희망의 눈이 되어줄 아르구스2! 그렇다면 이 똑똑한 전자눈은 과연 어떠한 원리로 작동하는 걸까요?
▲ 아르구스2 인공망막 시스템 (출처: Second Sight)
① 먼저 안경 가운데 장착된 소형 비디오카메라가 외부의 이미지를 포착한 후, 케이블을 통해 휴대용 컴퓨터 프로세서로 정보를 전달합니다.
② 컴퓨터 프로세서는 전달된 영상을 시각 정보로 변환하여 다음 케이블을 통해 안경 옆에 부착된 외부 송신 안테나로 보냅니다.
③ 외부 송신 안테나는 안구에 이식한 내부 수신 안테나에 무선으로 전원을 공급하고 시각 정보를 전송합니다.
④ 수신된 시각 정보는 눈 안의 특수 내장 회로에서 전기 파동으로 변환되어 망막에 이식된 백금칩에 전달됩니다.
⑤ 백금칩이 활성화되면 수신된 영상 정보에 따라 60개의 미세전극이 각각 망막 신경세포를 자극, 뇌에서 시각 패턴을 인식해 이미지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국내 인공망막 기술은 어디까지 왔을까?
▲ KIST 센서시스템연구센터 김재헌 박사팀의 박병호 연구원이 인간의 눈을 모사한 생체소자를 개발해 시각신호를 테스트 하고 있다. (출처: KIST)
전 세계적으로 인공망막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도 인공망막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앞서 살펴본 아르구스2가 전자칩이라는 일반 물질을 사용했다면, 이 기술은 생체 물질인 단백질을 활용했다는 데 차이점을 갖습니다.
우리 눈의 망막은 사물을 볼 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눈의 가장 안쪽에 있는 망막은 눈을 통해 들어온 시각 정보를 전기적 신호로 전환해 뇌로 전달합니다. 우리 눈에는 총 4종류의 광수용체 단백질이 존재해 빛을 인지하고 색을 구분하는데, 망막의 핵심은 광수용체 단백질이라고 할 수 있죠.
보통 망막질환 환자의 경우, 이러한 광수용체 단백질이 망가져서 앞이 잘 안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요. 국내 연구진은 우선 광수용체 단백질을 인체 세포 내에서 생산하고 이를 분리해냈습니다. 이렇게 만든 광수용체 단백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광수용체 단백질을 그래핀 칩 위에 올렸는데요. 테스트 결과, 광수용체 단백질이 인간의 빛 감지 스펙트럼과 매우 유사한 스펙트럼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의 최종 목표는 이렇게 만든 광수용체 단백질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입니다. 아직 그 단계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 첫 단추인 소재를 개발했다는 데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인공망막 기술! 아직은 일부 망막색소변성 환자에 한해서만 수술이 가능한 단계이지만 현재 전세계적으로 연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의학계는 다른 실명질환 환자들 역시 앞을 볼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합니다. 세계적으로 시각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구는 약 2억 8500만 명. 하루빨리 모든 환자들이 세상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