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M개발 차선용 담당의 집무실은 액티브(Active)한 느낌이다. 회의 내용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화이트보드들이 집무실 한쪽을 다 차지하고 있고, 반대편 벽은 자석으로 고정된 각종 서류와 참고자료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책상 위에도 각종 전문 서적들이 쌓여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차선용 담당은 담담하면서도 활기차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자신이 맡은 업무 전반은 물론, 세계 정세와 시장 상황, 다가올 미래에 이르기까지 막힘 없이 이야기를 풀어가며 뛰어난 식견을 드러냈다.
‘최고의 DRAM을 향해’ SK하이닉스의 성장 이끌 미래 설계자
SK하이닉스 DRAM 사업은 최근 몇 년간 회사의 급격한 성장세를 이끈 주역이자 명실상부 회사를 대표하는 주력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출 규모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2위지만, 제품의 품질과 기술력만큼은 1위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 기술력을 견인하고 있는 핵심 조직이 바로 DRAM개발 담당으로, 각 기술 단계마다 핵심 제품(Core Product)과 그에 따른 다양한 파생 제품들을 개발해 주어진 시간 안에 내부 인증, 고객 인증을 거쳐 사업화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중책을 맡고 있는 만큼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하지만 차선용 담당은 부담감에 짓눌리기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가고 있다.
“최고가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는데 규모 측면에서는 2위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면 규모를 포함한 경쟁력 전반이 올라갈 것이기에 어떻게 하면 우리가 ‘탄탄한 기술력 1위’가 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도 뒤따르는 법. 올해도 SK하이닉스는 고집적 메모리(High Density Memory)와 HBM2E 등을 중심으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고집적 메모리는 밀도(Density)가 높아 그에 따른 품질과 수율을 모두 갖춰야 하는데,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해 의미 있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특히 DRAM 중에서는 서버 DRAM의 품질이 가장 중요한데, 고집적 메모리를 포함해 서버용 제품 전체적으로도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 기준 2020년 상반기 시장점유율 40%로 1위)
HBM2E 제품 역시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품질과 성능 모두 고객의 인정을 받고 있어, 앞으로도 이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모바일과 그래픽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플랜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차선용 담당은 오토모티브(Automotive) 사업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SK하이닉스의 차량용 반도체 분야 시장점유율은 아직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축적해온 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바탕이 된다면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사업에서 오토모티브 분야 경쟁력이 중요한 이유는 이 제품에 요구되는 품질 요건이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오토모티브 사업부가 SK하이닉스의 전체적인 제품 품질과 생산 체계를 업그레이드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사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경우, 다른 모든 DRAM 품질의 레버리지(Leverage) 역할을 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제품 라인업으로서 DRAM 사업의 새 활로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 업황에 대해 ‘고객들의 DRAM 재고가 쌓여있는 만큼, 회사 실적은 약세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대로 ‘내년에는 공급 부족으로 인해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에 대해 차선용 담당은 “시장에 우려와 기대가 상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내부적으로 면밀하게 검토하며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글로벌 경영환경의 변동성이 더 커지면서 그만큼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 상황.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고객과의 협력관계를 공고히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업에 미치는 변수가 다양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우리가 공급할 수 있는 시장을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반도체 산업은 주기적으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또한 외부 변수에 민감해 언제나 글로벌 정세와 시장 상황을 꾸준히 살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런 만큼 업황과 외부 변수로 인한 영향을 줄이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 차선용 담당은 현재 이를 위한 준비도 착착 진행하고 있다.
“반도체업의 특성상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 외부 시장 환경 변화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원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TF를 구성해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조속히 1등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여러 실행방안을 만들어 추진 중입니다”
“한계는 극복하라고 있는 말” 냉철한 전략가
DRAM 사업에서 선두그룹의 기술 격차는 거의 사라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 만큼 SK하이닉스는 선두그룹으로서의 기술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SK하이닉스는 핵심 기술(Core Technology) 확보 측면에서 1xnm(1세대 10나노미터급 제품)부터 ‘플랫폼(Platform)’ 개념을 도입해 성과를 이뤄냈다. 플랫폼은 특정 기술을 개발할 때 하나의 세대에만 적용할 수 있게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서 오랫동안 적용할 수 있는 기술적인 틀을 미리 만들어놓는 것을 의미한다.
“플랫폼 개념을 도입하면 초기 플랫폼이 바뀔 때는 투자 비용이 들지만 동일한 플랫폼을 공유하는 다음 세대의 기술을 개발할 때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덕분에 1xnm(1세대 10나노미터급 제품)에서부터 1ynm(2세대 10나노미터급 제품)를 거쳐 1znm(3세대 10나노미터급 제품)에 이르기까지 성공적이고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핵심 기술을 확보한 다음 단계는 이 기술을 같은 세대의 여러 제품에 적용해 출력(Power), 속도(Speed), 품질(Quality), 용량(High Density) 등 각 제품의 성능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 SK하이닉스는 그간 이 과정에 미진함이 있었지만, 차선용 담당은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고 자신했다.
“올해부터 제품의 성능을 총 8개 영역으로 세분화하고 각 영역에서 필요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영역별 계획을 수립해 추진 중입니다. 각각의 성능 영역마다 상대적인 기술 수준이 다르겠지만 수 년 내로 모든 영역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무어의 법칙(마이크로칩의 밀도가 24개월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법칙)을 이어가는 것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DRAM 미세화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차선용 담당은 ‘한계’라는 단어로 발전 가능성을 막기보다 집념을 가지고 한계를 극복해 가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계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100nm가 한계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고, 20nm가 한계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 한계를 극복해 온 것이 지금까지의 DRAM 발전 과정입니다. 지금의 어려움 역시 돌파하거나 극복해야 할 장벽일 뿐, 한계에 도달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곧 혁신적인 기술이 개발돼 지금 한계라고 느껴지는 장벽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지형도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PC 제조기업이 주요 고객이었지만, 지금은 모바일 업체, 인터넷 데이터센터 사업자 등 다양한 형태의 IT 기업들이 고객군에 포함되면서 요구사항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최근 반도체 산업은 변화의 폭이 매우 커, 미래에는 경쟁의 판과 함께 경쟁 상대까지도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차선용 담당은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반도체 산업의 흐름을 읽고, 발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 매출 비중이 높은 핵심 제품의 원가 절감을 통해 수익을 내는 체계였는데, 지금은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켜줄 파생 제품 라인업을 폭넓게 확보한 뒤 그 프리미엄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추세로 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DRAM 매출에서 차지하는 파생 제품의 비중은 수 년 전에 비해 매우 높아졌습니다.
또한, 고객이 맞춤형 메모리(Customized memory)를 요구하는 경우도 계속 늘고 있어, 이제 정해진 스펙(Spec.)대로 제품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먼저 기획하고, 이를 사업화까지 연결하는 과정이 더 중요해진 거죠. 이런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체계를 선제적으로 갖춰나가야 할 때입니다.
사실 Customized 메모리 사업에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개발 과정에서 사업화가 불발되면 들어간 리소스(Resource)만큼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시장으로 바뀌더라도 핵심은 고객입니다. 앞으로는 리스크를 짊어지더라도 고객가치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돼야 합니다”
이 같은 변화가 가속되면 현재 SK하이닉스가 중점을 두고 있는 ‘제품(Product) 중심 체계’ 구축에도 더 큰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DRAM개발 담당 역시 이러한 기조에 발맞춰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다.
“제품 중심 체계는 ‘제품 단계에서부터 다양해지는 고객의 요구를 어떻게 반영해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냐’는 질문에서 출발한 개념입니다. 예전에는 그냥 핵심적인 기술 단계가 올라가면 그 기술만 이용해 대부분의 제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생 제품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제품별로 각기 다른, 그리고 상당히 많은 요소 기술이 필요해졌고, 또 그 요소 기술을 사전에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해졌죠. 이에 올해부터는 각 제품별로 향후 어떤 요소 기술이 필요한지 정의하고 개발, 검증 일정을 정리한 로드맵을 세워두고 업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고객이 다양해진다는 건 그만큼 고객과의 협업이 중요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이슈로 인해,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원활한 고객 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고객의 시스템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고도화되면서, 우리 제품을 고객 시스템에 탑재한 시점의 데이터를 서로 주고받으며 평가·분석하고, 불량을 미리 찾아내 해결하는 과정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언택트(Untact) 환경이 일상화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이에 적합한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한 발 먼저 준비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SK하이닉스는 현지에 엔지니어를 파견하지 않고도 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테스트와 분석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고객과의 협업을 강화하기 위해 더 많은 고민을 해나가겠습니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 구성원과 늘 함께하는 따뜻한 멘토
차선용 담당은 DRAM개발 담당 조직을 맡은 이후, 조직문화 개선과 구성원 행복 증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기술 개발 후 내부 인증 과정을 효율화해, 각종 이슈 발생으로 인한 구성원들의 스트레스 강도를 낮춘 것이 대표적인 사례.
내부적으로 진행하는 제품 인증 업무는 DRAM개발 담당의 핵심 업무 중 하나다. 이는 고객과 약속한 납품 일정을 지키기 위한 매우 중요한 업무다. 한 번 내부 인증을 하는 데 1개월 이상 걸리며, 때로는 실패할 경우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해 구성원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차 담당은 업무 효율 향상과 구성원 행복 증진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인증 성공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먼저 첫 번째 인증 성공률을 대폭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이를 위해 PI(Process Integration) 조직은 첫 테스트 웨이퍼의 수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했고, 이와 함께 PE(Product Engineering) 조직은 테스트 전 사전 품질 점검 체계를 보강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전체적인 인증, 자재, 개발 과정의 체계화(Organize)를 담당하는 PMO(Product Management Office) 조직을 보강하고 권한을 강화해, 전체 개발과정을 더욱 꼼꼼히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올해 인증 성공률이 대폭 향상됐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구성원 관점에서 DRAM개발 담당의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데 주력해, 얼마 전 구성원에게 공유했다. 새로운 비전은 ‘1등 브랜드 제품을 통해 지속 성장하는 전문가 그룹’이다. 구성원들이 ‘1등 브랜드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여기서 얻은 유능감을 바탕으로 더욱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차선용 담당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비전은 조직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구성원이 아닌 조직의 미래 지향점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어떻게 달성해야 할지 고민하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조직과 구성원 개인을 동일시하기 어려운 만큼, ‘과연 조직의 비전을 보고 구성원들의 가슴이 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고민한 건 구성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비전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구성원들에게 공유는 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소통하며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비전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행복 토크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차선용 담당은 구성원과 자주 만나서 대화하는 시간을 즐긴다. 구성원을 이해하는 것이 행복한 조직을 만드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에서다. 4~5명씩 소규모로 만나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도와줄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 코로나19로 지금은 모임을 자제하고 있지만, 앞으로 틈틈이 시간을 내 구성원들과의 접점을 늘려갈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차선용 담당에게 ‘SK하이닉스의 리더 중 한 사람으로서 차선용 담당’을 표현해 달라고 부탁했다.
“구성원과 같이 고민하는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방안까지 잘 정리된 보고서를 들고 문을 두드려야 하는 어려운 리더가 아닌, 가볍게 찾아와 허심탄회하게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그리고 화이트보드를 앞에 두고 함께 고민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친근한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