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DO);보고서
“뭐든 직접 해보면 다릅니다.”
SK하이닉스의 다양한 현장을 찾아 지켜보기만 하는 기사가 아닌 직접 체험해 보며 느낀 솔직한 내용을 담아내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플라스틱 용기를 버리지 않고 모아보았다. 며칠 만에 분리수거 상자 안이 플라스틱 쓰레기로 수북하게 쌓였다.
"플라스틱 언제 버릴 거야?"
가족의 일갈이 매섭다.
"으응.. 말했잖아. 이거 이천 가는 날에 재활용할 거라니까?"
초라하게 대답해본다. 이번엔 안 치운 게 아니라 모은건데.. 알아주지 않아 야속하다.
▲ 체험에 참가한 뉴스룸 작가가 직접 모은 플라스틱 용기
플라스틱 용기를 모은 이유는 하나, SK하이닉스 사업장에 새로 설치된 '투명 페트병 보상 무인수거기' (이하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를 이용해 재활용을 체험해보기 위해서다.
지난 8월 1일,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가 SK하이닉스의 사업장에 설치되었다.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는 구성원들의 생활 속 SV 실천 및 탈 플라스틱 문화 정착 유도 활동(이하 ‘Flastic* 활동’)의 일환으로 SK하이닉스가 SK텔레콤과 협업해 개발했다. SK하이닉스의 Flastic 활동은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탄소 중립을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투명 페트병을 재활용하면 기존 플라스틱 원료 사용 대비 80%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는 현재 이천, 청주, 분당 각 캠퍼스에 1대씩 총 3대가 운영 중으로 3개월 동안 시범운영 뒤 결과에 따라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Flastic: Free Plastic의 준말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해 탄소 중립을 실천하자는 의미를 담은 SK하이닉스만의 탈 플라스틱 활동명
이번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 도입은 재작년부터 환경부가 시행 중인 '투명 페트병 별도 분리배출제'와 궤를 같이한다.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제도
2020년 12월에 처음 시행됐다. 페트병을 세척하고 라벨을 떼어낸 뒤 다른 플라스틱과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는 게 골자다.
① 내용물을 깨끗이 비운 ② 투명한 ③ 페트병만 분리배출
위 3개 요건을 모두 부합하는 페트병만 분리배출 대상이다. 특히 식음료가 아닌 물질, 예를 들어 식용유·양념·샴푸 등을 담았던 페트병은 세척이 어렵고 화학물질이 스며들었을 수 있어 수거 대상이 아니다. 색깔이 있는 페트는 재활용 원료로 가치가 떨어지고, 병이 아닌 모양의 페트는 투입된 첨가제가 달라 해당하지 않는다.
투명 페트병을 타 플라스틱과 분리해 수거하는 이유는 고품질 재활용의 원료이기 때문이다. 투명 페트병은 의류용 장섬유로 재활용할 수 있어 옷, 신발 등을 만드는 데 쓰이고 흔히 알려진 섬유 '폴리에스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
2019년 OECD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쓰레기 재활용률은 81.5%로 OECD 국가 평균 56.5%에 비해 훨씬 높은 재활용률을 기록했다. 그런데 높은 재활용률에도 불구하고 정작 고품질 원료가 되는 투명 페트병은 해외에서 수입하는 실정이었는데, 기존 분리수거 방식으로는 투명 페트병이 오염되고 타 플라스틱과 섞여 제대로 재활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체험해보기 전엔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집 앞 분리수거장에도 여러 플라스틱이 섞이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이제는 투명 페트병을 ‘왜’ 분리배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모은 플라스틱 중 투명 페트병만 챙겨서 이천 캠퍼스를 찾았다.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는 R&D센터 로비, 눈에 띄는 곳에 우뚝 서 있었다. 로비가 넓어서 못 찾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통행량이 많은 곳에 있어서 모르는 사람도 ‘이게 뭐지?’ 하고 호기심을 갖기 좋아 보였다.
▲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와 HAPPY 1.5 ºC 앱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는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페트병 수거 사업을 추진한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담당자를 만나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를 직접 이용해보았다.
페트병을 투입하기 전에 본인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페트병 1개당 50 SV포인트가 본인 계정으로 적립된다. SV포인트*는 SV 활동에 따라 지급되는 보상으로 OK캐쉬백과 일대일 비율로 교환할 수 있어 현금에 준하는 가치가 있다. 누적 포인트는 모바일 앱 ‘Happy 1.5ºC’*에서 확인하고 OK캐시백으로 전환할 수 있다.
*SV포인트: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를 창출한 구성원과 협력사에게 SK하이닉스가 지급하는 포인트
*Happy1.5ºC 앱: 누적 SV포인트를 확인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SK텔레콤이 개발한 구성원 전용 앱. 1.5ºC라는 숫자는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한 지구 온도 상승 폭의 마지노선으로 2015년 파리협정에서 세워진 목표이다.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니 네모난 투입구가 열렸다. 생수병을 넣자 벨트를 통과해 기계가 병을 ‘꽈드득’ 씹는 소리가 들린다. 불과 2~3초 안에 벌어지는 일이다. 4개의 센서가 투입된 물질의 소재, 색상, 이물질, 라벨 유무 여부를 빠르게 판단한다.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의 장점은 여기서 발휘된다. 분리배출에 해당하는 투명 페트병이 아니면 빠르게 뱉어낸다. 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되어가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만큼 아직도 투명 페트병과 이외 플라스틱이 섞이는 일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투명 페트병이 오염되거나 유색 페트병과 섞여버리면 고품질 원료로 활용하기 어려워진다.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 덕에 완벽한 분리배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가져온 페트병을 모두 집어넣는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배출한 페트병은 재활용 공장으로 이동해 장섬유로 재탄생한다.
집에서 분리수거할 때는 너무 다양한 쓰레기들이 뒤섞이고 오염되어서 과연 재활용할 수 있을까 미심쩍었다. 그런데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에 반납할 때는 ‘버린다’는 느낌보다 ‘되돌려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냄새 나는 쓰레기를 해치운 게 아니라 곱게 쓴 뒤 씻어서 다시 자원으로 돌려보낸다는 산뜻한 감각이었다.
이번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 도입은 Flastic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담당자들이 오랜 검토 끝에 진행하게 된 양 사 협업 프로젝트라고 한다.
Q. 페트병 무인수거기를 도입하게 된 배경
A. 작년에 환경부 및 유관 업체들과 ‘투명 PET 재활용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페트병 수거부터 장섬유로 재활용되는 모든 과정을 SK하이닉스가 관리한다. '어떻게 하면 이물질이 없는 깨끗한 투명 페트병만 효율적으로 수거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 도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Q.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이 이번 캠페인을 함께하게 된 이유?
A. SK텔레콤은 ICT 기반 기술과 앱 개발에 강점을 가지고 있고 SK하이닉스는 거대한 캠퍼스와 많은 MZ세대 구성원을 보유하고 있어 시범사업을 행하기 적합했기 때문이다.
Q.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를 개발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A. 투명 페트병이 아닌 부적합한 용기를 넣을까 봐 노심초사했고 이물질을 구분하는 기술에 가장 공을 들였다. 그런 만큼 적합한 페트병을 빠르게 인식하게 만들고 포인트 적립 앱과 연동하는 점이 까다로웠다.
Q. 구성원의 반응은 어떤지
A. 시작 전에는 참여가 적을 것 같아 걱정했는데 반응이 뜨겁다. 하루에 약 3,000개 이상의 페트병이 들어온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규칙을 너무 잘 지켜서 놀랐다. 캠퍼스 별 1대 밖에 없는데 멀리서 가져오는 구성원도 있어 생활 속 SV 실천 및 플라스틱 재활용의 희망을 보았다.
한국은 이미 2016년 1인당 플라스틱 배출량이 연간 88kg으로 미국(130㎏), 영국(99㎏)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다. 그리고 코로나19가 퍼진 2020년에 국내에서 분리수거로 배출된 플라스틱은 116만 톤*으로 2019년 배출량 95만 톤에 비해 22% 증가했다. 2018년 97만 톤에서 2019년 95만 톤으로 2% 감소한 것에 비하면 월등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나조차도 출근길에 매일같이 즐기는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 일회용 용기에 포장된 배달 음식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는 숫자다.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원 보고서, 2016년 기준
*환경부, 2020년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2021, 환경부·한국환경공단)
물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게 좋겠지만 이미 사용된 플라스틱을 제대로 처리할 방법을 찾는 것 역시 중요하다.
선행환경보건팀 김민호 팀장은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상승하면 돌이킬 수 없는 환경 변화가 초래된다. 플라스틱을 완전히 안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탄소 중립을 실천하기 위해 재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로비에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투명 페트병 무인수거기를 이용하려는 구성원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한두 개를 투입하는 사람부터 장바구니에 담아오는 사람들까지. 그들에게는 이미 습관이 된 듯했다. 작은 실천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직접 목도한 기분이었다.
[에필로그]
체험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자 비는 그쳤고 출입구 옆에 꽂힌 우산들이 보였다. 비 올 때 누구나 쓸 수 있도록 비치해 둔 SK하이닉스 표 우산이라고 담당자분이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이 우산도 이제는 구성원들이 버린 투명 페트병으로 만들어져 곧 입고될 거라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