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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게임을 닌텐도 스위치(Nintendo Switch)’1) 같은 휴대용 게임기로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휴대용 게임기의 폼팩터(Form Factor, 제품의 외형이나 크기, 물리적 배열)에는 여러 매력이 있다. PC 앞에 바르게 앉아 플레이하는 대신 드러누워서 뒹굴뒹굴 조작할 수 있고, 가족이 점령한 TV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아무도 TV 리모컨을 들고 있지 않는다면 본체를 독(Dock)2)에 연결한 후, TV 화면으로 송출해 게임을 즐기는 선택지도 있다. 이처럼 각자 가족의 문화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PC게임은 늘 최신 사양을 고려해 난이도 높은 소프트웨어로 제작된다. 당연히 휴대용 게임기에서 PC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려면 크기와 용량이 제한된 소형 폼팩터에 PC 수준의 하드웨어 성능을 갖춰야 하고, 낮은 전력 소모량, 훌륭한 인터넷 환경과 같은 추가적인 요소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는 반도체 및 통신 기술이 크게 발전한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은 미션이다.

하지만 최근 휴대용 게임기로 PC게임 플레이가 가능한 새로운 기기의 등장이 예고돼,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게임 소프트웨어 디지털 유통 플랫폼 스팀(Steam)’3)을 서비스하고 있는 밸브 코퍼레이션(Valve Corporation, 이하 밸브)이 올 12월 중 휴대용 PC 게임 콘솔(Console) ‘스팀 덱(Steam Deck)’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것. 이에 게임 애호가들은 고대해온 새로운 게임 환경이 구현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고 공식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1) 닌텐도 스위치(Nintendo Switch): 닌텐도가 가정용 콘솔 게임기와 휴대용 게임기를 통합해 2017년에 출시한 신개념 게임기.
2) (Dock): /패드를 연결해 충전이나 스피커, PC와의 데이터전송 등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연결장치.
3) 스팀(Steam): 본래 게임 자동 업데이트 클라이언트로 시작해 PC게임 표준 플랫폼으로 자리 잡음.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온라인 게임 유통 시스템으로 이용자는 스팀 클라이언트에서 게임을 구입하고 라이브러리에 저장해 언제든지 플레이 할 수 있음.

스팀의 성공과 밸브의 플랫폼 확장 시도, ‘프로톤을 만나 꽃 피우다

PC는 자유로운 플랫폼이다. PC 앞에서는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수 있고, 여가시간에는 본격적으로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게임 콘솔처럼 역할이 고정돼 있지 않다. 이 자유도는 게임 애호가들에게 오랜 기간 PC가 선호되던 주된 이유였다. 게임 기기를 살 때 가족의 동의를 얻어낼 명분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자유가 복잡할 수 있다. 정해진 스펙(Spec.)이 존재하는 콘솔이나 스마트폰과 달리, PC는 구매 시 무한대에 가까운 부품의 조합, 다양한 운영체제의 버전 등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부여한 만큼 신경 쓸 일이 많다. 특히 소프트웨어의 구매와 설치가 번거로움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PC게임 애호가들의 번거로움을 일거(一擧)에 해소해준 게임 소프트웨어 디지털 유통 플랫폼(ESD, 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4) 이 바로 밸브의 스팀(Steam)이다.

스팀은 출시 직후부터 성공을 거뒀다. 출시 타이밍도 좋았으며, 커뮤니케이션 기능 같은 유저 중심의 운영으로 지금까지 PC 게임 플랫폼 중에서 높음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밸브는 스팀이 윈도우 운영체제에 갇힌 앱 스토어 수준에 머무는 것을 원치 않았다. (Mac)과 리눅스(Linux) 운영체제에서 구동할 수 있는 버전도 개발하고, 모바일로도 진출했다. 비록 리눅스에 기반을 두기는 했지만, 독자적인 운영체제인 스팀OS(SteamOS)’를 만들었고, 이를 가동할 PC 기반 콘솔과 조이스틱 컨트롤러도 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생각보다 저조했다. 즐길 만한 리눅스 게임의 수가 윈도우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적었다. 스팀에서 유통되는 게임 중 정식으로 리눅스를 지원하는 버전은 15%에 불과하다. 2015년 당시 버전의 스팀OS에서는 렌더링(Rendering, 2차원 혹은 3차원 데이터를 사람이 인지 가능한 영상으로 변환하는 과정)도 윈도우보다 20~50% 더 느렸다. 스팀OSDirectX5) 대신 OpenGL(Open Graphics Library)6)을 썼는데, 최적화 수준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 밸브의 기대와는 달리 스팀 사용자 중 리눅스 점유율은 오랜 기간 1%를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밸브는 비슷한 시기 또 다른 희망을 찾아냈다. 윈도우 게임을 리눅스에서 구동하기 위해 개발된 호환성 기술 프로톤(Proton)’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 프로톤은 리눅스나 맥에서 윈도 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한 오픈소스 기술인 와인(WINE)7)을 사용해, 윈도우 게임을 리눅스 기반 스팀OS에서도 구동할 수 있게 해줬다. 여기에는 DXVK(Direct3D-Vulkan)8)라는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9) 변환 기술이 한몫했다.

밸브는 이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게임 애호가들에게는 게임만 잘 구동된다면 운영체제가 윈도우든 리눅스든 아무 상관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복음(福音)’을 전 세계 게임 애호가들에게 다시 한번 알려주기로 했다.

4) 소프트웨어 디지털 유통 플랫폼(ESD, 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 제품을 인터넷을 통해 구입 후 바로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제품의 포장이나 내용물이 없기 때문에 패키지 방식 제품에 비해 저렴함.
5) DirectX: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개발한 게임 프로그래밍 작업을 위한 윈도우용 종합 멀티미디어 라이브러리.
6) OpenGL(Open Graphics Library): 크로노스 그룹이 개발 및 관리하고 있는 2차원 및 3차원 컴퓨터 그래픽 인터페이스.
7) WINE(Wine is Not an emulator): 오픈소스 윈도우 API/ABI 호환레이어로 윈도우가 아닌 운영체제에서도 윈도우 기반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게 함. 따라서 윈도우를 가상머신과 같이 에뮬레이션하지 않고, 윈도우 API를 번역해 유닉스 기반 함수를 호출하는 방식을 사용해 큰 퍼포먼스 저하 없이 구동함.
8) DXVK(Direct3D-Vulkan): 개방형 3D 그래픽 API. OpenGL, Direct3D, 메탈(Metal)등과 경합 중. 근래 비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선호되고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처럼 독자적 API를 지닌 곳은 적극적이지 않음.
9)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사이의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나 메시지 형식.

콘솔계의 쌍두마차’ Xbox PS에 도전장을 내민 스팀 덱

지금은 닌텐도 스위치가 약 8,900만 대라는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하는 시대다. 동시에 플레이스테이션5(PlayStation5, 이하 PS5) Xbox 시리즈의 XS와 같은 신형 콘솔이 AMD(Advanced Micro Devices)RDNA2과 같은 신형 그래픽 아키텍처(Graphic Architecture)를 탑재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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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브의 도전은 닌텐도 스위치처럼 생겼지만 PS 또는 Xbox와 동세대의 기술인 RDNA2를 탑재한 하드웨어를 제작하고, 보유한 자산인 스팀을 100%에 가깝게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휴대용 PC 게임 콘솔 스팀 덱이다. 겉모습은 닌텐도 스위치와 흡사하지만 아키텍처 기준으로는 PS5Xbox X에 가까운 신기종으로, 4코어(Core) 8스레드(Thread)10) AMD 반 고흐(Van Gogh)11) APU(2.4~3.5GHz)12)를 채택했다. ‘반 고흐는 지금보다 한 세대 이전(7nm 공정) Zen 2세대의 CPU RDNA2의 그래픽 컴퓨트 유닛(CU, Compute Unit)13) 8개를 탑재한 저전력 모델이다.

10) 스레드(Thread): 동시 병렬 처리를 위해 처리를 분할하는 단위. 하나의 프로세스 내에서 여러 스레드가 각각의 실행 맥락을 만듦.
11) 반 고흐(Van Gogh): AMD는 제품 코드명에 화가 이름을 붙이고 있음.
12) APU(Accelerated Processing Unit): AMD가 정의한 개념으로 CPU/GPU 통합칩을 의미함.
13) 컴퓨트 유닛(CU, Compute Unit): 연산 가능한 코어인 스트림 프로세서 일부를 크게 묶어 하나의 큰 코어처럼 구성한 형태. CPU의 코어와 개념상 다른 GPU의 경우 엔비디아는 쿠다 코어(CUDA Core), AMD는 컴퓨트 유닛(Compute Unit)라고 명명함.

얼마 전 이 칩의 정보가 유출됐을 때는 모두 반신반의했다. CPUAMD의 주력 칩보다 이전 세대지만, 그래픽은 최신 세대로 엇박자처럼 느껴졌기 때문. 하지만 Zen2RDNA2의 조합은 이미 PSXbox의 맞춤 SoC14) 칩에서 검증된 조합으로, 휴대용 게임기의 성능을 개선한 것이 아닌 PSXbox와 같은 콘솔 기기를 소형화한 것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선택이다.

AMD가 최신 가정용 게임 콘솔 기기 시장을 싹쓸이할 수 있었던 건 x8615) 기반에서 SoC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CPU GPU 등 모듈 모두를 칩 하나에 넣는 SoC 칩을 사용하면 전력 소모는 더 적고 열도 덜 발생한다.

14) SoC(System on Chip): 정보통신기기에 쓰이는 핵심 부품들을 하나의 반도체에 집약해 기존에 여러 개의 칩이 수행하던 연산 기능, 데이터의 저장 및 기억, 아날로그와 디지털 신호 변화 등을 하나의 칩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함.
15) x86: 인텔이 개발한 마이크로프로세서 계열. 이들과 호환되는 프로세서들에서 사용한 명령어 집합 구조를 통칭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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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팀 덱의 칩은 이들 콘솔에 비해 CPU 코어수는 절반에 불과하고 RDNA28CUsPS5(36CUs)Xbox 시리즈 X(52CUs), S(20CUs)에 비하면 부족하다. , 테라플롭스(TFLOPS)16)를 기준으로 삼으면 스팀 덱의 1.6TFLOPS XBox One S(1.4)보다는 높지만 PS4(1.8)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최신 콘솔인 PS5 10.28TFLOPS, Xbox 시리즈 X 12TFLOPS라는 점을 감안하면 낮은 수치다.

하지만 그만큼 전력 소모량과 열 발생량은 더 줄어든다. 스팀 덱은 어디까지나 휴대용 기기다. 이 칩의 전력 소모량은 4~15TDP17)로 콘솔보다 낮은 수준이다. 언제 어디서든 들고 다니며 플레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16) 테라플롭스(TFLOPS): 플롭스(FLOPS, Floating-point Operations Per Second)는 컴퓨터의 성능을 수치로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는 단위로 초당 부동 소수점 연산을 의미하며, 테라(tera)1012승으로 1테라플롭스는 1초에 1조번의 연산을 하는 것을 뜻함.
17) TDP(Thermal Design Power): 전자 기기가 사용 시 얼마나 열을 발생시키고 얼마나 전력을 쓰는지 평가하는 단위.

휴대용 게임 PC ‘스팀 덱’, 반도체 기술력으로 성공 가능성을 높이다

스팀 덱의 메모리는 16GB LPDDR5를 탑재하고 있다. 스마트폰용 모바일 메모리로서는 최신형이고, 쿼드 채널(Quad Channel)18)를 채택해 메모리 대역폭에도 신경을 썼다. 통합칩의 경우는 특히 메모리 대역폭이 중요한데, CPU/GPU가 같은 메모리풀을 공유해 입출력이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18) 쿼드 채널(Quad Channel): 4개의 메모리를 한 그룹으로 묶어 4배의 대역폭을 갖게 함으로써 데이터 전송 속도를 빠르게 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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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 덱은 단지 휴대용 게임기가 아니라 사실상 PC. 이에 닌텐도 스위치처럼 대화면과 마우스, 키보드를 연결해 본격적으로 PC로 쓰는 상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밸브의 FAQ에 따르면 스팀 덱을 기본적으로 PC”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소비자가 원하는 운영체제를 설치할 수 있다고도 명시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윈도우 11를 설치할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밸브도 이를 허용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특정 사용자가 스팀 덱에 윈도우를 설치해서 쓰지만 스팀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밸브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적극적인 권장은 아닐 것이다. 향후 디바이스 드라이버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드웨어는 합격점이라도 그 성패는 소프트웨어의 완성도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프로톤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데, 안타깝게도 현재 스팀의 탑 10 게임 중 절반이 작동되지 않는다. 유명 게임일수록 윈도우에 특화된 기술을 써서 치트(Cheat) 대책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밸브는 스팀 덱 공식 발매일까지 남은 기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스팀 덱은 매력적이지만 성공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GPD Win’, ‘Aya Neo’ 등의 PC를 소형 폼팩터화하는 시도는 계속됐지만, 아직까지 두각을 나타낸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스팀을 보유한 밸브라면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실제로 그간 1% 미만이던 스팀 내 리눅스 이용자 수가 스팀 덱 공개 이후 1%를 넘었다. 브랜드의 힘이지 않을까 싶다.

밸브가반도체의 기술력과 브랜드의 힘을 바탕으로 휴대용 PC 게임 콘솔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12월 발매 예정이지만(한국 정식 발매 소식은 아직 없다), 이미 주문은 내년까지 밀려 있다. 스팀 덱이 이 기세를 타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 본 기사는 기고자의 주관적 견해로, SK하이닉스의 공식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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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이

김국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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