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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곡경(旁岐曲逕). ‘옆으로 난 샛길과 구불구불한 길’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바른길을 좇아 정당하게 일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의 각종 압력에 직면했던 중국 D램 업체 푸젠진화가 외통수를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푸젠진화의 D램 사업 추진이 파국을 맞고 있어서입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제동 걸린 푸젠진화의 D램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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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자와 만난 중국 내 반도체 업계 소식통은 “푸젠진화가 D램 라인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사업)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사실상 D램을 포기하고 사업의 방향을 파운드리로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허페이창신과 함께 중국내 양대 D램 업체 중 하나인 푸젠진화가 최종적으로 D램 사업을 포기하면 중국 반도체 굴기의 한쪽 날개가 꺾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미국 정부의 강력한 압박의 결과입니다. 미국 상무부는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를 비롯한 자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에게 푸젠진화에 장비를 공급하지 말도록 조치했습니다. 11월에는 푸젠진화와 푸젠진화의 협력업체인 대만 UMC 직원들이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의 기술을 빼돌렸다며 고소했습니다.

이 같은 압박에 D램 생산을 위한 기술적 자문을 해온 UMC는 “관련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푸젠진화와 하고 있는 D램 관련 연구개발 작업을 중단하겠다”라고 발표했습니다. D램 개발을 참여해온 UMC 엔지니어의 절반도 이달 초 다른 영역으로 전환 배치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당초 지난해 말까지 D램 생산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던 푸젠진화는 시제품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에도 핵심 장비 중 하나가 입고되는 등 생산라인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으로부터 추가 장비 반입이 제한되고 기술 자문을 맡은 UMC 마저 손을 들면서 D램 생산에 나서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해졌습니다.

결국 D램 사업 포기는 예정된 수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원래 파운드리 사업을 영위해온 UMC는 푸젠 진화의 파운드리 전환 자문을 맡았습니다. 더 나아가 UMC가 파운드리로 전환한 푸젠진화 공장을 직접 경영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美 마이크론 소송으로 불씨 지폈다

재미있는 점은 먼저 사태를 발전시킨 것이 중국 측이었다는 것입니다. 푸젠진화와 UMC는 특허침해로 미국 마이크론을 제소했으며 푸젠진화가 있는 푸젠성의 푸저우 지방법원은 지난해 7월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 내 제품판매를 중단시키는 가처분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미국에 푸젠진화를 강력하게 제재할 빌미를 준 것으로 평가됩니다. 때문에 중국 현지에서는 마이크론 판매 중단 가처분명령을 내린 푸저우 법원 관계자들이 징계를 받았다는 소문까지 나옵니다.

푸젠진화는 25㎚(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을 통한 D램 생산을 공언하고 있지만 실제 기술 수준은 32㎚로 평가됩니다. 20㎚ 공정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25㎚ 공정에 힘을 쏟고 있는 허페이창신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기술 수준이 떨어집니다. 중국은 D램 국산화를 위해 2016년부터 두 업체에 대한 대규모 설비투자를 했습니다. 푸젠진화가 최종적으로 파운드리 공장에 머물게 되면 그동안 들인 수조원의 투자비의 대부분이 매몰비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푸젠진화 사태는 미·중 무역전쟁이 한국 반도체 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업계의 추격이 큰 지장을 받고 있어서입니다. 물론 중국이 이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체 기술과 장비 수준을 끌어올린다면 시간이 지난 뒤 더 무서운 경쟁자로 떠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푸젠진화 사태는 미·중 무역전쟁이 한국 반도체 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업계의 추격이 큰 지장을 받고 있어서입니다. 물론 중국이 이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체 기술과 장비 수준을 끌어올린다면 시간이 지난 뒤 더 무서운 경쟁자로 떠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

노경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