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전기역학의 재규격화이론을 완성시킨 공로로 도모나카 신이치로, 리처드 파인만과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줄리안 슈윙거는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인물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재 과학자로서 리처드 파인만과 꾸준히 비교의 대상이 되곤 했지만, 활발하고 외향적인 리처드 파인만에 비해 내성적이고 혼자만의 연구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던 그는 외부 언론 노출을 극히 꺼려했기 때문입니다. 라리타-슈윙거 방정식, 리프먼-슈윙거 방정식, 슈윙거 모형 등 여러 가지에 업적을 세운 줄리안 슈윙거. “볼펜 한 자루가 그의 연구실”이라고 했을 정도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던 그의 연구 열정이 어떠한 다양한 이론들을 만들어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할까요?
슈윙거는 1918년 2월 12일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16살이었던 1934년에 첫 논문을 써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뉴욕대학교 학창 시절에는 정규 강의를 대부분 무시하고 혼자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등수학과 물리학 서적을 탐독했는데요. 이 무렵에 슈윙거는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를 만난 자리에서 EPR 논문의 미묘한 부분을 수학적으로 멋지게 해석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젊은 천재를 제자로 키우고 싶었던 라비는 그를 콜롬비아대학교로 불러들였죠.
★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는 누구?
이지도어 아이작 라비(1898년 7월 29일-1988년 1월 11일)는 유럽 갈리시아(오늘날 폴란드 지역)에서 태어난 미국의 물리학자입니다. 1944년 핵자기 공명의 발견에 대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 EPR 논문이란?
물리학의 양자역학에서 EPR 역설(EPR Paradox)은 물리량의 측정 문제를 제기한 정교한 사고실험입니다. 1935년 아인슈타인(Einstein)과 포돌스키(Podolsky) 및 로젠(Rogen)은 양자역학이 완전한 물리 이론이 아님을 보이기 위해 이 역설을 발표했으며, ‘EPR’은 그들 이름의 머릿글자를 딴 것입니다.
슈윙거는 열여덟에 대학교를 졸업한 뒤 라비의 제자로 들어가 3년만에 박사학위를 받기에 이릅니다. 그 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2년동안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조수가 되어 공동 연구를 수행했고,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인디애나주의 퍼듀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공학도들에게 물리를 가르쳤죠. 전쟁 기간 도중 매사추세츠 공과학에서 일했으며, 주로 밤에 혼자 일했다고 하는데요. 그의 내성적이면서도 조용히 연구에 몰입하길 좋아했던 평소 성격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그는 이 기간에 레이더에 대해 연구하였는데요. 이것이 훗날 그가 양자전기역학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1946년 2월, 그는 하버드대학교 부교수가 되었고, 2년 후에는 30세라는 이른 나이에 정교수로 승진했습니다.
오펜하이머와 일한 이후 2차 세계대전 중에 슈윙거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대신에 매사추세츠 공대 방사선연구소(Radiation Laboratory)에서 연구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레이더의 개발에 이론적인 도움을 주었으며, 전쟁 이후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가 1945년에서 1974년까지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는데요.
▲ 상대론적 양자전기역학의 주요 이론을 정립한 줄리안 슈윙거
슈윙거는 레이더를 개발하면서 그린 함수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졌으며, 양자장론을 만들 때 그린 함수를 상대론적 불변량이 되도록 정의하였습니다.
★ 그린 함수란?
미분방정식을 풀기 위해 사용하는 함수로, 물리학, 공학의 전반에 걸쳐 응용되고 있으며, 특히 물리의 양자장 이론에서 자주 쓰입니다. 1830년에 이 방법을 개발한 영국의 수학자 조지 그린의 이름을 따 그린 함수라 불리고 있답니다.
양자전기역학에서는 그린 함수를 사용함에 있어서 전자의 자기 모멘트(물체가 자기장에 반응하여 돌림힘을 받는 정도)를 계산하는 데 1차 수정을 가할 수 있었는데요. 이때 상대론적 불변량이 아니었던 계산방식으로 계산할 때 전자의 자기 모멘트는 발산하고, 슈윙거의 상대론적 대칭성을 이용한 방식으로는 그 발산을 피해갈 수 있었기에 유한한 계산 값을 줄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재규격화이론을 개발하고, 양자전기역학이 1차 근사에서 완전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또한, 양자 작용 원리(quantum action principle)와 양자장의 운동 방정식을 연구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이를 통해 현대 양자장론을 정립했습니다. 이 외에도 최초의 전기·약 작용 모형을 발표하였으며, 중성미자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였고, 스핀 3/2의 입자를 다루는 이론을 창안하기도 했죠.
★ 전기·약 작용이란?
양자장론에서, 전기·약 작용(electroweak interaction) 또는 전약력은 높은 에너지에서 약한 상호작용과 전자기력이 하나로 통합하여 만드는 힘입니다. 낮은 에너지에서는 약전자기 대칭이 저절로 깨지면서 약력과 전자기력이 분리되죠!
이처럼 슈윙거는 특유의 천재성으로 일반 학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분야들에 도전하고 깊이 파고들어 끝내는 답을 찾는 근성을 보여주었는데요. 슈윙거는 생각이 깊은 보수주의자로 연력적 접근법을 주로 사용했으며 한번 옳다는 느낌이 들면 수학이 아무리 복잡해서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슈윙거의 연구 결과는 명확했지만, 수학적 구조가 너무 복합해 정작 그 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은 슈윙거 자신밖에 없는 때도 종종 있었다고 해요. 이러한 특유의 성격 때문에 그는 외향적이며 친언론적이었던 리처드 파인만과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유명한 물리학자로서 리처드 파인만은 슈윙거의 연구 인생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둘은 확연히 다른 연구법으로, 같은 노벨상을 수상했던 라이벌이었기 때문이죠. 파인만은 물리학자들 중에서도 급진파에 속하는 인물이었는데요. 그는 깊이 파고드는 슈윙거와는 달리 직관적인 판단을 선호했고, 정상적인 풀이법보다는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지름길을 찾으면서 희열을 느끼곤 했다고 합니다.
▲ (좌측부터) 줄리안 슈윙거와 리처드 파인만
양자장론을 연구함에 있어서도 슈윙거는 방정식과 기호를 이용한 접근법을 선호했습니다. 그는 국소 장 연산자와 그 사이의 관계식을 발견했으며, 물리학자들이 이 연산자의 대수를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는데요. 이와 대조되는 방향으로, 파인만은 직관적인 방법을 선호했으며, 양자장론의 물리가 파인만 도형을 통해서 전부 유도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죠. 슈윙거는 파인만 도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요즘의 실리콘 칩과 같이, 파인만 도형은 계산법을 대중에게 보편화시켰다."
슈윙거는 파인만 도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파인만 도형을 통해서 학생들이 양자장을 입자로 해석해 양자 "장"의 해석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죠. 또한, 슈윙거의 관점에서 이는 양자장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슈윙거는 자신이 파인만 도형을 완전히 이해하고 때때로 사용했음에도 불구, 수업에서는 파인만 도형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벨상을 같이 수상했지만, 슈윙거는 파인만과 양자전기역학과 양자장론에 다른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파인만은 조절을 이용했으나, 슈윙거는 재규격화를 이용해 조절을 이용하는 방법을 피했는데요. 슈윙거는 국소장으로 양자장론을 기술하는 것이 옳은 접근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결과를 면밀히 검토했으며, 서로를 존중하며 연구를 계속해나갔는데요. 파인만의 장례식 때 슈윙거는 파인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정직한 인간이며, 우리 시대의 사람 가운데 독보적인 직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살아가면 어떤 것이 가능한지 보여준 대표적인 예였다."
▲ 줄리안 슈윙거의 묘비 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이후 1994년에 타계한 슈윙거는 마운트오번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는데요. 묘비에는 이름 위에 라는 공식이 적혀있습니다. 이는 그가 연구했던 전자 비정상 자기 모멘트에 관한 양자전기역학적 계산을 나타내는 것인데요. 사후에도 묘비에 공식을 새길 정도로, 양자전기역학에 대한 그의 열정과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연구에 있어서 한없이 진지하고 우회할 줄 몰랐던 올곧음으로 동료들과 함께 양자장론을 정립, 노벨상을 수상한 줄리안 슈윙거. 천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서도, 그는 한번도 자만하는 모습 없이 자신만의 연구방법과 길을 고수했습니다. 뛰어난 업적을 이뤘음에도 불구,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를 잘 알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슈윙거 특유의 성격 때문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비록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연구 업적만큼은 현대까지 남아 많은 연구 이론들의 기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해답을 찾을 때까지 매진하며, 주변 환경에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소신을 지키는 성실함. 그것이 꿈을 위한 든든한 기반이 되어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