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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히어로들이 함께 팀을 이뤄 악당을 무찌른다는 상상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저스티스 리그>는 그 상상을 실현시킨 영화죠. DC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꿈의 프로젝트였지만, (슬프게도) 그 시도가 아주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대신 반도체의 눈(?)으로 바라보면 참 흥미로운 구석이 많습니다. ‘황당무계하게 여겨지는 슈퍼 히어로의 능력, 어쩌면 실현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그럼 지금 바로 ‘반도체’와 함께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죠.

원더우먼이 가진 황금 올가미, 진실을 말하게 할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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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Daum영화

DCFU(DC Films Universe) 영화 중 유일하게 볼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저스티스 리그’에서도 존재감을 마구 내뿜는 영웅, 바로 원더우먼(갤 가돗)인데요. 그는 단독 영화인 <원더우먼>은 물론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저스티스 리그>에서도 씬스틸러 역할을 톡톡이 해냈습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DC의 효녀’입니다.

원더우먼은 ‘헤스티아의 올가미’라는 독특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실의 올가미’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이 무기는 한번 묶이면 진실만을 말할 수 밖에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헤스티아의 올가미’는 원더우먼 캐릭터를 만든 원작자 윌리엄 몰튼 마스턴(William Moulton Marston) 박사가 거짓말 탐지기를 발명했기 때문에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과연 현실 세계에서도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대단한 무기일 텐데요.

사실 진실만을 말하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의 뇌는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자백제라 불리는 약물이 있지만, 술 취한 상태처럼 만들어 되는대로 말하게 만드는 쪽에 더 가까운 약이죠. 대신 말하는 것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어느 정도 판별하는 기술은 개발되어 있습니다. 앞서 말한 윌리엄 몰튼 마스턴 박사가 발명한 거짓말 탐지기입니다.

간단히 말해 ‘의식은 자율 신경까지 콘트롤 할 수는 없다’라는 믿음 아래, 거짓으로 답할 때 나타나는 혈압, 맥박, 땀 같은 여러 가지 신체 반응을 체크해서 사람 말의 진위를 판별하는 기술입니다. 나중에는 이 조사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겨 뇌파 탐지기를 함께 사용하기도 했죠.

당연히 신체 반응과 뇌파 반응을 감지하는 것은 피의자의 몸에 붙어 있는 센서들입니다. 알아채셨나요? 바로 ‘반도체’죠. 우리가 만약 ‘진실의 올가미’를 만든다면, 이 올가미는 반도체 센서 덩어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센서로 피의자 몸 상태를 확인하고, 내장 프로세서로 뇌파를 분석하고, 거짓말을 하면 전기를 흘려 고통을 주는 것이죠.

플래시가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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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Daum영화

영화를 보면 중간에 플래시(에즈라 밀러)가 ‘(스포일러라)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분’의 부활을 돕기 위해 전기를 공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의 가슴에 번개 모양이 새겨져 있어 왠지 전기를 생성하는 능력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플래시는 ‘스피드 포스’에서 힘을 얻는, 다시 말해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영웅이랍니다.

빠르기만 하다고 전기가 생성되지는 않죠. 비밀은 플래시가 달릴 때 몸 주위에 생기는 빛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어디서 본 것 같은 모습이다’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바로 ‘플라스마 방전’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죠. 플라스마는 기체에 높은 온도를 가함으로써 원자들이 원자핵과 전자로 분리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일 때 플래시 주위를 감싸고 있는 마찰력 쿠션 안에 공기가 갇히고 고온이 발생해 플라스마 방전이 생기는 것이죠.

어려운 기술 같지만 실은 이미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형광등이나 네온 사인이 방전에 의한 플라스마 상태에서 빛을 내는 제품들이거든요. 오존 제품들도 플라스마를 이용해 만들어 집니다. 아예 태양 자체가 거대한 플라즈마 덩어리이기도 하죠. 예전에는 PDP TV를 만들 때도 쓰였고, 반도체 소자를 만들 때도 플라즈마 에싱 기술이 필수적입니다. 앞으로 만들어질 인공 태양 역시 플라스마를 이용한 핵융합 반응으로 만들어 집니다. 플라스마를 다루는 것은 미래 핵심 에너지 기술 중 하나죠.

그런 플라즈마 방전을 이용해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분’을 깨울 정도의 전기를, 단순히 빨리 달리는 것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으니, 플래시가 정말 대단한 영웅이긴 하네요.

사이보그와 홀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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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Daum영화

<저스티스 리그>에서 사이보그(레이 피셔)는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사고로 인해 기계로 만들어진 몸을 갖고 있죠. 그 기계 몸을 구성하는 것은 ‘마더박스’라는 우주 신족들이 만든 마법 컴퓨터입니다.

덕분에 사이보그는 어쩔 수 없이 진화하고, 어쩔 수 없이 전세계 수많은 정보들과 접촉하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런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그가 이용하는 것이 바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입니다. 사이보그는 이를 통해 많은 정보를 시각화해서 눈 앞에 펼쳐놓습니다. 아이언맨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문제는 아직 이런 홀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홀로그램은 프로젝터에서 쏜 빛을 반사시켜 투명 스크린에 비추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누가 봐도 가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실체감이 없는 영상이죠. 최근 만들어지는 홀로그램은 빛의 간섭 효과를 이용해 공중에서 3차원 오브젝트가 떠 있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아직 기술 개발 중이긴 하지만요.

그럼 영화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홀로그램은 만들 수 없을까요?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다만 위에서 말한 플라스마를 사용해 비슷하게 만들어내는 기술이 연구 중에 있습니다. 무려 공기 분자를 디스플레이 장치의 화소 역할로 사용하는 건데요. 플라스마를 사용하는 관계로, 플래시가 아닌 평범한 인간인 우리들이 사용하기엔 아직 위험합니다.

▲ 유형(有形)의 홀로그램 플라즈마 (출처: 오이아치 요이치 YouTube 채널)

극복하려는 움직임은 있습니다. 일본 쓰쿠바 대학 오치아이 요이치 교수가 이끄는 팀이 제안한 ‘페어리 라이트 프로젝트는 사람 움직임에 반응하는 3차원 홀로그래픽 시스템입니다. 영상을 만들어내는 레이저 파형을 아주 작게 줄여서, 사람이 닿아도 안전하게 만들었습니다. 1000조분의 1초 단위인 펨토초 레이저를 사용해서 가능해진 건데요. 플라스마에서 발생하는 충격파를 이용해 촉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슈퍼 히어로가 될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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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Daum영화

<저스티스 리그>에서 우리와 그나마 비슷한 인간인 배트맨(밴 애플렉)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요? 바로 그가 스스로 언급하기도 했던 ‘재력(Rich)’입니다. 사실 이것은 반도체가 구현할 수 없는 능력이죠.

배트맨은 그 재력으로 무기를 만듭니다. 가장 능력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저스티스 리그>에서, 그는 히어로 지원 및 ‘화력 덕후’로 겨우 겨우 제 몫을 합니다.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분’이야 지구인이 아니니 논외로 하고요.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도 물고기와 대화할 수 있고 힘도 세지만, 사실 영화에서 하는 일은 악당 부하들을 처리하는 일을 빼면 존재감이 미미합니다. 그렇게 큰 근육을 가지고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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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Daum영화

돈도 능력도 부족한 우리는 완벽한 슈퍼 히어로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히어로가 가진 부러웠던 능력들을, 우리는 조금씩 우리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요. 예전에 잠깐 소개됐던 프로토타입 제품 가운데 미코(Mico)라는 헤드폰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헤드폰에 부착된 뇌파를 읽는 센서가 우리 기분을 파악해, 지금 상황에 맞는 노래를 골라준다는 컨셉을 가진 제품이었죠.

원더우먼이 아니라 남에게 진실을 말하라 할 수는 없지만, 이처럼 최소한 내 뇌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게 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영화 속 사이보그가 직접 자기 몸을 이용해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처럼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르죠. 플래시와는 다르지만 인공 태양을 이용해 전기를 얻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고, VR게임을 통해 배트맨과 슈퍼맨의 능력을 경험해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반도체 기술을 통해 이미 슈퍼 히어로가 되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온갖 미사여구와 허황된 약속이 판을 치기도 하지만, 과거 영화 속에서나 나왔을 일이 하나둘씩 분명히 우리 일상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마냥 좋기만 한 걸까요?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질문을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가?’란 질문을요. 대답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말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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