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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긴장된 자세에서 그 애들이 얼마만큼 게임에 빠져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화면에서 나온 빛이 아이들의 눈으로 들어가고, 신경세포들을 통해 몸을 타고 흐르면서 전자들이 비디오 게임을 통해 움직이는 듯한, 말하자면 마치 피드백 폐쇄회로 같았다. 그 애들은 분명히 게임이 투영되는 공간의 사실성을 믿고 있었다.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다고 믿어지는 세계를.”                 

- SF 소설가, 윌리엄 깁슨

 

게임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래됐다. 기원전 1323년 사망한 고대 이집트 왕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도 주사위와 보드게임이 발견됐을 정도. 인류가 문명을 만든 이후 ‘놀지 않고’ 산 적이 드물다는 얘기다. 이는 전자오락 시대만 살펴봐도 마찬가지. 최초의 비디오 게임은 1958년 물리학자 윌리엄 히긴보덤(William Higinbotham)이 자신의 연구소 방문객을 위해 만들었다. 오실로스코프와 아날로그 컴퓨터로 만든 아주 간단한 게임이었지만, 방문객이 줄 서서 기다릴 만큼 인기가 높았다고. 미국에 대형 컴퓨터가 널리 보급된 시기가 1960년대니,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 게임이 먼저 만들어진 셈이다.

이처럼 인류와 역사를 같이하는 게임이지만, 대접은 박하다. 아니, 세상은 게임을 싫어한다. 게임에 몰입하는 탓에 생산적인 활동, 즉 공부나 일을 할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 오죽하면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체계에 ‘게임 사용 장애(Gaming Disorder)’를 포함했을까. WHO까지 가지 않더라도 ‘게임 한다’고 하면 좋은 소리 듣기는 힘들다. 소개팅 나온 상대에겐 이상한 눈초리를 받고, 사회에서는 아직 덜 큰 어른 취급을 받기 일쑤. 10세에서 65세 사이의 한국인 10명 중 7명 이상이 게임을 하는데도 말이다.1)

하지만, 게임이 정말 그렇게 나쁘기만 한 걸까? SK하이닉스가 최근 공개한 Tenacity Syndrome 4편 속 주인공, ‘게임을 사랑한 소년’ 한희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게임의 역사를 알아보자.

콘솔 게임: 게임 키즈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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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enacity Syndrome 4편 영상 캡처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집념 증후군(Tenacity Syndrome)에 걸린 이 소년의 이름은 ‘한희수’. 친구들과 함께 콘솔 게임(Console Game)2)을 즐긴다. 저 당시 콘솔 기기 중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2(Play Station 2, PS2)가 가장 유명하다. PS2는 1970년대 아타리 게임기, 1980년대 패미컴 게임기, 1990년대 슈퍼 패미컴과 플레이스테이션1의 시대를 거쳐 21세기 초반 세계를 장악한 게임기 모델. 한국에는 2002년에 정식 출시됐다.

PS2는 64bit CPU와 32MB 메인 메모리, DVD 드라이브를 장착하고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되게 낮은 사양이지만, 당시에는 무려 1억 5,768만대나 팔렸다. 희수가 친구와 가장 많이 즐긴 게임은 아마도 ‘철권 4’나 축구 게임인 ‘위닝 일레븐 7’일 확률이 높다. 모두 PS2 발매 당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게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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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enacity Syndrome 4편 영상 캡처

어라? 이제 보니 희수는 수업 중에도 게임을 즐기는 것 같다. 이럴 때 즐기기 좋은 휴대용 게임기로는 역시 2004년에 나온 닌텐도 DS 또는 2007년 한국에서 정식 발매된 닌텐도 DS Lite가 제격. 67MHz의 속도를 가진 32bit CPU와 4MB SRAM 사양을 가진 게임기다. 아니면 소니에서 나온 PSP(Play Station Portable)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역시 다소 아쉬운 스펙이긴 하지만, 닌텐도 DS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하드웨어 사양을 가진 PSP는 당시 게이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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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게임기의 성능이 재미와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 법. 1976년에 나와 히트한 마텔(Mattel)사의 휴대용 게임기인 ‘풋볼’은 지금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USIM 칩보다도 성능이 낮았지만, 그 인기는 지금 출시되는 웬만한 게임에 뒤지지 않는다.

모바일&온라인 게임: 혼자 말고 여럿이 함께하는 ‘멀티 모드’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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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의 게임 라이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학생 시절에는 핸드폰 게임을,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PC 게임을 즐기기 시작한다. 특히 희수가 수험생이었던 2010년대 초반은 ‘스타크래프트2’, ‘디아블로3’, ‘문명5’ 등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PC 게임 명작들이 쏟아지던 시기. 역할수행게임(RPG)3)의 고전으로 불리는 ‘디아블로’나, 최초로 실시간 전략게임(RTS)4)을 도입해 수많은 팬덤을 형성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는 한국의 e스포츠 시장을 견인하며 ‘PC방 신드롬’을 이끌었다.

이 게임들의 공통점은 바로 팀이 필요한 ‘멀티 모드’가 핵심 콘텐츠라는 것이다. 예전에도 이런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010년대에 나온 게임들은 특히나 다른 사용자들과 함께 즐기는 멀티 모드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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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양의 통신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모뎀 반도체 칩

이처럼 여러 유저가 네트워크를 연결해 실시간으로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건 PC나 스마트폰 등 하드웨어 기기에 탑재돼 대규모의 통신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주는 모뎀 반도체 칩이 발전한 덕분.

1990년대 후반 초고속 인터넷 환경을 제공하는 ADSL5) 칩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일세를 풍미한 PC방 신드롬도 없었을 것이고, 이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6)이나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팀대항온라인게임(AOS)7)도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VR 게임: ‘사회적 거리 두기’ 시대의 새로운 소통 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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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enacity Syndrome 4편 영상 캡처

이제 게임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오락이나 학습 수단을 넘어,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종의 연결고리가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이 확산하면서 일상 속 게임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게임이 집에만 있는 사람들의 답답함을 해소해주고 있는 것.

모험 시나리오를 활용한 재미있는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홈 트레이닝 게임 ‘링 피트’, 실제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을 느낄 만큼 실감 나는 체험 영상을 제공하는 가상 여행 플랫폼 ‘구글 어스’가 대표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단백질 구조를 변경하는 퍼즐게임 ‘폴드 잇(Fold it)’은 코로나19의 치료약을 찾는 유저 참여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런 변화를 의식했는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했던 WHO마저 입장을 바꾸었다. 효과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사람들에게 집에서 게임을 하자고 권하기 시작한 것. VR 게임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비대면 소통이 더욱 중요해질 미래 사회에서 게임의 역할 역시 지금보다 훨씬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진화가 가능한 것은 작은 게임기 안에 더 많은 세계를 압축해 구현하는 반도체 기술의 눈부신 발전 덕분. 각각의 기기들을 연결해주는 네트워크 역시 반도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용량 D램 메모리는 물론, 가상현실(VR) 구현에 필수적인 시스템 반도체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학습과 협업의 능력, 게임의 진화가 우리에게 남긴 것

오랜 시간 사람들의 일과를 방해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온 게임.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게임의 순기능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학습 능력. 게임은 재미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뭔가를 훈련하는 과정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게임에서 초보자가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은 죽는 것이다. 게이머들은 죽고 다시 시작해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하는 플레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해법을 찾는다. 이는 빠르게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고 실패를 기반으로 더 나은 성장 전략을 찾아내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전략과도 상당히 유사하다.

게임의 또 다른 순기능은 바로 ‘협업 능력’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Tenacity Syndrome 4편에 등장하는 희수와 동료 하이지니어들은 학창 시절 멀티 모드 플레이 중심의 RPG, RTS 게임을 하며 자연스럽게 타인과 협업하는 능력을 습득한 ‘밀레니얼’ 세대다. 이들은 개인의 능력 발휘와 경쟁도 중요시하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팀으로 뭉쳐 함께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동료 의식’을 겸비하고 있다.

집단 지성을 도모하는 이러한 능력은 문제 해결을 향한 끈기, 즉 집념과도 연결된다. 멀티 플레이에 익숙한 게이머들은 미션이 정해지면 그에 대한 해답이 반드시 있다고 믿고 그 해법을 찾는다. 어떤 종류의 미션이건 상관없다. 목표 달성을 위해 문제를 연구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팀을 꾸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한 가지 방법을 찾으면 공유하고, 다시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여러 가지 방법을 계속 찾아간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이는 바로 하이지니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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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enacity Syndrome 4편 영상 캡처

Tenacity Syndrome 4편 속,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는 희수와 동료들은 고난도의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게이머들이 서로 협력해서 미션을 클리어하듯, 치열하게 협업하며 마침내 신기술 개발에 성공한다. 천방지축 게임 키드였던 희수는 이렇게 게임을 통해 습득한 ‘집념’과 ‘끈기’로 세계를 놀라게 한 인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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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enacity Syndrome 4편 영상 캡처

그동안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게임을 멀리했다면, 오늘 친구나 가족과 함께 재밌는 게임 한 판 해보는 건 어떨까.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즐거움을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몰랐던 게임의 매력에 흠뻑 빠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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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2018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2) TV에 연결해서 즐기는 비디오 게임(video game). 
3) ‘Role Playing Game’의 약자. 유저가 가상의 세계관 속 캐릭터가 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의 게임을 말한다. 
4) ‘Real-Time Strategy’의 약자. 실시간으로 자원을 채취해 건물을 짓거나 병력을 생산하고, 이를 활용해 문명을 발전시키거나 전쟁에서 승리하면 끝나는 형태의 전략 게임을 말한다. 
5) ‘Asymmetric Digital Subscriber Line’의 약자. 별도의 회선 설치 없이 전화선을 이용해 컴퓨터의 고속 데이터 통신을 지원하는 통신수단. 통신 속도를 크게 단축해 1990년대 국내 인터넷 붐을 일으켰다. 
6) ‘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의 약자. RPG 게임의 일종으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여러 플레이어가 동시에 같은 가상의 세계에 참여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의 게임을 말한다. 
7) ‘Aeon of Strife’의 약자. 유저 제작 변형(Game Modification) 방식을 통해 RTS, RPG 등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결합한 온라인 게임을 말한다.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가 대표적.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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