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용하는 전자 기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메모리가 사용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 기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메모리가 사용됩니다. 일반적으로 ‘D램’이나 ‘낸드(NAND)플래시’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목적에 따라 ‘EEPROM’, ‘노어(NOR)플래시’, ‘S램’ 등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강유전체를 사용하는 F램은 낸드·노어플래시와 마찬가지로 비휘발성, 그러니까 전기가 없어도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입니다. 속도가 무척 빠르고 전력소비량이 낮아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강유전체 메모리(F램)란 무엇이며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곧 다가올 미래에 어떻게 활용이 될 지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빠르고 저전력의 비휘발성 메모리

2147013A574BDA951A.jpeg▲ 비휘발성 메모리의 일종인 강유전체 메모리(F램)

‘강유전체 메모리(Ferroelectric Random Access Memory, F램)’는 전원이 끊어져도 데이터를 보존할 수 있는 비휘발성 메모리의 일종입니다. D램, S램과 같은 메모리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저장된 데이터가 곧바로 사라지는 휘발성 메모리죠. 만약 전자 기기를 켜고 끌 때마다 운영체제(OS)나 프로그램을 매번 설치해야 한다면,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을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비휘발성 메모리는 주로 D램이 많이 쓰이는 주기억장치보다는 보조저장장치에 더 알맞은 셈인데요. 특히 F램은 속도도 빠르면서 내구성이 높고 전력소비량이 낮아 휴대용 제품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F램의 역사는 생각보다 깁니다. 지난 1987년 첫 등장을 했으니 내년이면 30주년이 되네요. 당시 ‘국제전자소자회의(International Electron Device Meeting, IEDM)’에 처음으로 이름이 등장했는데, ‘국제고체회로학회(International Solid-State Circuit Conference, ISSCC)’, ‘VLSI(Very Large Scale Integration)’와 더불어 세계 3대 반도체 학회이니만큼 상당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용량은 512비트에 불과했지만 이듬해에는 16킬로비트(Kb)로 늘어났으며 이후에도 꾸준히 관련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낸드·노어플래시가 대중화되기 이전까지 반도체를 이용한 보조저장장치의 구성은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었습니다. EEPROM(electrically erasable programmable read-only memory)은 D램보다 가격이 비쌌고 전력소비량에서도 불리했습니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D램이나 S램에 배터리를 연결해 데이터를 사라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 실제로 고안되기도 했지만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F램이 많은 기대를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재료의 한계에 봉착했던 F램

223EB03A574BDA961F.jpeg▲ 강유전체의 특성

 

F램의 핵심은 역시 강유전체 그 자체에 있습니다. 강유전체는 말 그대로 강유전성(Ferroelectric)을 가진 재료를 뜻하는데, 외부에서 전기장이 가해지지 않아도 전기적 분극을 유지하는 자성을 가지고 있죠. 전기적 분극을 유지한다는 것은 극성을 바꿔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본 구조인 ‘0’과 ‘1’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내부적으로 살피면 D램과 거의 동일한 구조(1개의 트랜지스터, 1개의 커패시터)를 가지고 있어 데이터를 읽고 쓰는 속도가 빠릅니다. 문제는 셀에 이용하는 강유전체 재료인 ‘티탄산 지르콘산 연(PbZrTiO3, PZT)’을 사용한 박막은 두께가 일정 수준으로 얇아지면 분극을 유지하기 어려워집니다. 미세공정을 발전시킬수록 원가절감과 함께 용량이 커져야 하지만 F램은 이 부분이 쉽지 않았다는 겁니다. 1987년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등장한 F램이 모두 예외 없이 130nm에 머무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F램의 새로운 재료인 HfO2의 발견과 접목

F램은 강유전체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박막을 더 얇게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절실했습니다. PZT를 비롯해 ‘탄탈산스트론튬비스무스(SrBi2Ta2O9, STB)’, ‘비스무스철산화물(BiFeO3, BFO)’ 등이 사용됐지만 미세화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하프늄(Hf)’과 산소(O)을 결합한 ‘산화하프늄(HfO2)’이 생각보다 괜찮은 재료라는 것이 발견됐습니다. HfO2 자체가 생소한 재료는 아닙니다. 인텔이 45nm부터 적용한 중앙처리장치(CPU)가 대표적인 예인데 하프늄 기반 하이K 메탈 게이트를 통해 터널링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F램에 쓰일 정도로 강유전체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는 미처 몰랐던 것이죠. HfO2 박막의 두께는 7~12nm에 불과한데 기존 재료인 PZT와 비교하면 1/10 정도입니다.

HfO2가 어떻게 이런 강유전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가열후 냉각할 때 정방형 결정구조를 갖추는 과정에서 캡(Cap), 다시 말해 일정한 층을 이루게 되면서 강유전성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규소(Si)를 비롯해 몇 가지 재료를 얼마나 섞어야 할지, HfO2를 제조할 때 얼마나 적절한 온도에서 가열하고 냉각시켜야 할지 등에 따라 향후 F램 성능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IoT 시대 재조명 받는 F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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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업계는 전방산업과 후방산업을 가리지 않고, 저전력이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IoT 시대로 접어들면서 더 많은 반도체가 쓰일 수밖에 없는데 전기를 덜 먹어야 다양한 센서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블루투스LE’, ‘지그비(Zigbee)’와 같은 저전력 통신이 각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F램은 EEPROM과 비교해 가격을 제외하고 용량은 물론이거니와 데이터 다시쓰기, 내구성, 전력소비량에서 앞섭니다. 64Kb 용량의 데이터를 다시쓰기 했을 때 20MHz로 작동하는 EEPROM과 비교하면 780배 더 빠르죠. 다시쓰기 횟수도 EEPROM이 1초간 100회 데이터를 다시 쓴다면 3시간 만에 수명이 다하지만 F램은 325년이나 버틸 수 있습니다. 전력소비량은 EEPROM이 2.7밀리와트(mW), F램이 0.027mW로 100배 정도 낮습니다. 빠르면서도 전기를 덜 먹으니 정전이나 사고와 같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압이 급격히 떨어지더라도 안전하게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내구성도 높죠. 이런 특성을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분야로는 자동차나 헬스케어 등이 있겠네요. 두 분야 모두 IoT에 있어 핵심적인 애플리케이션으로 꼽힙니다. HfO2의 재료 개선과 함께 용량을 지금보다 더 늘린다면 F램이 더 많은 전자 기기에 사용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전력, 내구성이 보장되어 있는 강유전체 메모리, F램. 세상에 나온 지 벌써 약 30년이 된 이 반도체는 사물인터넷 시대를 맞아 다시 재주목 받고 있는데요. 대규모 보조저장장치는 낸드플래시, 혹은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작고 가벼우면서 다양한 환경에 적합하도록 이루어져 있는 만큼 비휘발성 메모리로써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앞으로 많은 전자기기에 사용되며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되는데요. 저전력이 더욱 중요하게 생각되는 지금 시대에서 F램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 관심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디지털데일리

이수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