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순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추억이 된다. 바쁜 일상이 고될 때 추억을 꺼내 다시 힘을 얻기도 한다. 때론 길거리를 걷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가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띵작은 회로를 타고’ 시리즈를 통해 ‘추억의 명곡’과 함께 SK하이닉스의 ‘그 시절 그 반도체’를 추억해보자.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활력소, 우리나라 가요계를 이끄는 ‘아이돌’
90년대 이후 우리나라 가요계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아이돌 음악이었다. 90년대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1세대 아이돌이 각종 신드롬을 일으키며 ‘팬덤 문화’를 탄생시켰고,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의 2세대 아이돌이 그 뒤를 이어받아 가요계의 메인스트림을 장악했다. 이후 최근까지도 많은 아이돌그룹이 등장해 사랑받고 있으며, 국내를 넘어 세계로 활동무대를 넓혔다.
아이돌 음악은 기본적으로 퍼포먼스를 고려해야 만큼, 댄스 음악이 대부분이다. 특정 멜로디가 반복되는 후크 송이 주를 이루지만, 퍼포먼스를 위해 특정 장르나 독특한 콘셉트를 반영한 곡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소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팬들에게는 아이돌 음악이 삶의 활력소이자 행복의 원천이다. 그들의 음악과 퍼포먼스로 지친 하루를 위로받고, 내일을 힘차게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 각종 음원차트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아이돌을 지켜보며 희망을 얻기도 하고, 그들을 높은 곳으로 이끌었다는 성취감을 얻기도 한다.
▲ ‘아주 NICE’가 수록된 세븐틴의 ‘Love&Letter Repackage Album’ 커버 이미지(사진 및 영상 제공: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2015년 데뷔한 ‘세븐틴’ 역시 밝은 에너지와 특유의 활기로 팬들에게 오랫동안 행복을 선물해온 아이돌이다. 데뷔곡 ‘아낀다’부터 네 번째 타이틀 곡인 ‘아주 NICE’까지 밝고 청량한 콘셉트로 여성 팬들은 물론 대중들의 마음까지 훔치며 폭넓은 팬덤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아주 NICE’는 일반 대중들에게 세븐틴을 알린 히트곡. 세븐틴은 몰라도 이 노래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음원 발매 이후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각종 방송이나 야구장에서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며 인기를 끌다가, 2018년 인기 주말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토요일 – 도레미 마켓’의 시그널 음악으로 채택되며 세븐틴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이 됐다.
힘든 개발 여정 속 지칠 때마다 힘을 북돋아 준 그 노래 ‘아주, NICE’
세븐틴이 ‘아주 NICE’로 인기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2018년은 SK하이닉스에게도 매우 중요한 해였다. 2018년 10월 세계 최초로 CTF(Charge Trap Flash)1) 구조에 PUC(Peri Under Cell)2) 기술을 결합한 ‘96단 512Gb TLC3) 4D NAND4)(이하 96단 4D NAND)’ 를 선보이며 NAND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것. 이를 기반으로 다음 세대인 128단에서도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과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기 시작했다.
1) CTF(Charge Trap Flash): 전하를 도체에 저장하는 플로팅 게이트(Floating Gate)와 달리 전하를 부도체에 저장해 셀간 간섭 문제를 해결한 기술로, 플로팅 게이트보다 단위당 셀 면적을 줄이면서도 읽기, 쓰기 성능을 높일 수 있어 3D NAND 이후 세대 제품에 주로 적용되고 있음.
2) PUC(Peri Under Cell): 주변부(Peri.) 회로를 셀 회로 하단부에 배치해 생산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
3) TLC(Triple Level Cell): 낸드플래시는 데이터 저장 방식에 따라 셀 하나에 1bit를 저장하는 SLC(Single Level Cell), 2bit를 저장하는 MLC(Multi Level Cell), 3bit를 저장하는 TLC(Triple Level Cell), 4bit를 저장하는 QLC(Quad Level Cell)로 나뉨. TLC의 경우 전하가 가득 찬 상태(0,0,0,)부터 하나도 없는 상태(1,1,1)까지 데이터를 세분화해 저장할 수 있어, 동일한 셀을 가진 SLC 대비 3배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어 고용량을 구현하기 용이함.
4) 4D NAND: SK하이닉스는 2018년 96단 NAND부터 CTF 셀 구조와 PUC 기술을 결합해 성능과 생산성을 동시에 구현한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4D NAND’로 명명함.
이때 SK하이닉스는 20여 년간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겨온 정우표 담당을 투입해 128단 제품의 설계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게 된다. 세계 최초로 128단 4D NAND를 개발하기 위해서 설계 완성도 향상은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였다. 128단은 96단과 동일한 플랫폼을 공유하는데, 지난 개발 과정보다 회로 수정(Revision)을 줄이는 것이 개발 일정을 단축하며 제품 성능을 높일 수 있는 핵심이기 때문.
정 담당은 오랫동안 NAND 설계 부분 리더로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정확한 개발 방향성을 제시하고 업무 우선순위를 새롭게 정해 일하는 방식을 크게 개선했다. 설계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줄어든 만큼 회로 수정 횟수도 급감하는 등 설계 완성도는 드라마틱하게 개선됐다.
“우리 구성원들은 당시에도 기술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다만, 남들이 가지 않을 길을 개척해나가야 함에 조금의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역할은 구성원들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알려주고 시행착오 없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죠.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텐데도 잘 따라와 준 구성원들 덕분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특히 정 담당에게는 새로운 업무 방식을 적용하기 위해 기존 방식에 익숙했던 구성원들을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많은 소통을 통해 지금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갈등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인 것 같아 지칠 때도 있었다. 타국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한국에 있어, 가족들에게 위로를 얻기도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힘이 돼준 노래가 세븐틴의 ‘아주 NICE’였다.
“아주 NICE는 막내딸이 세븐틴의 팬이어서 자주 듣던 노래였는데, 지금은 가족들이 생각날 때마다 듣고 있습니다. 어느새 입에 붙어 일하다가 혼자 흥얼거리기도 하는데요, 들을 때마다 가족들이 응원해주는 것 같아서 힘이 샘솟습니다. 멜로디도 흥겹고 계속 반복되는 ‘아주 NICE’라는 가사도 긍정적이어서, 여러모로 밝은 기운을 북돋아 주고 있습니다. 이 기운이 SK하이닉스에도 전해져 미래에도 계속 아주 좋았으면(NICE) 하는 바람을 담아봅니다”
‘세계 최초 128단 4D NAND 개발’ SK하이닉스, NAND 분야에서도 기술 우위를 가져오다
128단 4D NAND는 당시 전인미답(前人未踏)이던 128단의 벽을 세계 최초로 깬 기념비적인 제품이다. NAND 기술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개발 난이도가 높아지며 생산공정 수도 증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96단과 동일한 4D 플랫폼을 활용해 제품을 개발했고, 공정 최적화를 통해 96단 보다 32단을 추가 적층하면서도 전체 공정 수를 5% 줄였다. 이를 통해 128단으로의 전환 투자비용을 이전 세대보다 60% 절감할 수 있었다. 웨이퍼당 비트 생산성도 96단보다 40% 향상시켰다.
▲ 128단 512Gb TLC 4D NAND와 이를 활용한 솔루션 제품
특히 4D NAND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설계적인 진전이 필수적이었다. 구동을 위한 회로가 들어갈 수 있는 면적(=셀 면적)은 한정돼 있는데, 단수가 높아지면서 늘어나게 되는 회로의 소요를 제한된 공간안에 모두 반영해야 했기 때문. SK하이닉스는 96단 4D NAND부터 축적한 역량을 활용해 기술적으로 성숙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 끝에 최소한의 면적 안에 구동에 필요한 모든 회로를 집약할 수 있는 설계를 완성했다. 그 결과 단수는 올리면서도 크기는 오히려 줄인 세계 최소 크기의 4D NAND를 구현할 수 있었다.
128단 4D NAND는 SK하이닉스가 다음 세대인 176단 512Gb TLC 4D NAND(이하 176단 4D NAND)에서 다시 한번 업계 최고층 기록을 경신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128단 4D NAND에서 설계 관점에서 플랫폼을 완성하고 기술적인 연속성을 확보해, 176단 4D NAND의 설계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집적도를 높이고 공정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 역시 128단 4D NAND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또한 128단 4D NAND는 양산관점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며 SK하이닉스의 NAND가 ‘Fast Follower’를 넘어 ‘First Mover’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한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큰 진전을 이뤄낸 제품이다. 정 담당에게 이 제품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128단 4D NAND는 제게 어디서든 세계 1등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물해준 정말 고마운 제품입니다. 세계 최초 개발에 성공한 프로젝트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회사 내에 오랫동안 축적된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을 한발 앞서 확보함으로 SK하이닉스가 적층(績層)의 한계를 누구보다 빠르게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겠습니다. 분명 그 과정이 어렵고 고될 겁니다. 하지만 기술개발에 집념을 보여준 우리 구성원들이 있기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여정을 함께하며 SK하이닉스의 자신감을 보여준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