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인류가 처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고, 동시에 기술 간의 융합이 빠르게 이루어지며 창의적인 가치들이 창출되고 있다.
이에 초거대 AI에서부터 로봇, 스마트모빌리티, 웹 3.0, 메타버스라는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책임질 최신 테크 트렌드를 5편의 시리즈로 소개할 예정이다. 특히 이 칼럼을 통해 얻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각 기술이 어떻게 연계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는지 ‘흐름’을 읽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 주)
2021년에 등장해 주목을 받았던 메타버스는 챗GPT와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이슈에 밀려 현재는 다소 잠잠한 상태다. 하지만 메타버스에 대한 전망은 결코 어둡지 않다. 메타버스를 둘러싼 거품이 사라졌고, 기술과 서비스 품질을 바탕으로 업계에서 차세대 미래 먹거리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애플은 올해 6월 혼합현실(MR) 헤드셋 신제품 ‘비전 프로’를 선보여 메타버스 부흥의 신호탄을 던졌다. 조용하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메타버스 기술이 현재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살펴보자.
메타버스는 초월을 의미하는 접두사 ‘메타(Meta)’와 세계나 우주를 의미하는 ‘버스(Verse)’의 합성어로, 닐 스티븐슨의 1992년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처음 등장하였다. 국내 베스트셀러인 김상균 교수의 저서 ‘메타버스’에서는 메타버스를 새로운 세계, 디지털 지구로 설명하고 있다. 메타버스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곳으로, 사람들이 공유 공간에서 디지털 객체와 상호 작용하며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한마디로 메타버스는 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새로운 세계를 의미한다. 국내 메타버스 플랫폼의 대표적인 예로는 3D 아바타를 만들어 다른 사용자들과 채팅하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SK텔레콤의 ‘이프랜드’와 증강현실(AR) 아바타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제트의 ‘제페토’가 있다. 기업들은 이런 플랫폼 안에서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는 등 현실 세계의 경험을 가상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또 온라인 게임인 ‘포트나이트’에서는 미국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이나 BTS와 같은 유명 아티스트들이 실제와 같은 라이브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닌텐도 스위치 게임인 ‘동물의 숲’도 자신의 섬을 꾸미고 다른 유저들의 섬을 방문할 수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 SK텔레콤의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의 아바타 (출처: 이프랜드)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의 사명을 ‘메타’로 바꿀 정도로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상당히 높았지만 그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술과 인프라 수준은 크게 향상됐지만 여전히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서 비대면 트렌드가 약해진 것도 상당한 타격이 됐다. 메타의 올해 2분기 리얼리티 랩스* 사업 부문 매출도 2억 7,6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9%나 감소했고 손실은 40억 달러로 23%나 늘어났다. 사명을 메타로 바꾼 것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 리얼리티 랩스: 메타의 메타버스 개발 사업부. 2014년에 메타가 VR기기 업체 오큘러스를 인수하면서 시작됐고, 2020년에 별도 사업부로 분리됐다.
메타버스의 상승세는 한풀 꺾였지만, 메타버스 트렌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긴 호흡을 고르며 새로운 진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메타버스는 AI와 만나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2021년 12월에 세계 최초로 선보인 ‘메타버시티’는 국내 60여 개 전문대학이 참여하여 만든 메타버스 공유 대학이다. 현재 25만여 명의 대학생이 강의실과 캠퍼스로 활용하고 있는데, 최근 생성형 AI와 개인화 3D 공간 등 최신 기술로 업그레이드한 ‘메타버시티 2.0’ 버전이 나왔다. 이용자들은 아바타 위에 활성화된 AI 채터(Chatter, 챗GPT 기반)를 대화 상대와 학습 서포터로 활용할 수 있다. 강의실은 AI로 생성한 360도 이미지를 배경으로 설정해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원하는 장소를 메타버스 강의실로 구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이 AI와 메타버스를 결합한 새로운 시도는 메타버스가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높여준다.
▲ 메타버시티 내에 구현된 학교 (출처: 메타버시티)
NFT 마켓플레이스 가디언링크의 COO 카메쉬와란 엘란고반(Kameshwaran Elangovan)은 “AI가 메타버스 사용자들의 상호작용을 학습함으로써 더 나은 고객 경험을 가능하게 해 메타버스에 기여할 것”이라고 언론에서 강조했다. 또 웹 3.0 통합 플랫폼 릴스타의 공동 설립자인 나브딥 샤르마(Navdeep Sharma) 역시 “AI는 고급 알고리즘과 머신 러닝을 사용해 메타버스를 개인화하고 개선해 향상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양한 비즈니스에서 AI와 메타버스의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리서치 플랫폼 테크 마켓 리포트(Tech Market Report)는 메타버스 시장에서의 글로벌 생성형 AI는 2023년부터 2032년까지 31.5%의 연평균 성장률을 전망했고, 2023년 시장 규모는 약 4억 2,89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메타버스와 생성형 AI의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임을 알 수 있는 수치다.
이전의 메타버스는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주로 활용되었지만, 이제는 공장이나 건설 현장 등 일하는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현장은 유해화학물질 누출에 대한 빠른 대응이 중요하다. 국내 메타버스 기업 ‘스코넥’은 세계 최초로 ‘대공간 기반 화학 사고 누출 대응 훈련 시스템’을 개발했다. 안전 업무 종사자들은 의무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재현하기 어려운 사고를 가상으로 구현해 대응 훈련까지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스코넥의 시뮬레이션은 실전을 방불케 한다. 사이렌과 함께 비상 안내 방송이 울리면 즉시 방호복을 착용하고 출동해, 현장에서 염산 누출을 확인한 뒤 기계실에서 장비를 조작해 누출을 막아야 한다. 이 훈련은 대형 공장이 아닌 49m²의 좁은 공간에서 진행되지만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한 덕에 자유롭게 이동하며 현실감 있는 훈련을 할 수 있다.
국가 재난대응 훈련에 증강현실 기술이 쓰인 사례도 있다. 2019년 울산광역시는 한빛소프트가 개발한 시뮬레이터를 유해화학물질 누출 대비 훈련에 사용했다. 울산에는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들이 많아 자칫 사고가 터지면 국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스코넥의 훈련이 현장 실무자 대상이라면, 한빛소프트의 훈련은 행정직 공무원이 대상이다.
참여자들은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재난 대응 상황을 마주하고 지자체 상황실, 재난 현장 본부 등 주어진 역할에 맞춰 게임처럼 미션을 수행한다. 훈련 참여자들이 사고에 대응하면서 교통 통제, 주민 대피 등 내리는 판단에 따라 피해 상황이 실시간으로 변한다. 만약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면 사상자 수와 피해액이 늘어난다. 현장 상황은 독립형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디바이스를 통해 지휘부에 회의 안건으로 공유되고, 이를 통해 이동 중에도 홀로렌즈(HoloLens,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출시한 증강현실 기기)로 상황을 보고 받고 지시할 수 있다.
또 화학 사고 훈련만큼 위험하고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현장이 바로 화재 사고다. 스코넥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공동으로 가상 소방 훈련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최대 10명이 동시에 훈련할 수 있으며, 실제 화재 진압을 하듯이 열기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열감수트, 물 대신 바람을 뿜는 관창 등 다양한 장비를 활용해 훈련한다. 또한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상 상황도 구현했다. 백드래프트* 및 플래시오버* 등 소방관에게 치명적인 특수 상황을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로 만들어 현장감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러한 훈련들은 실전 같은 연습과 종료 후 상세한 피드백을 제공하여 참가자들의 역량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 백드래프트(Backdraft): 산소가 부족한 공간에 갑자기 다량의 산소가 공급될 때 폭발하는 현상
* 플래시오버(Flashover): 일정 공간에 축적된 다량의 가연성 가스가 발화점을 넘어서며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는 현상
▲ VR(가상현실)로 구현된 소방 훈련 모습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또한 메타버스 훈련은 훈련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반복적인 훈련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함께 메타버스 훈련은 산업 재해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교육 방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발표한 ‘가상 · 증강현실을 활용한 교육 · 훈련 분야 용도 분석’ 보고서(2020년 12월)에 따르면, XR 교육 · 훈련은 현장의 위험도가 높을수록 비용 절감 효과가 크며 소방관 훈련, 화학 사고 대응, 경찰 테러 훈련 등 현실 체험이 불가하거나 상당한 준비 기간이 소요되는 훈련에서 활용성이 높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렇듯 오프라인 공간의 한계를 가상공간이 보완, 대체하는 ‘실용적 메타버스’는 생활의 편리함을 넘어 산업과 재해 현장에서 안전을 지키는 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중심으로만 이용되어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던 메타버스 서비스가 현실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다시금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메타버스가 지닌 가장 큰 강점은 현실 공간과 똑같은 쌍둥이 가상공간, 즉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트윈은 2002년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마이클 그리브스(Michael Grieves) 박사가 산업환경에서 제품의 전체 수명주기 관리를 최적화하기 위해 처음으로 제안한 개념이다. 이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너럴 일렉트릭(GE) 등의 기업에서 적용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디지털 트윈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컴퓨터로 현실 속 사물의 쌍둥이를 만들고,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하여 결과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다수의 군중이 밀집된 상황에서 사고 대응력을 높이는 ‘인파 관리 시스템’이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하기 좋은 예다. 현재의 인파 관리 시스템은 핸드폰 위치정보(CPS, Cell Positioning System)나 지능형 CCTV · 드론 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다중 밀집도를 분석하는 방식인데,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하면 가상 공간에서 대규모 군중 시뮬레이션이 가능해 보다 빠른 예방 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 디지털 트윈은 다수의 군중이 밀집한 상황에서 사람이나 차량 등 다양한 동적 객체의 집단행동과 현상을 해석하여 가상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간대별 추적, 연령과 성별 분석 등 다양한 환경에 적합한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돌발 상황에 실시간 대응은 물론, 이후 상황 전개까지 예측할 수 있다.
디지털 트윈 기반의 인파 관리 시스템은 보행자 밀집 지역뿐만 아니라 대규모 시설물에서도 화재나 사고 발생 시 대피 경로를 미리 파악하여 인파를 빠르게 분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싱가포르는 도시 전체를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하여 다양한 재난과 재해에 사전 대비하고 있다. 2015년부터 3년간 약 1,000억 원을 투자한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Virtual Singapore Project)’는 실제 도시의 도로, 건물, 가로수 등 모든 구조물에 아이디를 부여하여 상세한 정보를 축적했다. 이를 통해 AI,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도시 계획, 교통,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 디지털 트윈을 위해 가상으로 구현된 싱가포르 시내 (출처: Singapore Land Authority)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 도우미 역할도 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와 같은 대규모 공동 시설에서 유독 가스 유출 사태에 대비해,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에서는 3D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스가 유출되는 방향과 범위를 사전에 정확하게 파악한 후 주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경로를 미리 확보할 수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지속적인 데이터 업데이트를 통해 버추얼 싱가포르를 스마트 국가 건설의 핵심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스마트시티 및 부동산, 운송, 물류, 의료, 교육, 안전 및 보안 분야에 디지털 트윈과 AI를 적극 도입할 계획이다.
국내 연간 사회재난사고 건수(도로교통사고, 자연재해 포함, 행정안전부 출처)는 약 30만 건에 이른다. 기반 시설의 노후화 및 이상기후로 인해 언제 어디서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사고가 발생한 후 빠른 조치도 중요하지만 사고 발생 가능성에 대한 선제적 안전 관리 역시 중요하다. 버추얼 싱가포르 사례와 같이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사고 발생 위험 지역에 대한 실시간 관제 · 예측이 가능하다면 조기 대응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국민들은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 메타버스 기술로 안전 사회가 구현된다면 사고 발생에 따른 인적, 경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 불안도 낮아져 경제 · 사회적 편익 또한 높아질 것이다.
2023년 6월 5일, 애플은 ‘WWDC(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세계개발자회의) 2023’에서 애플워치 이후 약 9년 만에 신제품을 발표했다. 팀 쿡은 키노트 발표 마지막에 ‘One more thing(하나 더)…’이라 말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소문과 추측 속에 있었던 증강현실 HMD(Head Mounted Display, 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 기기 ‘비전 프로(Vision Pro)’를 선보였다.
비전 프로는 유리와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헤드셋으로, 듀얼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를 통해 4K 이상의 해상도를 제공한다. 시선 추적, 손 추적, 음성 인식 등의 기술로 조작할 수 있으며, 별도의 컨트롤러가 필요 없다. 비전 프로는 비전 OS(Vision OS)라는 자체 운영체제를 탑재하고 있으며, 앱, 게임, 영화, 사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페이스타임(FaceTime) 통화를 하면 상대방 모습이 눈앞에 실물 크기로 보이고, 공간 음향을 적용해 마치 앞에서 음성이 들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격은 3,499달러에 판매될 예정이며, 2024년에 북미 지역부터 출시될 예정이다.
▲ 애플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가상의 화면을 보는 사용자와 컴퓨터 공간에 펼쳐진 화면 (출처: 애플)
비전 프로는 외관상 가상현실 혹은 증강현실 기기처럼 보이지만, 팀 쿡은 메타버스나 가상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바로 ‘공간 컴퓨팅’이었다. 공간을 활용해 무엇인가를 보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는 비전 프로의 목표는 넥스트(Next) 스마트폰이 되는 것이다. “맥(Mac)이 개인 컴퓨터,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터 시대를 연 것처럼 비전 프로는 공간 컴퓨팅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팀 쿡은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메타버스의 부활이 아닌 메타버스를 뛰어넘은 공간 개념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보던 화면을 비전 프로로 더 크게, 더 넓게, 더욱 현실감 있게 보는 것이다. 결국 비전 프로는 공간을 디스플레이로 쓰는 컴퓨터인 셈이다. 글을 쓰거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는 것부터 사진과 동영상 편집, 음악 작업까지 비전 프로를 통해 더 넓은 화면으로 만나볼 수 있다. OTT로 보던 영화도 가상공간의 극장에서 볼 수 있다.
사실 공간 컴퓨팅은 새로운 용어나 개념이 아니다. 2003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연구소인 MIT 미디어 랩(Media Lab)의 연구원 사이먼 그린월드(Simon Greenwold)가 석사 논문 ‘공간 컴퓨팅’에서 처음 꺼낸 용어다. 그는 논문에서 “공간 컴퓨팅은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이라고 정의하였고, “이를 위해 기계가 실제 사물과 주변 공간을 인식하고 유지하는 방식과 시스템이 공간 컴퓨팅”이라고 설명했다. 즉, 공간 컴퓨팅은 주변 사물과 공간 정보 등을 바탕으로 기계와 인간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식과 시스템을 뜻한다. 현실 세계의 공간 정보를 디지털 정보로 변환하고 그 위에 디지털 세계를 덧입힐 수 있는 기술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확장현실(XR), 메타버스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인 것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도 애플의 비전 프로 발표에 다음과 같이 반색하는 반응을 보였다. “애플이 메타버스와 관련해 무엇을 내놓을지, 어떻게 경쟁할 것인지를 지켜보는 건 매우 흥미롭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성공 가능성을 낙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전 프로 이전에도 여러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기기는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증강현실 기기 홀로렌즈가 있었고 메타가 출시한 VR 기기 ‘메타퀘스트3(Metaquest3)’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애플의 비전 프로 역시 높은 가격과 배터리 문제 등 극복해야 할 허들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비전 프로가 다양한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과 생태계 조성의 시발점이 되어 식어버린 메타버스 시장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애플은 비전 프로에서 구동되는 앱을 편리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여러 프레임워크*와 개발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애플은 ‘비전 OS 소프트웨어개발도구(SDK)’를 배포해 개발자들이 비전 프로용 앱을 새로 개발하고, 기존의 앱을 비전 프로용으로 변환할 수 있게 돕고 있다. 또한 애플은 런던, 뮌헨, 상하이 등 주요 국제 도시에 개발자 랩을 마련해 개발자들이 비전 프로 하드웨어에서 앱을 테스트하고 애플 엔지니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실습 경험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개발자에게 유리한 환경과 비전 프로를 통해 좋은 콘텐츠가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이제까지 쓰던 앱들이 가상현실로 확장된다면 그만큼 메타버스 시장도 커질 것이다.
* 프레임워크(Framework): 앱, 웹 등 소프트웨어 개발에 필요한 요소와 매뉴얼을 제공하는 프로그램
지금의 스마트폰 세상은 스마트폰이란 하드웨어뿐 아니라 앱이라는 다양한 콘텐츠와 소프트웨어가 만든 것이다. 불과 15년 전, 애플이 아이폰과 앱스토어로 스마트폰 세상이라는 빅뱅을 일으켰듯이, 이번에도 비전 프로를 중심으로 한 메타버스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