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실적이 치솟고 있습니다. 메모리, 특히 D램 값이 계속 오르면서 이른바 ‘슈퍼 호황’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 등의 확대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늘고 있어 중장기적인 ‘메모리 슈퍼 사이클’이 시작됐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같은 슈퍼 호황의 원인을 분석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메모리 치킨게임의 종결
지난해 하반기부터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치솟고 있는데요.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DDR4 4Gb(512Mx8, 2133MHz)의 값은 지난해 6월말 1.31달러에서 작년 말 1.94달러로 올랐습니다. 낸드는 64Gb(8Gx8, MLC) 값이 작년 5월말 2.02달러에서 작년 말 2.72 달러까지 상승했습니다. D램익스체인지는 “PC D램은 1분기에도 30% 추가 상승이 예상된다”며 “비수기인 1분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PC D램만이 아닙니다. 서버 D램은 이번 분기 20~25%, 모바일 D램 값도 10~15%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원래 반도체 값은 매년 30% 이상 떨어져왔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공정미세화를 통해 그 이상 생산량을 늘림으로써 이익을 지켜왔습니다. 예를 들어 21나노미터(㎚) 공정을 18㎚ 공정으로 바꾸면 한 장의 웨이퍼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수가 30% 가량 증가합니다. 또 회로폭이 줄면서 전자 이동이 빨라져 성능도 좋아지고 전기 소모도 줄어듭니다. 그렇게되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12년부터 이런 업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일본 엘파다가 파산하면서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돼 30년간의 메모리 치킨게임이 종결된 게 배경입니다. 90년대 10여개가 훌쩍 넘었던 업체들이 정리되고 D램 업계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곳이, 낸드 업계에는 일본 도시바까지 4개 회사가 남게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경쟁사에 앞서 기술을 개발하고 투자해 다른 회사보다 많은 이익을 차지하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업체들은 그 전처럼 무리하게 투자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무리한 투자보다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겁니다. 실제 D램의 경우 2010년 이후 공장 신설은 삼성전자가 2011년 화성 16라인, 2014년 화성 17라인 등 2개, SK하이닉스가 2015년 이천 M14 라인을 지은 게 전부입니다.
공정미세화 기술 난이도 가증
이는 수요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D램 시장의 수요는 매년 15~20% 증가하고 있습니다. 연평균 40%씩 성장하는 낸드에 비해서는 성장률이 낮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10~20%대 증가율이라면 증설보다는 공정 미세화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공정 미세화도 힘들어졌습니다. 10㎚대로 미세공정 기술이 진입하며 개발 속도가 확연히 더뎌졌습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몇 년 전까지 D램 다음 공정 개발기간이 통상 1년이었지만 25㎚에서 21㎚로 넘어갈 땐 약 2년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난이도가 높아져서입니다. 공정 미세화가 느려지면 생산량 증가 속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투자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10년 전에는 5조원 이면 새 공장을 지었지만 최근 신설되는 공장엔 최소 15조원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공정이 미세화되며 점점 더 많은 장비와 공정이 필요해서입니다. 업계에선 D램은 이제 추가로 투자해봐야 실익이 많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 마이크론이 기술 개발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도 한국 메모리 업계가 무리한 투자를 자제하는 배경입니다. 마이크론은 10㎚대 D램을 아직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3차원(3D) 낸드 개발도 늦은 편입니다.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이 무너지면 호시탐탐 기술을 노리고 있는 중국 칭화유니그룹에 인수되거나 새로 메모리 산업에 뛰어든 미국 인텔에 팔릴 수 있습니다. 더 무서운 경쟁자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또 메모리 업계에 한국 기업만 살아남게된다면 미국 중국 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반독점 압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의 확대
기본적으로 수요쪽 요인도 있습니다. D램 업계는 PC 수요가 계속 들어들 것으로 보고 PC D램 생산을 줄여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 윈도우 10 출시(윈도우 XP 지원 중단) 효과 등으로 노트북 수요가 조금 늘었습니다. PC D램 값이 급상승한 이유입니다.
또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이 발화 사태로 작년 10월 단종되자 화웨이 오포 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삼성의 공백을 노리고 대대적으로 신제품 생산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모바일 D램 값도 강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1대에 들어가는 D램 용량도 2~3년전 1~2기가바이트(GB)에서 최근 8GB까지 늘어났습니다. 클라우드 서비스의 확대로 서버 D램은 없어서 못 팔 정도입니다.
낸드는 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로 급격히 대체되면서 수요가 매년 40% 안팎으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SSD는 2015년 기준 낸드 수요의 40%를 차지했는데, 그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PC,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낸드 용량도 매년 급속히 커지고 있죠. 삼성전자가 평택에 15조원을 투자해 내년 6월부터 3D낸드 공장을 가동하고, SK하이닉스도 이달 청주에 15조원 이상을 들여 새로운 3차원(3D) 낸드 공장을 새로 짓겠다고 밝힌 이유입니다. 우리 업계뿐 아니라 일본 도시바와 미국 마이크론도 3D 낸드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중국 칭화유니그룹도 지난 달부터 우한에 240억 달러, 난징에 300억 달러 등 막대한 돈을 투입해 3D 낸드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장기적인 수요 전망도 견조합니다. 클라우드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스마트카 등의 시장이 확대되면서 메모리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업계에선 ‘메모리 시장은 장기 호황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적으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 달 21일(현지시간) 지난 분기(8~11월) 전분기보다 23% 증가한 39억7000만 달러의 매출과 1억8000만 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고 밝혔습니다. 직전 분기 1억7000만 달러 적자에서 흑자 전환한 것입니다. 마크 던컨 최고경영자(CEO)는 D램과 낸드 판매량이 각각 18, 26% 늘었고 D램 평균 판매가는 5% 증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증권업계는 삼성전자가 올해 반도체 사업에서만 영업이익 19조원 가량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작년 13조원 수준보다 50% 가까이 증가하는 겁니다. 지난해 3조원대을 거둔 SK하이닉스도 올해 6조원을 넘는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메모리 반도체 호황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따라 메모리 업계를 이끄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한국 회사들이 메모리 기술 발전을 주도하면서 오랜만에 찾아온 메모리 슈퍼호황을 지속시켜가기를 기대합니다. 또 창출된 많은 이익을 기반으로 뛰어난 성능의 새로운 메모리를 만들어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에 제공함으로써 클라우드, IoT, AI, 빅데이터, 스마트카 등 혁신을 더욱 앞당겼으면 합니다.
※ 본 기사는 기고가의 주관적 견해로, SK하이닉스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