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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시바는 원전사업에서의 막대한 손실로 인해 메모리사업을 매각하기로 하고 이달 말까지 입찰을 진행중입니다. 도시바는 낸드플래시를 개발해낸 원조 업체로도 유명한데요. 이에 따라 도시바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4개사로 재편돼 과점 중인 낸드플래시 산업에 변화를 몰고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성장성이 높은 낸드플래시 산업은 중국 칭화유니, 미국 인텔 등이 속속 뛰어들며 치킨게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메모리업계가 변화하게 될까요? 오늘은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매각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대형 인수합병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흔들다

30년간 지속되어온 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치킨게임은 2012년 일본 엘피다의 파산으로 끝났습니다. D램 생산업체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미국의 마이크론 등 3개 대형 업체가 남았고 낸드플래시 업체는 이들 3개사에 일본 도시바를 더한 4개 회사로 압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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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바가 낸드플래시만 생산하면서도 살아남은 건 1987년 가장 먼저 낸드플래시를 개발하고 상용화한 회사로 각종 지적재산권(IP)을 갖고 있어서입니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36.6%, 도시바 19.8%, 웨스턴디지털 17.1%, SK하이닉스 10.4%, 마이크론 9.8% 순이었습니다. 도시바의 점유율과 합작사인 웨스턴디지털의 점유율을 더하면 1위인 삼성전자와 비슷합니다.

이런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이 매물로 나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흔들고 있습니다. 도시바가 원자력건설 사업에서 천문적학인 적자를 내면서 ‘캐시카우’인 낸드플래시 사업을 팔아야만 하는 처지에 몰린 겁니다. 당초 도시바는 반도체 사업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분사한 뒤 지분 19.9%만 매각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달 원자력건설 사업의 손실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더 크게 나오면서 아예 경영권까지 넘기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 됐습니다.

|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2016년 12월 미국 원전사업에서 1000억엔 손실 발표. 주가 폭락
2016년 11월 반도체 산업 분사해 지분 19.9% 매각 결의
2017년 02월 1차 입찰 진행중 원존 손실규모 7000억엔으로 확대. 재입찰 통해 지분 최대 100% 팔기로 결정
2017년 13월 3월 29일까지 입찰 마감. 일본정부, 기술유출 막기 위해 공적자금 투입 검토

도시바는 2월 3일부터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전체를 대상으로 매각 입찰을 진행중입니다. 이달 말까지 인수의향서를 받아 6월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한 뒤 내년 3월 매각을 마무리지을 계획입니다. 도시바의 반도체사업을 몽땅 사려면 1조5000억∼2조엔(약 2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낸드플래시 세계 2위인 도시바 반도체사업 매각은 지난 5년간 과점 체제로 유지되어온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송두리째 뒤흔들 초대형 인수합병(M&A) 딜입니다. 벌써부터 세계 10여개 업체가 인수의향서를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도시바가 지난 몇 년간 반도체 사업에서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려온데다, 낸드플래시 시장은 클라우드 서비스 확대,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의 확산 등에 입힘어 매년 35~40% 이상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수 후보들의 치열한 경쟁 양상

낸드 시장 점유율

  2012 2013 2014 2015
삼성전자 38.7 36.4 36.5 37.8
도시바 31.7 34.3 31.8 28.3
마이크론 17.5 16.1 18.9 19.7
SK하이닉스 11.8 13.2 12.8 14.4

자료)IHS

인수 후보로는 미국의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 대만의 훙하이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인 TSMC, 한국의 SK하이닉스, 중국의 칭화유니 등이 꼽힙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등도 인수 후보로 거론되지만 입찰엔 나설 가능성은 낮아보입니다.

인수 결과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 SK하이닉스 등 기존 낸드플래시 사업자들은 사업 시너지 등에서 강점이 있지만 20조원이 넘는 인수대금을 확보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 등은 인수 후보 중 재무상태가 가장 나쁩니다.

SK하이닉스는 향후 총 46조원을 투자해 3개의 신규 공장을 구축하기로 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이 도시바를 사들이려면 세계 각국의 반독점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동종업계 상위 사업자간 M&A는 경쟁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승인받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를 등에 업은 칭화유니는 자금 조달에선 유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지난해 신규 반도체 공장 세 곳을 짓는 데만 84조원을 쓰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추격을 견제하려는 일본 정부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TSMC 훙하이 등 대만 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말 13조원의 잉여현금이 있는 훙하이와 매년 10조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TSMC는 인수 여력을 갖고 있습니다. 또 각국 경쟁당국의 승인을 얻기도 쉽습니다. 훙하이는 반도체사업을 갖고 있지 않고 TSMC는 파운드리 사업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도시바 기술 유출 경계론이 커지면서 이들의 인수 가능성은 낮아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 경제산업성 관료는 최근 “샤프는 대만 훙하이의 인수를 허용했지만, 도시바는 전혀 다른 물건”이라며 훙하이나 중국 기업에 팔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일본의 '외환 및 대외 무역법(Foreign Exchange and Foreign Trade Act)'에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핵심 기술을 가진 기업을 인수하려는 외국 기업은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이를 활용해 매각에 개입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또 일본의 정부계 은행인 일본정책투자은행은 최근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민관 합작 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 등과 합작해 도시바에서 분사될 반도체 사업에 일부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도시바 매각이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 미칠 영향

 

만약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기존 낸드플래시 생산업체가 인수하면 시장 전체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오히려 생산업체가 4곳에서 3곳으로 줄면서 독과점이 강화돼 업계 전체에 이득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웨스턴디지털이 인수할 경우 변화는 없겠지만요.

하지만 만의 하나 중국, 대만 업체가 도시바를 산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온 도시바를 대신해 신규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해 공격적 투자를 할 수 있어서입니다. 안그래도 지난 몇 년 새 낸드플래시 시장엔 칭화유니, 인텔 등이 새로 뛰어들면서 향후 치킨게임이 재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칭화유니가 인수에 성공하면 5년 이상 벌어진 것으로 평가되는 한국 반도체 업체와의 기술 격차를 크게 좁힐 수 있습니다. 또 막강한 기술력과 자금력을 갖춘 TSMC가 도시바를 인수해 메모리 사업까지 진출해도 한국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을 누가 인수하든 메모리 업계의 변화는 불가피합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의 명운을 쥔 산업입니다. 국내 업계는 변화 가능성을 주시하고 잘 대응해야하겠습니다.

※ 본 기사는 기고가의 주관적 견해로, SK하이닉스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

김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