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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을 보니 가을이 더욱 깊어졌음을 실감합니다.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는 왠지 감성적인 무드를 자아내고요. 10년 전 가을날을 떠올려보면, 독서의 계절답게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아날로그 감성도 함께 사라진 걸까요? 요즘엔 책 읽는 사람들이 오히려 낯설게만 느껴지는 세상입니다. 항상 책을 끼고. 다니던 저 역시도 많이 변했으니까요. 독서에 대한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새로운 독서 방법으로 가을의 낭만을 되찾게 되었는데요. 오늘은 독서에 얽힌 저의 가을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책으로 기억되는 나의 지난 가을날

 

“이것은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의 시작입니다. 당신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귀여운 곰같이 사랑스럽답니다. 다음엔 이 책을 빌려보세요.”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메모로부터 시작됩니다. 실제로 연애엔 ‘젬병’인, 그래서 ‘곰탱이’라고 불리는 주인공 현채(배두나 분)는 이 메모를 보자마자 운명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메모가 시키는 대로 책을 빌리고, 거기에 또 이어지는 메모를 통해 책을 찾아 나서면서 말이죠.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법한, 도서관을 배경으로 운명적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사랑스럽게 전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일러두자면, 영화의 제목은 봄날이지만 사실 영화 속 계절은 낙엽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는 가을이랍니다. 감독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독서와 잘 어울리는 건 가을이라는, 떼래야 뗄 수 없는 둘의 관계를 두고 봄을 배경으로 삼을 순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맘때만 되면 저도 모르게 이 영화가 생각납니다. 도서관을 배경으로 가을을 마주하며 책을 읽는 장면이 유독 많이 등장해서일까요? 대학교 1, 2학년 때 도서관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책을 빌리러 다녔던 제 모습이 오버랩 되곤 합니다. ‘나도 이런 쪽지를 받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혹은 ‘책장에서 책을 빼 들었는데 멋진 남자가 날 바라보고 있다’는 식의, 지금 생각해보면 턱도 없는 막연한 판타지를 꿈꿨던 시절이죠. 현실은 영화 같진 않았지만 도서관에서 맞이하는 가을 풍경만큼은 엇비슷합니다. 책을 펼쳐 놓은 채, 조금은 차갑지만 그 자체로 기분 좋은 바람이 스치는, 알록달록 가을 물이 든 창밖을 바라보던 시간. 그러다 떨어지는 낙엽을 잡기 위해 나도 모르게 손을 뻗게 되던 기억들은 지금 보면 닭살이 돋지만 여전히 기분 좋은 추억의 한 페이지입니다.

나에겐 옛말이 되어버린 ‘독서의 계절’

그러나 아이러니한 건 지금은 10년 전 그때보다 책을 덜 읽는다는 사실입니다. 덜 읽는다는 표현도 후한 것 같습니다. 요즘은 아예 읽지 않는다고 해도 대꾸할 말이 없습니다. 심지어 글을 쓰는 에디터라는 직업을 지녔음에도 말이죠. 스스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는 자부심 아닌 자부심도 있었는데, 어느덧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구글링을 하고, 책을 보더라도 필요한 것만 쏙 찾아내는 제 모습에 스스로 불만이 쌓인 지 꽤 오래됐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건 현대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요. 책을 챙겨 나가도 핸드폰 하나 들고 있기 힘든 출퇴근 지하철에선 민폐가 되기 일쑤고, 빡빡한 일상에서 책을 읽기 위해 5~10분 짬을 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 대신 스마트폰 속 연예인들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읽고, 사지도 않을 제품을 검색하는 건 왜 이다지도 쉬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모습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무렵, 아는 지인이 태블릿으로 전자책을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눈의 피로도 덜하고 오히려 예전보다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있다는 그의 말을 다 믿지는 않았습니다. 책이 전해주는 아날로그 감성과 그 충만감을 전자책 ‘따위’가(!) 감히 따라잡을 수 있겠느냐는 생각은 확고했으니까요. 제 돈 주고 살 일이 없는 제품이었습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요.

'태블릿'으로 다시 시작된 독서의 낭만

그러나 결국 사고 말았습니다. 저의 못난 독서 행태는 스스로 부끄러움의 대상이었고, 지인의 이야기는 저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찔렀던 것이죠. 그렇게 제 손바닥보다 조금 큰 태블릿이 제 손안에 들어와 있게 됐습니다. 이 가을날, 10년 전 옆구리에 책을 끼고 마냥 행복해하던 학생은 이제는 또 다른 책인 태블릿을 손에 쥐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잠깐 틈이 날 때면 태블릿을 꺼내 책을 읽곤 합니다. 제주도로 다녀온 지난 휴가 역시 전자책과 함께했습니다. 가져가서 읽지는 않지만 안 가져가면 또 아쉬운 휴가용 책들을 모두 태블릿에 담았습니다. 짐 무게 때문에 한두 권 정도만 챙겼던 책을 이제는 몇십 권을 가져갈 수 있게 됐습니다. 조그만 단말기에 저장만 했을 뿐인데, 이미 책장 하나를 들고 다닐 수 있는 전자책의 위엄을 확인하는 순간이죠.

지난 시절, 책을 이고 지고 도서관을 오르던 나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이렇게 독서가 쉬워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태블릿은 제 독서 습관을 확 바꿔놓았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늘 지난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게끔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태블릿 전자책 앞에서는 무색한 말이 돼버렸습니다. 이 태블릿 속 작은 반도체 덕분에 펼칠 수 있는 새로운 독서는 보다 특별한 의미를 전해줍니다. 아날로그의 소장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되, 언제 어디서든 스스럼없이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쌓이고 쌓여 내 삶을 풍요롭게 꾸려나갈 수 있다는 기대 역시 지금의 나를 윤택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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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데 필요한 것은 이제 용기나 시간적 여유가 아닙니다. 손톱만 한 작은 반도체로 구성된 이 태블릿은 당신만의 거대한 도서관이 될 수 있습니다. 그저 내 삶의 일부로 함께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독서의 문을 가볍게 열어젖힐 수 있게 만든 태블릿 속 전자책 덕분에 올해는 더 많은 가을의 페이지를 넘기며 이 가을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