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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청소기가 우리를 위협한다면? ‘러브, 데스 + 로봇 시즌2: 자동 고객 서비스’

Written by 자그니 칼럼니스트 | 2021. 6. 15 오전 5:00:00

 


▲넷플릭스 ‘러브, 데스 + 로봇 시즌2’ 공식 포스터(사진 제공: 넷플릭스)

 

스포일러 있습니다.

오래전, 기기 오작동으로 당황한 적이 있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을 테스트하면서 운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이 꺼진 것이다. 뜨거워진 스마트폰 프로세서와 직사광선이 만나 벌어진 일이었다. 내비게이션 기기를 쓸 때는 경험하지 않았던 일이라 많이 놀랐다. 게다가 초행길이라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행히 전에 쓰던 내비게이션이 차 안에 있어 잠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교체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보통은 전자 기기가 인간보다 정확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오작동은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인간의 실수, 소프트웨어 오류, 과다 사용, 불완전한 설계 등 원인도 다양하다. 지난 5월 이런 기계의 오작동을 다룬 애니메이션이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러브, 데스 + 로봇 시즌2’ 에피소드 중자동 고객 서비스가 바로 그것. 뛰어난 인공지능(AI)을 가진 로봇 청소기가 갑자기 인간의 적이 된 이야기다.

로봇이 갑자기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러브, 데스 + 로봇’의 발칙한 상상력

현실에서도 로봇 청소기가 인간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을까? 지금 기술로는 어렵다. 기술이 더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이 스스로를 위협하는 기능을 로봇에 탑재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가능할 수 있다. 고령자들이 모여 사는 고령 친화 도시(Age-Friendly City)나 리조트가 생긴다면, 로봇이 인간을 위협할 수도 있지 않을까? ‘러브, 데스 + 로봇시즌2자동 고객 서비스는 이런 상상력에서 출발한 에피소드다.

 

▲넷플릭스 ‘러브, 데스 + 로봇 시즌2’ 스틸 컷(사진 제공: 넷플릭스)

 

에피소드 주인공 자넷이 사는 해질녘 도시(Sunset City)’의 거주자는 모두 노인이며, 은퇴해서 할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한가로이 여유를 즐기는 고령자들을 돌보는 일은 모두 로봇이 한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있어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하던 일은 모두 로봇이 한다. 그러다 보니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로봇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하늘을 나는 드론, 풀장에서 음료를 서빙하거나 안마하는 로봇, VR 기기로 조작하면 대신 움직이는 게임 로봇, 미용실에서 머리와 발톱을 다듬고 피부 주름을 펴주는 로봇, 자율주행하는 가방이나 휠체어, 의족 로봇, 개를 산책시키는 로봇까지, 요즘 개발 중인 서비스 로봇 대부분이 등장한다. 마치 영화 -E’에 나오는 우주선 생활처럼 인간이 편리하고 행복할 것만 같은 풍경이다.

문제의 가정용 청소 로봇이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자넷은 한가하게 요가를 하고 그녀의 반려견도 편안히 쉬고 있다. 청소 로봇도 자넷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일하고 있다. 옆집 할아버지가 집안을 슬쩍 들여다보는 눈치지만, 자넷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청소 로봇과 이상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모든 게 평화로웠다.


▲‘자동 고객 서비스’ 中 자넷이 청소 로봇의 공격에 대항하는 모습(사진 제공: 넷플릭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넷은 청소 로봇의 단순 오작동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청소 로봇이 애완견을 공격하고, 이에 항의하는 자넷까지 공격하기 시작한다. 급하게 연락한 자동 고객 서비스도 엉망이다. ‘살고 싶으면 애완동물을 로봇에게 던져 희생시키라고? ? 아니, 여보세요, 뭐라고요?’ 자넷의 황당함이 화면 밖에서도 느껴진다.

‘로봇의 공격’은 인간의 공포심이 만들어낸 허상… 로봇은 자기 할일 하기도 바쁘다

로봇이 인간을 공격할 수 있다는 공포심은 정말 오래전부터 있었다. ‘로봇이라는 말은 체코를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가 처음 썼는데, 그의 희곡 ‘R.U.R(Rossum's Uni­versal Robots)’의 내용도 인간을 공격하는 로봇 이야기다. 인간은 로봇의 탄생부터 로봇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고 할 만하다. 오죽하면 SF의 거장인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로봇 공학 3원칙(Three Laws of Robotics)’을 만들어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핵심 원칙으로 삼았을까.

물론 실제로 서비스 로봇이나 군사 로봇이 오작동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서비스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기에는 너무 무력하다. 여기에는 기술적인 이유가 크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우선 필요 이상의 성능을 가진 기능을 집어넣을 경우 가격이 비싸진다. 같은 값이면 가장 저렴한 부품을 찾는 것이 로봇 제작사, 즉 기업의 특징이다.

소송 문제도 있다. 기기가 이용자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제조사가 큰 보상금을 내거나 아예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도 사람을 해칠 기능을 넣는다면 그건 십중팔구 범죄다.


▲배달의민족의 서빙 로봇 ‘딜리’(사진 제공: 배달의민족)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에피소드에 등장한 로봇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있다. 예컨대 배달의민족은 식당용 서빙 로봇딜리를 대여한다. 별도로 실내외 배달 로봇도 테스트 중이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른 회사와 협의해 실제 쓸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로봇 개발도 계획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배달 로봇을 앞다퉈 선보이는 추세다. 스카이프(Skype)의 공동 창업자 아티 헤인라(Ahti Heinla)와 제이너스 프리스(Janus Friis)가 설립한 스타십(Starship Technologies)은 최근 자율주행 배달 로봇으로 100만 배달 건수를 달성했다. 미국의 아마존(Amazon)과 리프랙션 AI(Refraction AI)는 각각 스카우트(Scout)’‘REV-1’로 명명한 자율주행 배달 로봇을 공개했고, 일본 앤드로보틱스(AndRobotics)후루테라(Frutera)’와 중국 알리바바(Alibaba)샤오만뤼(蛮驴)’도 자율주행 배달 로봇으로 소개됐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아직 먼 미래처럼 여겨지지만, 자율주행 카트나 셔틀버스는 실증(實證) 실험이 진행 중이다. 정해진 장소나 코스에서만 운행해 안정성이 높기 때문. ‘러브, 데스 + 로봇에서처럼 이미 이를 활용하고 있는 고령자 대상 요양 시설도 있다. 특히 자율주행 셔틀버스는 노령층의 운전 사고 위험을 줄이면서도 도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고, 다른 대중교통보다 저렴해 대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밖에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로봇과 유사한 로봇들도 이미 현실에 여럿 존재한다. 자율주행 이동장치와 닮은 기기도 현실에 있다. 세그웨이(Segway)가 내놓은 콘셉트 모델 ‘S-POD’는 두 바퀴가 달린 1인승 이동 장치다. 머지않은 미래에 상용화된다면 나중에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들 때 잘 써먹을 수 있을 듯하다. 아직 가격이 비싸 상용화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로봇형 의수도 이미 개발이 완료됐다. 자동으로 머리나 손발톱을 손질해 주는 기기는 아직 없지만, 안마는 이미 안마 의자가 대신하고 있다. 다만, 반려견 산책을 대신해주며 개똥을 치워주는 로봇을 가까운 미래에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로봇의 공격성이 아닌 인간의 이기심

하지만 러브, 데스 + 로봇시즌2자동 고객 서비스에피소드가 완전히 근거 없는 상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누군가 이익을 위해 로봇을 이용해 인간을 해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가 보자. 청소 로봇은 인간을 왜 공격하게 된 걸까? 청소 로봇엔 작은 유해 동물들을 제거하는 기능이 있는데, 처음에는 이 기능이 오작동해 동물과 사람을 공격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로봇 제조회사가 추가 수익을 얻기 위해 청소 로봇에 악성 프로그램을 숨겨 둔 것.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자동 고객 서비스는 앞으로 모든 로봇이 당신을 쫓을 건데, 그게 싫으면 로봇을 종료할 수 있는 화이트 리스트(White List) 서비스에 유료로 등록하라며 오히려 고객을 위협한다. 로봇이 인간을 공격할 이유는 없지만, 인간이 로봇에게 다른 인간을 공격하도록 지시할 이유는 있었던 거다.

실제로 비슷한 사건이 얼마 전에 일어났다. 미국 동부 지역에 석유류를 공급하는 송유관 운영 회사콜로니얼 파이프라인(Colonial Pipeline)’이 해커 집단인 다크 사이드(Dark Side)’로부터 랜섬웨어 공격을 받아, 미국 남부와 동부를 연결하는 약 8,850 길이의 송유관이 일시 폐쇄된 것. 국가 기간 시설이 해커에게 당하는 사건이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났다. 해커는 복구를 원하면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결국 회사는 500만 달러를 그들에게 건넸다.

누군가는 국가 기간 시설을 해킹하는 것과 홈 서비스 로봇에 탑재된 기능을 바꾸는 것은 문제의 성격이 다르지 않냐고 반론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이뤄지는 많은 해킹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다. 다크 사이드가 스스로 밝혔듯 사업에 불과하다. 해킹 프로그램은 다크 웹(Dark Web, 특수한 웹브라우저를 사용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웹)에서 쉽게 살 수 있고 주문 제작도 가능하다. 어떤 기술적인 결함을 끈질기게 파헤쳐 침투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악성코드는 대부분 우리의 사소한 욕망, 즉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거나 공짜로 프로그램을 쓰고 싶은, 또는 부끄러운 부분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용해 침투한다.

좀 더 따져 보자. 자넷이 사는 요양 도시 속 여러 로봇은 아마 사용료가 지불됐기 때문에 움직이고 있을 거다. 간편하게 쓸 수 있는 로봇이니 특별한 기능을 익힐 필요도 없어 보인다. 물론 로봇이 애완동물을 해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함부로 들이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나쁜 회사는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자동 고객 서비스가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고객 클레임이 들어와도 자동으로 무시했을 거다. 회사 입장에서 고객은 요양 도시에 들어온잡은 물고기였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고객을 더 쥐어짜 추가 이익을 거두는 것이었다.

참고로, 청소 로봇이 처음부터 자넷을 공격한 것은 아니다. 자동 고객 서비스의 조언에 따라 껐다 켜려고 버튼을 눌렀더니 제거 모드가 작동했다. 다시 말해 로봇 회사는 청소 로봇이 자넷을 죽이려고 공격하게 된 것이 전적으로 자넷의 실수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기술을 신뢰하려면 기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우린 누군가가 설계한 대로 쉽게 정보를 넘겨주는 데 익숙하다. 복잡해 보이는 건 믿고 맡기고 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서 당신의 활동을 추적하고 그 정보를 다른 회사에 넘길 수 있는 광고 ID’라는 게 있다. 법적으로 이용자가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앱은 이를 필수 약관에 집어넣고 동의를 받는다. 나중에 스마트폰 설정에서 동의를 철회할 수 있지만 이런 건 꼭꼭 숨겨져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일례로 얼마 전 구글이 사용자들의 위치 정보를 추적할 수 없게 될까봐 해당 설정을 숨기고 의도적으로 안 보여주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 로봇을 의심하지 않은 자넷이 잘못한 걸까? 아니다. 사기꾼이 나쁜 거다. 다만 세상엔 상대방이 모르게 손해를 입히는 사람이 넘쳐난다. 그러니 알아야 하고, 제대로 쓰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정보통신 기술 기반의 사회로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장단점이 있지만, 단점이 커지는 속도는 늘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우리는 이런 때 뭘 하면 좋을까? 결말에서 자넷은 추가 서비스 유료 가입을 거부하고 영원히 도주하기를 선택했다. 영원히 도주하기 싫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기술이 악용되지 않게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만 누군가 반도체 기술이 가져다준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