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워커힐 호텔 내 SK 연수원인 아카디아에 SK하이닉스 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이 한데 모였다. 유례없던 코로나19 사태 등을 비롯해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이날의 워크숍의 안건이었다. 이런 논의는 기업의 사내 경영진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SK하이닉스에서만큼은 다르다. 모든 사외이사가 현안을 두고 쉬는 시간도 없이 경영진과 치열하게 마라톤 토의를 이어간 것. 특히 이번 상반기 이사회 워크숍에서는 회사가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과 미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 등을 함께 고민했다는 데서 의미가 깊다.
이처럼 SK하이닉스는 여러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면서 사외이사진의 역할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첫째, 5월 말 상반기 워크숍처럼 중대한 경영 현안에 사외이사들이 직접 참여하여 고민하며 답을 찾는 자리를 정례화하고 있다. 둘째, 이사회 산하에 5개 전문위원회(감사위, 지속경영위, 사외이사후보추천위, 보상위, 투자전략위)를 두고 감독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셋째, 반도체 사업에 대한 사외이사들의 지식과 인사이트를 제고하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SK하이닉스는 ‘치열하게 공부하며 의사결정 하는 이사회’를 구현하고 있다. 넷째, 선임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해 사외이사회를 정례화함으로써 사외이사들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 모든 제도적 장치는 사외이사 제도의 핵심이 독립성과 전문성에 있다는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뉴스룸은 사외이사들의 영향력이 한층 높아진 SK하이닉스 이사회를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사외이사를 대표해 하영구 선임사외이사와 신창환 사외이사의 인터뷰를 통해 ‘이사회 중심경영’에 앞장서고 있는 소회를 들어보았다.
이사회 2/3가 사외이사, 독립성·전문성 강화로 의사결정 중추 역할 수행
이사회는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핵심 경영목표와 경영방침을 결정하고 경영진의 활동을 감독한다. SK하이닉스 이사회는 총원 9명 중 3분의 2인 6명¹이 사외이사이며 금융, 회계, 반도체 기술, 법률, 사회정책, 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또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함으로써 이사회의 독립성 제고하고 경영진 감시와 견제 기능을 강화했다.
뿐만 아니라 이사회가 경영진 감독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다. 이사회 산하에는 △회사의 회계와 업무를 감사하는 ‘감사위원회’ △준법 경영과 지속가능경영 전략 수립과 결과를 검토하는 ‘지속경영위원회’ △관계 법령/정관 및 이사회 규정에 따라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이 있다.
올해는 ‘보상위원회’와 ‘투자전략위원회’를 신설했다. 보상위원회를 통해 이사와 경영진의 보수에 대한 감독을 강화했으며, 투자전략위원회에서는 중대한 투자 안건들을 심층적으로 심의할 계획이다. 또한, ‘지속경영위원회’에 지난 5월 회사의 준법경영체계 및 활동 등에 대한 심의 권한을 부여해, 회사의 준법경영활동을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또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이사들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적극 지원하고 있다. 신임 사외이사를 위한 체계적인 오리엔테이션, 업계의 동향과 산업의 미래 등을 주제로 한 정기 이사회 워크숍을 통해 회사의 경영전략과 현안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장을 마련했다. 올해 6월부터는 매달 반도체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 사외이사들이 반도체 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2018년부터는 선임사외이사 제도도 도입했다. 선임사외이사는 사외이사회를 소집해 사외이사들의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지원하고 있으며, 경영진에게 주요 경영 현안을 사외이사진에 보고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 사외이사회는 월 1회 이상 운영되고 있으며, 이사회 의안에 대한 사전 검토와 논의를 거침으로써 의사결정에 대한 독립성을 강화했다.
1) SK하이닉스 사외이사진은 하영구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송호근 포항공과대학교 석좌교수, 조현재 前 MBN 대표, 윤태화 가천대 교수, 신창환 성균관대 교수, 한애라 성균관대 교수로 구성되어 있다.
하영구 선임사외이사 “매달 사외이사회 열어 현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
Q. 금융계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는데, 반도체 기업인 SK하이닉스의 사외이사를 맡았다. 계기는 무엇인가?
은행연합회장 임기를 마치고 몇 군데 회사에서 사외이사 제의를 받았다. 그때 나름의 선택 기준이 있었다. 오랫동안 금융계에 몸담았던 만큼 다른 산업 분야이기를 원했으며, 열린 기업문화를 가진 글로벌 기업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이 바로 SK하이닉스였다.
Q. 고심 끝에 SK하이닉스 사외이사로 합류한 만큼, 사외이사직에 애정도 클 것 같다. 이사회에서는 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
선임사외이사로서 사외이사들의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지원하고 있다. 이사진을 잘 아우르고 이사회 의장을 도와 SK하이닉스 이사회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감사위원장도 맡아 회사의 회계 및 업무에 대한 감사 등을 수행하고 있으며, 투자전략위원회 위원도 겸하고 있다.
Q. 사외이사회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SK하이닉스는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사외이사회를 매달 개최하고 있다. 사외이사들이 이사회에서 바로 의사결정에 참여하기에는 안건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 피상적인 의견만 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사회가 열리기 전, 회사로부터 안건에 대해 보고를 받고, 이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심층적으로 논의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사외이사진은 여러 분야에서 모인 전문가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에서 나온 의견을 공유하고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Q. 이사회의 독립성과 감시·견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SK하이닉스와 이사회는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에 이사회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사회의 역할을 감시·견제의 시각에서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사회는 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은 이사회가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을 열어 놓아야 한다. SK그룹의 경우 최태원 회장의 철학을 바탕으로 굉장히 투명하고 선진화된 거버넌스(Governance, 기업지배구조)를 구축했다. 지속경영위원회와 보상위원회, 투자전략위원회 등을 신설해 경영진을 합리적으로 감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특히 임원진에 대한 보상을 담당하는 보상위의 경우, 전원이 사외이사로 구성돼 독립성이 높다. 그리고 경영, 금융, 회계, 법률, 반도체 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우리 사외이사진은 이해관계자를 폭넓게 대변할 수 있도록 충실히 소임을 다하고 있다.
Q. SK하이닉스 사외이사로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반도체는 굉장히 전문적인 분야다. 풀어 써도 어려운 용어를 업계에서는 줄여 쓰곤 한다. 전공 분야가 아닌 만큼 초기에는 여러 가지 반도체 기술을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대신 새로운 분야를 배워갈수록 보람을 느낀다. 실제로 SK하이닉스에서는 반도체 비전문가인 사외이사들을 위해 오리엔테이션과 ‘반도체 인사이트 프로그램’을 포함, 각종 교육과 워크숍을 마련해 지원하고 있다.
Q.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
SK하이닉스가 새로운 기술을 경쟁사보다 빨리 높은 수준으로 개발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또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경제를 성장시키는 수출 효자 역할을 한다고 평가받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 무엇보다 SK하이닉스가 지배구조의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았을 때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굉장히 뿌듯했다.
Q. 마지막으로 구성원들과 이해관계자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SK하이닉스가 SK그룹 식구가 되기 전인 하이닉스반도체 시절,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금 조달을 위해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해야만 했다. 당시 씨티은행장을 지내던 때였는데, 그 과정에서 함께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혹독한 시련기를 버티고 이겨내 지금은 SK의 식구가 되어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섰다.
오랫동안 금융계에서 일하며 SK하이닉스가 발전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국내 산업구조조정의 거의 유일한 성공사례라고 생각한다. 그 바탕에는 구성원이 가진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독특한 DNA’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러한 부분을 매우 존경하고 사랑한다. 향후 바람이 있다면, SK하이닉스의 NAND가 D램만큼 경쟁력을 쌓아가는 것이다. 지금은 D램이라는 날개로 날고 있다면, 앞으로는 NAND와 D램이라는 두 날개로 날 수 있기를 바란다.
신창환 사외이사 “객관적인 시선으로 회사의 구체적인 성장 방향 모색”
Q. 반도체 분야 학계와 업계에서 다양한 활약을 펼쳐왔다. 또한, 사외이사로 SK하이닉스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데, 이처럼 반도체 분야에서 다양한 역할에 계속 도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10년 동안 반도체를 공부했고,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기업에서 일했다. 지금은 학생들에게 반도체를 가르치고 있다. 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BTS(Born To Semiconductor)’ 즉 반도체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으로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에 보탬이 돼야겠다는 마음으로 오게 됐다. 지난 3년여간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Q. 반도체 분야의 전문가로서 이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고 있나?
SK하이닉스의 주요 품목인 DRAM과 NAND의 핵심 부품은 트랜지스터다. 반도체 분야 중에서도 트랜지스터 설계와 관련된 연구를 많이 진행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가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엔지니어로서 기술에 대한 조언을 보태고 있다.
Q. 최근 개최된 상반기 워크숍의 취지와 논의 내용 등에 대해 설명해달라.
금번 상반기 워크숍에서는 사내 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이 모여 특히 NAND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경영진이 직접 NAND 현안에 대해 분석하고 정리해 발표하는 등 생산력과 품질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과 함께, 업무환경, 인재육성, 중장기 전략에 이르기까지 A to Z를 파헤치고 분석했다. 덕분에 무엇이 문제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다 함께 공유하고 고민할 수 있었다.
Q. SK하이닉스가 사외이사 제도 운영에 있어 타기업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사외이사회 활동을 꼽고 싶다. 다른 곳에도 모두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 우리 사외이사회에서는 이사회가 열리기 전, 안건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정반합의 과정을 충분히 거친다. 반대표와 쓴소리도 아끼지 않으며 치열하게 토론한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이사회가 단순히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는 여기에 없다. 적어도 SK하이닉스에서는 그러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Q. SK하이닉스 사외이사로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이사회에 첫발을 디딘 2017년에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투자’와 관련한 논의가 진행됐다. 외부에서 보면 쉽게 의사결정을 한 듯 보이지만, 한 달여 간 수많은 회의와 치열한 토론을 거친 결과였다. 그 시간 동안 독립된 이사로서 어떠한 의견을 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최종적인 의견을 조율하기까지 산고를 겪었다고 볼 수 있다. SK하이닉스의 역사에 하나의 모멘텀이 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사회에 온 지 몇 개월 안 된 터라, 그땐 참 힘들었다.
Q.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
사외이사로 일하며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늘 자부심을 느낀다. 언젠가 임기가 끝나 회사와 이별하더라도 마음의 고향인 SK하이닉스가 성장하고 있다면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미래의 보람을 만들기 위해 임기 내 최선을 다하겠다.
Q. 마지막으로 구성원들과 이해관계자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미래의 구성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작은 일이라도 지나칠 정도로 정성을 다하자’는 것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지나칠 정도로 정성을 다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 Small Change가 Deep Change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SK하이닉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영진과 이사회, 구성원, 협력사, 나아가 미래 구성원이 될 대한민국 청년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현재 이석희 CEO가 진행 중인 ‘행복토크’에 사외이사들도 함께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SK하이닉스를 넘어 미래 구성원들과 이야기하는 소통의 장이 마련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건강하고 투명한 기업지배구조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확보함과 동시에 합리적인 경영활동의 밑거름이 된다. 이는 곧 지속가능한 기업의 토대가 된다. SK하이닉스는 ‘이사회 중심 경영’을 통해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다. 그 뒤에는 SK하이닉스의 ‘밖’에서 ‘안’을 책임지는 든든한 동반자, 사외이사들의 노고가 있다. 오늘도 이들은 경영의 최전선에서 때로는 냉철한 외부인의 시선으로, 때로는 사내 구성원 못지않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SK하이닉스가 나아갈 방향을 고심, 또 고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