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의 대두(擡頭)를 나타내는 상징적 분야로 게임 분야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 100대 게임(수익 기준) 중 21개가 현재 중국산 게임, 그런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제 양보다는 높아진 질이다. 

중국 게임은 ‘짝퉁’이라는 세계적 편견마저 털어내고 있었다. 그 주역은 바로 ‘원신’으로, 출시 전부터 명작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이하 젤다)’1)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게임이다. ‘표절’ 논란은 3년간 400명의 개발 인력과 1,000억 원 이상의 개발 비용을 투입해 개발된 AAA 게임2)의 사전 입소문으로는 치명적이었지만, 정작 개발사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1)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일본 게임사 닌텐도가 개발/배급하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 ‘젤다의 전설’ 시리즈 중 하나로, 원신처럼 오픈 월드와 3D 카툰 렌더링 그래픽을 채택하고 있음. 
2) AAA 게임(Triple-A Game): 대형 게임사가 대량의 자본을 투자해 주로 멀티플랫폼으로 발매해, 기본적으로 수백만 라이선스 판매량을 기대하는 게임을 일컫는 말.

원신은 중국의 게임 회사 미호요(miHoYo)의 온라인 게임이다. 미호요는 일본 문화를 탐닉하던 세 명의 중국 학생에 의해 2012년 창립된 게임 개발사다. 회사 이름부터 일본 느낌이 물씬 나는 이 회사는 중국 회사임에도 게임 이름인 원신(原神)의 발음을 일본식인 겐신(genshin)으로 표기하고, 회사 로고 밑에는 ‘기술 오타쿠가 세상을 구한다(Tech Otakus Save The World)’라는 독특한 사훈을 자랑스럽게 적어뒀다. 마치 좋았던 시절 일본의 문화를 계승한 적자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들은 원신을 둘러싼 부정적 풍문 속에서도 원신 제작 과정에서 가장 주된 영감을 줬던 작품으로 젤다를 꼽았고, 젤다의 게임 요소를 원신에 “긍지를 갖고 장착했다”고 공식적으로 칭송했다. 남들에게 비슷해 보이는 점은 그들 입장에서는 존경하는 게임에 대한 ‘오마주’였던 것.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듯, 문화는 함께 참고하고 베끼며 어울릴 수 있다는 배포는 다분히 중국적이다. 

전세계 게임 유저를 매료시킨 원신의 ‘기술력’

표절 논란에도 출시 후 원신에 대한 전세계 게임 팬들의 리뷰는 호의적이었다. 첫인상은 비슷해 보였지만, 원신은 젤다와는 전혀 다른 게임이었기 때문. "몰라봐서 미안하다" 수준의 긍정적 반응이 이어졌다. 구글과 애플로부터 각각 2020년의 베스트 게임, 2020년의 아이폰 게임으로 선정되는 쉽지 않은 영예도 얻었다. 출시 첫 주에 안드로이드와 iOS에서 2,3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6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2주 만에 개발비를 회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출시 첫날 기록만 따지면 중국산 앱으로서는 틱톡(TikTok)보다 성공적인 첫발을 뗐고, 트위치(Twitch)3) 시청자 수는 글로벌 인기 게임인 포트나이트(Fortnite)보다도 많았다. 모바일, PC, 콘솔 플랫폼인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이하 PS)에 더해 젤다의 개발사 닌텐도가 서비스하는 콘솔 플랫폼인 ‘닌텐도 스위치(Nintendo Switch)’에서도 출시되며, 애니메이션의 종주국 일본 시장에서도 그 세계관과 게임 시스템의 신선함을 인정받았다. 결론적으로 원신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꼬리표를 떼어내고 게임성으로 유저들의 색안경을 벗겨낸 ‘수작(秀作)’이었다. 

3) 트위치(Twitch): 게임 관련 스트리머가 주로 활동하는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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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 공식 홈페이지 메인화면 캡처. 콘솔(PS4), 모바일, PC에서 게임을 실행할 수 있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또한, 원신은 ‘유니티’ 게임엔진(Game Engine)4)으로 만들어진 가장 성공적인 게임이 됐다. 원신은 출시 초기부터 가장 핵심적인 홍보 포인트로 ‘크로스 플랫폼(Cross Platform)’5)으로 구현한 광활한 ‘오픈 월드(Open World)’6)를 내세웠다. 자체 개발 기술력을 전면에 배치한 것.

유니티는 거의 모든 게임 플랫폼을 다룰 수 있는 크로스 플랫폼 개발환경이지만, 다중 플랫폼에서 동시에 게임을 개발하는 일은 배포가 있어야 한다. 플랫폼에 제약을 받지 않는 일은 의외로 각 플랫폼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 이를 위해서는 어셋(Asset)7) 하나하나 크로스 플랫폼을 의식해서 제작하는 일을 규범으로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PS와 같은 최신 콘솔 기기의 하드웨어와 모바일 기기의 하드웨어는 체급 자체가 달라 각 하드웨어의 특성을 살리는 최적화도 플랫폼마다 전략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PC 버전의 경우 부품의 조합에 따라 최적화를 위한 경우의 수가 폭증한다. 이에 뒤따르는 테스트와 검수의 부하도 상당하다. 하드웨어의 자유도가 높아질수록 이를 뒷받침할 역량이 없으면 지치기 마련이다. 

4) Game Engine: 게임 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래밍을 돕는 각종 툴과 소스 코드를 담은 소프트웨어.
5) Cross Platform: 모바일, PC, 콘솔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하나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 플레이 방식.
6) Open World: 이동이 자유로워 구현된 게임 맵상 모든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게임 환경.
7) Asset: 3D 모델이나 풍경화, 사운드 효과나 음악 등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

원신의 진짜 매력은 반도체가 화면 위에 그려내는 ‘실시간 애니메이션’

원신의 매력은 만화를 찢고 나와 뛰어노는 듯한 작화(作畫)의 생생함, 즉 ‘카툰 렌더링(Cartoon Rendering)’8)에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셀 애니메이션(Cells Animation)9)을 구현하기 위해 한 장 한 장을 물감으로 칠하던 시대는 진작에 지나갔다. 요즘 어지간해서는 만화영화도 컴퓨터로 그리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오히려 그렇지 않으면 화제가 되기도 한다. 6만 5,000프레임 하나하나를 115명의 화가가 캔버스 유화로 그려 완성한 영화 ‘러빙 빈센트(Loving Vincest)’가 대표적인 사례. 

8) Cartoon Rendering: 영상,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서 만화(Cartoon)로 3D 그래픽을 구현(Rendering)하는 것.
9) Cells Animation: 배경은 그대로 두고 캐릭터만 움직이게 하는 애니메이션 기법.

하지만 셀 애니메이션이란 원래 셀룰로이드 필름 위에 한 장 한 장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던 노동 집약의 산물이다. 그 정성이 깃들었기 때문일까? 2D 애니메이션에는 픽사(Pixar Animation Studios)에 의해 대중화된 미국식 디지털 3D 애니메이션에는 없는 일종의 향수가 있다. 2D 애니메이션은 외곽선이 명확하고, 그 안쪽은 붓으로 색칠한 티가 난다. 컴퓨터로 칠해도 일부러 아날로그 느낌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단지 3D 표면을 텍스처(Texture)10)의 인공적 질감 대신 만화 느낌을 입히는 것만으로는 2D의 정감을 살릴 수 없다. 2D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를 3D 게임에서 재연하는 일은 단순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림을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지난한 시행 착오가 필요하다. 2D에서는 예뻐 보였던 갸름한 턱도 3D로 어설프게 옮기면 뾰족한 뿔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이를 자연스럽게 옮겨오려면 나름의 기교가 필요하다. 일본식 2D 애니메이션과 미국식 3D 애니메이션의 그림이 애초에 그렇게 다른 데는 문화적 이유 이외에 작화 기교의 차이도 있다. 게다가 게임은 3D 공간에 2D 느낌의 캐릭터를 실시간으로 살려내야 한다. 

10) Texture: 질감 또는 색상이나 명암과는 독립적으로 객체의 표면에 대해 육안으로 보이는 모습을 특성 짓는 속성들의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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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은 이 셀 애니메이션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한 몇 가지 솜씨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안티 앨리어싱(Anti-Aliasing, 이하 AA)11)’이다. 픽셀이 두드러지는 계단 현상이 발생하면 지금까지 만화라고 생각했던 착각이 벗겨지며 흥이 깨져 버리기 쉬운데, 이를 해결해주는 기교가 바로 AA다. 원신에도 SMAA(Subpixel Morphological Anti-Aliasing)12), TAA(Temporal Anti-Aliasing)13) 등 여러 AA 기법이 시도되는데, 이들 기법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GPU(Graphic Processing Unit, 그래픽처리장치), Graphic DRAM 등과 같은 반도체의 힘이 총동원돼야 한다. 

11) Anti- Aliasing: 해상도 문제로 화면의 윤곽이 깨지는 계단 현상을 최소화하는 그래픽 기법.
12) Subpixel Morphological Anti-Aliasing, 윤곽선을 따로 검출해 선이 번지는 일을 줄이는 방식의 AA 기법.
13) Temporal Anti-Aliasing: 움직이는 동안 앞 프레임과의 차이를 계산해서 부드럽게 하는 AA 기법. 움직임에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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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는?

원신의 성공에는 중국의 기술력을 뽐낸 것 이외에 더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다. 중국 기업도 이제 오리지날 IP(지식재산권)로 게임 대국을 꿈꿀 수 있음을 증명한 것. 미호요가 원신에 앞서 선보인 붕괴 시리즈의 흥행은 중국이 앞으로 이러한 대작 게임을 내놓을 만한 체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원신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미호요는 원신의 7개 지역 중 먼저 공개된 두 지역에 각각 서양과 중국의 문화적인 요소를 반영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을 잡으면서도 애국적 요소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재패니메이션에서 오타쿠로 이어지는 일본 문화의 계승과 중흥이라는 면에서의 성과는 더 컸다. 그래서인지 게임 매출 비중도 중국, 일본, 미국이 각각 30%, 25%, 20%의 순으로, 각 지역이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원신의 이런 성공에는 스토리나 세계관에서 효과적인 전략을 구사한 것 이외에도, 사용자들이 원하는 완벽한 애니메이션 그래픽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반도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반도체 기술의 발전은 앞으로도 이런 대작 게임들을 성공 가도에 올려놓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에디토이

김국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