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는 12일 정년 적용을 받지 않는 기술 전문가 ‘Honored Engineer(HE)’ 1호 대상자로 이희열 TL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12월 SK하이닉스는 ‘우수한 엔지니어가 정년 이후에도 자신이 보유한 기술력을 회사에서 발휘하고 후배 엔지니어들을 육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HE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정년이라는 개념을 깨는 시도라고 받아들여져 여론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또, 기업에서는 중간관리자인 팀장을 거쳐 임원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커리어 패스(Career Path)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관리자가 아닌 전문가 트랙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후 누가 첫 번째 주인공이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이어졌고, 이번에 1호 대상자가 선정된 것이다.
HE로 선정된 이희열 TL은 정년 이후에도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하게 된다. 최고의 기술 전문가로 인정받은 만큼 향후 주로 중장기 프로젝트를 맡아 미래 기술개발을 선도하고, 자신이 가진 역량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주는 어드바이저(Advisor)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회사로서는 관리자를 거쳐 임원으로 가는 길만이 아닌, 전문가 트랙의 비전을 보여주면서 HE가 후배 구성원들에게 롤모델 역할을 해주기도 기대하고 있다.
이번 HE 선정에 앞서 SK하이닉스는 2018년부터 ‘Distinguished Engineer(DE)’ 제도를 도입해 운영해 왔다. 우수 엔지니어들에게 기술 전문가로서의 명예를 부여하는 DE는 HE와 마찬가지로 고연차 엔지니어 중 우수 구성원을 대상으로 선발하며, 기술 난제 해결과 후진 양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향후 DE 풀(Pool)이 확대된 이후에는 DE 중 HE가 선발될 수 있도록 양 제도간 연계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SK하이닉스의 계획이다.
뉴스룸은 이러한 제도가 나오게 된 배경과 취지를 알아보고, 영광의 주인공인 이희열 TL을 만나보았다. 더불어, DE로 선발된 김준기 TL과 이번 제도 도입을 주관한 Tech. Talent 이병기 담당과의 인터뷰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앞으로 HE와 DE들이 SK하이닉스의 기술 발전, 구성원 행복, 그리고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창출 측면에서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가늠해 봤다.
반도체 산업에서 ‘사람’은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수많은 반도체 제품과 기술도 결국은 사람이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 특히 반도체 기술 역량의 경우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이 축적돼 완성되는 만큼 반도체 산업에서 기술력을 보유한 ‘인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DE, HE 제도 모두 인재를 키우고, 이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결과물이다. 이 제도들이 탄생하기 전 커리어 패스(Career Path)는 팀장, PL(Project Leader)과 같은 리더 직책을 맡은 후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뿐이었다. 이에 기술 역량뿐 아니라 경영 역량도 두루 갖춰야 하는 임원이 되는 길 외에도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기술 역량을 지속 발휘하며 일할 수 있는 커리어 트랙(Career Track)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목소리들은 경영진에게 닿았고, 2018년 12월 ‘왁자지컬(왁자智Culture, 새로운 세대와 더불어 다양성을 존중하고 창의성을 북돋아 주는 SK하이닉스의 기업문화)’ 콘서트에서 이석희 CEO가 “우수 엔지니어가 정년 이후에도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하기에 이른다.
이후 기술 전문가로서의 명예를 부여하는 ‘DE(Distinguished Engineer)’ 제도가 신설돼, 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면 리더 직책 외에도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SK하이닉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CEO의 약속대로 정년 이후에도 기술 전문가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방안을 고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 ‘HE(Honored Engineer)’ 제도다.
Tech. Talent 이병기 담당은 “반도체 업(業)의 특성상 많은 경험과 지식이 축적될수록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가고 기술경쟁을 주도하는 데 유리하다”며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반도체 ‘장인’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회사에서 지속적으로 맹활약할 수 있도록 DE 제도의 연장 선상에서 HE 제도를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구성원이 DE, 나아가 HE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요건을 갖춰야 할까? DE는 기술 역량이 우수하고 기여도가 분명한 고연차 구성원을 대상으로 선발한다. HE는 DE처럼 ‘장인’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고연차 중 정년을 앞둔 우수 엔지니어가 선발 대상이다.
DE와 HE 모두 기본적으로 뛰어난 ‘기술력’을 갖춰야 하며, 구성원 사이에서 ‘평판’도 좋아야 한다. 선발 결과에 납득할 수 있으려면, 구성원들이 선발 대상에게 ‘존경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 이를 위해 회사는 대상자 선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먼저 DE, HE 선발 대상 조건에 맞는 구성원을 선별한 후, 각 조직 담당 추천을 통해 후보군을 선정한다. 그런 다음 평판을 파악하기 위해 함께 일한 후배부터 선배까지 다양한 구성원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후에는 보유하고 있는 기술 역량을 분석하기 위한 SKHU(SK hynix University, 직무역량통합교육시스템)의 교수진의 기술 면접이 기다리고 있다. 이 과정을 모두 거쳐야만 최종 심사 대상이 돼 마지막 각 분야별 심의위원회 평가를 받은 후 DE, HE로 선정된다.
신설된 제도인 만큼 큰 틀은 갖춰져 있지만, 더 채워야 할 것도 있다. 아직 DE의 풀(Pool)이 충분하지 않아 기준 연령 이상 구성원 중에서 HE를 선발하고 있지만, DE 규모가 충분히 늘어난 이후에는 DE 내에서 HE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연계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각 조직 상황에 맞게 역할을 세분화해 보유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인프라도 구축해갈 방침이다. 이병기 담당은 “아직 구성원들이 DE, HE가 되면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소속된 조직마다 이들에게 원하는 역할도 다르다”며 “먼저 기술 난제를 해결하는 과제를 위주로 역할을 부여하고 있으나 점점 DE, HE 역할의 폭을 넓혀가며 제도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에서 반도체 장인에 대한 예우를 갖춤으로써 바라는 기대효과는 무엇일까? 먼저 기술 난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중장기 요소기술 및 프로젝트 개발 역할이 부여된다. 또한, 미래 기술 로드맵을 설계하는 데 고문 역할로, 기술 부문의 중요한 의사결정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이병기 담당은 “앞선 DE 1, 2기를 통해 직책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조직과 교류하는 DE들이 SK하이닉스의 기술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HE 역시 중장기적인 프로젝트, 기술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구성원들의 롤모델로서 주니어 엔지니어들의 동기부여를 이끌어내고, 오랫동안 축적한 노하우를 공유하며 후진을 양성하는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채용 관점에서도 취업준비생들이 그리는 미래의 목표로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병기 담당도 “DE, HE는 각 조직의 구심점이 돼 주변 구성원들과 함께 회사에 기여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창출 측면에서도 DE, HE 제도의 의미가 있다.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많으면 은퇴하고 쉰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나이와 무관하게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기업문화 Tech Talent 이병기 담당
이 담당은 “백발의 우수 엔지니어들이 회사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면서, 구성원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을 꿈꾸고 있다”며 “DE, HE 제도가 새로운 기업문화를 선도하며, 반도체 산업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DE 김준기 TL, HE 이희열 TL
실제로 DE, HE 제도에 선발된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뉴스룸은 HE 1기에 선정된 이희열 TL(NAND), DE 3기에 선발된 김준기 TL(R&D공정)을 만났다.
▲ HE 이희열 TL
이희열 TL은 1993년 입사해 낸드플래시 소자를 개발하는 업무를 해왔으며, 사내 기술 강사로 구성원 기술 역량 향상에 오랫동안 기여했다. 다양한 성과를 쌓았지만 그 중에서도 본인은 낸드플래시 교란성(Disturbance) 이슈 발생 시 해결책 및 사전 방지책을 제시하고, MLC(Multi Level Cell)/TLC(Triple bit per Cell)/MLC/QLC(Quad bit per Cell MLC) 개발 시 선도적으로 참여한 것을 기억에 남는 사례로 꼽는다. 27년간 SK하이닉스의 발전에 기여해온 이 TL은 사내 우수강사로 CEO포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국내∙외 특허 484건 출원 등 메모리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16년 ‘발명의 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반도체 소자에 관한 기술 역량을 열심히 쌓아온 결과, DE 2기에 선발된 데 이어 올해 HE 1기로 선정됐다. 소감을 묻자 이희열TL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엔지니어로서 최고 영예를 받게 돼 매우 기쁘다”고 답했다.
소자 업무 특성상 혼자서 할 수 없는 업무이기에 유관 업무를 늘 예의주시하고, 반도체 시장 동향들을 늘 살펴왔다. 그런 노력이 HE 선정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좁지만 깊은 전문성을 가진 I자형 인재가 되기보다는, 넓고 깊게 아는 Y자형의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며 “그 덕분에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런 노하우를 후배들에게도 전해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이 TL은 SK하이닉스 구성원 중 DE에서 HE로 이어지는 새로운 커리어 패스를 가장 먼저 걷게 된 ‘기술 전문가’다. 이 길을 걸을 때 일하는 환경이나 하는 일이 어떻게 바뀌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구성원이라는 의미다. 그는 “DE가 됐을 때, 단기 프로젝트보다는 중장기 프로젝트를 주로 맡아 협업해야 할 구성원들이 더 늘어났고, 그 안에서 조언자 역할을 했다”며 “팀장, PL 시절보다 후배 구성원들이 더 편하게 조언을 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은 멘토가 돼야겠다는 책임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HE 제도에 대해서 이 TL은 “DE, HE 제도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바탕으로 자신이 쌓아온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라며 “후배들도 새로운 커리어 패스를 잘 활용해 회사에 기여하며 자신의 행복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DE 김준기 TL
김준기 TL은 1990년 입사해 지금까지 공정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반도체 제품을 개발하는 업무를 해왔다. 선행공정 팀에서 다양한 공정들을 개발했으며, 특히 박막(Thin Film) 공정에 관해 집중 연구해 많은 성과를 냈다. 이처럼 공정 선행기술 개발과 공정고도화를 이루며 프로젝트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이 DE로 선발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김 TL은 “DE라는 명예를 받음으로써 기술력으로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든다”며 “새로운 시작이라는 각오를 되새기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 TL은 DE, HE 제도에 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기술력이 뛰어난 구성원들만 DE 호칭을 받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이 DE로 선발되고자 노력한 동기가 됐다고. 그는 “기술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학문의 기반을 잘 다져놓고, 이를 업무와 연관 지어 지식을 축적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이런 자세로 노력했기에 DE에 선발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또한 늘 함께해준 주변 동료들에게도 공을 돌렸다. 그는 “주어진 답을 해결하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주변 구성원들과의 협업을 통해서도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며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더 많은 것을 배워왔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기술 발전을 이끈 김준기 TL이지만 얼마 전까지는 정년 후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며 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DE로 선정되면서 그 계획은 잠시 미뤄둔 채 회사에서 구성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 고민하고 있다. 그는 “안정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돼, 나를 포함한 우리 구성원들의 행복감도 앞으로 많이 커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김 TL은 마지막으로 후배들을 향한 따뜻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되돌아보면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역량을 개발하고자 하는 향상심과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며 “후배들도 이 두 가지를 유념하면서 회사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① ’20년 HE/DE 임명식(왼쪽에서 네 번째 미래기술연구원 김진국 담당, 다섯 번째 HE 이희열 TL) ② HE상패
SK하이닉스는 12일 조직별로 진행된 DE 3기와 HE 1기의 임명식을 진행했다. 이석희 CEO는 “앞으로도 반도체 기술을 선도하는 세계 최고의 역량으로 SK하이닉스의 성장을 이끌어 주시기를 기대한다”며 “정년 이후에도 역량을 마음껏 펼쳐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