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하러 카페에 들어선 최가람 TL의 첫인상은 차분하고 수줍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반전은 주짓수 도장에 도복을 입고 섰을 때 일어났는데요. 딱 벌어진 어깨와 다부진 체격, 그리고 매트 위 진지하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반전매력을 마구 뿜어냈죠. 주짓수는 흔히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 스포츠’ ‘휴먼 체스’ 등으로 불리며 다른 스포츠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닙니다. 이러한 주짓수에 푹~ 빠져 일도 취미도 승승장구 중인 오늘의 주인공! 청주NAND CVD기술팀 최가람 TL의 에너지 넘치는 워라밸 스토리를 함께 들어볼게요.
정교하게! 얇게! 가볍게! 기술에 기술력을 쌓는다
CVD(Chemical Vapor Deposition)는 화학반응을 이용해 웨이퍼 표면에 단결정의 반도체막이나 절연막 등을 형성하는 기술입니다. 청주NAND CVD기술팀은 이 기술로 ARC, CARBON, THEO, HDP 등의 공정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입사 7년 차인 최가람 TL은 이 중에서도 3D 공정에서 스택(Stack)을 쌓는 ‘ON 공정’을 맡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적층’ 기술입니다. 반도체 특성에 맞게 원하는 두께를 평평하고 정교하게 쌓아올리는 것이 핵심이죠. 쉽게 예를 들자면, 기존에는 2D 공정에서 30층을 쌓아 2개를 넣었는데 3D 공정에서 60층을 쌓아 1개를 넣게 된 거예요. 동일한 성능을 지니면서 더 얇고 가벼워질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최가람 TL은 60층을 쌓는 ‘기술’ 자체보다 작업의 오차 범위와 변수를 줄여 더 정교하게 안정화시키는 ‘기술력’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실험을 거듭하면서 그 기술력과 노하우를 쌓는 일을 하는 셈인데요.
그의 설명을 통해 기술과 기술력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정교함을 지니기 위한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높은 정교함이 요구되는 만큼, 기술력의 발전 역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니까요.
“공정이 전보다 정교하게 개선되면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껴요. 하지만 다음 기술이 추가되면 또다시 어려움을 맞이하죠. 저는 주변에 많이 묻고 대화하면서 돌파하는 스타일이에요. 선배든, 후배든, 장비 업체든 가리지 않고요.”
그의 업무 스타일대로라면, 묻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의견충돌은 없는지 궁금해집니다. 이러한 물음에 우문현답이 돌아옵니다. 최가람 TL은 서로가 같은 목표를 지녔고, 방향성이 다를 뿐이기에 ‘충돌이라기보다 접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단단한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인데요. 그의 남다른 내공의 바탕에는 주짓수가 한몫한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주짓수 예찬을 들어보시죠.
노력으로 체급을, 땀으로 힘을 넘다
“크로스핏을 1년 정도 하다가 체력이 늘고 자신감도 생겨서 다른 운동을 찾아봤어요. 그때 눈에 띈 게 주짓수였죠. 체육관 분위기나 운동하는 분들의 스타일이 세련되고 깔끔한 크로스핏과 달리 주짓수 도장에서 받은 첫 느낌은 강렬했어요. 허름한 지하 체육관도 왠지 으스스했지만 진한 땀 냄새가 많이 났거든요(하하). 온몸을 부딪치는 수련생들을 보며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들었답니다.”
강렬한 느낌은 첫인상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첫날부터 스파링을 하게 됐는데 첫 상대는 주짓수를 전문적으로 하는 여자 선수였다고 합니다. 최가람 TL은 내심 ‘여자 선수인데 세게 해도 될까’ 걱정했다고 하는데요.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3분 경기의 스파링에서 그는 1분마다 ‘탭 아웃(Tap Out, 팔이 꺾기 거나 공격 불능이 됐을 경우 매트를 치는 것)’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보다 당연히 힘이 약하실 줄 알았는데, 온 힘을 다해도 안되더라고요. 그 경험이 정말 신선했죠. 기술로 성별이나 체급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 주짓수에 매력 같아요. 성격이 다혈질인 분들도 처음엔 씩씩대다가 결국은 차분해져요. 아무리 힘을 써도 안되니 저절로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해지게 되죠.”
주짓수는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여성이 남성을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무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날의 경기 이후 최가람 TL은 자존심이 상하기보다는 ‘왜 졌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기술들을 배워가면서 70Kg 체급인 그는 이제 90~100kg 체급의 상대들도 거뜬히 제압할 수 있게 됐습니다.
키는 작지만 탄탄한 체구의 최가람 TL의 특기는 압박 기술입니다. 상대에게 찰싹 붙어 상대의 움직임을 막으면서 자신의 공격 기술을 쓰는 건데요. 주짓수를 시작한 지 2년 정도 된 최가람 TL은 전국 규모의 주짓수 대회에서 이미 3번의 경기를 치렀습니다. 첫 번째 시합은 1라운드에서 졌지만, 두 번째 시합에서 1라운드 판정승을, 세 번째 시합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기술이 있고 체급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상대를 눌러 제압하는 것은 아니에요. 상대 수준을 파악하면서 받아주고 받쳐주는 것도 중요하죠. 스파링의 목적은 이기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상대와 기술에 따른 경험을 쌓는 것이거든요.”
타고난 능력이나 기술보다 매트 위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땀을 흘렸는지가 승패를 결정한다는 주짓수. 3,000 가지가 넘는 주짓수 기술 중 최가람 TL이 익힌 기술은 30 가지에 불과합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을 무조건 배우기 보다 잘하는 기술을 다양하게 익혀서 발전시키는 스타일이라고 하는데요. 최가람 TL의 말에서 그의 업무인 ‘ON 공정’이 오버랩 됐습니다.
업무에 주짓수를 더하다
반복되는 실험을 통해 궁극의 정교함을 찾아가는 최가람 TL의 일처럼, 상대와의 스파링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발전시켜가는 주짓수는 참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주짓수를 하면서 체력과 집중력도 높아졌지만, 상대방의 분위기나 태도를 파악하는 감각도 늘었다고 하는데요.
“스파링 상대가 계속 바뀌다 보니 상대를 파악하는 능력이 훨씬 빨라졌어요. 상대의 힘이 얼마나 있는지, 무게 중심이 어디를 향하는지 파악하면 공격 방향이나 스타일을 알 수 있거든요. 주짓수를 시작한 뒤로 업무에서도 상대방의 태도나 분위기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 같아요. 저의 태도도 다시금 가다듬게 됐고요.”
최가람 TL은 성격이 내향적인 분들에게 주짓수를 추천하고 싶다고 전합니다. 독서나 영화 보기 등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일수록 주짓수를 하게 되면 상대와의 부딪치는 경험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최가람 TL 역시 스스로 외향적이기보다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말합니다.
“주짓수를 통해 업무적으로 가장 많은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커뮤니케이션이에요. 내향적인 성격이었던 만큼 그 전에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다르거나 의견 조율이 안 되면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제는 좀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최가람 TL은 체육관에서도 좋은 스파링 파트너로 손꼽힙니다. 내면의 승부욕은 강하지만 상대를 배려하고 즐겁게 운동하고자 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운동을 할 때든 업무를 할 때든, 특유의 밝고 예의 바른 모습이 한결같아 주변의 칭찬도 자자하죠. 힘의 한계를 뛰어넘는 주짓수, 기술력의 한계를 돌파하는 반도체 업무. 그의 일과 취미는 참 많이 닮았습니다. 매트 위 카리스마 넘치는 최가람 TL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든든한 마음이 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