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8).png

인류가 현대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탐구를 거듭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을 가능케 만든 트랜지스터도 마찬가지여서, 당시와 지금의 반도체 성능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급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등장으로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도체 한계극복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비욘드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오늘은 그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는 양자컴퓨터, 바이오컴퓨터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관측의 세계, 실제로 존재하는 양자컴퓨터

2_3 (4).png▲ 양자컴퓨터의 대표주자인 캐나다 D-WAVE. 16비트 양자 프로세서를 사용한다. (출처: D-WAVE)

우선 양자컴퓨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양자’가 무엇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살짝 머리가 아플 수 있지만 느낌 그대로 받아들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최대한 쉽게 설명하면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에 이론을 두고 있는데,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미래의 어느 순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라는 결정론의 고전물리학과 달리 관측에 의한 확률론이 핵심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밀폐된 상자 안에 있는 고양이가 절반의 확률로 죽을 수 있고 1시간 뒤에 어떻게 됐을까?’입니다. 보통은 ‘죽었거나’, ‘살았거나’ 둘 중 하나의 답이 나와야 합니다. 이와 다르게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삶과 죽음의 두 가지 상태가 모두 존재합니다. 그 이유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고양이가 무슨 상태인지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어떤 물질이라도 관측하기 전에는 상반된 상태가 존재하며, 이는 관측으로 결정된다고 보면 됩니다.

2_4 (4).png▲ '무어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인텔도 양자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상태다. (출처: 인텔)

그렇다면 이것이 양자컴퓨터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양자는 물질을 이루고 있는 분자나 원자보다도 더 작습니다. 이렇게 작디작은 미시세계(微視世界)에서는 고전물리학이 통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엉터리고 해괴한 일이죠. 그런데 오히려 이런 특성이 대규모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있어 유리합니다.

컴퓨터는 고성능 계산기입니다. 그리고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데이터를 사용하죠. ‘1+1’ 계산을 하려면 디지털의 최소 단위인 1비트(Bit)에 1을 입력하고 다른 비트에 1을 하나 더 넣어야 합니다. 즉, 2개의 비트를 사용해야 ‘2’라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습니다.

양자컴퓨터는 이런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 없습니다. 2개의 비트로 ‘00’, ‘01’, ‘10’, ‘11’을 일일이 표현해야 하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모든 데이터가 동시에 존재하므로 한 번에 계산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미세공정에 걸림돌이 되는 발열, 재료, 누설전류(터널링 현상) 등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1024개의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1024개의 중앙처리장치(CPU)를 마련하는 대신 그저 10비트짜리 양자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됩니다. 병렬처리가 기본이니 성능은 말할 것도 없겠네요.

놀라운 점은 양자컴퓨터가 이론으로 증명됐을 뿐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IBM, 구글, 인텔 등이 이미 양자컴퓨터 연구·개발에 뛰어든 상태입니다. 다만 양자의 상태를 측정하고 0, 1로 놓고 싶은 상태로 배치해야 하는데 이게 어렵습니다. 양자역학의 세계가 너무 미세하다 보니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나노기술이 마땅치가 않습니다.

바이오컴퓨터, 0과 1을 단백질로 구현

2_5 (4).png▲ 바이오컴퓨터는 단독보다 기존 반도체와의 협업을 통해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출처: 미국 SLAC 국립 가속기 연구소)

이번에는 바이오컴퓨터를 들춰 보겠습니다. 양자컴퓨터만큼은 아니지만, 바이오컴퓨터도 한때 유망한 차세대 컴퓨터로 주목받았습니다. 물론 혁신적인 기술개발이 이뤄지지 못해 아직 답보 상태이기는 합니다. 처음에는 단백질, DNA, RNA 등 유기물로 구성하려고 했으나 지금은 사람의 뇌를 모사(摹寫)하는 뉴럴프로세서유닛(NPU)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입니다.

SK하이닉스도 NPU 개발에 뛰어든 상태죠. 잘 알려진 것처럼 스탠퍼드대학교, 램리서치, 버슘머티리얼즈와 함께 뉴로모픽(Neuromorphic·뇌신경 모방) 칩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완제품, 장비, 재료, 그리고 학계가 모여 공동으로 목표를 세웠다는 점이 흥미롭죠.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기술로는 그저 사람의 메커니즘을 따라가기도 벅찹니다. 그러니 생명체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바이오컴퓨터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네요.

앞서 양자컴퓨터에서 설명한 것처럼 핵심은 병렬처리입니다. 바이오컴퓨터는 분자 수준의 생화학 반응을 이용해 병렬성이 높고 집적도가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반도체는 데이터를 처리할 때 전기적 신호로 상태를 구분하고 지정된 장소에 전달합니다.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도 기본적인 골자는 같습니다. 분자와 산화, 환원 상태가 다르며 서로 전자를 전달하면서 미세한 전류를 일정한 방향으로 주고받죠. 이런 특성을 이용해 0과 1의 데이터를 단백질의 산화, 환원 반응(산화를 0, 환원을 1)에 대입시켰다고 보면 됩니다. 나노기술의 한계로 CPU까지는 아니더라도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바이오메모리’는 연구 단계에서 만들어진 상태죠.

그런데도 양자컴퓨터와 마찬가지로 ‘배열’이 너무 어렵습니다. 나노 단위에서 분자 구조를 마음먹은 대로 바꿔야 하고 여기에 전자의 움직임 조절이 쉽지 않은 것이죠. 특히 전자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생물분자막은 여러 단백질이 하나로 결합해 있는데, 이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덧붙여 단백질 자체는 산패, 말 그대로 공기에 노출되면 썩어버립니다. 그리고 같은 나노기술이어도 반도체와 같은 무기물을 다루는 것이 단백질 등 유기물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유리합니다. 바이오컴퓨터, 또는 바이오메모리가 양자컴퓨터보다 발전이 더딘 이유는 현재의 반도체 기술의 발전할 여력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차세대 컴퓨터는 반도체와 함께 진화

양자컴퓨터와 바이오컴퓨터 같은 차세대 컴퓨터의 공통점은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경제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일부 업체와 연구소에서 만든 양자컴퓨터가 존재해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냉전 시절 돈에 구애 받지 않고 경쟁적으로 우주개발을 했으나 이후부터 뜸해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른바 ‘아폴로 시대의 종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구를 소홀히 해도 곤란합니다. 아무리 다양한 반도체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과도적인 형태에 불과하고 고전물리학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죠. 5나노 이하, 3나노까지도 가능하다고 업계에서는 이야기합니다.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예단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술과 경제성이 모두 검증된 반도체와 새로운 컴퓨터 기술의 융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그리고 중심에는 사람이 위치해야 합니다. ‘인지컴퓨팅(Cognitive Computing)’이 등장한 계기도 여기에 있습니다. 폭발하는 데이터, 이를 처리하기 위한 고성능 컴퓨터가 왜 필요한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딱 1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겠습니다. 애플에서 오리지널 아이폰을 발표하고 아이폰 3G를 내놓을 시기네요. 그리고 이 제품은 전 세계를 뒤바꾸는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지금은 다양한 비즈니스가 스마트폰 기반에서 작동합니다.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던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반도체가 핵심이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앞으로의 10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지만, 기술의 발전속도는 가속도가 붙어 훨씬 빨리 개선될 겁니다. 여기서도 여전히 반도체가 중심이고 차세대 컴퓨터와 함께 이제껏 경험치 못한 디지털 세상을 펼쳐주리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NPU, 양자컴퓨터 등 저마다 비밀무기를 개발하고 있지요. 이 중심에 우리나라 기업이 있기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디지털데일리

이수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