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커다란 타격을 준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수많은 방역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백신이 개발돼도 팬데믹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 지금의 상황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급속도로 과학 기술이 발전한 1900년대 초중반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디지털 전환)의 실현을 앞당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트리거(Trigger)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과 함께 시작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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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은 인터넷 혁명 시대라고 불리는 1990년대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적용해 전통적인 사회 구조를 혁신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제한된 분야에 적용되는 단순한 기술 혁신과 달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기업 경영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며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시킨다는 특징이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3단계의 진화를 거쳤다. 첫 번째는 1990년대 말 이루어진 ‘디지털인프라 기반 구축’ 단계. 본격적으로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MP3, VOD 서비스와 같은 디지털 상품이 등장했고, 서버, 네트워크와 같은 디지털 인프라가 구축됐다. 이어 2000년대 초반 이루어진 두 번째 변화는 구축된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e-커머스 시장 활성화가 핵심. 인터넷 보급이 확산하면서 전자상거래의 비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에 따라 기업들은 온라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디지털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2010년대 초반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솔루션과 블록체인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 플랫폼의 등장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기업들이 ‘전산화(computerization)’와 ‘디지털화(digitization)’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 경영전략 및 비즈니스 모델의 총체적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화’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코로나19사태로 인한 언택트(Untact) 기술의 수요 증가와 맞물려 점점 더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 변화는 우리의 일상 속 라이프스타일 변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나이키, 샤오미, 스타벅스, 테슬라 등 각 산업 분야를 대표하는 공룡 기업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사례는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청사진을 보여준다.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사용자 경험 개선한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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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등 ‘스타 마케팅’의 대명사인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는 2006년 최초로 디지털 웨어러블 제품을 출시한다. 바로, 나이키의 자체 디지털 센서인 ‘나이키 플러스’와 애플의 아이팟 나노가 결합된 ‘나이키+아이팟’. 신발 속 나이키 플러스 센서가 사용자의 발걸음을 측정해 아이팟으로 전달하는 일종의 피트니스 기능이 내장됐다.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개념조차 생소했던 당시, 사용자의 성취감을 고취하는 ‘나이키+아이팟’의 기능은 매우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10년 독립적인 디지털 스포츠 부서를 신설한 나이키는 ‘나이키+GPS’, ‘나이키+스포츠워치’등 다양한 제품군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시도를 한다. 특히 ICT기업과의 전략적인 제휴를 통해 운동의 가치를 전파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했는데,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바로 2012년 출시된 ‘XBOX 키넥트 트레이닝(Nike+kinect training)’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동작 인식 기술인 키넥트(Kinect)를 활용한 이 게임은 가상 트레이너의 코칭을 받으며 목표 운동량을 달성하는 프로그램으로, 오늘날 홈 트레이닝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애플과 콜라보한 2세대 스마트 밴드 제품 ‘애플워치 나이키 플러스’를 통해 소프트웨어 역량을 과시한 나이키는 마침내 2019년 ‘나이키 핏(Nike Fit)’이라는 자체 인공지능 서비스를 출시한다. 머신러닝 기반의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매장에 방문하는 고객의 발 사이즈를 자동으로 찾아낼 수 있게 한 것. 이처럼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과 혁신을 거듭한 나이키의 디지털 전략은 브랜드에 대한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물인터넷의 저력 보여준 샤오미의 ‘올 인 원(all-in-one)’시스템

샤오미는 중국의 오피스 프로그램 개발 기업 ‘킹소프트(Kingsoft)’의 최고경영자(CEO) 레이쥔이 2010년 창업한 신생기업이다. 삼성이나 LG 등 자체 제조 시설을 갖춘 전자회사들과 달리 별도의 제조 공장이 없는데, 이는 부품 조립부터 생산, 배송까지 외부 업체에 위탁하는 외주 생산 방식(EMS)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 거의 모든 제품군을 EMS 제조를 통해 생산할 경우 약 10%에 달하는 생산비 절감이 가능하다. 샤오미의 최대 경쟁력으로 꼽히는 저렴한 가격대 역시 이러한 생산 방식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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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비용이 줄어든 덕분에 샤오미는 제품에 내장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할 수 있게 됐다. 샤오미의 전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Mi Home’은 소비자가 구입한 제품명을 등록하기만 하면 블루투스 기능을 통해 모든 기기를 손쉽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원격 제어 시스템은 제품 하나를 사용할 때보다 여러 개를 사용할 때 더욱 빛을 발하므로, 사용하는 제품 수가 많을수록 사용자가 체감하는 효용가치가 더 커진다. 2018년 말 기준 샤오미 사물인터넷(IoT) 서비스에 등록된 기기의 수는 8,500만 개로, 이른바 ‘샤오미 생태계’가 얼마나 잘 구축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샤오미 소프트웨어의 특징인 뛰어난 호환성은 샤오미의 스마트폰 기종에 자체적으로 탑재되는 운영체제(OS) ‘MIUI’에서도 잘 나타난다. MIUI는 업데이트 등 사후지원뿐만 아니라 자체 앱스토어(Mi 앱스토어)와 클라우드(Mi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규제 때문에 구글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중국 소비자들을 위해 별도의 플랫폼을 구축해 자사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게 한 것. 우회접속 등 까다로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샤오미 하나면 다 되는’ 사용자 경험은 전자제품과 모바일 시장에서 비교적 후발주자인 샤오미가 무서운 속도로 경쟁사들을 따라잡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사용자 중심’ 디지털화의 모범 사례 보여준 스타벅스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는 2009년 최고정보책임자(CIO)로 임명된 스테판 질렛이 디지털 벤처 부서를 신설하며 본격적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단행했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바로 ‘e프리퀀시’ 서비스와 ‘사이렌 오더’ 시스템. e프리퀀시 서비스가 도입되기 전까지 스타벅스의 대표적인 굿즈인 스타벅스 플래너를 받기 위해서는 누구나 17장의 종이 스티커를 손수 모으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고객의 입장에서 음료를 시킬 때마다 일일이 종이 쿠폰을 챙겨야 한다는 건 작지 않은 부담이었고, 몇 장 모으다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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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4월 스타벅스는 전용 모바일 앱과 함께 e프리퀀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종이 스티커를 모바일 앱에 내장된 바코드로 바꿔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 분실 우려가 없는 데다, 기간 안에 e프리퀀시를 모으지 못해도 메신저나 SNS로 바코드 번호를 주고받는 ‘품앗이’가 가능해 스타벅스 플래너를 갖고 싶어 하는 수많은 이용자가 스타벅스 앱으로 유입됐다. 사용자 편의를 고려한 기술 개발이 그 자체로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된 셈.

여기에 더해 2014년 5월 론칭한 ‘사이렌 오더(Siren Order)’는 모바일 앱을 통해 주문하고 매장으로 받으러 가는 시스템으로, 이용자의 수령 시간을 단축해준다는 점에서 확실한 편익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6월 선보인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서비스 ‘MY DT Pass’ 역시 차량 정보를 등록하면 매장 진입 시 자동 인식을 통해 결제가 이뤄지도록 해 편의성 측면에서 사이렌 오더와 일맥상통한다.

올해로 출시 10주년을 맞이한 스타벅스 앱은 주문부터 포인트 적립, 모바일 기프트와 이벤트 참여 등 다양한 소비자 활동이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로 브랜드의 감성과 문화를 녹여내는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고객을 모바일 앱 생태계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스타벅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사례는 F&B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디지털 전환 시대의 새로운 국면, 테슬라의 완전 자율주행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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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인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전기차 회사 테슬라는 기술력 자체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테슬라의 전기 자동차는 자동 운행(automatic operation)과 완전 자율주행(FSD, Full Self Driving)이라는 두 가지 운전 방식을 지원하는 것이 특징. 차체에 탑재된 8개의 카메라가 360도 각도로 최대 250m 전방의 물체를 인식하며 주행한다. 아직은 개발 단계에 있지만, 추후 테슬라의 완전 자율주행 기술이 완벽하게 구현되면 자동차의 개념은 단순 이동수단을 넘어 거주 공간, 프라이빗 오피스까지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는 단순히 전기 자동차를 대중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매개로 한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궁극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오너 드라이버가 직접 차를 운전하지 않는 ‘완전 자율주행’이 실현되면, 더 이상 자동차는 ‘탈 것’뿐만 아니라 이동과 동시에 영화 감상, 게임, 비즈니스 업무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종합 플랫폼이 되기 때문.

이러한 ‘특별한 차량 이용 경험’의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테슬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기술 안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첫 번째는 자율주행에 필요한 시스템을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업데이트하는 OTA(Over-the-air) 기술. 차량 내 탑재된 인포테인먼트 스크린(infotainment screen)이 필요한 업데이트 요소를 알려주면, 와이파이 연결을 통해 마치 스마트폰처럼 자동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이다.

두 번째는 배터리 등 하드웨어의 스펙을 업그레이드하는 것. 배터리 용량을 혁신적으로 늘림으로써 1회 충전당 주행거리, 즉 연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테슬라만의 ‘오리지널 콘텐츠’ 개발이다. 현재의 테슬라는 정차 상태일 때 자체 탑재된 스크린으로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동영상 스트리밍(OT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테슬라는 앞으로 이러한 OTT 서비스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개발한 오락 콘텐츠들을 소비자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작년에 출시된 레이싱 게임 ‘비치 버기 레이싱 2’가 대표적. 이렇게 차 안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게 되면 그동안 PC와 모바일 기기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넘어 현대 라이프스타일의 패러다임을 바꿔가고 있는 이들 기업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는 2020년 1분기 실적발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2년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두 달 만에 일어났다”고 말했다. 코로나19라는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더욱더 빠른 사회 변화 속도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 디지털 전환으로의 골든 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예측이 어려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결국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불가항력적인 시류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신속하게 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IT 칼럼니스트

비에르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