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인류가 처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고, 동시에 기술 간의 융합이 빠르게 이루어지며 창의적인 가치들이 창출되고 있다.
이에 초거대 AI에서부터 로봇, 스마트모빌리티, 웹3.0, 메타버스라는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책임질 최신 테크 트렌드를 5편의 시리즈로 소개할 예정이다. 특히 이 칼럼을 통해 얻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각 기술이 어떻게 연계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는지 ‘흐름’을 읽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 주)
최근 식당을 방문하면 테이블 사이로 서빙 로봇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관광지에서는 관람객의 짐을 대신 들고 따라다니거나 청소하는 로봇도 등장했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는 순찰 로봇이 주·정차 단속, 화재 감시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AI와 로봇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로봇은 서서히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산업혁명 시절에는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됐지만, 미래의 로봇은 인간의 경쟁자가 아닌 생활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해주는 ‘파트너’로 발전하고 있다. 파트너로 거듭나고 있는 로봇은 어디까지 발전했고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9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테슬라 팔로알토 본사에서 ‘2022 AI 데이’가 개최되었다. 이날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개했다. ‘범블C’라고 이름 붙여진 이 로봇은 뼈대와 전선이 노출돼 완성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스스로 걸어 나와 손을 들어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춤추는 모습을 선보였다. 이후 데모 영상에서 범블C가 무릎을 굽혀 상자를 들어 옮기거나, 손가락을 구부려 물뿌리개를 잡아 화분에 물을 주고 손가락으로 물건을 들어 옮기는 영상을 공개했다. 마치 사람처럼 손으로 할 수 있는 세밀한 작업을 구현한 것이다.
▲ 테슬라가 ‘2022 AI 데이’에서 시연 중인 로봇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자사 전기차에 사용 중인 오토파일럿 기술을 적용했다. 로봇은 카메라와 기타 센서로 사물을 인식하고, 인식한 사물을 사람처럼 잡고, 현재 자신이 잡고 있는 물체와 주변 사물을 구분한다. 로봇에게 ‘화분에 물뿌리개로 물을 줘’라고 명령하면 책상 위에 놓인 물뿌리개를 인식해 들고, 다음에는 화분을 인식해 물을 주는 동작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로봇의 성능이 아닌 일론 머스크가 내세운 충격적인 가격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AI 데이에서 향후 3∼5년 내 휴머노이드 로봇을 수백만 대 양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내세운 가격이 ‘2만 달러’로, 이는 한화로 약 2,700만 원이다. 이는 현재 테슬라가 판매하는 전기차의 저가 모델보다도 더 저렴한 가격이다. 테슬라는 부품 공용화와 양산화를 통해 가격을 지금 로봇의 5분의 1 수준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의 로봇 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만든 경찰견 모양 4족 보행 로봇 ‘스팟’의 판매 가격이 7만 4,500달러로, 한화 8,000만 원임을 감안한다면 머스크가 선언한 가격은 그야말로 ‘혁명’에 가까운 가격이다. 초기 타겟 시장이 공장 등 산업 현장이라고 봤을 때, 기업 입장에서 2만 달러는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머스크가 제시한 2만 달러라는 가격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로봇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려면 자동차 생산 과정처럼 자동화 공정을 완벽히 갖춰야 하고, 수만 개 이상의 반도체 칩과 핵심 전자 부품도 수급해야 한다. 반도체 대란에, 인건비 및 자동화 공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2만 달러 이하의 로봇 판매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3~5년 내에 상용화하겠다는 계획도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걷고, 화분에 물 주고, 박스 하나 드는 행동을 구현하는데 1년의 기간이 걸렸다. 게다가 테슬라의 로봇은 아직 다른 로봇 전문업체들에 비해 뒤처지는 수준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인간처럼 춤을 추고, 점프나 덤블링을 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파쿠르도 할 수 있다. 반면 자율주행 기술조차 10년이 넘도록 개발하고 있는 테슬라가 걷고 뛰고 디테일한 동작을 해내는 로봇을 구현하기에 3~5년은 부족하다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래를 속단하긴 어렵다. 세간의 의심을 반박하듯 테슬라는 2023년 5월 16일 주주 총회에서 로봇 업데이트 소식을 추가로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테슬라 봇’에는 인간의 동작을 AI가 학습하는 능력이 추가됐는데, 인간의 손가락 움직임을 섬세하게 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모터의 힘을 제어하는 ‘모터 토크 제어(Motor Torque Control) 기술’이 반영돼 필요할 때는 강한 힘을 내면서도 부드러운 동작을 할 때는 계란을 깨뜨리지 않을 정도로 힘의 완급 조절이 뛰어났다.
로봇의 대량생산과 파격적인 가격 설정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유는 선언한 사람이 ‘일론 머스크’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전기차의 성공을 믿지 않았을 때 그는 전기차 대중화를 예견했고 자동차 업계의 판도를 바꿨다. 많은 사람들이 일론 머스크라면 휴머노이드 로봇도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과연 이번에도 세상의 의심을 뚫고 로봇 대량생산에 성공할지 미래가 궁금해진다.
▲ 자동차 공장에서 로봇이 자동차를 용접하는 모습
이미 대다수의 제조 공장에서는 6축 로봇*, 4축 로봇*, 협동 로봇 등 많은 로봇이 사용되고 있다. 이 로봇들은 용접, 페인팅, 조립, 머신 텐딩*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사람이 하기엔 위험하거나 생산성이 낮은 일,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이미 ‘기계로봇’이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왜 굳이 ‘사람처럼 생긴 휴머노이드 로봇’이 필요하냐는 지적도 있다.
* 6축 로봇 : 6개 축을 가지고 있어 3차원 공간의 모든 위치와 방향으로 작업 가능한 로봇
* 4축 로봇 : 4개 축으로 수평 작업에 특화된 로봇. 수평다관절 로봇이나 스카라 로봇이라고도 불린다.
* 머신 텐딩(Machine Tending) : 기계 작동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이 필요한 작업. 예를 들어 원자재를 기계에 투입하거나 가공물을 기계에서 꺼내는 과정이 있다. 최근에는 손이 끼일 위험이 있거나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다루는 경우 협동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는 추세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는 “로봇이 인간이 하는 일을 대신하기 위해선 인간과 크기와 모양이 비슷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테슬라가 성인과 비슷한 키와 무게를 지닌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 서빙 로봇
식당에서 음식을 테이블까지 운반해 주는 서빙 로봇의 경우, 손님이 많아 바쁜 시간대에는 큰 도움이 되지만, 손님이 뜸한 시간대는 할 일이 없어진다. 인간 직원은 서빙 업무가 없어도 청소를 하거나 식기를 정리하는 등 다른 일을 할 수 있지만, ‘서빙만’ 하도록 설계된 로봇은 손님이 와야만 주어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만약 이 서빙 로봇이 운반만 할 줄 아는 로봇이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면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도 다른 일을 하면서 인간을 도왔을 것이다. 산업용 로봇은 꼭 휴머노이드 형태일 필요는 없지만, 서빙 로봇처럼 주어진 업무만 가능하다면 상황에 따라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급변하는 산업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높은 자유도를 지닌 것이 강점이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기존 산업용 로봇과는 다른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동차 공장의 로봇 팔이나 물류 창고에 투입된 바퀴 달린 운송용 로봇과 달리,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의 신체와 행동 양식에 맞춰 다양한 작업 환경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돌발 상황에도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다. 이 같은 차이점으로 인해 기존 산업용 로봇과 별도로 새로운 로봇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2035년까지 1,540억 달러(약 214조 원) 규모가 될 것이라 추정했는데, 이는 전기차 시장과 맞먹는 규모다. 또한 2030년 중반부터 미국 제조업, 서비스업 노동력 부족의 격차를 휴머노이드 로봇이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는데, 한 예로 전 세계 노인 간호 수요의 2~3%를 휴머노이드 로봇이 맡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노동 시장의 높은 인건비를 고려하면 대당 2만 달러의 다용도 휴머노이드 로봇은 매우 높은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저가 휴머노이드 로봇이 실용화되면 가사 노동이 해결되는 노동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로봇 1대가 청소, 빨래, 방범, 장보기, 심지어는 요리까지 모두 해결해 주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런데 이 모든 가사 노동을 해줄 로봇이 대당 2만 달러라면 많은 소비자들이 환영할 것이다. 만약 테슬라가 다음 ‘AI 데이’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빨래를 널고 설거지하고 장을 보는 모습을 시연한다면, 각 가정에서 너도나도 주문 예약 버튼을 클릭하지 않을까.
성수동의 한 카페를 방문하면 사람이 아닌 로봇이 커피를 내려준다. 고객이 원하는 원두를 선택해 주문하면 ‘드립봇(Dripbot)’이라고 하는 로봇팔이 각 원두에 맞는 핸드드립 기법으로 커피를 추출한다. 메뉴를 고민하는 고객은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메뉴를 선택하면 되고, 카페 매니저는 로봇 동료 덕에 고객과의 소통에 더 신경을 쓸 수 있다. 이처럼 반복적인 작업은 로봇이 맡고 직원들은 고객과 소통하거나 레시피를 개발하는 등 창의력이 필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고객 서비스 품질은 높아지고 직원들의 근무 환경까지 개선된 사례다.
▲ 로봇팔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
프랑스의 스타트업 회사 ‘EKIM’은 로봇과 함께 피자를 만든다. 로봇은 500만 개의 레시피를 활용해 피자를 만들며 최대 10개의 피자를 동시에 준비할 수 있다. 고객은 각자 원하는 레시피의 피자를 맛볼 수 있고 직원들은 수십 가지의 재료 배합을 일일이 암기하지 않아도 돼 레시피 개발 등 더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할 수 있다. 로봇은 더 이상 공장에서만 일하지 않는다. 커피를 만들거나 사진을 촬영하고 악기를 연주한다. 로봇은 이제 단순한 ‘기계’가 아닌 사람의 곁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로 자리 잡고 있다.
2023년 3월, 챗GPT 열풍을 몰고 온 AI 개발사 ‘오픈AI’가 한 스타트업에 투자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오픈AI가 투자한 스타트업은 바로 노르웨이의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1X 테크놀로지스’였다. 1X 테크놀로지스는 시리즈 A2 펀딩 라운드에서 2,350만 달러(약 306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투자에 오픈AI 외에 타이거 글로벌, 샌드워터, 알리앙스 벤처스 등도 참여했다.
1X 테크놀로지스는 투자받은 자금을 노르웨이와 북미 지역에 출시된 휴머노이드 로봇 ‘이브(EVE)’의 제조 시설과 2족 보행 안드로이드 로봇 ‘네오(NEO)’의 개발에 투입할 계획이다. 투자를 주도한 오픈AI는 “1X 테크놀로지스가 미래의 일터에 대한 접근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는다”며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이로써 챗GPT와 휴머노이드 로봇의 만남이 현실화 됐다.
▲ 1X 테크놀로지스에서 공개한 2족 보행 안드로이드 로봇 네오 (출처 : 1X 테크놀로지스)
업계에서는 오픈AI의 로봇 기업 투자를 AI 언어모델을 물리적 세계로 적용하기 위한 행보로 보고 있다. 생성형 AI 언어모델을 로봇에 적용할 수 있다면, 자연어 명령만으로 로봇을 조종하거나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AI 기술의 발전은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로봇의 출현으로 이어질거라는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MS의 자율시스템·로보틱스 연구팀이 2023년 3월에 공개한 영상에서 챗GPT에게 ‘거울을 활용해 로봇으로 셀카를 찍어 달라’고 요청하자 컴퓨터 코드가 작성되고 로봇이 이를 즉각 실행하는 모습이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나무 블록을 활용해 회사 로고인 MS를 형상화하도록 챗GPT에게 명령하자 코드를 전달받은 로봇팔이 빠르게 로고를 만드는 영상도 공개되었다.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AI 비서 ‘자비스’가 현실에서 구현된 것이다.
미국 카네기멜런대 로봇연구그룹(BIG)은 그림을 그리는 로봇 ‘프리다(FRIDA)’ 개발에 성공했다. 고도화된 AI를 탑재해 사용자가 원하는 그림을 말이나 사진으로 설명하면 로봇팔이 한 획 한 획 그림을 직접 그려낸다. 프리다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작업 전에 전체 그림을 계획한 뒤, 실시간으로 자신의 붓질과 캔버스의 상황을 파악해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국내 한 백화점은 챗GPT를 적용한 AI 기반 안내 로봇 ‘GPT-플래티’를 선보였다. GPT-플래티는 고객의 질문을 듣고 매장과 시설 위치를 안내한다. GPT-플래티는 로봇에서 생성되는 위치정보와 비전(Vision) 정보를 챗GPT와 연동하여,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찾아 음성으로 안내한다. 또한, 12개의 서로 다른 화각과 해상도, 기능을 가진 멀티 카메라와 고성능 AI 비전 분석 플랫폼을 탑재하여, 공간의 작은 변화를 탐지하고, 방문하는 고객들의 혼잡도와 동선, 행동, 인구 특성 등 특이점을 실시간 분석하여 위험을 사전에 탐지하고 알림을 제공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이처럼 미래의 로봇과 AI는 거의 한 몸과 같은 관계다. 로봇에 쓰이는 AI를 ‘로봇지능’이라고 하는데, 로봇지능이 발달할수록 더 똑똑한 로봇이 나오고 로봇에 대한 수요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챗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들은 더 많이 나올 것이고 로봇 분야에도 계속 적용될 전망이다. AI를 탑재한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유의미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면, 제조, 물류 등 산업 전 영역에서 ‘노동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이미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등 여러 나라들은 국가경쟁력에 직결되는 산업 및 군사 안보의 발전을 위해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로봇지능’이 똑똑해질수록 로봇의 활용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진다. 테슬라를 비롯한 로봇업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챗GPT처럼 똑똑한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발일 것이다. 거실을 청소하고 음식을 나르던 로봇이 AI와 결합하면서 말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등 한층 더 인간에 가까워진 행동을 하게 되었다. 유례없는 속도로 AI가 발전하면서 로봇 역시 어디까지 진화할지 앞으로의 미래가 주목된다.
※ 본 칼럼은 반도체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