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싸이월드, 메이플 스토리 등에서 인기를 끌다 사라진 ‘아바타(Avatar, 사이버 공간에서 사용자의 분신처럼 사용되는 가상의 그래픽 아이콘)’가 Full 3D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인공지능이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하고 예측을 수행하도록 하는 기술)을 통해 모바일 환경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아바타 붐을 다시 일으킨 주역은 최근 인싸(‘인사이더’라는 뜻으로,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신조어)들의 ‘최애 앱’으로 떠오른 ‘제페토(ZEPETO)’.
제페토에서 선보이고 있는 3D 아바타 서비스는 처음에는 한 모바일 앱의 기능 중 하나였다. 국내 기업 캠프 모바일(Camp Mobile)이 개발한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카메라 앱이자 소셜 미디어인 ‘스노우(SNOW)’는 사진을 찍는 사람의 얼굴 위에 토끼 귀나 고양이 수염을 붙여주는 기능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스노우의 여러 기능 중 사용자의 표정을 따라 하는 3D 아바타 기능이 사용자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모은 것. 스노우는 이 기능을 별도 앱으로 출시해도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제페토다.
제페토는 1.0 버전과 2.0 버전으로 구분된다. 2018년 8월에 출시한 1.0 버전은 아바타를 생성하고 옷을 입히는 인형 놀이 수준의 시스템이었으나, 2019년 3월에 나온 2.0 버전에서는 앱에서 친구를 맺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동영상을 만들어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로 변모했다. 제페토는 2018년 8월 출시 이후 1년 6개월 만에 글로벌 누적 가입자가 1억3,000만 명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이쯤에서 궁금증이 하나 든다. 앞서 소개했던 ‘젠리’처럼 과거에 존재했던 서비스라도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는 경우가 있다지만(관련기사 힙한 10대 ‘인싸’들이 주목하는 새로운 소통 방식 ‘젠리(Zenly)’), 인스타그램, 틱톡처럼 쉽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세상에서 이미 식상해진 아바타 서비스가 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제페토의 인기 비결 하나: 예쁜 ‘캐릭터’로 즐기는 인싸 문화
제페토 외에도 애플의 ‘미모티콘’, 삼성전자의 ‘AR 이모지’, 페이스북의 ‘아바타’ 등 아바타 기능을 제공하는 플랫폼은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페이스북의 아바타는 과거 싸이월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AR 이모지는 ‘예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나마 애플의 미모티콘이 유일하게 예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상황에서, 그것보다 ‘더 예쁜’ 캐릭터를 내세운 것이 제페토였다.
제페토의 초기 기획은 ‘나와 닮았지만 예쁜 캐릭터’다. 전면 카메라로 사용자의 얼굴을 촬영하면, AI(인공지능)가 머신러닝 기술로 사용자와 닮은 얼굴의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준다. 다른 앱은 아바타 틀은 아예 예쁘지 않았거나, 예쁘지만 직접 설정해야 하는 귀찮음이 있었지만, 제페토의 아바타는 그렇지 않다. 기본 형태만으로도 충분히 예쁜, 그런데 꾸미면 더 예쁜 유일한 3D 캐릭터가 탄생한 것.
▲ 제페토는 머신러닝 기술로 표정과 얼굴 형태를 그대로 인식해 나와 닮은, 그러면서도 더 예쁜 캐릭터를 만들어준다.(왼쪽) 또한, 의상, 헤어, 신발, 메이크업, 액세서리까지 다양한 아이템이 구비돼 있어 원하는 대로 아바타를 꾸밀 수 있다.(오른쪽)
제페토는 예쁜 것을 넘어서 유행 위에 올라타기를 원했다. 2.0 버전에 이르러 ‘쉼표 헤어(눈썹까지 오는 앞머리를 쉼표 모양으로 말아서 연출하는 헤어스타일링)’ 등의 헤어스타일, ‘인싸 화장’으로 불리는 메이크업, 스트릿 패션, 모자나 머리띠, 네일 아트 등 현시점에서 유행하는 모든 패션과 뷰티 스타일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 또한 다른 플랫폼과 다르게 Full 3D로 구축돼 다양한 모션이나 댄스, 포즈 등을 도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제페토는 제일 예쁜 동시에 트렌디(Trendy)한 아바타 플랫폼으로 거듭났고, 이러한 강점은 지금도 발휘되고 있다.
젠리, 틱톡처럼 Z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제페토는 이들의 ‘인싸 문화’를 이해하고 가상의 세계에 이 문화를 옮기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캐릭터를 예쁘게 꾸밀 수 있게 했고, 그다음에는 앱 내에서 친구를 맺은 뒤 함께 사진을 찍고 인증하며 노는 다양한 방법을 선보였다. 오프라인 인싸 문화를 온라인으로 옮긴 것.
인싸가 되기 위해서는 캐릭터를 예쁘게 만들어야 하고, 이것은 의상과 아이템, 메이크업 등을 구매해야 하는 요인이 된다. 타깃에 맞춰 유료와 무료 아이템을 제공하며, 가상화폐인 ‘젬’과 ‘코인’을 무료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설문 조사, 앱 설치, 광고 보기 등의 방법을 제공하기도 한다.
제페토의 인기 비결 둘: 현실에선 불가능한 환상적인 경험 제공
▲ 블랙핑크의 ‘아이스크림’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에서 인증샷을 남길 수 있다.
제페토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현실에서라면 불가능한 다양한 서비스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사용자는 제페토 안에서 스타와 사진을 찍거나 스타의 방에 방문할 수 있다. 3D 가상 월드인 ‘제페토 월드’를 통해 평소 좋아하던 연예인의 아바타에게 사인을 받고 함께 인증샷을 찍거나, 가상으로 꾸며진 연예인의 집에 방문할 수 있다. 실제로 제페토는 블랙핑크가 신곡 ‘아이스크림’을 올해 9월 선보이자, 캐릭터가 방문하고 인증샷을 찍을 수 있도록 ’아이스크림’ 뮤직비디오 무대를 3D 맵으로 구축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제페토 월드가 제공되며, 다이나믹듀오, 핫펠트, 쏠 등이 소속된 아메바컬쳐가 제페토 월드 맵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여타 플랫폼과 달리 캐릭터가 Full 3D로 구축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
3D 서비스의 콘텐츠 확장성은 무한대에 가깝다. 기존에는 아바타의 특정 모션을 친구에게 메시지로 보내는 정도의 서비스만 가능했다면, 제페토에서는 아바타가 가상의 세계에서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수준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제페토는 르네상스 시대 명화를 재현한 ‘버추얼 미술관’을 열고 명화를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했는데, 이곳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등 세계적인 명작들을 시공간 제약 없이 감상할 수 있다.
댄스, 포즈 같은 동적인 기능들을 터치 한 번으로 자신의 캐릭터에 적용할 수도 있다. 일반 사용자들은 코디 세트(Co-ordi. Set, 원하는 헤어, 메이크업, 의상을 모아놓은 구성)를 만들어 자신의 피드(Feed, SNS 계정에서 다른 사용자에게 노출되는 첫 화면)에 업로드할 수 있는데, 이 피드를 보면서 다른 사람이 만든 코디 세트를 자신의 캐릭터에 바로 입혀보거나 구매할 수 있다. 제페토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블랙핑크의 경우 신곡 ‘아이스크림’의 댄스 모션을 제페토에 구현해 놓았다. 사용자는 터치를 통해 자신의 캐릭터가 ‘아이스크림’ 커버 댄스를 추게 만들 수 있다.
▲ 제페토에서는 아바타가 ‘아이스크림’ 커버 댄스를 추도록 할 수 있고(왼쪽), 아바타에게 웹툰 ‘유미의 세포들’ 의상을 입힐 수도 있다.(오른쪽)
제페토는 네이버에서 시작된 서비스라, 네이버 인기 서비스로의 콘텐츠 확장을 꾀할 수도 있다. 브라우니 등 네이버의 인기 캐릭터와 인증샷을 찍을 수 있고, 유미의 세포들, 선녀강림 등 인기 웹툰 캐릭터의 의상을 구매하거나 이들과 함께 인증샷을 찍을 수도 있다. 다른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도 활발한 편이다. 네이버 캐릭터 외에 BTS의 캐릭터 브랜드인 BT21 역시 입점해 있다.
제페토 월드는 단순히 인증샷을 찍는 용도뿐 아니라 일종의 게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아직은 점프, 질주 등의 단순한 행동만을 할 수 있지만, 이 행동만으로도 3D로 조성된 맵 안에서는 게임처럼 사용할 수 있다. 높은 곳에 올라 인증샷을 찍고 장애물을 뛰어넘는 모습은 마치 이것이 예쁜 마인크래프트(Minecraft, 블록을 쌓아 캐릭터와 3D 맵을 만들 수 있는 게임. 사용자가 직접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일종의 프로그래밍 툴로도 활용된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제페토 월드는 아바타의 클래식한 사용법인 캐릭터 꾸미기와, 무한대의 오픈 월드 게임인 마인크래프트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제페토의 인기 비결 셋: 잘 만들어진 크리에이터들의 놀이터
제페토는 사용자들과 기업에게도 무한한 자유를 주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일반 사용자는 틱톡처럼 저작권 문제가 해결된 음원, 이미지, 제페토가 제공하는 의상, 메이크업을 조합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했고, 다른 소셜 미디어처럼 팔로우와 조회수 시스템을 넣어 인기 크리에이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시스템 안에서 실제 댄스와 아바타 댄스를 결합해 영상을 만드는 크리에이터,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메이크업을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 인기 드라마 등의 캐릭터를 똑같이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 등 다양한 형태의 인플루언서가 등장하고 있다.
▲ 한 크리에이터는 제페토 아바타로 BTS 커버 댄스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왼쪽) 나이키 같은 기업도 브랜드관을 열고 아바타를 위한 아이템들을 판매하고 있다.(오른쪽)
의상의 경우 개인과 기업을 모두 끌어들이는 중이다. 제페토 스튜디오를 출시해 3D 툴을 다룰 수 있는 사용자에게 유행하는 옷을 만들게 하고, 이 아이템들을 판매할 경우 수익을 보전해주고 있다. 올해 5월 네이버 발표 내용에 따르면 한 달간 6만 명이 참여했고 2만 종의 아이템이 등록됐으며 월 300만 원의 순수익을 올린 크리에이터도 등장했다고 한다.
제페토 스튜디오는 3D 툴 전문가뿐 아니라 템플릿을 내려받아 의상을 만들 수 있는 초급 크리에이터용 툴도 있다. 이를 통해 사용자들은 유행에 매우 민감한 타깃의 니즈에 부합하는 아이템을 빠르게 생성할 수 있다.
기업의 경우 제페토 비즈니스에 참여해 스튜디오를 만들고 의상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 실제 판매 수익 창출이나 프로모션용 제공 등 대부분의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하다. 나이키, 크리스천 루부탱, 디즈니, 블랙핑크, BT21 등 다양한 기업이나 컬래버레이션 모델이 등장해 사랑을 받았다. 또한,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경우 블랙핑크나 아메바컬쳐의 사례처럼 가상 월드를 만들어 스타와 똑 닮은 캐릭터와 함께 만족스러운 가상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다.
제페토의 약진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 : 빠른 대응과 제대로 된 타깃팅이 핵심
제페토는 개발 역량 면에서 단점이 없다고 할 정도로 뛰어나다. 우선 단기간에 서비스를 내놓은 것이 눈에 띈다. 1.0 버전의 개발은 기획부터 출시까지 3개월, 2.0 버전은 7개월 만에 내놓을 정도로 출시 속도가 빨라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앱스토어 리뷰, 소셜 미디어 반응 등을 꾸준히 살펴 사용자 피드백을 빠르게 반영하기도 했다.
▲ 클릭 한 번이면 원하는 댄스 모션을 선택해 아바타에게 적용할 수 있다.
기존 캐릭터 기반 서비스 중 사용자가 불편을 느낄 만한 요소를 빠르게 제거한 것도 특징이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으로 사진만 찍어도 대강 닮은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고, 메이크업이나 아이템 등을 입히는 시스템도 어렵지 않다. Full 3D인 점을 활용해 여러 포즈를 터치 한 번으로 적용할 수 있는 편의성도 갖췄다.
10대의 ‘인싸 문화’를 확실하게 공략하되, 가상의 캐릭터에서 오는 강점들도 흡수했다. 인싸 문화를 위해 친구를 맺고 함께 인증샷을 찍는 것은 기본인데, 가상의 캐릭터라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친구를 맺을 수 있다. 모르는 사람과 인증샷을 찍는 항목도 존재하며, 그룹 모임을 할 수 있는 항목도 마련해 놓았다.
특정 스타의 팬덤(Fandom)을 쉽게 흡수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팬을 위해 스타와 닮은 캐릭터를 만들어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3D로 완벽 구현하고, 이들의 춤을 따라 하거나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를 방문하기도 쉽다. 현실이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사인회와 인증샷도 가상 캐릭터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높은 기술 수준과 기술 이해도, 그리고 세밀한 타깃팅이 결합해 만들어진 제페토는 3D이기 때문에 가능한 확장성을 바탕으로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해내고 있다. 이것이 제페토가 Z세대 타깃 서비스 중 후발주자임에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비결이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