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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디스플레이 기기의 혁신은 단연 HMD(Head Mounted Display)라고 할 수 있습니다. HMD는 이름 그대로 머리에 쓰는 형태의 디스플레이 기기인데요. 책상이나 거실에 놓는 TV∙모니터, 영화관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과 달리 작은 디스플레이가 부착된 장치를 머리에 쓰면 눈앞에 있는 화면을 통해 마치 거대한 화면을 보는 듯한 효과를 냅니다. 최근 등장하는 HMD는 각종 센서를 통해 사용자 시선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이를 반영하는 기능까지 갖추었죠. 쉽게 말해 사용자가 고개를 돌리면 눈앞에 보이는 화면도 여기에 맞춰서 움직이는 원리입니다. 이처럼 HMD는 오늘날 디스플레이 기술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데요. 이 HMD가 무려 50여 년 전에 처음 등장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이반 서덜랜드(Ivan Edward Sutherland)는 이미 오래 전 HMD 장치를 개발한 바 있습니다. 그는 HMD뿐만 아니라 초기 컴퓨터 그래픽 기술에 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죠. 현대 그래픽 기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이반 서덜랜드. 과연 그는 어떠한 인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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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서덜랜드는 1938년 미국 네브래스카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서덜랜드가 고등학생이었던 1950년대에는 컴퓨터가 매우 드물었는데요. 하지만 그는 에드먼드 버클리가 만든 SIMON이라는 릴레이 기반 컴퓨터를 장만하여 프로그래밍을 하는, 몇 안 되는 고등학생이었죠. SIMON은 1950년대의 컴퓨터 시장에 등장한 거의 유일한 개인용 컴퓨터였습니다. SIMON에서 프로그래밍을 하려면 펀치를 사용하여 종이테이프에 구멍을 내야 했는데요. 그 구멍들은 바로 개발자의 프로그램 명령어였습니다. 이를 입력기에 집어넣으면, 컴퓨터는 그에 따라 동작하게 되는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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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SIMON, 1970년대에 사용된 종이테이프와 테이프 입력기

 

때문에 하나의 종이테이프를 처리하는 시간은 무척 오래 걸렸으며, 이를 처리하는 오퍼레이터는 종이테이프를 입력하고 그 결과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죠. 이처럼 당시 프로그래머와 컴퓨터는 서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2 (70).png                                                                             ▲ 카네기 멜론 대학 재학 당시의 서덜랜드

 

이러한 당시 상황 속에서 프로그래밍에 꾸준한 관심을 유지하며, 카네기 멜론 대학(당시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전자공학 학사 과정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한 서덜랜드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전자공학과 컴퓨터 과학 박사 과정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박사학위의 주제를 고민하던 중 TX-2의 콘솔에 달려 있는 라이트 펜을 보고 컴퓨터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게 됩니다. 프로그래머와 컴퓨터를 직접적으로 연결해주고자 한 것이죠.

 

title2 (21).png서덜랜드는 MIT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스케치패드: 사람과 기계의 그래픽 대화 시스템(Sketchpad: A man-machinegraphical communication system)'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TX-2의 라이트 팬에서 영감을 얻어 스케치패드(Sketchpad)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에 이릅니다. 스케치패드는 실제로 구현된 최초의 그래픽 입력 장치인데요. X/Y 좌표를 인식하는 화면과 '라이트 펜'이라는 일종의 디지타이저(전자펜)로 구성됐으며, 링컨 TX-2 컴퓨터에서 작동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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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트 펜을 이용해 선을 입력하는 모습 출처: 유튜브 동영상 Ivan Sutherland : Sketchpad Demo 캡쳐

 

이전까지 컴퓨터를 통해 모니터에 표시할 수 있는 내용은 기껏해야 문자 몇 개 정도였습니다. 여기에 선이나 도형을 그리는 등의 작업은 오늘날처럼 쉽지 않았는데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덜랜드의 스케치패드는 사용자가 원하는 내용을 모니터에 즉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큰 특징이었습니다. 선을 긋는 것은 기본이고, 선을 이어 만든 도형을 하나의 객체처럼 묶어 움직이거나 객체의 크기를 조절하는 작업도 가능했죠. 마치 오늘날 태블릿을 사용해 PC에 그림을 입력하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이는 초기 컴퓨터 그래픽 기술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요. 미국의 기술 전문지 아메리칸 머시니스트(American Machinist)에서 ‘이반 서덜랜드의 스케치패드는 3D 컴퓨터 모델링과 시각화 시뮬레이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컴퓨터 그래픽과 CAD/CAM의 기초가 됐다’고 밝혔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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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컨 TX-2에서 스케치패드를 시연하는 이반 서덜랜드 출처: Computer History Museum

 

이 컴퓨터의 GUI는 향후 매킨토시와 윈도우 인터페이스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요. 즉, 스케치패드는 윈도우와 매킨토시로 이루어진 현대 개인용 컴퓨터의 GUI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 GUI란?

아이콘 또는 윈도 등 그래픽 표시를 기초로 한 조작 환경으로서 화면조작 소프트웨어. 그림문자(아이콘) 등을 통해 사람과 컴퓨터가 정보를 주고 받기 위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말합니다. 아이콘 외에 마우스 등도 쉽게 이용할 수 있으므로 컴퓨터의 조작을 보다 용이하게 하죠!

 

또한, 터치패드는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만든 NLS(On Line System)에서 사용된 그래픽 기반의 인터페이스에 커다란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NLS는 그래픽 기반의 사용자 환경을 바탕으로 하이퍼텍스트를 통한 문서 연결 기능, 네트워크를 통한 원격 회의 등을 갖춘 시스템인데요. 이 NLS를 바탕으로 오늘날 인터넷의 전신인 ARPANET이 탄생했으며, 하이퍼텍스트의 기초를 세웠고 입력 장치인 마우스가 탄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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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덜랜드는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응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은 후임자에게 맡기고 다른 새로운 문제를 맡아 골몰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는 터치패드 개발과 함께 MIT대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불모지였던 3D 컴퓨터 모델링와 HMD 방식의 가상현실 디스플레이 분야에 개척자로서 첫발을 내딛었는데요. 세계 최초로 2D 컴퓨터 그래픽을 창시한 과학자다운 행보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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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형 HMD 장치인 '다모클레스의 검

 

이반 서덜랜드는 1966년부터 1968년까지 하버드 대학교에서 전기공학과 부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그의 제자인 밥 스프로울과 함께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위한 HMD를 개발합니다. 이 장치는 천장에 부착해서 사용하는 방식 때문에 다모클레스의 검(The Sword of Damocles)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는데요. 이 장치는 아주 단순한 구조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양안 디스플레이와 머리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기계식 장치 등이 있으며, 추적 장치 크기와 무게 때문에 머리에 직접 쓸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상당히 원시적인 형태의 장비였기 때문에 현실감이나 몰입도도 떨어졌죠.

 

                                     ▲ 이반 서덜랜드의 HMD 출처 : 유튜브 (https://youtu.be/NtwZXGprxag)

하지만 당시에 이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반 서덜랜드의 HMD는 모니터의 화면을 벗어나 사용자가 컴퓨터 세상에 직접 들어가 여러 프로그램을 제어할 수 있다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죠. 이러한 기술이 점점 발전해 오늘날 가상현실 게임이 탄생하고, 사용자가 가상현실 세계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센서 기술이 등장하면서 '궁극의 디스플레이'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6 (40).png                                                                                ▲ 이반 서덜랜드와 데이비드 에반스

 

이후 서덜랜드는 그의 친구인 데이비드 에반스(David C. Evans)와 함께 ‘에반스&서덜랜드‘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실시간 하드웨어(사용자가 입력한 내용을 즉시 반영하는 하드웨어), 3D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 프린터 언어 등의 영역을 이끌게 됩니다. 이 회사에서 근무하던 존 워녹(John Edward Warnock)은 오늘날 최고의 그래픽 솔루션 개발사인 어도비 시스템즈를 설립했고, 짐 클락(James Henry Clark, 마크 안드레센과 넷스케이프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은 실리콘 그래픽스를 설립하죠. 그의 이러한 행보들은 근대의 그래픽 기반 컴퓨팅 환경과 디스플레이 기술의 원천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이반 서덜랜드는 컴퓨터와 인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텍스트만 나타나던 화면에 3D 입체 그래픽을 표시함으로써 컴퓨터와의 상호작용을 더 쉽게 만들었고, 이러한 개념은 점점 더 발전해 오늘날 윈도우나 맥OS 같은 그래픽 기반의 컴퓨팅 환경이 탄생하는 데 기여했는데요. 일반 개인들이 그래픽을 사용해 컴퓨터를 쉽게 다룰 수 있도록 기존의 장벽을 부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공로로 1988년 튜링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서덜랜드는 현재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특별연구원 및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UC버클리 대학의 컴퓨터 과학부에서 초빙학자로 재직하며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았던 혜안과 과감하고 혁신적인 태도로 현대의 디스플레이 환경에 혁혁한 공을 세운 서덜랜드! 혁신적 기술이란 도전정신과 강한 실천력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을 그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