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시티 신드롬(Tenacity syndrome), 일명 집념 증후군은 사소한 일이라도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현상이다. SK하이닉스 뉴스룸은 테너시티를 지닌 하이지니어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이를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Value 집념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있다. 오늘 만나볼 주인공은 100여개 이상의 반도체 특허를 보유한 Graphic Design팀 김경훈 TL.

특허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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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Graphic Design팀 김경훈 TL입니다. 그래픽 카드에 들어가는 그래픽용 메모리를 설계•분석하여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고해상도 영상처리를 수행하는 그래픽 메모리는 CG(Computer Graphic)의 발전을 이끄는 핵심 요소로, 최근에는 엔터테인먼트 사업 외에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기술 전반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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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일을 좋아했다는 김경훈 TL. 학부 시절 전자과를 전공한 그에게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반도체 설계였다. 좋아하는 일이기에 자연스레 집념이 생겼고, 최고의 반도체 제품을 만드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결코 아니기에 그의 집념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집념을 절정에 다다르게 한 건 ‘특허’였다. 특허를 통해 설계 업무에 필요한 기술을 보호하고, 직접 만든 회로에 이름과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그에게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김경훈 TL이 특허를 처음 작성하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하이닉스반도체(SK하이닉스 전신) 새내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위기와 시련을 원동력으로, 반도체 특허왕이 된 신입사원

김경훈 TL이 입사한 2002년 그 무렵은 그에게 SK하이닉스의 ‘시련기’로 기억된다. IMF를 거치며 고전하던 하이닉스반도체는 미국 메모리 회사 마이크론에게 매각이 진행되고 있었다. 동시에 ‘특허 괴물’로 불리는 미국 컴퓨터회사 램버스(Rambus)와의 특허 분쟁도 한창이었다. 당시 인터페이스 기술의 선두주자였던 램버스는 자사가 가진 특허기술을 바탕으로 다른 회사에 소송을 걸었고, 보유 특허가 부족했던 하이닉스반도체는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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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된 사건이었죠. 램버스는 보유 특허 기술로 반도체 산업의 발전 방향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우리 회사가 더 이상 다른 회사들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특허기술을 많이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신문과 잡지에서는 매년 특허 출원의 수를 집계해 기업의 순위를 매기곤 했다. 1등은 늘 IBM과 같은 글로벌 기업의 몫이었다. 특허 수가 곧 기업의 기술력을 나타내는 척도였던 것이다. 김경훈 TL은 회사의 높은 기술력과 큰 열정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특허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특허가 회사를 강하게 만들고, 나아가 국가의 기술 위상을 높일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렇게 입사 이후 줄곧 특허를 작성해온 김경훈 TL. 지금까지 그가 출원한 특허는 무려 100건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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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 5월 특허청으로부터 석탑산업훈장을 수여 받았다. 의욕만 앞선 과거의 특허를 보면 스스로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그 집념은 지금의 ‘반도체 특허왕’을 만든 비결이기도 했다. 정확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특허를 남긴 그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특허를 물었다.

“입사 7년 차에 출원한 ‘저전력 고속동작’ 특허를 통해 자사는 당시 가장 저전력으로 고속동작이 가능한 DDR3 메모리를 만들 수 있었어요. 기존 대비 전력을 80% 줄일 수 있었죠. 그리고 이 특허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간 회사 제품에 적용된 특허는 많지만, 이 기술로 서버의 가장 큰 문제인 전력 소모를 개선하는 데 큰 기여를 했기에 가장 기억에 남네요.”

하루 24시간 매 순간이 아이디어 Moment!

항상 머릿속에 문제를 담아두는 습관을 갖고 있다는 김경훈 TL. 그리고 그의 아이디어는 책상에 앉아 골몰하기보단 일에서 잠시 멀어졌을 때, 뜻밖의 순간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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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내내 고민하던 문제가 있었어요. 도저히 풀리지 않아 머리를 식힐 겸 낮잠을 청했는데, 꿈속에서 풀고자 하는 문제의 답이 그려지기 시작했어요. 잠에서 확 깨어 그 그림을 도면으로 옮겨 답을 찾게 되었죠. 그때 최고의 희열을 느꼈어요. 이렇게 꿈속에서 힌트를 얻기도 하고, 목욕탕에 있다가 ‘유레카’를 외치기도 하죠. (웃음) 저도 참 신기합니다. 늘 하지 않는 방법으로 해야 풀리는 문제가 있더라고요.”

현재 반도체는 융합기술이다. 과거 아날로그 회로와 디지털 회로는 서로 독립적인 기술 발전을 이뤘지만, 지금은 융합을 통해 새로운 지표를 갱신하고 있다. 따라서 기술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이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연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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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과정이 힘들 땐 깊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선후배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활력이 돼요. 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에 서로 어려운 점을 털어놓고 공감하며 도움을 주고 받죠. 또, 다양한 분야의 지인들과의 네트워크도 매우 중요합니다.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접하다 보면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만나기도 하죠.”

하루에 많게는 2~3건씩 특허를 작성할 때도 있었다는 김경훈 TL.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특허 출원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먼저 선행기술이 있는지 조사해 기존 기술과의 차별성을 찾아야 한다. 이후 까다로운 포맷에 맞춰 출원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1~3년의 심사과정을 거쳐 등록 여부가 결정된다. SK하이닉스에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대체해주는 특허등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를 통해 엔지니어는 아이디어를 내는 데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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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라는 게 굳이 열 장의 문서가 필요한 게 아니라, 한 장의 그림이면 충분한 경우가 있거든요. 하지만 특허를 출원하는 상황에선 한 장의 그림만으론 부족하죠. 그런데 저희 회사에서는 그게 가능해요.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려 출원하고 싶다는 의견을 회사에 전하면, 사내 특허팀과 변리사님이 찾아와 해당 내용에 대해 의논하고 그것을 출원해주시죠.”

위기의 순간, 나의 Tenacity는 200% 발휘된다

김경훈 TL이 입사했을 당시, 많은 선배가 매각 위기에 놓인 회사를 떠나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가 힘들수록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이 시기를 넘기면 우리는 잘 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더 끈끈하게 집결했다. 이었던 김경훈 TL은 이러한 분위기에 자연스레 동화되었고, 그의 집념은 위기의 순간마다 가장 크게 발휘되었다. 그리고 그 위기의 순간은 언제나 예고 없이 불시에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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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든 회로가 제품의 불량을 야기했는데, 이 불량을 일찍 발견하지 못해 회사에 금전적으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힌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주간 출장을 다녀오고, 현지 엔지니어와 함께 계속 테스트를 진행했어요. 그렇게 최선을 다한 결과, 다행히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었죠.”

SK하이닉스는 ‘실패도 자산이다’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위기를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분위기, 이것이 SK하이닉스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자신하는 김경훈 TL. 그는 “만약 그때 회사가 개인의 귀책을 물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며 그 당시 질책을 하기보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에 그 이후로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7년 회사와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역경을 딛고 성장해온 김경훈 TL. 그의 Tenacity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김경훈 TL에게 앞으로의 목표와 꿈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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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래픽 메모리를 설계하고 제품화하고 있는데, 점점 속도가 빨라지다 보니 여러 문제점이 보이고 있어요. 과거의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 그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게 지금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또, 열정과 창의력이 넘치는 밀레니엄 세대들이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 함께 성장해나가는 게 꿈이에요. 그래서 저를 잇는 ‘반도체 특허왕’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